기획 연재
팔레스타인, 저항, 혁명 ─ 해방을 향한 투쟁 ①:
이스라엘 건국, 팔레스타인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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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역사가 일란 파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겪은
이 끔찍한 범죄를 자행한 것은 시온주의자들이었다. 시온주의는 애초 유럽에서 벌어진 인종차별과 유대인 혐오에 대한 반응으로서, 또 나치의 유대인 인종 학살
시온주의의 비극은 그 지도자들이 억압받는 사람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식민주의의 선봉대가 되기로 결정했다는 데에 있었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이 유럽 국가들과 맺은 온갖 관계 중에서 영국 제국주의와 맺은 연계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판명됐다.
1917년
제1차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은 전쟁 중에 군사적으로 점령했던 팔레스타인을

1917년 이후 영국 군정청의 예루살렘 군정사령관을 지낸 로널드 스토스의 말은 영국 관료들이 시온주의 운동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집약적으로 보여 줬다.
스토스는 시온주의 식민지가 영국에 적대적인 지역 한가운데에 충성스런
예컨대 알제리는 프랑스 정착자들이 통치했고, 아랍계
그럼에도 영국 정부는 시온주의 식민 점령자들이 이 지역 전체를 예속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현지 아랍계 지배자들 중에서 동맹을 찾아야 했다. 그런 아랍계 지배자들은 식민 점령자들과 나머지 인구 사이에서 완충 구실을 할 것이었다.
이 지역은 소왕국들로 분할됐고, 영국인 고문들이 막후에서 각각의 왕국들을 통치했다. 영국이 차지하지 않은 지역은 영국의 전쟁 동맹국이자 제국주의적 경쟁국인 프랑스에 넘어갔다.
영국이 시온주의자들과 맺은 협력 관계를 보고, 신생 왕국들을 지배한 아랍 왕족
이런 제국주의 통제 체제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파업
이집트와 이라크에서 군 장교들의 반란으로 왕정이 타도됐다. 시리아
이와 달리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이 건국돼 팔레스타인인들의 민족 해방 염원이 분쇄됐다. 시온주의 운동 지도자들은 무장한 남녀 수만 명을 민병대로 조직해,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 대부분을 장악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쫓아냈다.
유엔은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이 이 땅을 분할하라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시온주의자들은 이에 아랑곳 않고 철저하게 인종 청소를 자행했다.
시온주의 반대는 유대인 혐오가 아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시온주의 반대가 포장만 바꾼 현대판 유대인 혐오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역사적 사실을 못 본 체하는 것이다.
유대인 혐오는 특정 인물의 정치적 견해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 없이 오직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증오하는 것이다.
시온주의 반대는
나치가 유럽에서 유대인을 말살하려 하고 서방 국가들이 제2차세계대전 말
따라서 유대교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나 유대교 전통이 필연적으로 이스라엘 지지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그 국가의 정책에 가장 앞장서서 반대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유대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