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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자 이스라엘의 공범, 블링컨이 서울에 온다

미국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이 11월 8~9일 서울에 와, 외교부 장관 박진과 대통령 윤석열을 만날 예정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시티를 포위하고 시가전을 벌이는 와중에, 미국 행정부의 최고위직이 방한하는 것이다.

블링컨은 중동을 거쳐 아시아로 온다. 시급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문제를 처리하고, 미국에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아시아 지역에 오는 순방 일정이다.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와 악수하는 앤터니 블링컨 ⓒ출처 주예루살렘 미 대사관

그동안 미국 권력자들은 자국의 중동 패권을 위해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해 왔고, 이제 이스라엘과 함께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일시적 교전 중단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계획에 차질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인질 석방과 구호 물품 전달을 위해 전투를 잠깐 중단하자는 제안일 뿐이다.

바이든 정부는 유엔에서 휴전 제안들에 모두 반대했다. 유엔 휴전 결의가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블링컨도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전쟁이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주말 블링컨은 요르단·이집트 등 아랍 국가 외교장관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금 휴전하면 하마스가 전열을 재정비해 테러를 반복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테러’와 관련돼 있다며 가자지구의 병원, 학교, 구급차까지 공격한다.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들은 하마스나 ‘테러’와 무관한 가자 주민은 없다고 떠든다. 즉, 미국은 이스라엘이 인종 학살을 자행할 수 있도록 비호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에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전쟁 발발 직후 바이든 정부는 스마트 폭탄 1000발 등 탄약을 이스라엘에 지원했다. 155밀리미터 포탄도 곧 이스라엘로 간다. 바이든 정부가 의회에 요청한 140억 달러의 이스라엘 긴급 지원 예산은 미 의회에서 초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11월 3일 〈타임〉은 이렇게 보도했다. “미국은 아이언돔 요격 미사일과 소구경 폭탄, 합동정밀직격탄(JDAM) 키트를 이스라엘에 보내기로 약속했다. … [미 군수 업체] 보잉은 JDAM 1800기를 [이스라엘에] 인도하려고 생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무기 계약 리스트에는 F-35 전투기, 군수송 헬기, 공중 급유기들도 추가돼 있다.

블링컨은 이스라엘에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위선이다. 10월 30일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이 제공한 무기 사용에 대해 이스라엘에 어떤 제한도 걸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이 제공하는 포탄들이 가자지구 주민들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뿐 아니라, 바이든과 블링컨의 손에도 가자 주민의 피가 묻어 있다.

미국은 시리아를 폭격하는 등 사태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 항모들에 이어 핵추진 잠수함도 중동에 배치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 행동은 전쟁을 더 위험한 쪽으로 확대시킬 수 있다.

제2의 나크바

블링컨은 ‘두 국가 방안’을 진전시키는 게 이번 사태를 해결할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마스를 제거한 후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게 “가장 일리 있다”고 말했다.

이 주장은 제2의 나크바를 일으켜 가자 주민들을 이집트로 내쫓고 싶어 하는 이스라엘 극우의 바람과는 다르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블링컨의 ‘해법’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장악해 하마스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때까지 더 많은 파괴와 학살, 강제 이주를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두 국가 방안은 그 한계가 명백하다. 강탈 국가 이스라엘과 그 국가의 인종분리주의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 서방에 너무 협조적이어서 팔레스타인 대중의 불신을 산 지 오래다. 바이든 정부가 무엇을 획책하든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이스라엘 지원은 곳곳에서 커다란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지난 주말에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는 10만 명 이상이 모인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열려 자국 정부에 항의했다. 블링컨 자신도 서안지구, 이라크 등 중동에서 가는 곳마다 항의 시위에 직면했다. 튀르키예에서는 블링컨이 도착할 예정인 미공군 기지로 진입하려 한 시위대를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로 해산시켜야 했다.

대통령 윤석열은 이런 블링컨을 만나 팔레스타인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앞서 10월 27일 윤석열 정부는 ‘하마스 테러에 대한 규탄이 없다’는 이유로 유엔 휴전 결의안에 기권했다. 사실상 미국과 이스라엘 편을 든 것이다.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대니얼 크리튼브링크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지원 같은 국제적 문제들이 블링컨 방한의 주요 의제들이라고 말했다. 블링컨이 윤석열 정부에 우크라이나는 물론 이스라엘에 대한 구체적 지원 요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블링컨과 윤석열의 만남을 규탄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패배하도록 국제적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더욱 키워야 한다.


아시아 순방이 주는 메시지

블링컨은 도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서울에 온다. 그는 G7 회담과 한·일 방문을 이용해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결집시키려 할 것이다.

또한 그가 일본과 한국을 연이어 방문하는 것은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났지만 미국은 아시아에 소홀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곧 열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블링컨은 아시아의 핵심 동맹국인 일본·한국과 공조하는 모습도 보여 주고 싶은 듯하다.

지금 전쟁은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미국 권력자들은 중국과의 대결을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이 지금 중동에서 군사력을 늘리는 것도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운 중국을 의식한 행보다.

비록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지만, 미·중 관계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10월 17일 미국 상무부는 저사양 인공지능 칩의 대중국 수출을 불허했다. 이런 제품도 무기에 사용되면 미국 안보에 위협이라면서 말이다.

사흘 후 중국 정부는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흑연의 수출 통제를 강화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미국의 기술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들에 중국의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지정학적 갈등도 점증하는 중이다. 10월 22일 남중국해에서 영토 분쟁 중인 중국 해안경비대 함정과 필리핀 보급선이 충돌했다. 이틀 후 남중국해 상공에서 미군 B-52 폭격기와 중국군 J-11 전투기가 3미터 이내로 근접 비행했다.

중국 외교부장 왕이가 “[정상회담이 열릴]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한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다.

블링컨은 서울에서 윤석열 정부와 인도-태평양 전략의 공조를 논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공조가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