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문제:
두 국가 방안이 아니라 민주적·세속적 단일 국가 창건이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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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하면서 벌이는 만행으로 전 세계에서 비난 여론이 커졌고, 국제적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분출하고 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끝낼 길은 무엇인가 같은 핵심적 물음도 제기된다.
두 국가 방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자의 국가를 세워 평화롭게 공존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이는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는 대신, 팔레스타인의 일부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할 수 있게 국제적으로 보장받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때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이끌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두 국가 방안에 기초해, 1993년 이스라엘과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세웠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두 국가 방안을 팔레스타인 문제의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여긴다. 평화적으로 팔레스타인 사회의 안정을 가져다줄 불가피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러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두 국가 방안 약속을 어긴 게 문제의 원인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가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국가 방안은 이스라엘 국가와 그 국가의 기초가 되는 인종 분리주의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시온주의 정착자들이 원주민들을 강탈해 세운 국가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살던 곳에서 내쫓았다.
그래서 서안과 가자지구는 물론이고 레바논·요르단·시리아 등 주변 아랍 나라들로 피난 간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분노하며, 빼앗긴 터전을 되찾고 고향으로 되돌아가기를 열망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 사이에 갈등이 끊일 수 없는 것이다.
이 선주민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안보는 계속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과거 미국처럼 선주민들을 거의 말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은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모두 유대인 정착자들이 착취하는 이등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60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들어오면 유대인만의 배타적 단일 국가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거듭 전쟁을 벌였다. 게다가 지금 정부 요직을 차지한 이스라엘 극우들은 이런 불안정한 상태를 아예 끝내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 전부를 역사적 팔레스타인 바깥으로 완전히 쫓아내 버리고 싶어 한다.
오슬로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됐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실질적인 자치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슬로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일부를 포섭해, 인티파다 저항을 통제하려고 했을 뿐이다. ‘평화 프로세스’는 거대한 기만이었다.
이스라엘은 토지 강탈과 유대인 정착촌 확대를 지속했고, 분리 장벽을 곳곳에 세우는 등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을 계속 통제하고 그들의 자유를 억압했다. 서안지구에서 물 같은 주요 자원도 모두 이스라엘이 차지했다.
분리 장벽에 둘러싸인 ‘자치’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경제적 기반은 전보다 더 취약해졌다. 그 사이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제한적인 자치권을 행사하며 외부 재정 지원에 의존하는 처지로 전락했고, 외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억누르는 구실을 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오슬로 협정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당연히 커져 온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해방을 위해 이스라엘에 맞선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후원하는 제국주의 열강, 그리고 그 열강과 손잡은 아랍 정권들과 맞서야 함을 뜻한다. 즉, 중동의 기존 질서와 대결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전략은 아랍 세계 전체의 근본적 변화 전망과 연결돼야 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같은 기존 저항 세력은 아랍 정권들의 지원에 의존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랍 지배자들이 놀라지 않도록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을 통제해야 했고, 아랍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대중 투쟁과도 거리를 뒀다.
이런 전략은 해방 운동의 약점이 됐다. 영웅적인 무장 투쟁을 벌였음에도 이내 한계에 부딪히고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끝내 ‘두 국가 방안’ 같은 타협으로 후퇴했던 까닭이다.
그러자 하마스가 오슬로 협정을 비판하며 대안으로 떠올랐다. 2000년에 시작된 2차 인티파다에서 하마스는 중심적 구실을 했다.
하지만 하마스도 본질적으로 같은 전략을 추구해 왔다. 카타르를 비롯한 걸프 연안 왕정들은 물론이고 이란과 시리아 정권 등의 지원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략 때문에 하마스도 아랍 대중의 저항을 일관되게 지지하지 못한다. 2011년 바레인에서 대중 항쟁이 분쇄된 후 하마스 지도자가 바레인 정부의 ‘개혁’을 칭송한 것은 이런 약점을 보여 준 사례의 하나다.
한때 하마스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군대와 시온주의 정착자들이 1967년 전쟁 때 점령한 영토(예루살렘 동부, 서안, 가자)에서 모두 철수하면, 그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고 이스라엘과 “한 세대에 걸친 장기 휴전”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물론,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이에 동의할 때까지 무장 저항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구상은 하마스가 사실상 이스라엘 국가를 용인하는 쪽으로 이끌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공상
두 국가 방안은 진정한 해법이 아닌 공상일 뿐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은 인종 분리주의 국가인 이스라엘 국가를 해체하고, 팔레스타인에 세속적이고 민주적인 단일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다. 그 국가에서는 무슬림, 유대인, 그리스도인 등이 모두 평등하게 함께 살 수 있다.
이런 대안이 언뜻 보기에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 특히, 이스라엘 국가가 건국된 지 75년이나 지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지기 전에 무슬림과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공생하며 살아 온 훨씬 더 긴 역사가 있다.
팔레스타인 저항은 아랍 대중이 제국주의와 자국 정권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우도록 고무할 수 있다. 이미 연대 시위가 중동과 북아프리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그래서 서방과 중동 지배자들은 이번 하마스의 저항이 중동 세계의 반란으로 이어질까 봐 염려한다.
특히, 가자지구와 이웃한 이집트에서 독재 정권의 견제와 탄압을 뚫고 거리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10월 27일 이집트 사회주의자 호쌈 엘하말라위는 이렇게 지적했다.
“최근 거리 시위가 살아난 것은 [2차 인티파다 연대 운동이 일어난] 2000년대 초반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번 시위는 경제 위기 때문에 더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 맥락 속에서 이 전쟁은 더 큰 저항을 촉발할 수 있다.”
우리는 서방과 아랍 지배자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기를 바라야 한다. 아랍 혁명의 승리는 팔레스타인에서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단일 국가를 건설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2024년 2월 1일에 하마스의 입장에 관한 내용을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