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저항 정당하다: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는 ‘정당방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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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는 지금 보복성 폭격을 당하고 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에 무참히 살해당하고 있다. 최근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폭력적인 인종차별 국가라는 것이 새삼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억압에 맞서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양쪽 모두 폭력을 중단하라”고 말하는 이들은 실제로는 억압자 편에 서는 것이라고 닉 클라크가 설명한다. 이 기사는 2021년 5월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할 때 쓰였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폭력성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 두 발언이 있다. 첫째는 팔레스타인 주거 지역을 파괴하면서 이스라엘인들이 외친 구호, “아랍인에게 죽음을”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한 이스라엘인들의 살인적 혐오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인들은 70여 년간 팔레스타인인들을 고향에서 내쫓고 있다.
둘째 발언은 이스라엘 국방장관 베니 간츠가 가자지구의 무장저항 단체를 향해 한 말이다. “이스라엘은 휴전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 쥐 죽은 듯 고요해진 뒤에야 상황을 진정시키자는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을 단념하지 않는 한, 폭격으로 침묵을 강요하며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양쪽 모두 폭력을 중단하라”면서 이스라엘에 “자기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하는 주장이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실제로는 이스라엘 편에 서고 있다. 즉,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할 권리를 부정하고, 저항에 나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폭격할 권리가 이스라엘에게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정당방위” 주장은 폭력이 어디서 비롯하는지 못 본 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이 아랍인을 적대하는 인종차별과 폭력 위에 세워졌고, 아랍인들을 울타리에 갇힌 소수민족으로 만들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존재는 중동에서 미국의 뜻을 관철시키는 임무와 떼려야 뗄 수 없고, 그래서 이스라엘 사회는 고도로 군사화돼 있다.
폭력이 일상인 상황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경계 안쪽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차별과 가난 속에 살고 이스라엘 민간인과 경찰의 괴롭힘에 시달린다.
가자지구에서는 청년 팔레스타인인들이 성장기 내내 이스라엘의 봉쇄를 경험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14년 동안 공중 폭격을 수없이 했고 파괴적인 전쟁을 세 차례 일으켰다. 그리고 최근의 공격은 그 넷째가 될 듯하다.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억압적인 군사 통치하에 살고 있다. 군인들이 각종 검문소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집을 습격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는 정착민들을 비호했다.
팔레스타인 학자이자 활동가인 마크 무한나드 아이샤는 폭력 위협이 일상인 상태에서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지를 지난주 〈알자지라〉 기사에서 설명했다.
“우리는 무장한 이스라엘 시민들을 늘 마주쳤다. 그들은 총을 드러내 보이면서 활보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우월성을 각인시키고, 거슬리게 쳐다보면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고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어릴 때 아이들끼리 나누던 대화는 이스라엘인들이 쓰는 고문 방식, 이스라엘 병사들에게 끌려가서 폭행당한 친구나 친척 얘기, 무장한 이스라엘 민간인이 어떤 팔레스타인인에게 욕을 하고 침을 뱉은 얘기, 친척이나 친구가 오랫동안 구금당하고 고통받은 것에 대한 얘기로 흘러갈 때가 많았다.
“확실히 오늘날 상황은 그 시절보다 더 나빠진 듯하다. 그런 날들과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고, 거기에 실제로 폭력을 경험하는 각종 사건이 더해지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상시적 공포 상태에 있게 만드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역사를 보면, 그런 공포 상태를 견디며 사느니 저항하기로 결심한 팔레스타인인들이 많다. 그들이 저항에 나설 때마다, 그 저항이 어떤 방식인지와는 무관하게, 팔레스타인인들은 잔혹한 탄압에 직면했고 종종 목숨이 위험했다. 따라서 폭력은 정당할 뿐 아니라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시위에 나섰다는 이유로 사살당하는 상황에서 (2018년 대중 시위 때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들더러 평화롭게 저항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위선적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하고 시위대에 발포하는 것은 “정당방위”가 아니다. 그보다는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하려고 폭력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반격에 나서는 것은 그런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저항할 권리가 있다. 그 수단이 돌이든 로켓이든 마찬가지다.
무장 투쟁은 영웅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역사상 팔레스타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해 왔다.
대규모 시위, 반란과 파업을 벌였다. 한편, 이스라엘 군에 패배를 안기려고 영웅적인 무장 투쟁도 벌였다. 그런 무장 투쟁은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
그 두 방식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폭력이냐 비폭력이냐는 아니다. 그리고 두 방식이 연결되는 경우도 흔하다.
예컨대,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 단체들은 지난주에 로켓을 발사하면서 그것이 예루살렘에서 강제 퇴거에 맞서 싸우는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은 로켓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예루살렘 시위가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이스라엘 안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공포였다.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가자지구를 향해 살벌한 위협을 내뱉는 모습과, 라믈라와 로드에서[이스라엘의 도시] 이스라엘인 폭력배들을 진정시키려고 다급하게 애원하는 모습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가자지구가 불탈 것”이라고 위협하던 간츠는 같은 날 이런 경고도 했다. “우리 내부의 분열이 우리를 위태롭게 만든다. 가자지구의 전투는 이기고 본진의 전투는 지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정치인들에게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은 가자지구 주민과 똑같이 하찮은 존재다.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경찰에게 가혹한 대접을 받았다. 이스라엘 경찰이 그들을 내부의 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제 시위를 벌이자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당황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치인과 장성들은 시위가 반란으로 발전해 팔레스타인 구석구석으로 번질 수 있고, 가라앉히기까지 여러 해가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저들은 무장 투쟁을 억제하는 데에는 훨씬 더 자신감이 있다.
이는 단지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무장 저항 단체들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욱이, 무장 저항은 과거 이스라엘에 굴욕적인 패배를 몇 차례 안긴 바 있다.
2006년에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무장 저항 조직 헤즈볼라를 분쇄하겠다며 레바논을 침공했다. 몇 주 후,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게릴라 전사들(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대중적 지지에 뿌리 내리고 있다)에 밀려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2014년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전면전을 벌이고 팔레스타인인 2251명을 죽였지만, 하마스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기지 못한 채 7주 만에 전쟁을 끝내야 했다.
그러나 무장 투쟁은 이스라엘의 점령이나 인종차별 체제를 종식시킬 상황에 근접한 적이 없다.
무장 저항 단체들이 무장 투쟁 전술을 사용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중동의 그 동맹들을 압박해서 협상에 응하고 양보하도록 만드려는 것이다.
그런 투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자신을 팔레스타인 국가의 지도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려는 것이다. 이런 노선은 투쟁 당사자들이 스스로 양보하도록 만든다. 1970년대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였다. 그들의 계획은 민족 해방 투쟁으로 그 일대 다른 아랍 국가와 비슷한 팔레스타인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아랍 국가들의 지원에 기댔고, 그 국가들을 전쟁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이 자신을 지원해 주기를 바랐다.
문제는 그 국가들의 지배자들이 많은 경우 중동을 지배하는 미국, 영국과 이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아랍 지배자들을 위협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했다. 그러려면 팔레스타인 저항을 일정 수준 이하로 억제해야 했다.
아랍 지배자들은 때때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유용하다고 봤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그들을 적으로 돌렸다. 요르단에서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어찌나 강력했는지 국가에 대항하는 권력으로 발전하자, 요르단 정권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대거 학살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점차 이스라엘에게 정당한 협상 파트너로 인정받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의 중대한 결과 하나는, 팔레스타인 땅을 온전히 되찾겠다는 목적을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포기하게 된 것이다. 그 대신 이스라엘과 공존할 “미니 국가”를 약속받자는 유혹에 빠졌다.
1993년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국가를 약속받을 “평화 절차”를 택하겠다며 무장 투쟁 포기를 선언했다. 그렇게 선택한 협상으로 그들이 얻은 것은 이스라엘의 철저한 통제였을 뿐이다.
하마스 등의 이슬람주의 단체들은 그런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대신할 대안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그들도 같은 전략을 추구한다.
하마스도 중동의 다른 정권들이나(예컨대 이란),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같은 단체들의 지원을 기대했다.
이후 가자지구 봉쇄가 수년간 이어졌고, 이집트에서는 반혁명이 벌어져 무슬림형제단이 박살났다. 이런 상황에 떠밀려 하마스는 서방의 지원을 받는 이집트 정권과 협상을 했다.
이집트 정권은 가자지구 봉쇄에 일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하마스는 반격에 나설 때마다 이집트가 자신을 대변해서 개입하고 “중재”하기를 기대한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해 뭐라고 주장하든, 실제로는 하마스 역시 팔레스타인 “미니 국가”를 보장받는다면 이스라엘과 타협하겠다고 밝혀 왔다.
중동의 반란으로 승리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여태껏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하마스나 팔레스타인해방기구 같은 무장 단체들이 아니었다. 그 위협은 평범한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들고 일어났을 때 제기됐다. 그것이 바로 제1차 인티파다다.
1987년에 인티파다를 촉발한 계기는 충격적인 잔혹 행위였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 수백 명이 이스라엘에서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잔혹한 살인을 목격했다.
이스라엘 탱크 운반 차량이, 검문소에 줄지어 대기 중이던 노동자들의 차량을 깔아뭉갠 것이다. 팔레스타인인 4명이 사망했고 7명이 부상당했다.
인근 자발리아 난민 캠프에서는 숨진 3명의 장례식으로 시작된 모임이 1만 명 규모의 시위로 발전했고 시위대는 경찰서로 행진했다. 다음 날 이스라엘 군인들이 자발리아에서 일어난 또 다른 시위를 공격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살인적 폭력을 동원해 일체의 시위를 분쇄하려고 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더 많은 장례식과 더 많은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가자지구 전체, 이후에는 팔레스타인 전체가 들고일어났다.
시위와 반란은 가자지구를 넘어 서안지구와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터져 나왔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점령 지역[가자지구,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주민들에 연대하며 총파업에 참여했다.
활동가들의 위원회는 모든 지역, 도시와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항쟁을 조율했다. 이스라엘은 가장 잔혹한 탄압으로도 반란을 분쇄할 수 없었다.
이후 5년 동안 이스라엘은 도저히 이길 방도가 없어 보이는 비대칭적 전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1988년 1월 이스라엘 신문 〈예루살렘 포스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가자지구,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의 거리는 사실상 청년들이 통제하고 있다. 우리의 20세들이 저들의 20세들과 충돌하는 형국이다. 우리 20세들은 중무장하고 헬리콥터와 총을 사용하고, 저들은 몽둥이와 돌멩이, 수제 화염병을 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대에 맞서 돌과 화염병만으로 저항에 나서는 사진들은 이스라엘 점령의 현실을 폭로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가 늘었고, 특히 중동 전역에서 연대가 는 것이 중요했다.
아랍 지배자들은 인티파다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규모 연대 시위를 탄압했는데, 그런 시위가 자신을 향한 반란으로 변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알제리에서는 반정부 대중 운동이 인티파다에서 영감을 얻었다. 반정부 지도자들은 시위대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단결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서야 합니다. 저 팔레스타인인들처럼 말입니다.”
이집트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자국 정부가 이스라엘, 미국과 맺은 긴밀한 관계를 정조준하는 방향으로 삽시간에 발전했다.
이집트 북부 마할라의 대규모 방직 공장의 노동자들은 반란 초기부터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동참했다.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구호들은 이스라엘, 미국과의 관계를 단절하라고 자국에 요구하는 구호들로 발전했다.
미국이 지원하는 중동 정권들이 가장 크게 두려워한 것은 반란이 팔레스타인 밖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두려움이 결국 이스라엘의 등을 떠밀어 1993년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와 평화협정에 서명하도록 했다. 그 평화협정은 저항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저항이 팔레스타인을 넘어 광범한 반란을 촉발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여전히 이스라엘과 아랍 정권들에게 남아 있다.
다른 아랍 나라들에서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은 팔레스타인 연대 투쟁이 자국 독재자들에 맞선 투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게 된다. 2011년 이집트 혁명 당시 사람들이 카이로의 이스라엘 대사관을 습격하고 새 정부로 하여금 가자지구와 접한 국경을 개방하도록 강제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요르단, 모로코, 레바논에서도 그런 이유로 연대 시위가 다시금 벌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 협정을 맺었던 아랍 정권들이 이제는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 저항을 그만 공격하라고 주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정권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하기 때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저항이 무엇으로 이어질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