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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대표 박순관 구속은 당연하다
내·외국인 차별없이 보상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하라

8월 28일 늦은 저녁 아리셀과 그 모기업 에스코넥의 대표 박순관, 아리셀 총괄본부장이자 박순관의 아들인 박중언이 구속됐다. 아리셀 참사가 벌어진 지 66일만이다.

매우 당연한 결정이다. 26일부터 영장실질심사를 하는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밤샘 농성을 해 왔던 유가족들은, 구속 결정 소식을 듣고 큰 울음을 터뜨리며 얼싸안고 서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유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는 박순관의 증거 인멸 시도 정황을 포착하고 참사 직후부터 구속 수사를 촉구해 왔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이 당연한 조처를 취하는 데 두 달을 허비했다.

박순관을 구속하라 8월 26일 영장실질심사를 하는 수원지방법원 앞 기자회견 ⓒ출처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8월 23일 고용노동부 경기지청과 경기남부경찰청이 아리셀 참사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에 근거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수사 결과를 보면 참사 직후부터 원인으로 지목된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아리셀은 올해 1월 방위사업청과 총 34억 원 상당의 리튬 전지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4월에 납품한 제품이 국방기술품질원의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전지를 재생산해야 했고, 이 때문에 5월 1일부터 매일 약 70만 원의 지연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그러자 아리셀 사측은 생산 목표를 무리하게 높였고, 생산량을 늘리려고 메이셀로부터 인력을 불법으로 파견받았다. 메이셀로부터 파견받은 노동자는 5월 13일 31명에서 참사 나흘 전인 6월 20일 62명으로 늘어났다.

서둘러 생산 목표를 달성하려고 충분한 교육도 없이 노동자들을 투입하면서 불량률이 높아졌다. 3~4월 평균 2.2퍼센트였던 불량률이 6월에는 6.5퍼센트로 높아졌다. 이는 폭발 등 사고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5월 16일 아리셀 사측은 생산된 전지의 발열 현상을 최초로 인지하고 정상 제품과 분리하는 조처를 취했으나, 6월 8일부터는 발열 전지 선별 작업을 중단했다. 심지어 분리 보관하던 발열 전지도 미봉책만 취하고 정상 제품으로 내놓으려 했다.

참사 이틀 전인 6월 22일에도 전지가 폭발해서 화재가 났지만, 아리셀 사측은 소방 당국에 신고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생산을 강행했다. 결국 같은 날 생산된 다른 전지들이 이틀 후 폭발하여 참사로 이어졌다.

무리한 생산과 ‘셀프 규제’

노동자들에게 “사고 발생 시 긴급 조치 및 대피 요령 등에 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또한 화재 현장의 출입문들은 정직원의 사원증이나 지문으로만 열 수 있었다. 헛되이 불을 끄려다 탈출할 ‘골든 타임’을 놓쳐 사망한 노동자들은 설령 탈출을 시도했더라도 잠긴 문을 열 수 없어 빠져나오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정부와 지자체 등의 관리 부실도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정부는 아리셀을 위험성 평가 3년 연속 ‘우수 사업장’으로 선정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수사에서 아리셀은 비상구 설치 규정을 위반하고, 제대로 된 비상 대피로도 마련하지 않고, 소방 계획서도 없고, 소방 훈련도 하지 않고, 허가 없이 방화 시설을 해체한 것이 적발됐다. 아리셀 사측이 국방기술품질원 검사 과정에서 샘플을 몰래 바꿔치기한 사실도 드러났다.

시간이 멈춘 듯 사측과 정부의 책임 회피로 유가족들의 시간도 그날에 멈춰 있다 ⓒ나유정

한편, 윤석열 정부는 이미 안전 규제로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던 ‘사업장 위험성 평가에 관한 고시’를 지난해 5월 개정해 사업주가 간단한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서 ‘셀프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셀프 규제’ 덕분에 아리셀 사측은 폭발 위험을 은폐하며 생산을 강행할 수 있었다.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검찰은 추가 적발 사실도 밝혔다. 〈매일노동뉴스〉의 단독 보도를 보면, 2022년 박순관은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하는 메이셀 소속 노동자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산재를 입자, 노동자에게 3000만 원을 주면서 산재를 은폐하라고 지시했다. 또, 열 감시 센서를 통한 모니터링 없이 전지를 손으로 쥐어 보며 발열을 확인했고 이마저도 최근에는 생략했다.

이윤에 눈멀어 안전을 내팽개치고 무리하게 생산을 강행한 아리셀 사측과, 안전 규제를 완화하고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정부가 이주노동자 18명을 포함한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유가족들과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는 아리셀이 납품하는 국방부에도 책임을 지라고 촉구하고 있다. 국방부는 아리셀이 납품한 제품이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는데도, 생산 과정의 안전보다는 제때 물량을 납품받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게다가 2020년까지 최근 10년간 육군에서만 95건의 리튬 배터리 폭발 사고가 있었는데, 아리셀이 샘플 바꿔치기를 할 만큼 국방부의 관리 감독이 허술했던 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유가족들과 대책위는 아리셀의 모기업 에스코넥의 핵심 거래처인 삼성에도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삼성이 그동안 스스로 밝혀 온 ‘협력사 행동규범’(노동인권, 안전보건, 환경보호, 윤리경영)을 위반한 에스코넥과의 거래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구속 결정 직후 유가족들과 대책위는 “참사의 해결에 첫걸음을 내디뎠다”며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해결될 수 있도록 다시 단결과 연대를 호소드린다”고 밝혔다.

법원의 구속 결정으로 그 정당성이 확인된 만큼 박순관 등 핵심 책임자들의 제대로 된 처벌과 유가족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