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 희망버스:
2000여 명이 사측과 정부에 항의하다
〈노동자 연대〉 구독
아리셀 참사 55일을 맞은 8월 17일 ‘죽음과 차별을 멈추는 아리셀 희망버스’ 행사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2000여 명이 참가했다. 전국 50개 도시에서 60대의 버스가 조직됐다. 개인 차량을 이용한 참가자도 있었다. 제주도에서 온 참가자들의 대표가 연단에 올랐을 때는 큰 환영의 박수가 나왔다.
그동안의 아리셀 참사 항의 행동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참사가 벌어진 지 두 달이 다 돼 가는데도 책임 회피에만 골몰하는 아리셀 사측과 이를 방관하는 윤석열 정부와 경기도, 화성시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첫 번째 일정은 참사가 난 아리셀 공장 앞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공장은 시간이 멈춘 듯 참사 직후 모습 그대로였다. 거대한 철제 외벽들이 폭발로 뜯겨져 나가거나 바깥쪽으로 휘어져 있었고, 곳곳이 엄청난 화염의 열기에 녹아 내리고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 속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과, 이 현장에 와서 유가족들이 느꼈을 고통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참가자들을 절로 숙연케 하는 광경이었다.
참가자들은 각자 메시지를 적은 하늘색(유가족들이 정한 아리셀 참사 상징색) 추모 리본을 공장 담장에 매달고, 참사 현장 앞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직접 만든 종이 국화로 헌화했다.
이후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화성시 남양사거리로 이동했다. 이곳에 집결한 참가자들은 도로 한 방향 4개 차로를 가득 채웠고, 희생자들의 영정을 든 유가족들을 선두로 화성시청 앞까지 행진했다.
화성시청 앞에서 본대회가 진행됐다. 폭염에 햇볕을 피할 곳도 없는 대로에서 진행됐음에도 2000여 명의 참가자들은 높은 집중도를 보였다.
전국 각지의 버스 별로 한 명씩 무대에 올라 짧은 연대의 발언을 할 때는 광범한 지지를 확인하며 서로를 고무했다. 서산·당진·태안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유가족들에게 투쟁 기금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온 한범석 씨는 배우자, 아이 둘과 함께 연단에 올라 우리 사회의 일부로 자리잡은 이주민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주민이 인구의 5퍼센트를 넘으면 다민족 국가라고 칭한다고 합니다. 화성시가 인구 100만 도시가 됐다고 자랑하는데, 화성시에는 인구의 5퍼센트, 5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니까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세상 되길 바랍니다.”
김종희 대학노조 강원대지부 한국어교원지회 사무국장은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를 위해 더욱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주민은 학교에도, 집에도, 이웃에도, 일터에도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 저희들과 함께 살아가는 민중이고 공동체입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이 싸우고 생활하면서 이주민을 위해서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던 것이 많이 부끄럽습니다. ... 다 함께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유가족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 참가자들에게 큰 감사를 표했다. 김태윤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정부도 참사의 공범이라고 규탄했다.
“저희의 안녕은 6월 24일 이후에 멈춰 버렸습니다. … 50일이 넘도록 아무런 진상도 규명되고 있지 않습니다. 억울해서, 더 이상은 억울해서 못 참겠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아리셀에서는 3년 동안 4번의 폭발 사고가 있었습니다. 참사 이틀 전에도 작은 폭발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관계당국이, 노동부가 폭발의 원인을 확인했더라면 우리의 55일은 안녕했을 것입니다.
“그런 고용노동부[를] … 저희가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아리셀, 에스코넥 대표와 더불어서 정부가 공범입니다. 우리의 가족을 죽인 공범입니다.
“[정부는] 왜 죽었는지 원인에 대해서 수사 중이라 아무것도 얘기할 수 없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왜 모릅니까?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비상구에 완성품을 적재해 놓지 않았더라면, 이거는 위험 물질이고 폭발하면 일반 소화기로 끄지 말고 빨리 대피하라고 교육시켰으면 죽지 않았습니다. [희생자들은] 불법적인 파견으로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죽어갔습니다.”
또 다른 유가족은 희망버스에 많은 사람이 참가한 것에 힘을 얻었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6살 되는 딸을 잃었습니다. 우리 유가족들이 지금 자기 딸, 남편, 아내 잃은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앞이 안 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많은 동지들이 여기 와 주셔서 열심히 힘내서 싸우겠습니다. 우리 유가족들, 할 수 있죠?”
그러자 다른 유가족들이 “네!”라고 큰 목소리로 화답했다.
참가자들은 화성시청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에 헌화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날 희망버스에 참가한 한 중국 동포는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사고 현장을 직접 보니 더 끔찍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집회에 나와 본 것은 처음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져 주니 유가족들에게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24세의 한 희생자가 어머니 친구의 자녀라 자신과도 안면이 있다며, 참사를 당했다는 소식에 남 일 같지 않아서 희망버스를 탔다고 밝혔다.
유가족들과 대책위는 20일부터 아리셀 대표 박순관이 불법 파견 등에 대한 증거를 인멸하지 못하도록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에 나서겠다며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
또한 다음 날에는 아리셀로부터 리튬 전지 납품을 받는 국방부와 삼성에 책임을 묻는 행동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이주노동자의 안전한 일터를 위한 행동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