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
이주노동자의 주체적 참여를 고무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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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경찰이 아리셀 참사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참사 발생 14일 만이다.
경찰은 2021년부터 아리셀 공장에서 이번 참사와 규모만 다를 뿐 동일한 형태의 사고가 4건 있었다고 밝혔다. 아리셀 사용자 측과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의 관계 기관들이 위험을 방치해 왔다는 점이 밝히 드러난 것이다.
특히, 이번 참사는 이주 노동자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데에서 정부가 사용자들과 한통속이라는 사실을 보여 줬다. 사고가 나도 그만이라는 태도가 아니라면 상황을 이 지경까지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회사가 대형 로펌을 선임해 대응을 준비하는 관계로 이 자리에서 공개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아리셀 사용자 측은 반인권·반노동 행태로 악명 높은 김앤장 로펌의 변호사를 선임해 경찰 수사에 대응하고 있다.
애초 경찰과 함께 브리핑하기로 했던 고용노동부는 민주노총 등이 설립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배제하고 유가족들만 상대하겠다며 브리핑을 연기했다. 대책위는 유가족협의회(산재 피해 가족 협의회)를 지원하고 있다.
유가족은 속이 타는 심정이다. 유가족들은 경찰 브리핑을 듣고 이렇게 요구했다. “한국에 오래 있을 수 없는 상황도 있으니 수사 속도를 높여 달라.” “리튬 배터리 제조 공정이 위험한 공정인데 이에 관련한 회사, 관련 기관, 한국 정부가 역할을 다했는지 수사하라.”
유가족협의회와 대책위는 7월 5일 아리셀 사측과 첫 교섭을 했다. 사용자 측은 이 자리에서 “책임은 있지만 100퍼센트 사측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며 뻔뻔하게 나왔다.
대책위는 유가족에 대한 각종 지원을 하고, 주중 매일 저녁 7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화성시청 앞에서 시민 추모제를 열고 있다.
이런 수위의 항의 행동만으로는 수사 속도를 높이고 사용자 측과 한국 정부가 제대로 책임을 지도록 하기에 한참 부족할 것이다. 세계 경제가 위기를 겪고 있고, 정부는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배터리 산업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국내 기업을 지원하려고 혈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는 해당 분야에서 안전 규제를 완화하는 등 이번 참사에 책임이 있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 이윤을 침해할 조처를 쉽게 내놓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7월 4일 ‘전지 공장 화재 재발방지 TF’를 구성했지만, 말잔치에 그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참사의 재발을 막으려면, 산재 위험에 맞서고 이주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할 기층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설사 일부 제도 개선이 있더라도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해지기 십상이다.
아쉽게도 대책위는 항의 행동을 기층에서 대중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을 추구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참사로 누구보다 불안감과 분노가 클 이주노동자들을 참여시키는 데 큰 열의가 없다. 그보다는 사용자 측과의 교섭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며 항의 행동의 수준도 그에 맞추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주중에만 추모제를 진행해서 일요일 외에 쉬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이 참가하기가 어렵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도 7월 7일 화성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 꾸린 대책위와 조율 없이 자신들이 행동에 나서면 교섭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대책위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는 듯하다.
그러나 부족하나마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보장받게 된 권리는 그 어느 하나 투쟁으로 쟁취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예컨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된 것은 1994년 경실련 농성을 통해서였다.
이주노동자들이 참사로 느끼는 불안과 분노
사람들의 접근성이 좋은 때와 장소들로 행동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일요일에 행동을 건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화성에 인접한 안산은 이주민의 도시로 불린다. 기자가 7월 6일 안산 단원구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참사가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산에서 화성으로 일하러 다니는 이주노동자들도 많다고 한다. 특히 아리셀 사용자 측이 안전 교육을 시키지 않아 노동자들이 헛되이 화재를 진압하려다 희생됐다는 사실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했다.
며칠 전 아리셀 공장에서 불과 400미터 떨어진 잉크 제조 공장에서 또 화재가 났었다는 소식도 삽시간에 퍼질 만큼 안전 사고 소식에 민감했다.
그들의 불만은 단지 이번 참사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인과 달리 이주노동자에게는 화장실에 갈 때 꼭 허락을 맡고 가게 하는 등 일터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차별이나 일부 동료 한국인 노동자들로부터 받는 멸시에 대한 불만 등도 쏟아 냈다.
이 때문에 그들은 항의 행동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동시에 그런 행동에 나섰다가 출입국 당국으로부터 한국 체류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지, 특히 무슬림인 경우 ‘테러리스트’라는 식의 비난에 시달리지 않을지 우려하기도 했다. 불안정한 체류 자격과 이슬람 혐오가 이주노동자들을 얼마나 위축시키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반응은 한국 좌파가 앞장서 행동을 조직하고 방패막이가 돼 주려고 애쓴다면 이주노동자들도 행동에 동참할 가능성을 보여 준다. 윤석열 정부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는 것도 유리한 조건이다. 아리셀 참사에 대한 한국인 노동자들의 연민과 공분 정서도 꽤 높다.
최근 세계적으로 극우와 파시스트의 성장이 보여 주듯,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에 맞서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의 행동을 고무하고 함께 투쟁하며 단결을 도모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