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재판 1심:
아리셀 참사 책임자 엄중 처벌하라
〈노동자 연대〉 구독
7월 23일 아리셀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 재판 1심 최종변론이 열렸다. 검찰은 아리셀 대표이사 박순관에게 징역 20년, 그의 아들이자 아리셀 총괄본부장 박중언에게 징역 15년 등을 구형했다.
아리셀 참사 유가족 5명도 출석해 박순관 대표 등 책임자들을 엄벌에 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6월 24일 발생한 아리셀 참사는 단일 산업재해로는 수십 년 이래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다.
단일 사건으로 이주민이 가장 많이 사망한 사건이기도 하다. 희생자 23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고, 그중 17명이 조선족(중국 동포)이다.
조선족 노동자들이 한국 경제 곳곳에서 얼마나 큰 구실을 해 왔는지도 비극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었다. 특히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열악한 일자리에서 말이다. 최근 극우의 중국인 혐오 선동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부도덕한지 보여 준다.
아리셀 참사는 이윤에만 혈안이 된 아리셀 사용자 측, 그리고 정부의 규제 완화와 안전 관리 소홀에 그 책임이 있다.
참사 이후 유족들이 항의 행동에 나서고 2,000여 명이 참가한 아리셀 참사 희망버스 등 연대 투쟁도 벌어졌다. 지난해 10월 박순관과 박중언이 각각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러나 올해 2월 박순관이 보석으로 풀려났다. 아리셀 사용자 측은 반인권·반노동 행태로 악명 높은 김앤장 로펌을 변호인으로 선임해 재판에 대응하고 있다.
형사 재판 최종변론을 하루 앞둔 7월 2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선족 희생자 고 강금복 씨의 남편 문영생 씨는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절절히 토로했다.
“살림 좀 보태 주려고 한국에 왔는데 목숨까지 빼앗길 줄은 생각 못 했어요. 억울합니다, 진짜. … 이 상황이 오래되고 있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법원에서 확실하게 처벌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발언을 마친 그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한국인 희생자 고 김병철 씨의 아내 최현주 씨는 사용자 측이 아리셀 연구소장이었던 남편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제 남편이 지난해 6월 4일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이 재판에서 큰 쟁점이 됐었어요. ‘미세발열 배터리는 2~3일 두면 괜찮다’는 문장이 두세 개 있고, 훨씬 많은 분량으로 ‘그래도 발열은 문제이니 6개월 정도 공정을 멈추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썼는데, 회사 측은 제 남편이 발열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는 거예요.
“사과부터 하면 나도 합의해 주겠다고 회사에 말했어요. 그러나 박순관은 합의부터 해야 사과하겠다고 합니다. 진정한 사과를 받는 건 장례식과 같이 남편을 위한 의식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마저 조롱당하는 기분이 드니 도저히 합의할 수가 없어요.”

재판에서 사용자 측은 아리셀 참사가 예견할 수 없는 천재지변 같은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기자간담회를 주최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 법률지원단’은 사용자 측의 주장을 논박했다.
아리셀은 지난해 1월 방위사업청과 납품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4월 납품한 제품이 제때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자, 그에 따른 지연 배상금을 줄이려고 고의로 안전조치를 무시하고 생산량을 무리하게 늘렸다. 그 과정에서 발열 검사를 생략하고, 그 전까지 하던 안전 교육도 하지 않은 채 일용직 노동자를 2배로 늘려 투입하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참사 이틀 전 폭발 사고가 있었는데도 화재 발생 전지를 참사가 벌어진 공장 3동 2층으로 옮겨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낳았다. 명백한 전조 증상조차 무시했던 것이다.
박순관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하려고 자신은 아리셀의 모회사 에스코넥의 대표이사이지 아리셀의 실질적 경영 책임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회사 대표가 처벌을 빠져나갈 수도 있게 한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함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박순관은 주 1회 이상 아리셀의 생산 현황, 공장 내 사고와 산재 처리, 자금 집행 현황 등을 보고받아 왔다는 사실이 재판에서 드러났다.
사용자 측은 유가족들에게 처벌불원서(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합의할 수 없다는 고약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이 때문에 지속되는 심적 고통과 생계 문제를 버티지 못하고 합의한 유가족이 적지 않다고 한다. 법률지원단은 이런 형식적 처벌불원서를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아리셀 참사 책임자들에게 반드시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참사 유가족 위로 행사’에서 제외된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
7월 16일 이재명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대해 ‘국가적 참사 유가족 경청 행사’를 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아리셀 참사 유가족은 초대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알게 된 아리셀 참사 유가족은 7월 3일 언론 기고를 통해 공개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에게 초청을 요청했다. 그런데도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은 끝까지 초대받지 못했고, 행사 다음 날에서야 대통령실 관계자가 유가족에게 연락해 양해를 구했다.
아리셀 참사 유가족의 대통령 면담 초청 요청서를 실은 〈충북인뉴스〉에 따르면 한 유가족은 “다 같은 사회적 참사인데, 면담에서 제외돼 절망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7월 18일 국정기획위원회가 뒤늦게 아리셀 참사와 쿠팡 산재 사망 노동자 유가족 등을 만나 불만을 달래려 했으나, 대통령 직접 면담과 무게와 격이 같을 수 없다.
7월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유가족 최현주 씨는 행사에 초대받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다시 밝혔다.
“대통령이 이태원, 세월호, 오송 지하차도,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을 만난다고 했을 때 [저희는 빠져서] 굉장히 속상했거든요. 그래서 대통령실에 편지도 썼었어요. 이후 대통령실에서 ‘너무 서운해 말라, 이번엔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에’라고 전화가 왔어요.
“저도 이렇게 얘기했어요. ‘노동부가 아리셀을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으로 [2021년부터 3년 연속] 선정했고, 국방부는 아리셀이 납품한 배터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래를 끊는 게 아니라 빨리 보내라고 재촉하지 않았냐. 노동부와 국방부에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
최현주 씨의 말처럼 아리셀 참사 책임자 처벌은 윤석열 정부하에서의 부정의를 바로 잡는 일이기도 하다.
아리셀 참사 유가족 면담 제외는 정권 초부터 이재명 정부가 기업주와 우파의 눈치를 보는 것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재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의 자유로운 이윤 추구를 침해한다며 반발해 왔고, 참사 희생자 대부분이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이주노동자(조선족)라는 취약한 처지에 있었다.
1심 형사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아리셀 참사 유가족에게 힘을 실어주기는커녕 면담에서 제외한 것은 책임자 엄중 처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