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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참사:
이주노동자를 일회용 소모품 취급하는 기업과 정부가 참사를 야기했다

6월 24일 경기도 화성에 소재한 리튬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났다.

그중 18명이 외국 국적의 이주노동자였고, 귀화한 한 명을 포함해 다섯 명은 한국 국적의 노동자들이었다. 숨진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중국 동포(조선족)였고, 귀화 절차를 밟고 있던 라오스인도 1명 있었다.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이주민이 사망한 것이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를 전한다.

6월 30일 유가족협의회 기자회견에서 한 유족은 자신도 아리셀 공장에서 이틀간 일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사측이 노동자 안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폭발한 제품을 출구 쪽에 놨다. 탈출하려고 해도 탈출구가 막혀 있었다는 것이다. 안전 교육도 전혀 없었다. 출근하자마자 머리 숙이고 일만 했었다.”

이처럼 기업과 정부로부터 쓰고 버리는 소모품 취급당하는 경험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참사를 자기 일처럼 여기며 안타까워하고 분노하고 있다.

기자는 6월 30일 이주민의 도시로 불리는 안산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어울림공원에 마련된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했다. 그 분향소는 지역의 이주민 지원 단체들과 중국 동포 단체들이 차렸다.

두툼한 분향소 방명록에는 서울에서 왔다고 작성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분노가 광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7월 1일 화성시청 앞에서 열린 첫 시민 추모제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들 ⓒ조승진

분향소를 지키고 있던 한 중국 동포는 친구의 딸이 이번 참사의 희생자라며 매우 비통해 했다. 2010년대 초에 한국에 와서 줄곧 한국에서만 살았다는 그는, 체류자격의 불안정 때문에 중국 동포들이 열악한 조건을 감수하게 된다고 말했다.

“영주권자인지, 재외동포 비자인지, 방문취업 비자인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요. 후자로 갈수록 좋은 일자리에서는 안 뽑으려 합니다.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재외동포 비자도 3년마다 연장해야 해서, 비자 연장에 불이익이 생길까 봐 뭐든 조심하게 됩니다.

“안산에서도 화성으로 인력회사를 통해 일용직으로 일하러 많이 다닙니다. 일할 곳이 어떤 위험이 있는 곳인지 미리 알려주지 않아요. 이런 상황이니까 중국 동포들이 위험한 곳에서 많이 일하는 거예요.”

관할 파출소는 분향소 설치를 막으려 했다. 파출소장이 “분향소는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설치하는 것”이라는 막말을 해 항의를 받은 뒤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의 파장을 우려해 일단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경찰 간부가 본심을 말한 것이다.

분향소가 차려진 다문화어울림공원은 6월 9일 다양한 이주민 600명이 참가한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점 때문에 경찰은 분향소가 이주노동자들의 불만이 모이는 초점이 될까 봐 예민하게 굴었던 듯하다.

안산 분향소는 6월 30일까지 운영됐다. 그 뒤 서울의 중국 동포 밀집 지역으로 옮길 계획이라고 한다.

다인종 노동계급

지난해 12월 기준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5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8퍼센트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총인구에서 외국인, 이민 2세, 귀화자 등이 5퍼센트를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하는데 이에 근접한 것이다.

이는 한국 노동계급이 다인종이 됐음을 보여 준다.

이번 참사는 상당수 이주민들이 내국인이 기피하는 열악한 일자리에서 한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비극적으로 드러냈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인 노동자보다 더 높은 산업재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한국 전체 산재 사망자(812명) 중 외국인 노동자가 약 10퍼센트(85명)를 차지했다. 산재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한국에 취업한 외국인 비율의 3배 이상이다. 올해 1분기 외국인 산재 사망자 비율은 11퍼센트로 더 올랐다.(213명 중 24명)

윤석열 정부와 일부 기업주들은 노동력 부족으로 이주민 유입을 늘리면서도 이들의 안전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예컨대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는 30여 개국 출신의 이주노동자 약 1만 명이 일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에 따르면 통역사가 주요 6개국 2명씩만 배치돼 있어 위험한 작업을 할 때나 부상당했을 때 대처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 위험 표지판은 한국어로만 돼 있으며, 한 달에 두 번 영상으로 이뤄지는 안전 교육도 한국어로만 제공된다고 한다.

산재 위험에 맞서고 이주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할 기층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도적 개선이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해지기 십상이다. 이번 참사 석 달 전 화성소방서가 아리셀 공장의 인명 피해 우려를 경고했음에도 아무 조처가 취해지지 않은 것이 이를 보여 준다.

그런데 정부가 이주민 유입을 늘리자 노동운동과 좌파의 일부는 한국인 고용을 우선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동포들이 많이 일하는 건설업을 비롯해 외국인 가사노동자 등 여러 서비스 업종이나 건설플랜트, 조선 업종에서 그런 잘못된 태도가 적잖이 존재한다. 이주민의 국내 취업을 반대하면 이주민은 한국 노동운동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유가족이 항의에 나서다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은 유가족협의회를 구성하고 대응에 나섰다. 현재 희생자 19명의 유족이 참여하고 있다.

유가족협의회는 정부의 중대재해 참사 진상규명 조사단에 유족 추천 전문위원 참여, 회사의 피해자 대책 즉시 마련 및 개인 접촉 금지 등 9개 요구안을 발표했다.

김태윤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진실한 대안에 대해 논의할 테이블을 만들기 전까지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를 치를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만 11억 원이 넘는 연봉을 챙긴 박순관은 반인권·반노동 행태로 악명 높은 대형 로펌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선임해 경찰 수사에 대응하고 있다.

아리셀 경영진 등 책임자들을 강력히 처벌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억울한 죽음, 분통 터진다 7월 1일 첫 시민 추모제에 참가한 유가족의 절절한 외침 ⓒ조승진

민주노총 등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유가족협의회를 지원하고 있다. 7월 1일 대책위는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화성시청 앞에서 첫 시민 추모제를 열었다. 그리고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이 유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추모의 벽’도 설치했다. 이 자리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도 참석했다.

대책위는 매일 저녁 7시 화성시청 앞에서 추모제를 열겠다고 밝혔다. 적잖은 이주노동자들이 이번 참사와 같은 일이 자신에게도 벌어질 수 있다고 여기는 만큼, 이주노동자들이 참가하기 용이한 일요일 같은 날에 항의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유가족 참석 추모제 방해한 민주당 소속 화성시장 정명근

화성시가 7월 1일 화성시청 앞에서 열린 첫 추모제를 방해했다. 화성시 공무원들이 유가족들에게 전화해 문화제가 취소됐다고 거짓말했고, 대책위가 예정대로 추모제를 진행하자 경찰에 출동을 요청하기도 했다.

화성시장 정명근은 민주당 소속이다. 민주당은 정명근, 경기도지사 김동연, 민주당 실세이자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등이 모두 유가족 지원에 총력을 다하겠다며 정부에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하더니, 정작 그것을 위해 유가족들이 행동에 나서자 막으려 하는 것이다.

추모만 하라? 화성시청에 마련된 추모 분향소. 화성시는 유가족들의 항의 행동을 방해했다 ⓒ조승진

이윤을 위해 안전 규제 완화하는 윤석열 정부

아리셀 공장이 생산하던 것과 같은 리튬 배터리와 그 생산 과정의 안전성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국산학기술학회에 따르면 2020년까지 최근 10년간 육군에서만 95건의 리튬 배터리 폭발 사고가 있었다. 2019년 세종시 육군 보급창고 화재가 대표적이다. 참사가 난 아리셀 공장이 바로 군납용 리튬 배터리를 생산하던 곳이다.

금속노조와 삼성전자노조 등이 올해 3월 발표한 〈삼성전자 계열사 노동안전보건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리튬 배터리(2차전지)를 생산하는 삼성SDI 노동자 3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20명이 “사고를 보거나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사고로 대피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도 1명 있었다.

정부는 배터리 산업을 육성하려고 관련 기업 지원에는 열을 올리면서, 안전 조치를 감시하고 정비하는 일은 안중에도 없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정부는 2차전지(리튬-이온 배터리) 제조 공장에 “필요 이상의 과도한 안전 기준이 적용돼 공장 건설이 지연되거나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문제가 있었다”며, 일부 안전 규제를 완화했다.

이를 이용해 참사 한 달 전 중소기업중앙회는 화학물질 취급 관련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정부에 적극 청원했고, 정부는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파견 확대

정부는 세계적 ‘미래 성장 동력’으로 각광받는 이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국내 기업을 지원하려고 안전을 내팽개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알량한 중대재해처벌법도 기업주들의 이윤을 위해 완화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6월 28일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식은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이번 참사의 원인이 불법 파견에 있다는 질의에, 파견과 도급의 기준을 법제화해 사실상 파견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여전히 노동자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