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 49일을 맞아:
희생자들의 거주지 안산에서 내외국인이 함께 항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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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안전한 일터 보장하라, 아리셀 참사 책임자를 처벌하라, 참사 보상 내국인과 차별 말라”
시끌벅적하지만 평소와 다를 것 없던 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 시장에 구호가 울려 퍼지자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상점 안에 있던 사람들도 거리로 나와 행진을 지켜봤고, 응원의 목소리와 박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맞다. 아리셀 처벌돼야지,” “야, 더운데 욕본다.”
주말을 맞아 장을 보러 나온 내외국인 노동자들, 노점에서 식사와 음료를 즐기던 이주민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영어로 외치는 구호를 따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보였다.
대부분 이주민으로 보이는 상인들도 “잘한다” 하며 응원을 보냈다. 이따금 들려온 일부 상인들의 고함은 우호적인 관심과 박수 소리에 압도돼 금세 묻혔다.
관심과 응원
아리셀 참사 49일을 맞은 8월 11일 안산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안전한 일터를!’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집회에 참가한 내외국인 100여 명은 아리셀 참사 책임자 처벌과 이주민 희생자에게 내국인과 차별 없는 보상을 요구했다. 원어민강사노조 조합원들이 서울, 충청 등 여러 지역에서 먼 걸음을 달려왔고,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참가해 왔던 청년들이 참가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는 일요일에만 쉬는 대다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특별히 일요일 안산에서 열렸다.
이주노동자의 도시로 불리는 안산에는 100여 개 넘는 나라에서 온 노동자 수만 명이 거주한다. 안산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를 넘는다. 집회가 열린 원곡동은 이주민 비율이 71퍼센트가 넘는다. 안산의 이주노동자들은 아리셀 참사가 전혀 남의 일이 아니라고 말해 왔다.
첫 발언자로 나선 박동찬 ‘경계인의 몫소리 연구소’ 소장도 이날 안산에서 열린 집회의 의의를 강조했다.
“아리셀 희생자 23명 가운데는 5명의 한국인과 18명의 이주노동자가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라오스 국적이고, 나머지 17명은 모두 중국계 이주노동자였습니다.
“그리고 희생자의 절대다수는 저희가 오늘 모인 이곳 안산 원곡동과 또 옆 동네 시흥 정왕동에 거주하는 분들이셨습니다.”
박동찬 소장은 중국 동포이자 현재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피해가족협의회’에서 피해자 유족의 통역을 맡고 있다.
“오늘 오전에는 참사가 발생했던 아리셀 공장 앞에서 희생자들의 49재가 진행됐습니다. 저도 오전에 함께하고 오는 길입니다.
“아리셀 사측은 교섭은 회피한 채 며칠까지 합의해 주면 5000만 원을 더 주겠다, 그리고 ‘당신네들 비자를 가지고는 여기[해당 업종]서는 일하면 안 되는 비자였다. 추방 대상이다’ 이렇게 개별적으로 겁박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8월 17일 전국 곳곳에서 죽음과 차별을 멈추는 희망버스가 55대 출발한다고 합니다. 사는 지역에서 만약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면 꼭 많이 탑승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함께 끝까지 투쟁합시다.”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해 왔고 노동자연대 회원인 김승섭 노무사의 발언이 이어졌다.
“희생자들은 일용직으로 생소한 현장에서 안전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위험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대피 경로도 모른 채 일했습니다.
“정부는 산재 사망 이주노동자의 보상도 내국인과 차별하고 있습니다. 내국인은 한국 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하지만, 이주노동자는 예상되는 한국 체류 기간 이후부터는 출신국의 임금으로 계산합니다. 예상되는 한국 체류 기간도 협소하게 인정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환영받고 더 좋은 처우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아리셀의 모회사는 에스코넥이고 에스코넥은 삼성SDI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 하청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희생된 것입니다.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단결해서 이러한 참사에 맞서지 않는다면 더 자주 끔찍한 산재 사고가 이어질 것입니다.”
차미크르 수원이주민센터 공동대표는 한국 정부에 이주민들을 쓰고 버리는 기계 취급하지 말라고 규탄했다.
“안전하지 않고 위험한 곳에서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없이는 한국 공장과 농촌이 운영되지 않습니다.
“우리 수원이주민센터와 [지역의] 이주공대위는 매년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는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라고 외쳤습니다.
“또 사람이 죽었습니다.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이주노동자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한국이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기계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도 피와 땀이 흐르는 사람입니다. 안전하게 일하고 싶은 것이 욕심입니까?
“동지 여러분, 차별 없는 노동 세상을 위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하나 되어 목소리를 높입시다.”
존스 갈랑 카사마코(필리핀인 공동체) 사무국장은 내외국인 노동자들의 연대를 호소했다.
“이번 참사는 작업장에 안전 규제와 그것을 강제하는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말 여실히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적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리셀 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많은 분들이 에이전시를 통해서 일을 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에이전시 제도야말로 당장 철폐돼야 합니다. 왜냐하면 에이전시하에서는 그 소속 노동자들이 건강보험·국민연금 같은 사회적 보장과 퇴직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사가 일어난 지 49일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유가족들과 희생자들을 위해서는 어떠한 정의도 구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내국인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단결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국제연대 만세!”
방글라데시인 이주노동자 술탄 사킬은 벵골어와 우르두어로 발언했고, 뒤이어 한국어 통역이 제공됐다. 그는 집회 시작 전 벵골어와 우르두어로 주변에 있는 방글라데시인, 파키스탄인 노동자들에게 참가와 관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오늘 이 집회와 행진을 조직하신 여러분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이 나라에서 굉장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는 직장에서 치러야 하는 대가가 굉장히 큽니다. 직장에서 박해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 이주민들은 적절한 안전 장비도 지급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회사에 일감이 줄면 우리는 해고되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런 현실은 분명히 개선돼야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과 함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서 같이 행동하면 좋겠습니다.”
책임자 처벌, 차별 보상 반대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과 대책위는 7월 말부터 정부와 지자체, 아리셀 사측을 압박하고 이 쟁점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
7월 27일 유가족들과 대책위는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리셀 사측을 압박해 교섭에 임하도록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서울역 광장까지 행진했다.
이틀 전인 8일에도 유가족들과 대책위는 경기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말과 행동이 다른 경기도 측을 규탄했다.
“김동연 지사는 언론에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제대로 진상규명하겠다’라고 하지만 이면에서는 피해자들을 절망으로 분노케 하는 행정을 하고 있다.”(김태윤 피해가족협의회 공동대표)
경기도청 관계자들도 아리셀 사측과 다를 바 없이 고압적이고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성시도 유가족들의 원망의 대상이긴 매한가지다.
8월 17일에는 참사 55일을 맞아 ‘8.17 죽음과 차별을 멈추는 아리셀 희망버스’ 행사가 참사 현장과 화성시청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날 안산에서 열린 집회도 아리셀 참사 항의 운동이 더 주목 받고 커지는 데 힘을 보태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집회가 열리는 내내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삼삼오오 집회 장소 주변에 모여 앉아 발언을 경청했다.
기층에서 아리셀 참사 항의의 목소리가 더 커지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