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 모인 시진핑과 푸틴:
트럼프의 압박에 대응하는 또 다른 제국주의적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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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푸틴과 김정은이 모두 참석한다. 북한 최고위 지도자가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는 것은 김일성 이후 처음이며, 북·중·러 정상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도 냉전 종식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전승절 행사는 중국이 다자 외교로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려는 계획 속에 진행되는 것이다. 앞서 8월 31일 중국 톈진에서 상하이협력기구(이하 SCO) 정상회의가 열려 중국, 러시아, 인도, 이란 등 20여 명의 정상들이 모였다. SCO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해 2001년에 설립된 지역 협력체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SCO의 안보 대응 센터와 개발은행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SCO의 자체적인 안보 대응 구조와 금융 시스템을 세워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의 참석에 특히 이목이 쏠렸다. 그의 행보가 미국의 관세 전쟁에 대한 반작용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트럼프는 “브릭스(BRICS)의 반미 정책에 동조하는” 국가들은 추가 관세를 맞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리고 브릭스 회원국인 인도는 무려 50퍼센트의 관세를 얻어맞았다. 인도가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러시아산 석유를 대거 수입하며 러시아의 숨통을 틔워 줬기 때문이다.
이처럼 트럼프 정부가 다른 국가들에게 중국과 거리를 두고 미국의 전략에 협조하라고 압박하지만, 모디는 보란 듯이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다만, 모디는 군사적 성격이 강한 전승절 열병식에는 불참하며, 중국과 서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강대국들은 지배력을 지키려고 애써 왔지만, 세계경제에서 그들의 비중은 줄어 왔고 나머지들이 성장해 왔다. 그리고 인도 등 새로 부상한 신흥국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득을 볼 기회를 노리며, 국제적·지역적 수준의 경쟁을 가열시키는 플레이어가 돼 있다. 그만큼 미국이 국제 질서를 통제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트럼프도 미국 제국주의의 약화를 막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좌파 일각에서는 미국에 타협하지 않는 인도를 이재명 정부가 본보기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미국에 거스르는지가 중요하다. 인도 모디 정권은 국내에서 노동자·농민의 저항을 억누르고 무슬림을 천대하는 극우 정권이다. 대규모 법인세 인하와 공기업 민영화 등 친기업 정책도 밀어붙여 왔다. 모디 정부는 관세 공세에 대응해 “스와데시”(국산품 애용) 같은 애국주의에 호소하면서, 관세에 따른 부담을 노동자 등 서민들에게 떠넘기려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3일 전승절 열병식에 푸틴과 김정은은 시진핑의 좌우에 서게 된다. 중국은 이번 전승절을 러시아, 북한과의 관계를 다지는 기회로 삼으려는 듯하다.
미국의 공세는 북·중·러 3국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3국 관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서방의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는 중국 경제에 더 의존하며, 양국의 동반자 관계가 강화됐다. 러시아의 대외 무역에서 중국의 비중은 2021년 18퍼센트에서 2023년 현재 33퍼센트로 증가했다. 중국은 러시아산 에너지와 원자재를 구입하며, 반도체나 공작 기계 등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것들을 러시아에 수출하고 있다. 또한 중국군은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러시아의 기술에 의존해 군사력 증강을 꾀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 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푸틴은 그런 의도에 순순히 응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서방이 러시아 경제를 붕괴시키려고 한 경험이 푸틴이 중국과의 유대를 앞으로도 유지할 중요한 동기일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2018~19년 북미 대화 실패 이후 전략을 수정해 중국, 러시아에 더 밀착해 왔다. 특히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미국의 약화가 도드라지자 그 방향이 강화된 듯하다.
북한은 2024년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맺어 강력한 군사 및 경제 협력에 합의했다. 그리고 막대한 반대급부를 기대하며 러시아 쿠르스크에 군대를 파견해 러시아의 전쟁을 도왔다. 또한 서방 경제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북한 경제에 중국과의 교역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김정은은 이번 방중에서 중국과의 경협 증대를 기대할 것이다.
이런 세력 균형 변화 때문에, 설사 나중에 북·미 대화가 시작돼도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지기는 전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물론 북·중·러 3국의 관계는 여전히 한미일의 유착 관계에 비해서는 느슨하고,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면도 꽤 있다.
가령 러시아는 중국이 자국의 기존 세력권인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에 영향력을 침투시키는 게 신경 쓰인다. 한편,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일본의 핵무기 개발을 자극할까 염려한다. 북한의 경우,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너무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균형을 잘 맞춰야 하는 처지다.
물론 미국이 관세 전쟁 등으로 대중국 견제 수위를 높이고, 한미일 협력이 갈수록 체계화되며, 일본과 한국이 역대급 군비 증강을 지속하는 한, 북·중·러 3국은 서로를 까다롭지만 매우 필요한 파트너로 계속 여길 것이다.
전승절 무대에서 시진핑과 푸틴은 자신들이 서방 우위의 단극적 국제 질서에 맞선 “다자주의”의 첨병임을 과시할 것이고, 김정은도 그에 화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네트워크는 “정의로운 다극 세계”를 만드는 “자주 역량”이 아니라, 또 다른 제국주의적 연계일 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에서 노동자 등 서민을 억압하고 지정학적·경제적 경쟁으로 세계를 불안케 하는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다. 당장 시진핑이 지난달 티베트에 가서 표준어 교육과 티베트 불교에 대한 간섭 강화 등 소수민족 동화 정책을 강조한 것을 보라.
한국의 좌파들은 자국 권력자들의 친미·친일 협력 정책과 군국주의 강화를 반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약 110년 전 독일 혁명가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강조했듯이, 주적은 국내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그 네트워크에 기대를 걸어서는 이 초점이 흐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