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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는 반제국주의 국가군(群)이 아니다

2016년 중국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시진핑은 브릭스에 ‘진보적 다극화’ 포장지를 씌운다 ⓒ출처 kremlin.ru

좌파 다수는 미국 등 서방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면서 진영논리를 내세워,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남반구 개발도상국 연합에 기대를 걸라고 권한다.

중국 사회를 진보적이라고 보는 스탈린주의자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은 브릭스(BRICS)가 바로 그런 구상의 구현물이라고 주장한다.

브릭스는 “제국주의 패권 질서의 ‘대립물’”이다.(〈민플러스〉 2019년 12월 16일 자, ‘국제관계 민주화와 지구화로 가는 다극화’)

스탈린주의자들은 세계 인구와 신흥 경제의 많은 부분을 포괄하게 된 브릭스가 미국의 경제적 패권(달러 패권)과 그에 기초한 금융적 약탈,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종식시키고, “상호존중과 협력에 기반한 국제관계”(‘2023 반미자주대회 결의문’)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주장한다.

브릭스 국가들이 “[미국 주도의] 낡은 국제질서와 국제 분업으로부터 불공정한 대우와 억압”을 받아 왔고, 따라서 “자의든 타의든 간에 ... 미국과 서구 금융자본의 견제와 봉쇄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자기 발전의 길을 갈 수 있[으려면] ... 국제질서의 민주화, 독점과 패권을 부정하는 평등과 호혜원칙을 강하게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브릭스는 최근에 브릭스 ‘플러스’가 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기존의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더해, 중동과 아프리카의 주요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에티오피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를 새 회원국으로 맞이했다.

제국주의를 미국 패권으로 축소하기

그러나 스탈린주의자들은 오늘날의 제국주의를 서방, 특히 미국의 패권으로 환원한다. 이런 환원론은 미국과 경쟁·갈등하는 또 다른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반제국주의 운동의 일원으로 여기게 만든다.

과연 브릭스의 부상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킬까? 우선, 무엇을 제국주의로 볼 것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자본주의 모델, 특히 ‘약탈적·기생적인 금융 자본’과 결부시킨다.

그리고 제국주의는 그들에게 특정 패권 국가를 가리키는데, 자국 산업 자본의 내생적 발전이 멈춰 버린 강대국이 금융 자본과 군사력을 앞세워 약소국을 약탈하고, 그럼으로써 막대한 초과 이윤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지대 추구 금융 경제’)

그러나 약탈하는 서방 강대국 vs. 그에 종속된 나머지 약소국 구도로 세계 질서를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브릭스 신흥국들이 그 ‘약탈적인’ 미국 주도 질서에 편입되면서 자본 축적과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제3세계 지배자들도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질서인 ‘워싱턴 컨센서스’를 받아들였다.

1980년대 이후 중국 등 제3세계 국가들이 자국 시장을 개방하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단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음모와 협박에 굴복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이 자국 경제 성장(즉, 자본 축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지배자들은 서방 은행들로부터 대규모 차입을 통해 개발 자금을 조달하고, 거대 다국적 기업들과의 협상을 통해 기술을 개발하며, 더 넓은 시장을 개척하려고 했다. 해외 자본과 협력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자국 산업을 혁신하고 자국 개발의 지렛대로 이용한 것이다.

물론 모든 개발도상국이 이 과정에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특별히 성공한 케이스다. 중국은 미국 경제와 긴밀히 연결되며 성장했고, 그 과정은 미국에게도 득이 됐고, 중국도 커다란 이익을 거뒀다. 2010년대 이후 중국이 미국의 실질적 경쟁자로 부상함에 따라 미중 관계는 모순과 갈등이 점점 더 커졌지만 말이다.

미국은 기생적인 경제인 반면, 중국은 제조업에 기초한 내생적, 안정적인 모델이라는 것도 일면적이고 과장된 주장이다.

미국은 최첨단 기술, IT 산업 분야에서 여전히 세계경제를 선도하고 있다. 그리고 금융 문제에서 중국도 만만찮은 부채 의존 경제다. 이 때문에 그림자 금융, 주택 시장 거품 등 심각한 금융 불안정 문제를 겪고 있다.

한편, 2008년 미국 월스트리트발 금융 공황 때 중국 정부가 미국과 협력해 금융 위기를 진정시키고 초대형 경기부양책을 편 것은 중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일정한 구실을 했다. 이 강대국들은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그러한 경쟁의 토대인 세계 질서를 공유하기도 하는 “서로 싸우는 형제들”인 것이다.

제국주의를 단지 강대국의 약소국 약탈로 협애하게 보면, 경제적 경쟁에 따른 강대국들 경제력의 상대적 변화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런 변화가 낳는 지정학적 경쟁 격화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

제국주의를 강대국 간 경쟁 체제로 이해해야만, 중국과 러시아가 부상하고 세계 질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편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제국주의의 약화가 아니라 오히려 제국주의적 경쟁과 불안정, 위험의 증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이러한 “불균등 발전”이 드러내는 역학이 바로 제국주의로 나타남을 보여 준다.

이런 제국주의론에 따르면, 브릭스의 부상은 제국주의 세계 질서의 변화를 보여 주고 또 그 변화를 촉진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제국주의 체제의 대립물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미중 갈등의 심화는 ‘패권 대 반패권’ 아닌 제국주의 강대국 간의 경쟁

개도국 간의 단결?

‘약탈당하는’ 중국과 제3세계 국가들 간의 협력이 서방 강대국들에 대항하는 ‘반패권’이라는 대의 아래 민주적이고 호혜적으로 발전한다는 주장도 현실과 다르다.

스탈린주의의 주장들은 브릭스 국가들 사이의 균열과 갈등을 애써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가령 인도와 중국이 국경 분쟁과 지역 정치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지만 미국 주도 질서에 맞서서는 공통의 이익이 있고, 그에 비하면 둘 사이의 갈등은 부차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예컨대, 인도는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형성한 쿼드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브라질도 2019년 미국에게 군사 장비에 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비 나토 주요 동맹” 지위를 얻었다.

물론 브릭스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를 놓고 러시아를 비난하는 데 동참하기를 거부했다. 미국이 러시아를 제재해 러시아의 외환 보유고를 동결한 것에 대응해, 달러를 대체할 통화를 만들고자 하는 등 미국의 뜻을 거스르는 선택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강대국들 간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운신의 폭을 넓히려고 하는 시도이지, 단순히 미국 등 서방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또, 미국과 달리 중국은 제조업에 기반한 경제 성장을 이룩해 내생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하므로 패권 국가의 길을 추구할 필요가 없고, 다른 제3세계 국가들의 균형 발전을 도울 수 있다는 스탈린주의자들의 주장도 현실과 맞지 않다.

중국이 라틴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 진출해 현지 경제와 맺는 관계는 서방이 개발도상국 무역에서 추구하던 것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 지는 이미 오래됐다. 즉, 1차 생산물을 수입해 가고 공산품을 수출하면서 개발도상국을 글로벌 공급 사슬의 밑바닥에 묶어 두는 패턴을 되풀이할 뿐, 현지의 균형 발전과는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개발 차관을 앞세워 진출하는 방식도 서방 강대국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에 막대한 대출을 제공하면서 영향력을 늘리고 있는데, 그 돈은 주로 현지에서 중국 업체를 이용하고 중국 자재를 조달하는 데에 지출된다.

또, 중국의 해외 차관에는 흔히 가혹한 채무불이행 보상 조건이 달려 있다. 예컨대 중국은 스리랑카가 빚을 갚지 못하자 그 대가로 스리랑카 연해 전략 도시인 함반토타의 항구 등 전략 시설을 장악할 수 있었다.

위로부터?

진영논리는 미국과 대립하는 국가(의 지배계급)와 좌파가 연대해야 함을 함축한다. 이는 그 나라 노동계급이 자국 지배계급에 맞서 저항할 때 좌파가 그것을 외면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정치적 약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브릭스 국가들은 모두 저마다의 자본주의적 이해관계를 위해 이합집산하는데, 자본주의적 성장(축적)의 논리는 필연적으로 노동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에 맞선 저항이 벌어진다면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2018년 남아공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반대 시위 ⓒ출처 dailymaverick

이미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추진하고 군사력 진출을 시도하는 지역들에서 현지 반발이 커지고 있다. 가령 앞서 언급한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구를 중국이 장악하자 현지 주민들은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중국이 함반토타를 식민지 삼으려 한다”고 규탄했다.

2023년 8월에는 남아공에서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리자 자국 정부와 브릭스 정상들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시위자 중 한 명이자 소웨토 지역 활동가인 트레버 응과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범죄에 대해서 얘기하는 브릭스 지도자들 또한 자국민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려고 시위에 나섰습니다.”

브릭스를 서방 제국주의의 대안으로 보는 관점은 제국주의 반대 투쟁에서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와 저항이 아니라 국가 간 관계를 주목하는 위로부터의 관점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존속하는 한은 제국주의 체제를 평화롭게 개혁하는 것은 공상이다. 자본주의 세계 질서에서 국가 간 이합집산은 언제나 있어 왔고, 이것은 이 체제의 일부일 뿐이다.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나아가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본주의가 낳는 국가 간 경쟁 체제 자체에 도전할 수 있는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과 연대에서 나온다.

이스라엘의 억압에 반대해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미국, 영국 등 서방 강대국의 노동계급 사람들과, 중국 등 브릭스 소속 국가들의 노동계급은 제국주의 질서와 (그 하위 질서인)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투쟁 속에서 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연대해야 한다.

스탈린주의는 국가 간 갈등과 협력과 책략이 해결책이라고 보므로 이런 아래로부터의 국제주의적 연대와 저항을 소극적으로 대하거나 일축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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