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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트럼프와 변화하는 한미동맹

다음은 노동자연대 서울 서부(영상)와 동부 지역 공개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제한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트럼프와 그 측근들은 동맹에 대해 말할 때 “무임승차”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동맹국들이 미국의 안보 우산을 공짜로 이용한 데다가, 불공정한 무역으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미국한테 뜯어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과 동맹국들 간의 ‘공정한’ 분담을 강조한다.

이런 말을 듣자면, ‘대체 누가 누구를 진정으로 이용해 왔는가?’ 하고 따지고 싶게 된다.

아무튼 트럼프 정부는 ‘무임승차’론을 앞세워 한미동맹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8월 25일에 열릴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이른바 ‘한미동맹 현대화’는 위험하고 한국인들이 큰 부담을 지게 되는 정책 변화를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트럼프 정부의 한미동맹 재조정이 어떤 목적에서 추진되는지, 그리고 그 모순과 위험에 관해 짚어 보려고 한다. 또, 이재명 정부와 주류 좌파 측의 입장을 살펴보고,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다루려고 한다.

냉전기의 한미동맹

한미동맹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1953년에 공식적으로 맺어졌지만, 그 기원은 1945년 제2차세계대전 종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한국에서 야만적인 탄압으로 해방 이후 분출한 민중 저항을 억눌렀고, 자국 체제를 이식하며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국가가 형성되게 했다. 그럼으로써 한국은 냉전 시기 대(對)소련 봉쇄와 일본 방위를 위한 미국의 전진 기지 구실을 할 수 있었다. 미국은 한국 보호를 명분으로 주한미군을 대규모로 배치했을 뿐 아니라, 한국에 최대 900기 이상의 전술 핵무기를 배치해 냉전 종식 때까지 유지했다.

냉전 시기에 미국은 자국의 전진 기지인 한국을 군사적·경제적으로 지원했다. 1945~1976년에 미국이 한국에 직접 준 경제와 군사 원조액이 총 125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으로서 유리한 조건으로 외채를 구하고 수출 시장을 뚫을 수 있었다. 즉, 한국 지배계급은 미국에 밀착해 성장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른바 ‘한강의 기적’은 노동자 등 민중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눈부신 성장 지표 이면에 민중의 끔찍한 생활 수준과 독재 정권의 가혹한 탄압이 자리 잡고 있었고, 미국은 한국의 독재 정권을 계속 비호했다.

그래서 많은 좌파들이 한미 관계를 한국이 미국에 종속된 관계로 이해했다. 억압적이고 부패한 한국 지배자들이 미국 제국주의의 하수인이 되는 바람에 민중이 고통받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 관점은 외세와 그 외세에 결탁한 지배 세력에 맞서 국민의 나머지가 계급을 초월해 단결해야 한다는 좌파적 민족주의·포퓰리즘으로 이어졌다. 그런 정치를 바탕으로 미국 제국주의와 친미 우파 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이 한국에서 부상해 왔다.

하지만 종속은 식민지나 반半식민지 같이 주권이 없거나 크게 제약당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데 국한돼야 한다. 반면 한국은 독립 이후 불과 수십 년 만에 자본축적의 독자적 중심을 이룬,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사례에 해당한다. 서방 제국주의 질서에 적극 편입돼 성장한 한국 지배계급에게 한미동맹은 종속이 아니라 선택,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이처럼 제국주의에 대한 이해관계는 계급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반제국주의 투쟁을 일관되게 건설하려면 국민적 단결이 아니라 계급에 기초한 정치가 필요하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한때 전 세계 공업 생산품의 절반가량을 생산한 최대 공업 대국이자 군사 대국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은 여전히 최강 제국주의 국가이지만, 그 상대적 지위는 예전만 못하다. 반면 중국이 만만찮은 경쟁자로 부상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국제 질서에 상당한 변화를 수반해, 미국이 그 질서를 통제하는 게 갈수록 어렵게 됐다.

냉전 종식 후 한미관계도 변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은 중국과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맺어, 2003년에 중국이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됐다. 냉전 때와 달리 ‘안미경중,’ 즉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며 한국의 지정학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이 불일치하게 됐다.

이런 변화 속에 한국의 외교 노선을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이 제도 정치권에서 대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른바 ‘논두렁론(논두렁의 송아지처럼 미국·중국 양쪽 풀을 다 먹어야 한다)’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은 실제 행동에서는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더 중시했지만 말이다.

미국은 최대 위협인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고 애썼다. 그런 노력은 오바마 정부하에서 본격화됐고, 트럼프 1기 때부터 미·중 간의 적대는 더한층 노골적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이미 2000년대부터 새로운 전략적 중요성에 맞춰 한미동맹의 변화를 추진해 왔다. 가령 미국이 2006년에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노무현 정부의 공식 동의를 받아 내면서, 주한미군은 대북 대응에 국한된 ‘붙박이 군대’에서 벗어나 한반도 바깥 문제에 개입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한반도에만 국한됐던 한미동맹의 활동 범위가 동북아시아로, 세계로 확대되는 과정이었다.

2007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FTA 체결은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 전략의 일부이자 한국이 중국과 지나치게 가까워지지 못하게 붙잡아 두려는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이었다.

같은 기간에 한미일 삼각 군사 협력도 발전돼 왔다. 특히 2023년 조 바이든, 윤석열, 기시다 후미오 3국 정상의 ‘캠프 데이비드’ 선언으로 3국의 군사 협력은 많은 전문가들이 “준동맹”이라고 평가할 만큼 상당히 체계화됐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위험한 계획

2000년대 이후 20여 년 동안 미국 지배자들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인 노력은 성공했는가? 결과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패배는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락하고 있음을 보여 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반면 중국은 미국 경제와의 격차를 더 줄였고, 국제적 위상도 몇 년 새 더 올라갔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중국 산업을 기술적으로 고도화하려고 하면서, 미국의 핵심 경제 기반인 첨단 기술 부문을 위협했다.

트럼프 정부도 전임 정부들이 시달린 문제들과 씨름해야 하는 처지다. 무엇보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려면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나, 이는 감당하기 너무 버거운 과제가 됐다. 지난 3월 트럼프 정부의 국방부 정책 차관인 앨브리지 콜비는 자신의 인사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세계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원과 정치적 의지가 심각하게 불일치하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도 전임자들처럼 가진 역량을 중국 쪽에 집중하려 하고,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이려 한다. 특히, 관세 공세와 지정학을 연계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고 한다. 그 구상은 트럼프의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인 스티븐 미런이 잘 드러냈다. 미런은 관세와 안보 공약을 결합해 다른 국가들을 중국과의 경제적 연계에서 떼어 내고 중국 견제에 동참토록 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했다. “우방국들은 안보 우산과 경제 우산하에 있을 테지만, 고통을 더 많이 분담해야 한다. 그 고통 분담 정도에 따라 우방국들은 무역이나 환율 문제에서 우대받을 것이다. 안보 우산 바깥에 있는 나라들은 국제 무역과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우호적 합의에서 배제될 수 있다.”

지난 7월 트럼프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브릭스(BRICS)의 “반미 정책”에 동조하는 국가에는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고, 실제로 브릭스 회원국인 브라질과 인도에 각각 50퍼센트와 25퍼센트의 무거운 관세를 내렸다. 8월 6일에는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한다는 이유로 인도에 25퍼센트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과 일본처럼 미국에 안보 분담을 약속한 우방국들이 받은 관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대만해협

이처럼 미국 제국주의의 쇠락을 멈추기 위해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통치자들이 분투하면서,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경쟁이 결합하는 양상이 더 확연해지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트럼프와 그 측근들이 동맹에 대해 갖는 생각은 미국 통치자들의 전통적인 전략과는 사뭇 다르다. 그간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질서 아래에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결집시켰고, 해외 미군 기지 네트워크로 그 질서를 보호했다. 이처럼 미국은 패권을 위해 동맹국들에 크게 의존했는데, 이제 트럼프는 이 동맹국들을 미국을 이용해 먹는 존재로 치부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결코 동맹의 폐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트럼프가 나토를 아무리 업신여겨도 세계 경제의 18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유럽은 미국의 패권에 매우 필수적인 존재다. 일본과 한국과의 동맹도 마찬가지다. 동맹이 없다면 미국은 유라시아에서 자국의 힘을 펼칠 교두보를 잃게 되고, 그러면 지배력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것은 동맹의 재조정이다. 이는 지난 3월 미국 국방부의 《임시 국방 전략 지침》에서도 드러났다. “인력과 자원의 제한을 감안해 [미국은] 다른 전장들에서 위험을 감수하되 유럽, 중동,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이 러시아, 북한, 이란의 위협에 대한 억지 책임을 더 많이 지도록 압박할 것[이다.]”

이를 통해 트럼프가 집중하고자 하는 전장은 바로 중국과의 전장, 특히 대만 해협을 가리킨다. ‘지침’은 “중국의 대만 점령 시도를 저지하는 동시에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트럼프 정부는 아시아 동맹국들에 구체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5월 31일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샹그릴라 대화’에서 두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아시아 국가들도 북한, 특히 중국의 위협에 대응해 국방비를 대폭 늘려야 한다. 둘째, 안미경중은 더는 불가하다. 중국과 거리를 두라.

이재명 정부는 미·일 제국주의에 협력하는 전통적 노선을 이어 가고 있다 ⓒ출처 공군

이 점이 한미동맹에 어떻게 적용될까? 8월 9일 〈워싱턴 포스트〉는 관세 협상에서 한국에 제시할 안보 관련 요구들이 포함된 트럼프 정부 내부 문서를 보도했다. 거기에는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2.6퍼센트에서 3.8퍼센트로 늘릴 것, 방위비분담금(주한미군 주둔 지원금) 증액, 대중국 억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지지 성명 발표 등이 포함돼 있었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이 북한 위협에 자체적으로 대응하고, 안보 비용도 스스로 대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해 대만 해협 위기 대응에 주력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트럼프 정부는 대만 해협 위기 시 주한미군의 출동을 용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국이 미군을 돕기를 바란다. 앨브리지 콜비는 2021년에 낸 저서에서 한국이 대북 자체 방어에 주력하는 것을 넘어 중국에 의한 잠재적 공격에 미국과 함께 대응하는 쪽으로 재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그는 8월 15일 아시아 동맹국들이 집단 방위의 필요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콜비가 집단 방위를 언급한 것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공동의 위협’에 미국·일본·호주 등과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요청을 더 강하게 받을 것임을 시사한다.

미국은 여전히 최강 제국주의 국가이고, 트럼프는 자국의 힘을 활용해 한국을 비롯한 우방들에게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 한다.

군비 증강

그렇지만 트럼프의 계획은 오롯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이 계획은 커다란 모순과 위험을 낳을 것이다. 과거 미국은 우방국들을 자국 주도 질서에 복종케 하려고 일정하게 혜택을 제공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트럼프는 부담만을 잔뜩 떠넘기려 하기에, 우방국들은 미국의 요구에 타협하는 한편으로 불만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

당장 미국은 다른 나라들을 중국에서 떼어 내려 하지만,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큰 한국으로선 이는 곤혹스런 요구다. 수십 년간 국경을 넘어 조성된 생산 네트워크와 판매망을 단기간에 조정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 미국이 중국 시장을 대체할 시장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방위비분담금 증액 등 군비 부담도 커진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대로 한국의 국방비를 GDP 2.6퍼센트에서 3.8퍼센트로 늘리면, 적어도 매년 30조 원 이상을 더 써야 한다. 그만큼 교육, 의료 등 우리에게 필요한 다른 예산을 줄여야 하는 압박이 커질 것이다.

게다가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한국 보호가 아니라면, 한국인들이 왜 그들의 주둔을 용인해야 할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막대한 지원금(방위비분담금)까지 매년 퍼 주면서 말이다. 트럼프는 “머니 머신”인 한국이 매년 100억 달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주한미군이 대만 해협 위기에 동원된다면, 한국은 원치 않아도 중국의 공격 표적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자체 안보는 스스로 해결하라고 동맹국들을 압박하자, 주요 동맹국들은 군비 증강을 시작하고 있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GDP 대비 2.3퍼센트인 국방비를 2035년까지 5퍼센트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복지 예산은 크게 삭감되고 있다. 독일 정부도 올해 624억 유로(98조 원)인 국방 예산을 2029년에는 1,529억 유로(241조 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군비 증강세가 두드러진다. 일본은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2027년까지 방위비를 트럼프 1기 시절보다 2배 늘리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관료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증액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미 일본은 아시아에서 중국을 막을 첨병이 되겠다고 자처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해 왔는데, 트럼프의 촉구와 일본 정부의 화답으로 그 흐름에 더 가속도가 붙게 됐다.

이처럼 트럼프의 동맹 재조정 계획은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트럼프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각자도생식으로 나름의 이득을 챙기려 하면서 세계가 더 불안정해지고 있는 것이다.

타협 모색하는 이재명 정부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간 갈등이 악화되면서, 한국의 모순은 점차 심해져 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안미경중식 접근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지정학적 분열이 심화되고 그와 맞물려 국내의 갈등이 커지자, 지난해 12월 윤석열은 쿠데타를 일으켜 극우적 해결책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이제 이재명 정부는 어떨까? 야당 정치인으로서 이재명은 우파의 친미·친일 외교를 비판하는 대중을 일정하게 대변해 왔다. 가령 2021년에 그는 1945년에 남한에 들어온 미군이 “점령군”이었다고 옳게 말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이재명은 그때와는 입장이 다르다. 그는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익’, 즉 한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식 “가치 외교”와는 다른 “실용 외교”를 표방하며,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나름으로 ‘균형’을 지키겠다고 한다. 이번에 이재명은 일본과 미국을 잇달아 방문하며 트럼프 정부의 한미일 협력 요구에 화답하는 행보를 보이는 한편, 같은 시기에 중국에 특사단을 보내어 대중 관계도 관리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이 미·중 갈등 속에서 외교적 곡예를 부릴 여지는 계속 줄어들고 있고, 이재명 정부는 난처해 하면서도 한미동맹 강화를 선택하고 있다.

주류 언론들은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인사에서 이른바 ‘동맹파’와 ‘자주파’가 균형을 이뤘다고 평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주파’의 대표 격이라는 국정원장 이종석은 노무현 정부 때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계획을 세운 자였다. 정부 핵심 외교·안보 인사들이 모두 한미동맹을 우선시하는 자들인 것이다.

마스가 프로젝트

이재명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의 타협안을 모색하는 중이다. 미국의 새로운 전략에 일정 부분 동참해, 차라리 그 기회에 군사력을 강화하고 미국과의 산업·기술 협력을 진전시켜 한국 자본주의가 살 길을 찾아보자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재명 정부가 관세 협상에서 꺼낸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마스가는 1,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조선업 투자 프로젝트로 중국과의 제국주의적 해양 경쟁을 위해 자국 조선업을 재건하려는 미국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4년을 기점으로 중국 해군이 미군보다 더 많은 군함을 갖게 됐고, 그 양적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여전히 질적으로는 미군 군함이 앞서 있고 미 해군 전력이 당분간 세계 최강이겠지만, 건함 경쟁에서 중국을 따라잡기에 미국의 조선업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의 도움을 절실히 원했는데, 이재명 정부가 화답한 것이다.

이미 국내 조선업체들이 미군 군함의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수주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관세 협상 과정에서 군산항을 미국 군함 전담 수리 기지로 제안했다는 소식도 있는데, 중국에 가까운 군산에서 미 군함이 수리되면 미군이 중국군을 감시·견제하는 데도 용이해질 것이다.

이렇게 한국이 미국의 건함 경쟁을 지원하기로 하자, 중국 관영 언론 〈글로벌 타임스〉는 “한국과 일본산 배들이 미군 작전에 쓰이면 한·일이 곤란해질 것이다”며 경고했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대는 한국이 전쟁에 휘말릴 위험을 키운다. 2019년 오산 미군 기지를 방문한 트럼프 ⓒ출처 Osan Air Base

조현 외교부 장관 등 고위 관료들은 트럼프의 동맹 현대화 요구를 “국방력을 업그레이드할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군비 증강을 받아들일 태세인 것이다. 7월 25일 〈중앙일보〉는 국방부의 ‘2025~2029 국방중기계획’을 입수해 트럼프 임기 말에는 한국의 국방 예산이 GDP 3퍼센트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정부는 주한미군의 대만 해협 개입 문제는 한미 간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친민주당 이데올로그들 사이에서 타협안이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였던 문정인은 이참에 한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획득하자고 말한다. 한미동맹의 역할을 새롭게 분담해, 한국은 자국 방어를 주도적으로 책임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아예 막을 수는 없으니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자는 말이다. 이래서는 한국은 대북 방어에 주력해야 하니 대만 해협 문제에는 끼지 않겠다고 말해도, 한국이 유사시 미·중 간 충돌에 휘말리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다. 게다가 ‘자주 국방’이라고 포장한들 대북 대응에서 한국군이 주력군이 되고 군비를 늘리는 것은 정확히 트럼프 정부가 원하는 바다.

〈한겨레〉 등 일각에서는 주한미군의 타 지역 전개 시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를 받는 등 안전 장치를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고 전제한 것인 데다가, 위험을 통제하는 데서는 근본적으로 너무 취약한 제안이다. 위기가 본격화되면 미국이 종이 쪼가리에 쓰인 문구 따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약속을 어긴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이재명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는 진정한 평화와는 동떨어진 행보가 될 것이다. 동맹 강화와 군비 증강은 어떤 명분을 들어도 주변국을 자극해 경쟁을 부추겨 ‘안보 딜레마’만 심화되게 할 뿐이다. 또한 정부는 한미 관계에서 생기는 부담을 노동자 등 서민들에게 떠넘기려 할 것이다.

트럼프에 대항해 한국 자본주의 지지?

많은 좌파들이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을 “약탈”이라고 비판하고, 동맹 현대화 요구에도 반대한다. 그런데 대체로 반대 논리는 나름의 국익론에 근거해 있다.

물론 이런 좌파적 “국익”론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뜻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 등 서민의 이익을 가리키고, 국가가 이들의 이익을 제대로 신경 쓰지 않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에 맞서 경제·안보 주권을 지켜야 서민들의 일자리, 먹거리, 소득 등을 지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좌파 측의 국익론에도 모순과 한계가 많다. 한국인의 ‘공통 이익(국익)’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경제적 이익도 중요하게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로는 국가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희생과 양보를 해야 한다는 논리에 취약해지기 십상이다.

좌파적 버전의 국익론에 기초한 좌파적 민족주의·포퓰리즘으로는 노동계급 투쟁은 강조되지 않고, 계급을 가로질러 민주당과의 동맹 추구가 중시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이재명도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고통을 부담해야 한다는 데에 국민의힘과 도긴개긴이다.

분명 트럼프의 관세와 안보 정책은 자신의 부담을 중국은 물론, 우방국들에게도 떠넘기는 ‘내 이웃 거지 만들기’ 전략의 일환이다. 패권 유지를 위해 자국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고 무역·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중국은 물론, 우방국들에게도 그 비용을 전가하고 양보를 얻어 내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횡포를 두고, 한미 관계가 “새로운 공납 관계”가 된다거나 한국이 미국에 더 종속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강대국들의 압박이 다 종속, 민족 억압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지금 미국이 자기 이익을 관철하려고 일본, 캐나다 등 서방 동맹국들을 압박하고 있지만, 그런 국가들이 미국의 종속국은 아니다. 무엇보다, 오늘날 중간 규모의 강국이 된 한국의 지배자들은 자기 나름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며, 미국의 압박에 불만을 품어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 협력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체 핵무장론

지금 이재명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손실을 줄이고 이득을 최대로 얻을 길을 찾고 있다. 가령 정부는 미국의 안보 분담 요구에 대한 협상 카드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이는 한국이 핵무장 잠재력을 확보하는 것과 연관돼 있다.

트럼프의 안보 공약을 신뢰할 수 없게 되자, 한국 지배자들 사이에서는 자체 핵무장론이 대두해 왔다. 그 일환으로 미래에 핵무기를 만들 기술적 기반을 확보하자는 입장도 있는 것인데, 그러려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얼마 전 핵보유국들인 인도와 파키스탄의 무력 충돌에서 확인됐듯이, 핵무장은 전쟁 억지에 이바지하기는커녕 더 큰 불안정을 낳을 불씨만 될 것이다. 이처럼 한국 국가는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이득을 도모하며 위험 증대에도 일조하는 플레이어다.

많은 좌파들이 이재명 정부를 향해 “국민을 믿고 당당히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 자신이 미국과 협력할 태세임에도 정부를 (비판적일지라도) 응원하는 자세로는 활동가와 노동자들에게 문제의 핵심을 미리 경고하고 대응을 준비시킬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좌파가 트럼프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필요하나, 지금 가장 주력해야 할 과제는 이재명 정부의 친미 입장을 비판하고 이재명 정부가 한미 관계에서 생긴 부담을 노동자 등 서민들에게 떠넘기는 데 반대하는 것이다.

노동자 등 서민들에게는 고통스럽고 위험한 미래가 될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 방명록 ⓒ출처 대통령실

한편, 미국 제국주의에 반발하면서 대립각을 세우는 국가들을 진보적 균형추로 보는 시각을 가진 좌파도 있다. 이들은 트럼프의 ‘약탈’ 정책을 제국주의의 종말을 보여 주는 신호라 보고, 브릭스 같은 이른바 ‘반제 자주’ 국가들의 연대에 기대를 건다.

그러나 위계화된 자본주의 국제 질서에서 헤게모니 국가가 교체되거나 그 질서를 재편하는 식으로는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없다. 현실에서 서로 다투는 제국주의 국가는 언제나 단수單數가 아닌 복수複數로 존재했고, 중국도 그 제국주의 국가의 하나다. 중국이 국내에서 소수민족을 억압하고,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발도상국들에 진출해서 하는 행태는 미국 등 서방 강대국들과 다르지 않다. 러시아와 인도 같은 브릭스의 다른 주요 회원국들도 모두 자국 노동자와 빈민을 억압하고, 자기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두고 다른 국가들과 다투는 지정학적 플레이어들이다.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세력 변화와 트럼프의 위험하고 모순된 외교 안보 정책이 맞물리면서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정말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지 모른다. 그만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와 운동을 발전시킬 필요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100여 년 전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등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인 경쟁적 축적에서 비롯한 강대국들의 경쟁 시스템임을 포착했다. 그리고 싸우는 제국주의 국가들 중 한쪽을 지지하기를 거부했고, 자국 정부의 전쟁 노력에도 반대했다. 제국주의에 효과적으로 대항하려면 노동계급의 투쟁과 그들의 국제적 단결이 중요함도 강조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한 반제국주의 정치다. 자본주의의 복합 위기 속에 트럼프의 전략이 낳을 혼란과 위기가 우리에게 저항을 건설할 기회를 줄 수 있다. 지금 트럼프가 돕는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각성하는 것도 반제국주의 운동을 성장시킬 가능성을 보여 준다. 반제국주의 운동을 건설하면서, 우리는 자본주의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을 묶어 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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