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세계 자본주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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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간 세계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AI 거품이 꺼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 주요 정부와 기업들이 벌이는 AI 기술 패권 경쟁은 계속 격화되고 있다. AI의 발전이 국가와 기업을 더 밀접하게 융합시키고, 세계 각국 정부들이 경제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 또한 그 경쟁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한국을 ‘AI 3대 강국’의 하나로 만들겠다며 100조 원 규모의 민관 합동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내년 AI 예산을 올해보다 세 배 이상으로(10조 1,000억 원) 늘리기로 했다.
아펙(APEC) 정상회의 기간에 이재명 정부는 한국을 방문한 빅테크 기업인들로부터 각종 AI 투자를 유치했다.
이미 지난 6월에 SK와 함께 7조 원 규모의 기반 시설 투자를 발표한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추가로 7조 원을 더 투자하겠다고 약속했고, 엔비디아는 한국에 GPU 26만 장을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GPU는 주로 AI를 학습시키는 데 사용하는 핵심 장비다.
AI 데이터센터는 하나는 중소 도시 한 곳과 맞먹는 양의 전력을 소비한다.
이런 어마어마한 AI 기반 시설이 한국에 우후죽순 들어설 예정이다. 울산과 인천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 AWS는 이제 또 다른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이미 부산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한 마이크로소프트도 울산에 데이터센터를 증설할 계획이다. 챗GPT를 만든 오픈AI는 전남권에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SK와 합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AI를 강조한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면서 “출발이 늦은 만큼 지금부터라도 부단히 속도를 높여 선발주자를 따라잡아야 우리에게도 기회가 생긴다”며 국회의 협조를 구했다.
이런 위기감과 야심은 비단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올해 유럽연합은 “유럽을 AI 대륙으로 만들기 위해” 5년에 걸쳐 2,000억 유로(약 335조 원)를 지출하겠다고 발표했다. “AI 주도권을 둘러싼 세계적 경쟁은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하고 유럽연합은 선언했다.
유럽연합은 다섯 곳에 “초대형 AI 공장, 즉 막대한 AI 관련 연산 능력과 데이터센터를 보유한 대규모 시설들”을 짓겠다고 한다.
영국 노동당 정부도 나름의 AI 기반 시설 구축 계획과 투자 유치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도 AI 개발을 위한 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AI 기술 경쟁의 세계적 격화가 국민국가와 기업들로 하여금 경제 정책을 둘러싸고 더 긴밀하게 협력하도록 이끌고 있음을 보여 준다.
기업들은 갈수록 뛰어난 AI를 개발하려고 경쟁한다. AI가 생산을 혁신하고 수익성을 끌어올릴 핵심 미래 기술이라고 기대하며 말이다. 거액의 투자를 끌어들이는 기업주들은 “초지능”(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 AI를 개발해 부와 권력을 차지하고 싶어 한다.
또한 이런 기술 우위 경쟁에는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군비 경쟁을 포함한)에서 더 큰 판돈이 걸려 있다. 이것은 특히 미국에게 더 그렇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과 자국의 상대적 쇠락을 우려하며 경제 우위와 기술 우위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AI 기술 개발 기업들은 국가 개입을 필요로 한다. 그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대규모 기반 시설과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첨단 반도체 칩으로 만들어지는 GPU는 엄청나게 비싸다. 여러 GPU를 돌리는 AI 서버 한 대는 중하급 수준도 수십만 달러에 달하고 상급은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
또, 이런 서버들을 운영하려면 막대한 전력과 수자원(냉각용)을 소모해야 한다. 생태계가 무너지는 와중에 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망에 따르면, 2030년에 세계 데이터센터의 총 전력 소비량은 945테라와트시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본 전체의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또, 이 최첨단 컴퓨터 칩은 엄청난 열을 내기 때문에 냉각을 위해 막대한 물을 사용한다. 2023년 미국에서 데이터센터 냉각수로 사용된 물은 8,000억 리터에 달한다. 미국에서 200만 가구가 한 해 동안 사용하는 물과 맞먹는 양이다.
기술 자문 회사인 가트너는 올해 전 세계에서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쓰인 돈이 모두 4,500억 달러(약 656조 원)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컨설턴트 회사인 맥킨지의 추산에 따르면, AI 수요를 따라잡으려면 2030년까지 5.1조 달러가 데이터센터에 투자돼야 한다고 한다. 비교를 위해 언급하자면 미국의 현재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30조 달러다.
세계적 경쟁이 심화돼 막대한 투자와 국가와 기업의 결합이 필요해지면서, 세계 자본주의는 민영화와 자유 시장이 우세한 신자유주의적 형태에서 갈수록 벗어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한 이래, 그리고 세계적 제국주의 경쟁이 강화된 것에 대응해 국가들이 경제에 더 적극 개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국가가 AI 투자를 조직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트럼프의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 구축 프로젝트는 미국 기술 기업과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AI 기반 시설에 대한 1,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확보할 것이다.
트럼프는 또한 더 많은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한 행정 명령을 내렸다. 연방 정부 규제를 완화하고, 금융 지원을 제공하고, 보조금과 감세 혜택을 제공하고, 연방 정부 소유의 토지와 자원들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내용이다.
또, 트럼프는 반도체 수입에 관세를 물리겠다고 위협했다. 그 때문에 세계 최대 반도체 제조사인 TSMC는 75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새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위기감을 드러내며 행동에 나선 것은 올해 딥시크 출시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딥시크는 중국의 스타트업 기업이 개발한 AI 모델이다.
훨씬 적은 반도체 칩으로 만들어진 딥시크는 미국의 경쟁 기업들보다 훨씬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비슷한 성능을 보였다.
딥시크는 중국의 AI 기술 경쟁력을 과시했다. 딥시크의 출시는 “스푸트니크 모먼트”로 일컬어졌다.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리자 위기감을 느낀 미국과 스탈린주의 소련 사이에서 우주 경쟁이 촉발된 것에 빗댄 말이다.
희토류 또한 AI 기술에서 핵심적이다. 반도체와 같은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부문에도 국가가 개입하고 있다.
이 부문에서는 중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중국은 모든 희토류의 70퍼센트를 채굴하고 90퍼센트를 가공한다. 그래서 미·중 무역 전쟁 과정에서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는 상당한 위력을 냈다.
트럼프는 희토류 공급을 죄는 중국의 손아귀를 풀려고 안간힘을 썼다. 10월 20일 트럼프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협정을 체결해 희토류 채굴·가공 사업에 거액을 제공하기로 했다. 미국 에너지부가 희토류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약 10억 달러를 지출하겠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미국 국방부는 유일한 미국 희토류 기업의 최대 주주가 됐다. 그러나 희토류를 확보해도, 제련 능력은 갖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처럼 격화되는 경쟁은 위험천만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전쟁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한 국가들과 기업들은 무력으로라도 그것을 지키려 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20세기 초에도 여러 나라에서 민간 기업이 갈수록 국가와 융합됐다. 국가들은 그 기업들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적 수준에서 시장과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두고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제 평화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경쟁은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로 이어졌다. 현재 국가들은 이미 AI를 군비 경쟁에 사용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인종학살 과정에서 소위 ‘정밀’ 폭격을 돕는 AI를 이용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지속적인 위성 감시 등으로 대량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주기적인 폭격을 실험 삼아 하마스 전사를 ‘식별’한다는 AI 모델들을 개발했다. 이 기술에 눈독을 들이는 국가들이 많다. 한국도 그중의 하나다.
나토는 소프트웨어 기업인 팔란티어로부터 AI 기반 무기 체계를 구매했다. 그 체계는 전장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더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 준다고 한다.
이재명 정부도 내년도 국방 예산을 무려 8퍼센트나 증액하면서, 국방 전 분야에서 AI를 도입하겠다고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쿠데타 2인자인 전 국방장관 김용현 주도로 240억 원을 들여 ‘군중 감시용’ AI 시스템 구축을 추진했다.
자본주의에서 ‘죽음과 파괴의 상인들’에게 AI 발전은 더 효율적인 살상을 가능케 할 기회를 뜻한다. 그러나 AI 발전이 꼭 그런 데에 사용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AI는 지루하고 자질구레한 일을 자동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고된 노동을 없애고 마르크스가 말한 “진정한 부”, 즉 자유 시간을 늘리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AI 기술이 자본가들의 통제하에 있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본가들의 주된 동기는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희생시키더라도 이윤을 내고 자본을 축적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에서 AI는 해방이 아닌 지배의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