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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정치경제학
컴퓨터 칩에서 계급 투쟁까지

아래는 크리스티아노 사비유 서울시립대 천체물리학 연구교수가 5월 22일 노동자연대 공개토론회에서 한 발표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몇 달 전 한국은행은 AI(인공지능)가 광범하고 신속하게 도입되면 한국 경제 생산성을 최대 3퍼센트, 국내총생산(GDP)을 최대 13퍼센트 높여,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경제 성장률 손실의 3분의 2를 만회할 수 있다고 추산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놀라운 추산인데, 바로 이런 이유에서 각국 정부 수반들, CEO들, 자본가들은 마치 19세기 대자본가들이 철도·철강에 관해 말하듯 오늘날 GPU에 관해 말하는 것일 테다.

그럼에도 이런 숫자만 봐서는 AI에서 누가 득을 보고 누가 대가를 치르고, 왜 AI가 기업 간, 국가 간 경쟁의 새 전장이 돼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영리한 알고리듬에서 그것을 조직하는 사회관계로 시선을 옮겨 보자. 또는, 반도체 칩에서 그것을 제조하는 삼성전자의 화성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 라벨링에 동원되는 필리핀 마닐라의 수많은 초단기 고용 노동자들로 시선을 옮겨 보자.

AI 열풍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AI라는 신기술이 기존의 패턴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규명해 보자. 이 글에서 나는 AI가 자본의 이윤 추구를 격화시킬 뿐이고, AI가 어떻게 세계적 노동 분업을 재편하고 있는지를 밝히려 한다.

AI 경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성격과 떼어놓을 수 없다

AI 기초지식

먼저, AI의 바탕이 되는 기계학습에 관해 간단히 설명하겠다.

종래의 소프트웨어는 프로그래머가 모든 동작을 사전에 지정한다. 예컨대 ‘A를 입력하면 B를 출력한다’ 하고 말이다. 반면 기계학습에서는 그 과정이 뒤집혀 있다. 컴퓨터에 수많은 A-B 쌍을 입력하고 스스로 패턴을 찾아내도록 한다.

몇 년 전에 컴퓨터 과학자들은 이런 일을 언어 영역에서도 시도했다. 수많은 문장을 입력한 뒤 컴퓨터가 특정 문장 다음에 나올 단어를 찾아내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모델을 학습시키면 컴퓨터가 “프랑스의 수도는?” 하는 입력 문장 다음에 나올 말을 찾아내려 애쓰다가 정답인 “파리”라고 답하더라는 것이다.

이 놀라운 성취는 몇 가지 요인 덕에 가능했다.

  • 새로운 유형의 기계학습 모델인 ‘트랜스포머’의 개발
  • 이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방대한 연산을 가능케 하는 고성능 GPU
  • 책, 인터넷 백과사전, SNS 등에서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입력값-출력값의 쌍). 많은 경우 원작자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기계학습 모델 훈련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오차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매 훈련마다 기대된 출력값과의 오차를 최소화하도록 모델의 수많은 매개 변수(가중치)가 조정된다.

훈련이 완료되면 그 값들은 고정된다. 이런 식으로 테라바이트 단위의 방대한 입력이 수십억 개의 숫자로 응축된다. 우리가 이 모델을 구동하면, 예컨대 챗GPT에 질문을 입력하면 그 질문은 모델, 즉 그 수십억 개의 숫자를 이용해 GPU로 처리된다. 훈련·구동 과정 모두에 하드웨어가 방대하게 이용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왜 AI가 중요한 화두인 것일까? 왜 AI가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정쟁의 소재가 되고, 한국 대선의 주요 후보가 GPU 대량 구매를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거는 것일까? 기술적 세부 사항만 봐서는 이 물음에 답할 수 없다. 카를 마르크스의 ‘죽은 노동’과 ‘산 노동’ 개념,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개념을 살펴보고 그런 개념들로 지금의 AI 열풍을 조명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자본주의의 동력은 잉여가치다. 잉여가치란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 중 임금으로 지급되지 않는 부분을 말한다.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의 ‘산 노동’은 원자재·설비와 결합돼 상품을 생산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임금으로 지출된 가치를 가변자본(V), 설비와 자재에 투입된 비용을 불변자본(C)이라고 불렀다. 불변자본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않고 그 가치가 매번 생산 과정에서 마모되며 상품에 이전된다. 따라서 설비는 ‘죽은 노동,’ 즉 과거 생산자들이 투입한 노동을 담고 있고 그 가치가 새 상품으로 이전하면서 낡고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가변자본과 불변자본의 비율(C/V)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라고 하는데, 이는 기업이 산 노동에 비해 설비와 자재에 얼마나 더 많이 의존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경쟁의 압력 때문에 높아지는 경향이 있고, 이는 이윤율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마르크스주의적 개념들로 AI의 여러 구성 요소들을 살펴보자. 기계학습 모델의 가중치(응축된 디지털 지식)들은 일종의 ‘죽은 노동’으로, 무수한 인간 노동이 응축된 것이다. 여기에는 저술가·시인·창작자의 노동은 물론 그 모델 자체를 설계하고 효율화하는 노동도 포함된다. 그런데 물리적인 기계와 달리 이 디지털 ‘죽은 노동’은 반복 사용 과정에서 마모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애초에 투입된 인간 노동이 잊혀지고 보이지 않게 된 지 한참 후에도 계속 작동하고 끝없이 복제할 수 있는 일종의 좀비 노동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가중치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려면 특수한 물리적 장비, 즉 GPU가 필요하다. GPU는 마르크스의 고전적인 ‘죽은 노동’ 개념에 훨씬 부합한다. GPU는 과거 인간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복잡한 기계이고, 생산 과정에서 가치를 상품으로 이전하며, 그 과정에서 마모, 에너지 소모, 감가상각이 발생한다.

새로운 기술, 낡은 문제

자본가들이 더 생산적인 설비를 도입할 때 언제나 최초 도입자는 잠시 동안 커다란 이득을 누린다.

두 개의 의류 기업이 있다고 해 보자. A 기업은 노동자 1명이 시간당 코트 10벌을 생산하는 방적기를 사용하고, B 기업은 신형 방적기를 도입해 동일 임금(가변자본)당 코트 20벌을 생산한다. 자본주의에서 가격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수렴하기 때문에, B 기업은 경쟁사보다 싼 값에 코트를 팔면서도 코트 한 벌당 더 많은 잉여가치를 가져갈 수 있다. 경쟁사들이 모두 같은 기술을 도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일단 신형 방적기가 보편화되면 코트의 시장 가치는 시간당 20벌 생산에 해당하는 가치로 조정된다. B사가 누리던 초과 수익은 사라지고, 산업 전반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두 배로 높아진다. 개별 기업은 새로운 가치 생산의 유일한 원천인 산 노동이 아니라 기계류에 더 많은 돈을 투입하게 된다. 그 결과가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 저하 경향’이다.

이윤율 = 잉여가치(S) / 불변자본(C) + 가변자본(V)

이 공식에서 V에서 짜낸 잉여가치 S보다 C가 더 빠르게 커지면 분모는 분자보다 더 빠르게 커지고, 따라서 이윤율은 줄어든다. 이윤의 은 늘더라도 말이다. 쉽게 말해, 자본가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방적기/GPU 같은 생산 설비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현재 여러 기업에서 여러 용도로 인공지능을 도입하고 있다. 이로써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정확히 얼마나 변했는지는 매우 불균등하겠지만, 이윤율 저하 경향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음은 예상할 수 있다.

착취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윤율 저하 경향이 단선적인 악순환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자본은 끊임없이 “상쇄 요인”을 찾는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같은 노동력에서 더 많은 잉여가치를 쥐어짜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착취율(가변자본 대비 잉여가치, S/V)을 충분히 빠르게 높일 수 있다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지는 와중에도 전반적인 이윤율을 유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자본가들은 노동 시간을 늘리고, 노동 강도를 높이고, 노동력 자체의 가치를 저렴하게 만든다.

아마존 창고 노동자를 예로 들어 보자. 이 노동자들은 모든 동작을 초 단위로 기록하는 장비를 손목에 차고 일한다. 움직이지 않는 시간은 “업무 중단(TOT)”으로 기록되고 이는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 디지털 감시를 이용해 매분 매초가 잉여가치를 둘러싼 전투가 되는 것이다.

한국 국가도 노동 시간을 늘리려 애써 왔다. 2023년 윤석열 정부는 주당 69시간 노동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전국 수준에서 그런 시도가 가로막히자 자본은 산업 부문별로 이를 시도했고, 4월에 고용노동부는 삼성반도체에 6개월 단위로 인가를 받는 주 64시간 노동을 허용했다. 경영진은 이것이 세계적 AI 반도체 경쟁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주장했고, 국가는 이를 용인해 줬다.

여기서 우리는 신기술이 노동자들의 노동 부담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늘릴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독점과 국가자본주의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더 쥐어짤 뿐 아니라 시장 자체를 재편함으로써도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수의 대기업이 산업 부문을 분점하면 그들은 상품 가격을 사회적 필요노동시간보다 높게 책정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는 막대한 고정 비용을 짊어지거나 수요를 보장함으로써 대기업들의 경쟁 압박을 더 경감해 준다. 둘 모두, 앞에서 제시한 이윤율 저하 경향 공식의 분모(불변자본(C)+가변자본(V))가 지나치게 빨리 커지는 것을 막으면서 분자(잉여가치(S)) 부분을 더 키워 준다.

이재명 대선 후보는 국가적 AI 프로젝트에 쓸 최첨단 GPU 5만 개를 확보하겠다고 공약했고 최근 TV 토론에서 한국형 AI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재명은 차세대 거대 언어 모델의 허브가 될 데이터 센터를 해남에 짓고 남동 해안 지대에 풍력 발전 시설을 지어 그 데이터 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과학법에 따라 빅테크 기업들에게 최대 80억 달러를 지원하고, 인텔에 오하이오·애리조나주(州) 공장 건설을 위한 저금리 대출과 25퍼센트의 세액 공제를 제공했다.

이렇듯 독점 가격 형성과 국가의 지원은 자본이 노동자를 추가 고용하거나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고도 잉여가치를 늘릴 수 있게 한다. 투자 리스크를 납세자들에 전가시키고 경쟁을 제어해 평균 이윤율을 그렇게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높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봉책일 뿐이다. 국가의 보호를 받더라도 대기업들은 포화 상태인 해외 시장에서 여전히 경쟁해야 하고, 국내에서는 정치적 공격을 받기도 하며,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필요한 투자 비용이 껑충 뛰어오른다. 이런 압력들이 심해지면, 독점 기업들과 국가의 동맹은 국경을 넘어서게 된다.

제국주의

크리스 하먼은 《왜 자본주의는 경제 위기에 빠지는가?》에서 제국주의가 정책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라고 설명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국 자본주의의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자본을 수출하고 값싼 원자재를 확보하고 시장을 지배해야 한다. 방대한 데이터와 원자재, 지정학적 이점을 필요로 하는 AI는 자본 축적의 새로운 전장이 돼,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 긴장을 첨예하게 하고 약소국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시키고 있다.

최근 딥시크가 공개되고 미국 기술주 시장에서 1조 달러가 증발한 일은 실리콘밸리에 패닉을 자아냈다. 기술 기업 경영자들은 부리나케 미국 정부에 추가 보호와 중국에 맞설 대책을 요구했다.

하먼은 이렇게 강조했다. “아무도 제어하지 않는 치열한 경쟁이 지배하는 세계를 홀로 헤쳐 나가기를 바라는 자본가는 없다. … 국가는 그런 붕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구명보트 노릇을 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긴다.” 다시 말해, 기업들은 이론상으로 자유 시장을 예찬할지라도 실천에서는 국가의 적극 지원을 요구한다.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AI 감시 강화를 묘사한 예술가의 작품

미국 정부의 최첨단 GPU 수출 규제는 국가와 독점 자본의 융합을 뚜렷이 보여 준다. 일련의 수출 규제로 처음에는 엔비디아의 고사양 반도체 A100·H100가, 나중에는 “중국 수출 가능” 요건에 따라 설계된 H20마저 중국 본토 수출이 금지됐다. 이는 의식적으로 중국의 AI 모델의 학습 역량을 저하시키려는 것이다. 한때 제약 없이 유통되던 상품이 이제 전략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다.

한국은 “중견” 기술 국가로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구애를 받고 있지만 삼성·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들은 중국에서 생산 시설을 운영하고 중국에 막대한 양의 반도체를 수출한다. 그럼에도 미국의 무역 규제 강화로 인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량은 올해 2월 이래 31퍼센트나 폭락했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5,000억 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초청”받았는데, 그 와중에도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생산 설비 현대화를 허가받으려 협상 중이다.

제국주의는 강대국들 간 대결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약소국과 그 국민들을 ─ 종종 AI를 이용해 ─ 억압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예컨대 미국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종 학살에 대한 지원을 굳건히 하면서 AI로 구동되는 감시 체계와 가자지구에 투입된 자율 비행 드론을 제공했다.

한편, 중국 제국주의 역시 영토 내의 식민 지배와 영토 밖 확장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영토 내에서는 AI가 감시에 동원되는데, 가장 극명한 사례는 알고리듬을 이용해 위구르 지역의 무슬림들을 구금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영토 밖 확장 면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모종의 진보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이 사업의 목표는 최첨단 기술에 쓰이는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약소국을 종속시키는 것이다.

컴퓨터 칩에서 계급 투쟁까지

앞서 지적한 점들은 모두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위기는 투쟁의 계기이기도 하며, 노동계급의 대응은 AI가 낳을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2024년에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3만 조합원은 창사 이래 최초로 파업해 임단협을 쟁취하고 40년 “무노조” 신화를 박살 냈다. 이 파업은 불투명한 성과급 기준에 반발해 임금 인상을 요구한 첫 파업이자, 작업장 안전을 희생하며 급격히 성장한 세계 반도체 업계 최초의 대규모 파업이었다.

미국의 구글 노동자들은 구글이 이스라엘과 체결한 120억 달러 규모의 인공지능 클라우드 계약 ‘님부스 프로젝트’에 항의해 연좌 농성과 직장 이탈 투쟁을 벌였다. 경영진은 투쟁 조직자 최소 28명을 해고했지만, 투쟁은 영국 구글 딥마인드 연구원들의 투쟁으로 확대돼 이제 딥마인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공식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구글 노동자들이 이스라엘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구글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No Tech For Apartheid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을 지원하는 것에 항의해, 올해 4월 창사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고위 임원 연설 중에 소란을 피웠다. 3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전·현직 노동자들을 포함한 시위대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행사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다음과 같은 구호를 벽에 영사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종 학살 능력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 노동자들은 이미 AI로 인한 착취 강화에 맞서 싸우고 있다. 임금과 배달 경로가 AI 알고리듬에 의해 정해지는 배달의민족 배달 노동자들은 노동 강도 강화와 플랫폼 노동에 따른 임금 삭감에 맞서 조직화했다. 지난 4월 이 노동자들은 주말 동안 배달을 거부하는 집단행동을 벌였다.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의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배민앱 OFF”라는 구호가 적힌 스크린샷을 인증하는 게시물이 100개 넘게 올라왔다.

이런 투쟁들은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을 뚜렷이 보여 준다. 국가가 자국민을 통제하고 경쟁자와 겨루는 데에 쓰이는 바로 그 기술이, 그 기술을 설계·보수·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새로운 연대를 촉발하고 있다. 그림의 한쪽 절반이 자본 블록 간 경쟁이라면, 다른 절반은 노동자들의 자의식적 투쟁의 재부상인 것이다. 인공 신경망의 시대에도 계급 투쟁은 역사의 동력인 것이다.

AI와 반(反)제국주의

지금까지, 신기술인 AI가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패턴에 부합함을 살펴봤다. 애초에 경이로운 기술 발전이었던 것이 순식간에 인간을 착취하는 도구가 되고, 국가가 이를 지원하고, 논리적 필연성에 따라 체제의 불안정성 심화에 일조하고, 마침내 제국주의에 일조하게 된다.

이를 이해한다면, 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제아무리 선의에 기초한 법제화, 규제, 안전망도 결국에는 충분치 못할 것임을 직시할 수 있다. 그런 조처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휘청거리며 잇달아 위기에 빠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

자본주의하에서 AI가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AI는 인간 해방의 도구가 아니라 착취를 강화하고 실업을 조장하고 경제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미래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AI는 자율성 있는 행위 주체가 아니고, 그것이 만들어진 사회·경제적 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문제는 단순하다. 누가 무엇을 얻으려고 AI를 통제하는가? 자본주의하에서 AI는 이윤 극대화, 제국주의 경쟁 심화, 감시 확대의 도구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즉 노동자 통제하에서라면 AI는 노동 시간을 줄이고, 기아를 근절하고, 생산을 인간의 필요에 맞게 재조직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AI에 대한 대응은 규제, 윤리적 감시, 사회 복지 정책 그 이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본가 계급은 AI가 노동자들에 득이 되는 체제를 결코 자발적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인류를 불필요한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데에 AI가 사용되는 세상은 정부 정책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건설하려면 계급 투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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