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갈등의 쟁점:
대만 문제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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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일본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가 대만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시사하면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긴장이 치솟고 있다. 일본 총리가 구체적으로 대만해협에 군사 개입하는 경우를 언급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중국 정부는 다카이치의 발언 철회를 요구하며 무력 시위와 경제 제재를 단행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 등 아시아의 다른 미국 동맹국들에도 보내는 경고다.
일본 측도 총리가 발언을 철회하지 않았고,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은 대만에서 제일 가까운 일본 최남단 섬에 있는 육상자위대 기지를 방문해 이곳에 중거리 미사일을 차질 없이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미국과 러시아까지 나서 각각 일본과 중국을 편들고 있다. 특히 미국 상원은 11월 18일 대만과의 고위급 교류를 강화할 ‘대만보장이행법안’을 통과시켰고, 트럼프 정부는 2기 들어 처음으로 대만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이번 사태가 이미 화약고가 돼 있는 양안관계의 불안정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만 문제의 기원
대만 문제(양안관계)는 무엇이고, 왜 그 문제를 놓고 오늘날 제국주의 국가들의 갈등이 커지고 있을까?
1949년 국민당 장제스 정권은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으로 도피했다. 국민당 정권을 따라 200만 명이 대륙에서 대만으로 건너갔다. 이때부터 양측은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 대치에 들어갔다.
대륙을 석권한 중국공산당에 맞서 국민당 정권은 대만에서 서둘러 강력한 국민 국가를 건설하고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해야 했다. 그래서 계엄령으로 대중의 불만을 억누르며 권위주의 체제를 확립했다. 계엄령은 무려 1987년까지 유지됐다.
중국공산당은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보고 즉각 대만을 점령해 무력 통일을 완수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미국이 대만을 지원하며 이를 가로막았다. 미국은 대만을 한국 등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소련 블록을 견제할 전초 기지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양안 간 무력 충돌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1970년대 들어 미국과 중국이 화해하자 양안관계는 다시 변화했다.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고자 중국과 손잡았다. 1979년 미국은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며 대만과 국교를 단절했다. 다만 미국은 국내 법률인 대만관계법과 무기 판매 등으로 대만의 안보를 보장하며 대만을 계속 세력권 안에 뒀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세력 관계와 그들의 관여가 양안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왔다. 이 점은 냉전 해체 이후에도 변함없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돼 공통의 적이 사라지자 2000년대 동안 많은 미국 지배자들이 점점 더 중국을 다시 잠재적인 위협으로 여기게 됐다.
중국은 중국대로 고도의 경제 성장으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었고, 홍콩 등 과거에 잃어 버린 영토를 되찾고 있었다. 그러면서 미국의 중국 견제가 대만 내 독립 주장을 부추기고 대만과의 통일이라는 숙원이 좌절될까 우려했다.
그런 기류 변화는 일찍이 1995~1996년 대만해협 위기로 힐끗 나타났다. 당시 중국은 대만 독립 주장을 약화시키려고 무력시위를 벌였다. 미국은 항모전단들을 대만해협에 파견해 대만 방어 의지를 천명했다. 중국은 미군 항공모함에 맞서기 힘든 자국 군사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이후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냉전 해체가 대만에 미친 영향은 모순적이었다. 지정학적 갈등이 점증했지만, 중국과 대만의 경제적 관계는 깊어졌다. 2002년 중국은 대만의 제1 무역 상대국이 됐다. 2020년 현재 대만 수출의 43.9퍼센트가 중국으로 향할 정도다.
대만 정치권은 중국과의 관계 설정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 국민당은 중국의 통일 방안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양안의 점진적 통일을 지향한다. 반면 민주진보당(민진당)은 대만이 중국과는 별개 국가임을 강조하고 있다. 민진당은 2000년 총통 선거 승리 이후 여러 차례 집권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만인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다’ 하는 생각이 점차 커져 왔다. 그러면서도 양안관계의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대만은 이미 중국과는 사실상 별개 국가이니 굳이 독립을 선언해 중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빚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오늘날 제국주의간 갈등과 대만
지금 미국은 중국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제조업 우위를 확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첨단 기술 부문에서도 미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군사력을 강화해 태평양에서 군사적으로도 미국에 도전하며, 대만을 되찾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으로서도 지정학적 패권을 유지하는 데서 대만은 중요한 곳이다. 게다가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에서 없어서는 안 될 거점이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장악한다면 미국의 아시아 동맹 체계는 결정적으로 흔들릴 것이다.
그래서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태도는 점차 강경해졌다. 일례로 트럼프 1기의 국방부는 2019년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 대만을 ‘국가’로 명시하며 중국을 자극했다. 바이든도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대만을 방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렇게 제국주의 강대국들인 미국과 중국 간의 적대 속에 양안관계의 긴장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5월 민진당 소속 라이칭더가 총통이 된 이래 양안관계는 “1995~1996년 대만해협 위기 이후 최악의 위기 국면”이 됐다. 라이칭더 정부는 취임 후 중국을 ‘해외 적대 세력’이라고 규정하는 등 중국에 강경한 태도를 취했고, 지금 중·일 갈등에서도 일본을 편들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지난해 6월 “완고한 대만 독립 분자”를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는 형사 처벌 관련 지침을 발표했고, 라이칭더 취임 후 1년 동안 대만을 표적 삼은 군사 연습을 네 차례나 벌였다.
트럼프 2기 정부에게도 중국과의 대결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올해 초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임시 국방 전략 지침》에서도 미국 본토 방어와 함께 “중국의 대만 점령 기도 저지”를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꼽았다.
트럼프 정부는 동맹 재조정을 시도하면서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중국 봉쇄를 위해 더 많은 몫을 감당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군비를 대폭 늘리고 유사시 중국에 맞서 미국에 협조할 것을 약속하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이런 요구에 적극적으로 화답하고 있는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이미 일본은 아베 총리 때부터 “일본의 귀환”을 선언하며 아시아에서 중국 견제의 선봉장을 자임했고, 2022년 공식 문서에서 중국을 “최대의 전략적 도전”이라고 규정하는 등 적극적인 정치·군사적 조치를 추구해 왔다.
따라서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개입’ 발언을 그저 “국내용”이나 실언쯤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다카이치는 아베의 대외 정책 노선을 계승하고 이를 더 밀어붙이려고 하는 것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당초 예정보다 2년 앞당겨 올해 안에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퍼센트로 증액하려고 한다. 이 추세라면 일본은 금세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군사 대국에 오를 것이다.
다카이치의 도발로 중·일 갈등이 불거진 후 다카이치 내각은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추진하고 비핵 3원칙을 수정할 뜻도 보이고 있다. 미국과의 밀착과 군사대국화에 박차를 가해, 대만해협에서 중국군을 상대할 실질적인 전력을 갖추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 정부가 미국 패권 유지를 위해 동맹국들에 더 많은 책임 분담을 촉구하면서, 누구도 통제하기 어려운 경쟁이 대만해협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더 격화되고 있는 듯하다.
한국 정부의 위험한 선택
이처럼 대만해협은 미국과 중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갈등으로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미래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지역이 돼 있다. 미국은 패권 유지를 위해 양안관계의 긴장을 증대시켜 왔다. 따라서 한국 좌파는 무엇보다 한국 정부가 미국·일본 제국주의의 편을 드는 것에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중국 제국주의를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한국의 역대 정부들은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전략에 점차 협력하는 선택을 해 왔다. 가장 최근에 윤석열 정부는 미국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2023년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윤석열은 “지역적 도전, 도발, 그리고 위협에 대[해] … 서로 신속하게 협의한다”고 약속했다. 그 합의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대만해협 유사시 미국·일본과 대응책을 조율해야 한다. 그만큼 한국이 대만해협 위기에 휘말릴 공산이 커진 것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도 한미동맹 강화 요구에 사실상 협력하고 있다. 이번 한미 협상에서 “대만해협에서의 … 일방적 현상 변경에 반대”하기로 했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데도 합의했다. 미국 제국주의 지지를 사실상 약속해 준 것이다.
지난 4월 김준형 의원을 비롯해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등 국회의원 22명이 “대만 유사시 불개입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지만 여태껏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결의안이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협조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좌파들은 대만 문제에서도 국익(즉, 한국 자본주의 국가의 이익)을 내세워 미국에 협조하는 이재명 정부의 번지르르한 말에 속지 말고 그 실천을 꿰뚫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