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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평화’ 구상과 수세에 몰린 젤렌스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대표다. [ ] 안의 것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가 넣은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하는 일이 대개 그렇듯, 이번 우크라이나 “평화 구상”을 둘러싸고도 혼란이 많다.

일설에 의하면 트럼프의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가 몇몇 상원의원들에게 했다는 말처럼 그 구상은 “러시아인들의 희망 사항 목록”일 뿐인가? 또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에게 던지는 최후통첩인가? 또는 젤렌스키나 (영국 노동당 총리 키어 스타머 등) 유럽 지도자들의 간절한 바람처럼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인가?

아마도 이 모든 질문의 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어쨌든 지금 벌어지는 일은 현재의 세력 균형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트럼프는 지난 2월 백악관을 찾은 젤렌스키에게 냉혹하게 통보했다. “당신에게는 카드가 없다.”

그 이후 젤렌스키의 카드는 더 줄었다.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에서 서서히 그러나 무자비하게 전진하고 있다. 그 전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드론전에 러시아는 갈수록 통달하고 있는 듯하다.

우익 역사가 니얼 퍼거슨은 9월 〈키이우 인디펜던트〉에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경제가 붕괴 직전이라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다.”

퍼거슨은 중국이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꾸준히 지원해 왔다고 지적한다. 반면,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불안정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미국 내 분열과 유럽 지배계급의 집단적 취약성 때문이다.

더욱이 트럼프의 구상은 젤렌스키의 국내 입지가 크게 좁아졌을 때 발표됐다. 러시아 폭격 속에서도 발전소들이 가동될 수 있게 하는 사업에서 국가 관료들이 뒷돈을 챙겨 온 것이 드러나면서 젤렌스키는 수세에 몰렸다.

불과 몇 달 전 젤렌스키는 그 비리를 폭로한 부패 사정 기관 두 곳을 무력화시키려고 했었다. 지금까지 장관 2명이 물러났고 젤렌스키의 오랜 측근이자 사업가인 티무르 민디치는 압수수색 계획을 사전에 알고 해외로 달아났다. 그의 집에 있는 황금 변기를 찍은 사진들은 우크라이나인들 모두가 전쟁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번 협상이 어떻게 마무리되든 “평화 구상”의 세부는 시사적이다.

러시아를 서방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미국의 의도는 러시아를 제국주의 열강의 낡은 기구인 G7에 다시 합류시킨다는 구절에서 확인된다. 러시아는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크림반도 병합을 명령한 것을 계기로 당시 G8에서 쫓겨났다.

더 눈에 띄는 구절은 미국과 러시아가 러시아의 동결 자산을 공동으로 처분한다는 내용이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통제하는 자산에 투자된 러시아 중앙은행의 돈 2,500~3,000억 유로를 동결했다.

트럼프의 방안은 그중 870억 유로를 “미국이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재건과 투자 사업에 활용”하고 그 수익금의 절반을 미국이 갖는다는 것이다. 나머지 동결 자산은 “특정 영역에서 합동 사업을 실행할 별도의 미국-러시아 투자 기구에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첫째, 이 구절들이 보여 주는 바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상당히 점잖게 표현했듯이 “트럼프의 대외 정책에서 상업적 이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에게는 포식도 외교의 수단이다.

단적으로, 유럽연합(EU)과 일본 등은 대미 수출 관세를 낮추기 위해 트럼프가 직접 지휘하는 대미 투자 계획에 동의해야 했다.

둘째, 이번 방안으로 트럼프의 포식성 제국주의는 다시 한 번 유럽연합을 노리고 있다. 러시아 동결 자산 중 약 1800억 유로어치가 유럽에 있고 EU가 이를 감독하고 있다. 트럼프가 푸틴을 달래려 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적·군사적 지원은 주되게 유럽의 몫이 됐다. 늘 그렇듯, 유럽연합은 그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 합의를 못하고 있다. 한 가지 방안은 러시아 동결 자산을 이용한 1400억 유로의 “배상금 대출”이다. 그러나 EU 지도자들은 머뭇거리다 때를 놓친 듯하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트럼프가 한 가지 메시지만큼은 분명하게 전달했다. 젤렌스키에게 자기의 “평화 구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작은 심장이 터져라 아등바등 계속 싸워 봐라” 하고 말한 것이다. 유럽 또한 우크라이나의 전쟁 노력을 지속하기에는 너무 약하고 분열돼 있다는 것을 트럼프는 잘 안다. 유럽과 젤렌스키에게는 “카드가 없다.”

제국주의간 경쟁의 잔혹한 논리가 계속해서 우크라이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번역: 김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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