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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극우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젤렌스키가 겪은 수모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도널드 트럼프 집권 후 백악관이 권력을 과시하는 장소가 됐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소리다. 그럼에도 지난 금요일 우리가 본 것은 제국주의의 잔혹한 현실 그 자체였다.

어느 위성국이든 자신이 팽당했을 때 그에 항의하는 일은 보통 막후에서 벌어지기 마련이다. 1973년 리처드 닉슨과 헨리 키신저가 이끄는 미국이 북베트남과 평화 협정을 맺었을 때 남베트남의 허수아비 대통령 응우옌반티에우는 있는 대로 돈을 훔쳐서 망명가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팽당할 위험에 처한 젤렌스키 트럼프는 대 중국 견제를 위해 러시아와 화해하려 한다 ⓒ출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바이든과 그의 유럽 동맹들이 서방 자유세계의 영웅으로 추켜세웠던 인물이다. 트럼프와 부통령 JD 밴스가 젤렌스키를 공개적으로 면박을 준 것이 사전에 계획된 것인지 아니면 젤렌스키가 인내심을 잃으면서 촉발된 것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제국주의 국가가 보기에 위성국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여길 때 전형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유럽 각국 정부는 젤렌스키를 지원하러 줄지어 나섰다.(영국의 키어 스타머 정부도 그중 하나다.) 그들이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그들 자신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반영한다. 독일의 차기 총리인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보수 우익이자 대서양 동맹을 더할 나위 없이 지지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도 지난주 총선에서 승리한 후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 적어도 현 정부의 미국인들은 유럽의 운명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마틴 울프는 자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인데 그는 자신의 〈파이낸셜 타임스〉 컬럼에서 메르츠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미국은 이제 서방의 적이다.” 미국의 국제관계학자 스티븐 월트는 좀 더 구체적으로 썼다. “그렇다. 미국은 이제 유럽의 적이다.”

월트의 주장은 2주 전 뮌헨안보회의에서 부통령 밴스가 드러냈듯 트럼프 정부가 유럽의 극우 세력을 지지한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메르츠나 스타머 등이 긴장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그것이 아니다. 미국이 나토를 통해 서유럽 안보를 보장하던 것을 트럼프가 중단시킬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무척 낮다고 본다. 미국이 유럽을 지키는 것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사랑해서도, 유럽의 문화를 사랑해서도 아니다. 유럽은 세계 GDP의 21퍼센트를 차지한다. 어떤 미국 정부라도 경제적으로 그렇게나 중요한 지역을 러시아가 장악하도록 방치할 것이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분명 트럼프는 유럽 주둔 미군을 줄이고 유럽 동맹국들에게서 군비를 더 쥐어짜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토의 지휘 체계는 미 국방부가 유럽 대륙의 군대를 실질적으로 통제하도록 해 준다는 막강한 이점을 제공한다.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구축한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트럼프 정부가 공격하는 목적은 미국의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 이 점은 지난주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가 했던 인터뷰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21세기의 주요 화제는 미국-중국 관계가 될 것이다. … 러시아가 영구적으로 중국의 하위 파트너가 되는 상황, 즉 중국에 기대느라 중국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상황은 러시아에도, 미국에도, 유럽에도, 전 세계에도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다.”

이 말은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에 접근하는 이유가 “역(逆) 키신저” 전략 때문이라는 추측을 입증해 준다. 닉슨과 키신저는 1971~1972년, 마오쩌둥이 이끌던 중국과 협상을 시작했는데 베트남 전쟁을 끝내는 데에 도움을 받기 위함이었다. 그때 시작된 프로세스로 중국은 냉전의 후반부 동안 소련에 맞서는, 미국의 사실상의 동맹으로 변모했다.

이제 트럼프와 루비오는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내 중국을 고립시키고자 한다. 중국은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극동 러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며 러시아와 긴장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러시아의 에너지와 중국의 첨단 제조업을 바탕으로 미국에 공동으로 맞선다는 구상은 푸틴과 시진핑 모두에게 너무도 매력적이다.

우크라이나는 트럼프가 러시아와 화해하는 데에 걸림돌이다. 젤렌스키와 유럽인들은 다른 대안을 찾아 야단법석을 떨 것이다. 유럽은 군사적·경제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미국보다 더 많이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보유한 첨단 능력 없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어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젤렌스키는 굴복하거나 교체될 것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말했듯이, “강자는 자신의 권력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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