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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내란 청산과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이주노동자 무조건 환영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눈감는 것인가?

지난 11월 24일 진보당 소속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이 조선업 이주노동자 유입 확대가 고용 불안과 임금 하락을 낳는다며 유입 확대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김 구청장은 “신중하지 못한 표현을 해 죄송하다”고 밝혔고, 진보당도 당 차원의 공식 사과 성명을 냈다.

그러나 김 구청장은 조선업 이주노동자 유입 확대에 계속 반대하고 있다.

본지는 이주노동자 유입 확대 반대가 인종차별에 문을 열어 주며, 따라서 이주노동자 유입을 무조건 환영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본지의 주장에 대해 이주노동자 유입 확대를 반대하는 측은 “이주노동자를 ‘환영’한다면, 왜 그들의 고통에는 눈감는가?” 하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처할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이주노동자 유입에 반대하며, 이것이 이주노동자 자신에게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된 후에 유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지가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눈감는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다.

본지는 매우 초창기부터 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하는 이주노동자들에 헌신적으로 연대해 왔다. 일례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거듭 표적 단속을 실시해 추방시킨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지도자들(마숨, 까지만, 라주, 토르나 등) 모두 노동자연대(당시 노동자연대다함께) 회원이었다.

본지가 이주노동자를 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주노동자 확대를 막는 것이 해당 부문의 내국인 노동자들에게 득이 될 지는 몰라도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은 심각하게 해치기 때문이다. 레닌은 노동계급 일부의 이익을 위해 전체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을 바로 “기회주의”로 규정했다.

이주노동자 선택권 깔보는 오만한 태도 버려야 한다

우선, 이주노동자 유입을 무조건 환영해야 한다는 것은 이주노동자를 “단지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한국에 올지 말지는 한국 정부도, 한국 사용자도, 한국 노동자들이나 노동조합도 아닌 전적으로 이주노동자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오고자 한다면 한국인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은 토를 달지 말고 환영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주성이 있다. 이주노동자들도 한국이 천국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럼에도 자국이나 제3국의 일자리가 훨씬 더 열악하거나 아예 일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행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의 한국 유입을 막는 것은 상대적으로 나은 선택지를 없앨 뿐이다.

또, 조선업 세계 1~2위를 다투는 한국에서 당장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며 경력을 쌓고자 할 수도 있다. 좀 더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해 보고 싶을 수도 있다. 과거 파독 한국인 광원,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한국인 노동조합이나 좌파 정당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이유로 이주노동자 유입을 반대하는 것은 ‘너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는 내가 안다’는 오만한 태도다.

2023년 12월 네팔 정부가 한국 고용허가제 조선업종 한국어능력시험에 탈락한 네팔 노동자들에게 제조업 한국어시험 응시를 금지하자 네팔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네팔 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이 시위에서 두 명이 사망했다. 이런 절박한 필요를 외면하면 이주노동자들의 반감만 살 것이다.

자국이나 제3국의 일자리가 훨씬 더 열악하기 때문에 한국행을 선택하는 것이다 ⓒ출처 전남도청

이처럼, 개발도상국 처지를 벗어난 한국으로의 이주 노동을 원하는 사람은 많고 그에 비해 한국행 쿼터는 적다. 그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해 온갖 수수료를 떼고 한국어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일이 생긴다. 한국에 와서는 그로 인한 빚 때문에 열악한 조건과 장시간 노동을 감수하게 된다. 이주노동자 유입 확대 반대는 이런 문제를 악화시키는 효과를 낸다.

국경 통제야말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국가는 국경을 넘는 자유로운 이동과 체류를 가로막고, 그것을 허용하는 대가로 이주민들의 권리를 제약한다.

고용허가제도 그런 사례다. (정부가 조선업 이주노동자 유입을 확대하며 해당 이주노동자들에게 발급하는 E-7비자도 유사한 제도다.) 고용허가제하에서 이주노동자는 자신을 고용하겠다는 사용자가 있어야만 한국에 올 수 있고, 해고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용자들이 툭하면 ‘너네 나라로 돌아가’ 하고 위협할 수 있는 이유다.

고용허가제는 또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이주노동자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사용자를 찾아 이동할 수 없게 함으로써,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유입 확대를 반대하는 논리대로라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일관되게 옹호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이주노동자가 다른 업종에서 예컨대 조선업으로 사업장을 변경하려고 한다면, 조선업에서의 이주노동자 유입 확대와 동일한 효과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유입을 저임금 고착화의 원인으로 본다면, 일단 유입 확대를 막은 이후 애써 기존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나설 동기도 크게 약해진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된 후에 유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좋게 말해도 공상적이다.

일국적 단결의 한계

한 산업 부문이나 특정 지역에 상대적으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는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돼서 기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하향 압력이 생길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그와 같은 노동자들의 경쟁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체제다.

그럼에도 저임금과 고용 불안 등 노동조건 악화를 강요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아니라 사용자들이다. 이주노동자들도 내국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피해자다. 예컨대 2016년경 조선업에 불황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해고된 건 사내하청 이주노동자들이었다. 그 수가 거의 반토막 났다.

좌파는 피해자가 아니라 사용자(착취자)와 체제를 비난해야 한다. 이주노동자 유입 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유입 확대를 결정한 국민의힘 정치인이나 사용자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같은 피해자인 이주노동자를 비난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김종훈 구청장이 인종차별 발언 사과 이후 12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조선업 청년 고용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지역사회, 기업, 정부의 공동 행동을 제안한 것이 바로 그런 사례다. 어느새 이주노동자는 자국민 청년 고용에 해로운 존재, 기업과 정부는 자국민 청년 고용을 위해 힘을 모을 수 있는 존재가 돼 있다.

대표적인 좌파 정치인이 이주노동자를 문제 삼고 국내 기업과 정부와 협력하려는 행보를 취하는 것은 계급 분단선을 흐린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발전에 매우 해롭다. 또한 조선업과 같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산업의 잘 조직돼 있는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면, 이미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부문은 물론이고 전체 노동운동과 노동자들의 의식에도 해로운 영향을 끼칠 것이다.

좌파는 기층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주노동자와의 연대를 설득해 가야 한다 ⓒ〈노동자 연대〉 자료

자본주의는 세계 체제이고, 따라서 노동계급의 단결도 국제적이어야 한다. 민족적, 일국적 단결로는 자본주의가 가하는 경쟁 압력을 없앨 수 없다. 가령 한국행이 막히면 이주노동자들은 다른 나라 조선소에서 더 나쁜 조건으로 취업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용자들은 그런 기업들과의 가격 경쟁력 운운하며 내국인 노동자들에게 노동조건 하락을 압박할 것이다. 결국 이주노동자 유입 확대 반대는 ‘바닥을 향한 경주’를 막지는 못하면서 인종과 국적에 따른 반감만 초래한다.

특정 부문에서 이주노동자 유입이 그 부문에서 노동조건 하향 압력을 낳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실제 압력으로 작용할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임금과 고용 수준은 경제 상태와, 노동자들이 사용자에 맞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단결해 투쟁하느냐에 가장 크게 좌우된다.

좌파와 노동조합이 이주민 유입 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일시적이고 부문적인 이해관계를 앞세워 노동계급의 단결이라는 가장 중요한 계급적 이익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우파가 인종차별을 조장하고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이간질하는 것을 “왼쪽에서 포장해 주는” 역할을 한다.

좌파는 일부 노동자들의 후진적 의식에 영합할 것이 아니라, 기층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주노동자와의 연대를 꾸준히 설득해 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 유입을 무조건 환영하는 입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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