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이주노동자 제한은 근시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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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금속노조 조선분과와 조선업종노조연대(이하 금속노조와 조선노연)가 ‘조선소 이주노동자 E-7비자 쿼터 상향 중단 조선소 노동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명을 받아 1월 8일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정부는 근래 이주노동자 유입을 확대해 왔다. 특히 조선업 기업주들은 E-7비자 쿼터 확대를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이 부문의 이주노동자 수를 늘리려 애쓰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정부는 2023년 1월 조선업에서 기업별 E-7비자 이주노동자 도입 비율을 내국인 노동자의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2년간 한시적으로 늘렸다.
E-7비자는 특정 기술이나 기능을 가진 이주노동자를 들여오기 위한 비자다. 고용허가제(E-9비자)와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의 이직을 극도로 제약하지만, 근로계약이 유지되는 한 한국에 계속 체류할 수 있고 가족을 한국에 데려올 수 있다는 점에서 고용허가제보다 이주노동자에게 이점이 있다.
금속노조와 조선노연은 다단계 하도급과 턱없이 낮은 임금 때문에 내국인 노동자가 조선업에 유입되지 않고 있고, 정부와 사용자들이 이를 개선하는 대신에 이주노동자를 늘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를 근거로 이주노동자 유입을 확대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열악한 일자리의 책임은 정부와 사용자들에게 있다.
2016년경 조선업에 불황이 닥치자 사용자들은 임금 삭감과 해고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겼다. 2020년대 들어 조선업이 호황을 맞았고, 노동자들이 빼앗긴 것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또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고 정규직 채용을 늘리라는 요구도 옳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유입 제한은 부메랑이 될 근시안적 요구다.
물론 당장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 확대에 차질이 생기면 사용자들에게 내국인 노동자 유입을 위한 조건 개선 압력이 다소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설령 조건 개선 효과가 있더라도 일시적일 뿐이다. 이주노동자 유입을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조선업에 이주노동자 유입을 늘리기 전부터 조선소에는 이미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예컨대, 2016년 말에도 사내하청 소속 이주노동자가 상당수 있었다. 2016년 전라남도 대불공단 내 사내하청 업체들은 전체 종업원의 60~80퍼센트가 이주노동자였고, 그중 50퍼센트 이상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노조가 이주노동자 유입을 제한하자고 하면 오히려 더 열악한 처지의 이주노동자가 늘어날 수 있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조선소 취업을 묵인하는 식으로 부족한 인력 일부를 공급하려 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약 40만 명으로 전체 이주노동자의 15퍼센트에 달한다. 이처럼 함께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지가 열악해지면 내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조건 하락의 압력이 가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이미 현재 조선업 전체 인력의 약 16퍼센트가 이주노동자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의 단결을 추구하는 것은 사활적으로 중요한 과제이다. 노동자들이 분열하면 정부와 사용자들은 일시적으로 양보한 것들조차 다시 공격할 것이다. 다단계 하도급과 저임금 구조를 개선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금속노조와 조선노연의 이번 서명운동은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에 해악적이다. 이를 바라보는 이주노동자들은 커다란 소원감을 느낄 것이다.
피해자
일각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으로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며, 마치 이주노동자들을 걱정해 유입 확대에 반대하는 듯이 말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한국행이 막히면 조건이 더 열악한 나라로 가야 하거나, 자국에서 훨씬 더 열악한 일자리에 취업하거나, 아예 일자리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애초부터 미등록 신분이 되는 것을 감수하고 한국에 오려 할 수도 있다. 진정 이주노동자를 위한다면 이주노동자를 환영하며 처우 개선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고용 불안과 저임금의 책임은 정부와 사용자들에게 돌려야 한다. 2016년경 조선업에 불황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해고된 건 사내하청 이주노동자들이었다. 그 수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이주노동자들도 피해자인 것이다. 그렇다고 다단계 하도급과 저임금 구조가 완화되지 않았다.
한국의 핵심 산업의 하나인 조선업에서, 가장 잘 조직돼 있는 금속노조와 그 산하 조선업 노조들이 이주노동자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면, 이는 전체 노동운동과 노동자들의 의식에도 해로운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주노동자 제한 주장은 이주노동자 조직화에도 걸림돌
금속노조와 조선노연은 이주노동자 추가 유입은 반대하면서도, 현재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조선산업 이주노동자 유입과 노동조합의 대응’,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2024).
그러나 이런 입장으로는 기존 이주노동자의 처우 개선 문제에서도 일관될 수 없다.
유입 제한 주장은 이주노동자가 일정 수 이상으로 늘어나면 내국인 노동자에게 해롭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적절한 수일까?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단 들어오게 된 이주노동자는 환영할 수 있는가? 결국 모든 이주노동자를 잠재적 위험으로 간주하게 되기 십상이다.
또한 ‘이직의 자유’처럼 기존 이주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한 요구도 지지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이직의 자유가 생기면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조선업으로 이직하려는 이주노동자도 생길 텐데 이를 지지할 수 있을까?
한편,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 반대 입장이 조선업 노동자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것도 아니다. 실제로는 모순된 생각을 갖고 있다.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금속노조, 2023)를 보면, 조선업종 노조 간부 126명을 대상으로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에 노조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질문한 결과 “이주노동자 총 고용규모를 제한해야 한다”는 응답(17.8퍼센트)은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27.1퍼센트), “이주노동자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장”(20.4퍼센트)에 이어 세 번째였다.(복수응답)
이번 서명운동에 반대하는 조합원도 있다. 어느 현대중공업지부 대의원은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의 단결을 깨트리고 긴장을 낳는 서명”이라며, 서명용지 수령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금속노조와 조선노연의 지도자들이 이주노동자 확대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은 일부 노동자들의 후진적 의식에 타협하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그 성과는 미미했다.
2024년 금속노조의 이주노동자 조합원은 267명이었다. 그중 180명이 2022년 말 금속노조에 가입한 성서공단지역지회 소속이다. 그 전까지 금속노조의 이주노동자 조합원은 136명이었다. 성서공단지역지회를 제외하면, 이주노동자 조합원이 줄어든 셈이다.
물론 이주노동자를 조직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전체 이주노동자가 급격히 늘고 있음에도 이주노동자 조합원이 좀체 늘지 않는 것은, 금속노조가 이주노동자 신규 유입에 반대하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