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메가프로젝트:
AI 차르(전제군주) 임명하겠다는 “국민주권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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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청와대에서 메가프로젝트 2차 민관합동 점검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속도전을 넘어서 전격전을 치러야 되는 그런 상황입니다” 하고 말했다.
회의 뒤 브리핑에서 대통령비서실장 강훈식은 광주 군 공항의 시설 이전과 임시 분산 배치를 2028년 하반기까지 마쳐 그 부지를 반도체 산업단지로 조기에 쓸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광주 군 공항에는 미 7공군 시설도 있다. 지난 7월 10일 미 7공군은 광주기지에 “중요한 군사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달 뒤 한국 정부는 시기까지 못 박아 강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미국 측의 공식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이재명이 지난달 샌프란시스코까지 가서 미국 AI 기업 CEO들을 잇달아 만난 것은 미국 정부와 미군의 협조를 얻어 내려는 포석이었던 듯하다.
같은 브리핑에서 강훈식은 “연내 메가특구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각종 인허가와 환경영향평가에 걸리는 기간을 줄이고 전력과 용수, 교통은 물론 주거와 교육 여건까지 서둘러 갖추겠다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는 계획을 ‘평가’하는 절차가 아니라 ‘승인’하기 위한 형식이 됐다.
정부 문서는 이 사업에서 하는 자신의 구실이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는 총력지원체계”라고 적었다. ‘지원’이라지만, 산업통상부 장관 김정관은 “정부가 기업에 부지를 먼저 제안했다”고 밝혔다. 지원 목록도 길다.
통상 10년 넘게 걸리던 산업단지 인허가를 5년 이하로 줄인다. 지역별 전기 요금제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전용 요금제를 만든다. 2030년까지 하루 65만 톤의 용수를 대고, 2028년 말부터 1단계 송전 선로를 놓기 시작한다. 전기 요금의 2.7퍼센트를 차지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청와대에 수석급 전담 조직을 두고, 총리실에 ‘메가 프로젝트 범정부 지원 협의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8월 13일에도 ‘예외’가 추가됐다. 산업단지 안에서 공장을 증설할 때 그 건축물을 기존 건축허가와 분리해 따로 허가받게 하고, 국가산단을 도시혁신구역으로 지정해 용적률 제한을 완화하고, 반도체 실증 테스트베드를 맡을 비영리법인에는 증여세를 면제하며, 울타리 없이 일하는 이른바 ‘펜스리스’ 협동로봇의 안전 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
정부가 자기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밝힌 대목은 세금이다. 앞서 언급한 증여세 면제의 근거로 재정경제부는 “국비지원이 50퍼센트인 점, 의사결정 주체가 공공과 민간 동률로 구성돼 있는 점”을 들었다. 부하린이 국가와 자본의 융합이라고 부른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가 감세 사유서로 기술된 것이다.
지난달 8일 보도된 메가특구 특별법 검토안에는 규제 담당 공무원의 면책 조항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가특구와 관련된 규제특례 업무에 있어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징계 또는 문책 요구 등 책임을 묻지 않는 게 골자”이고, “특별법에는 부처 감사는 물론 감사원 감사 전면 면제 조항을 두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JTBC 뉴스〉)
산업별로 전권을 쥔 총괄 책임자를 두는 방안도 함께 검토된다. 미국 행정부는 인공지능이나 마약 같은 분야에 강력한 권한을 준 관료를 임명할 때 역겹게도 ‘차르’라는 말을 쓴다. 원래 이는 100여 년 전 혁명으로 타도된 러시아의 절대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중의 감시와 민주적 통제 따위는 무시하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인 셈이다. 김정관은 지난 4월 규제합리화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 “로봇 차르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업주들을 위한 총력지원체계
이틀 뒤인 8월 12일 청와대는 또 다른 보고회를 열었다. 정부는 일곱 개 기술을 골라 ‘7대 SEED(씨앗)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혁신의 씨앗이자 우리 경제·안보의 핵심 자산인 ‘첨단기술’”에 “범정부 차원의 총력 지원체계를 구축한다”고 썼다. 이번에도 “총력 지원체계”다.
“반도체 등 메가프로젝트로 창출된 자본을 재투자하는 등 7대 SEED 프로젝트를 지속·안정적으로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반도체 호황에서 나온 초과이익을 메가프로젝트에 쓰겠다더니, 메가프로젝트에서 나올 이익은 다시 7대 SEED에 쓰겠다는 것이다. 이익 ‘공유’는 노동자 등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 기업주들 사이의 분배를 뜻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일곱 개 기술을 묶은 기준이 “경제·안보”라는 점도 메가프로젝트와 흐름을 같이한다. 첫 항목인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산단, 해양, 국방, 우주 등 다양한 분야의 전력·열 공급원”으로 규정됐다. 양자기술은 “국방·안보와 직결되는 전략자산”이다. ‘선도전’ 항목에는 국방반도체가 들어 있다.
8월 10일 회의에서 정부는 2030년까지 연구용 데이터 팩토리에 휴머노이드 로봇 700대와 4족 보행 로봇 등 1,000대 이상을 사들이겠다고 보고했다. 〈머니투데이〉 보도를 보면, 이재명은 “수요조사를 바탕으로 정부의 구매 규모를 대폭 확대해 로봇 생태계를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그 구매가 어디서 시작될지는 나흘 뒤에 드러났다.
8월 14일 산업통상부와 육군, 현대자동차그룹이 국방 로봇 업무협약을 맺었다. “경계·정찰·지속지원·물류 등 국방 분야에서의 로봇 도입 확대”가 협약의 내용이고, 산업부는 “국방, 치안, 재난 대응 등 공공수요 창출을 통해 국내 로봇 양산을 촉진”하겠다고 했다. 육군참모차장은 피지컬 AI가 실제 전투력이 되려면 야전 실증과 그 결과의 제도 반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제적 이익에는 군사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그 군사력은 다시 기술 발전에 기대야 한다. 고전적 제국주의의 논리가 눈앞에서 작동하고 있다. 물론 한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되지 못했지만, 그 아류가 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일곱 개 씨앗 가운데 네 개는 민간과 공공이 함께 출자하는 특수목적법인이 사업 주체가 된다. 비경수형 SMR, 핵융합, K-퀀텀(양자) 파운드리, 유전자세포치료제다. 국가가 돈을 대고 자본과 함께 법인을 세우면, 그 법인이 낸 이익은 국가가 정한 다음 전선으로 투입된다. 여기서도 국가와 자본의 융합이 사업 계획서의 형식으로 표현됐다.
김정관은 노동시간 규제를 두고 “52시간제 이슈는 우리의 가장 큰 경쟁 상대인 중국과 비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핵심 노동조건이 국가 간 경쟁에 종속되는 것이다.
부하린이 110년 전에 관찰한 국가자본주의화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과 ‘세계화’를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자본은 국경을 넘어 움직이지만 그럴수록 자기 나라 국가의 힘에 더 기대고, 국가는 그 자본을 자산 삼아 다른 국가-자본 블록과 겨룬다. 미국이 반도체 장비와 인공지능 연산 능력을 무기로 쓰고 중국이 그에 맞서 자립을 밀어붙이는 동안, 한국의 국가와 자본은 그 틈에서 지역 강국으로의 도약을 꿈꾼다.
메가프로젝트는 한미동맹 현안과 함께 논의된다. 7대 SEED 중 세 가지는 국방을 목적으로 명시했고, 피지컬 AI를 위한 시장은 무기화에서 마련하기로 했다. 반도체에서 나온 이익이 어디로 갈지도 이미 문서에 명시돼 있다. 전격전은 비유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