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 반발 무마할 미끼 던지는 이재명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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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노동계와 여성계, 진보 정당들이 요구해 온 몇몇 의제들을 잇달아 꺼내 들었다.
이런 조처들은 이재명 정부가 위기 타개용으로 던지는 ‘미끼’들이다.
현재 이재명 정부는 지지층 이반, 여권 내분, 극우 재부상과 도전 등의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이를 타개하고자 추진한 인사 개편은 오히려 ‘참사’가 됐다.
이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우파에 타협하면서도, 진보 진영에게 도와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임신중지약 도입, 정치 개혁과 개헌 논의 개시, 사회적 대화 제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개혁의 진정성이나 실질성을 엿보기 어렵다. 오히려 우파와의 타협이 더 두드러진다. 작게나마 진전이 있었던 개혁에도 도루묵으로 만들 조치들이 뒤따른다.
임신중지약 도입은 개혁이다. 2021년 1월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는데,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문재인은 위선적이게도 임기말까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재명이 임신중지약 도입을 공식화한 것이다. 많은 여성들의 오랜 염원이었고 여성 운동의 주요 요구였다.
그런데 지지층 이반을 막으려고 한참 뒤늦게 개혁안을 내놓으면서도 우파의 반발을 의식한다. 일반인들이 이 약을 이용할 수 있는 데서 “가장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그래서 여성 대중의 필요에 비추면 턱없이 불충분한, 거의 누더기가 되고 있다.
정치 개혁?
민주당 대표 김민석은 ‘정치 개혁’ 패키지를 내놓았다. 원내 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와 결선투표제 도입 등 선거제 개편을 제시했다.
“진보 정치 세력의 맏형으로서 진보 연대를 어떻게 실현할까 제시하고 실현해야 하는 단계에 왔다. … [교섭단체 요건 완화는]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조국혁신당이 다 요구하고 있고 시민사회도 요구해 온 것[이다.]”
노동계 진보정당들은 오래 전부터 사표 논리 맞서기에 도움 될 결선 투표제 도입을 요구해 왔다.
진보당은 과거 개혁 배신 전력을 경계하면서도 민주당의 제안을 환영했다. “선거가 없는 지금이야말로 선거 제도 개혁을 완수할 최적기 … 국회 정개특위를 빠르게 가동합시다.”
그러나 ‘정치 개혁’조차 제대로 된 적이 거의 없다. 민주당 정부 시절을 통틀어 2002년 지방선거부터 정당에 따로 투표하는 1인 2표제, 위성정당 설립이라는 역효과에 압도된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 등이 그나마 제도 개혁을 시늉이라도 한 것이었다.
정당 설립 요건의 완화, 노동조합 정치 활동의 자유, 공무원(교사 포함)의 정치 활동 자유, 국가보안법 폐지 등 본질적인 정치 개혁은 단 하나도 진전이 없다. 선거운동은 갈수록 제약돼 왔다.
이번 민주당의 제안에도 이런 의제들은 거론돼 있지 않다. 그러니 정치 개혁 약속조차 믿기가 어렵다. 원내 교섭단체 15석 요건 완화는 우당인 4개 정당에 대한 관리 편의 성격이 더 크다.
동시에 이재명 정부는 민주노총에 메가프로젝트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프로젝트에는 노동시간 규제 완화, 노동권 축소 등 노동개악이 포함돼 있다. 이미 의제가 개악인 상황에서 “대화” 제안은 개악에 따른 책임을 분산시켜 아래로부터의 불만을 제어하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노동 개악을 추진하다가 지지층 이반이 더 심화되는 일을 막으려는 것이다. 결국 어떤 반대급부를 얻든 이 사회적 대화는 노조 지도자들을 협상 테이블에 묶어 두고 노동자 희생과 투쟁 자제를 관철시키는 통로가 될 것이다. (9월 18일 자 노동자연대 성명을 보시오.)
이란 전쟁 파병에 대해서도 파병의 불가피성을 설파하면서도 “전쟁 개입 파병 없다”는 표현을 써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런저런 개혁 제스처를 ‘시늉’과 ‘미끼’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지지층 이반을 가속화할 수 있는 파병을 앞두고 미끼를 던졌다고 볼 수도 있다. 실질적 개혁보다는 노동조합과 좌파 정당 지도부들을 포섭하고 묶어두는 목적으로 말이다.
동시에 이재명과 김민석은 “노무현 탄핵 전조 상황” 운운하며 정부 비판 좌파들을 움찔하게 만들려 한다.
그러므로 몇몇 개혁 제스처나 그럴싸한 말을 보며 어려운 처지의 이재명 정부가 개혁을 위해 좌파에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부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전쟁 파병으로 위기에 빠지자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미끼를 던졌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4대 개혁 입법’을 내걸었다.
노무현은 보안법의 털끝도 건드리지 않았다. 다른 ‘개혁 법안’들도 누더기가 됐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자이툰 부대 파병을 거듭 연장하고 노동법 개악(특히 비정규직 증가 방향으로)을 추진했다.
조삼모사 수지 타산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지배계급의 양보에 대해 이렇게 쓴 바 있다. “지배계급은 중요한 문제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면 부차적 문제에서는 양보할 수밖에 없다. 물론 수지 타산을 따져 수용 가능한 선에서 말이다.”(《그들의 윤리, 우리의 윤리》, 책갈피)
다른 글에서도 트로츠키는 지배계급이 여러 양보를 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양보들은 언제나 부르주아지의 대차대조표 안에서 계산됐다”고 지적했다.(‘러시아 혁명 5년과 세계혁명의 전망’)
이재명 정부의 기만과 회유에 휘둘리면 안 된다.
그런데 운동 내 주류 단체들이 모인 파병 반대 연대체는 파병 반대 운동 동원 태세를 완화시켰다. 변칙 파병 경계해야 한다면서도 이재명 기자회견 이후 벌어진 일이다.
정부를 우파로부터 방어해야 “개혁 공조”가 지속된다는 논리가 강해질수록, 이란 전쟁 파병에 일관되게 반대하기 어려워진다. 파병 문제는 미국이 벌이는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태도 문제이므로 정세의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파병을 저지하는 등 필요한 개혁을 쟁취하는 힘은 정부의 선의나 정치적 거래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 특히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투쟁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