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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이재명 정부 팔레스타인과 중동 전쟁 이주민·난민 긴 글

폭동은 맹목적이 아니라 정치적이다

평등권 운동 지도자 마틴 루서 킹은 1967년에 이렇게 말했다. “결국 폭동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의 언어다.”

오늘날 킹은 흑인들의 비폭력 평등권 운동의 품위 있는 상징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지금 프랑스 도시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탈을 앞다퉈 비난하는 자들은 폭동과 약탈에 대한 킹의 이런 견해를 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2023년 프랑스 경찰이 유색인 청년을 사살한 것에 항의하는 폭동 ⓒRed Photo Library

가자지구에서의 인종학살과 이란 초등학교 폭격을 정당화하는 자들이 폭동에 참가한 십 대들을 앞다퉈 규탄하는 것은 위선이다.

그들보다 더 진보적인 사상가들도 과거의 폭동들을 이해할 만하고 대담한 행동으로 종종 찬양하면서도 오늘날의 폭동은 비난한다.

정치인들과 언론은 한목소리로 폭동 가담자를 범죄자라고 규탄하며 그들의 이기적인 행동이 시위의 정당성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한 사람의 가치를 그가 입는 옷, 그가 소유한 휴대전화, 그가 사는 집으로 평가하라고 끊임없이 주입받는다.

그리고 청년 대다수는 자신이 그런 것들을 평생 누리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폭동과 약탈은 사회 변화의 역사에서 언제나 커다란 구실을 해 왔다.

폭동과 약탈이 논란이 되는 것은 항의 운동을 해치기 때문이 아니라 흔히 그 운동의 가장 급진적 전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키 오스터와일이 《약탈을 옹호하며》에서 펴는 주장이다.

폭동은 효과가 있다. 1981년 영국 도심 빈민 지역들의 항쟁으로 보수당 정부는 도시 지역사회 예산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무적’이라던 마거릿 대처는 1990년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서 일어난 인두세 반대 폭동으로 그 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약탈도 효과가 있다. 약탈을 통해 성공의 상징으로 추앙되며 소수만이 누리던 상품을 가난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된다. 더 흔한 경우, 약탈을 통해 돈이 없어서 못 사던 생필품을 가족들이 구할 수 있게 된다. 약탈(‘프롤레타리아 쇼핑’으로도 불린다)은 재산을 직접 몰수하는 효과적 수단이다.

델리오 바스케스가 ‘가난한 사람의 폭동 옹호론’에서 썼듯이, 약탈로 “당신은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게 된다.”
언론은 언제나 ‘범죄성’에 초점을 맞추고 폭동 가담자들의 정치적 불만을 무시한다. 그렇다고 평화롭고 ‘얌전한’ 시위자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다.

언론은 결코 시위를 객관적으로 보도하지 않는다. 1967년 미국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의 잡지 《더 무브먼트》는 언론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설명했다. “백인들이 운영하는 미국 일간지들은 사건의 객관적·비판적 관찰자가 아니다. 신문은 산업이다.”

언론은 소외된 지역사회 사람들이 겪는 빈곤을 외면한다. 그래서 그들의 분노가 폭발하면 그것은 마치 비이성적인 일처럼 여겨진다.

경찰은 폭력을 휘두르는 데 구실이 필요하지 않다. 경찰은 평화 시위를 공격하고, 인종차별의 표적이 되는 지역사회를 가혹하게 대한다.

폭동은 경찰 폭력의 원인이기보다는 그에 대한 반응일 때가 더 많다.

폭동의 책임을 ‘외부 선동가들’에게 돌리는 일이 흔하다.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북부에서 온 활동가들이 흑인들을 부추긴다고 비난하곤 했다.

오늘날에는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부터 ‘안티파’, 아나키스트, 무슬림, 혁명적 좌파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람들이 ‘외부 선동가’로 지목된다.

‘외부 선동가’라는 발상 자체가 시위자들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폭동 가담자들이 스스로의 경험으로 저항에 나설 리 없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폭동은 혼란스럽고 파괴적일 수 있다. 특히 권력과 부의 중심지로 접근하는 것이 차단돼 있을 때 더 그렇다. 많은 사람이 명품 매장 약탈은 이해하면서도, 가족이 운영하는 영세 상점을 파괴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시민 불복종에서 파업에 이르는 모든 만만찮은 저항은 일부 보통 사람들의 삶에 차질을 준다.

1960년대에 흑표범당 당원 아사타 샤쿠르는 자기 동네에 불을 지른 폭동 가담자들을 비난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그 가게들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애초에 가게들이 그들을 털어먹고 있었으니, 그들이 가게들을 불태워서 나는 기쁘다.”

폭동 가담자들은 기회를 틈타 범죄를 저지를 뿐 정치 투쟁과 무관하다는 비난도 있다. ‘착한 시위대’는 정치적 쟁점에 관심을 두지만 ‘나쁜 폭동 가담자’는 운동화와 핸드백만 노린다는 것이다.

오스터와일은 이렇게 쓴다. “이런 비판의 밑바탕에는 가난한 흑인이나 노동계급 사람들의 행동이 자의식적이지 못하다는 견해가 깔려 있다. 이들의 폭동과 약탈은 이성을 벗어난 행위, 즉 ‘진정한’ 투쟁에서 벗어난 행위라는 것이다.”

이런 비난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때 극에 달했다. 이 폭동은 흑인 남성을 구타한 경찰관들에게, 거의 다 백인인 배심원단이 무죄 평결을 내린 데 대한 항의였다.

소설가 실비아 윈터는 폭동 가담자들이 “요란한 광고에 현혹된” 사람들로 그려졌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비 욕망이 좌절되자 서로를 공격했다는 견해가 폭동 가담자들의 인간성과 정치성을 부정했다고 그는 지적한다.

폭동을 정치 운동과 대립시키는 견해는 노동계급과 흑인 지역사회에 대한 범죄 집단 낙인을 고착화한다. 2005년 미국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닥쳤을 때, 흑인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편견이 재난 대응에 영향을 미쳤다.

물이 차오르는데도 감방에 갇혀 있던 재소자들, 지붕 위에 고립돼 우유와 기저귀를 달라고 애원하던 가족들은 외면당했다. 경찰과 백인 자경단은 대피하는 사람들을 살해했고, 죽어 가는 사람들을 도우려던 이들을 체포했다.

2011년 런던 폭동 이후 에번 콜더 윌리엄스는 ‘약탈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내무장관을 향해 이렇게 썼다. “당신은 그들이 약탈을 해서 비난하는 게 아니다. 당신은 원래 오래전부터 그들을 비난해 왔다. 그들의 약탈 행위는 당신이 오랫동안 벌여 온 배제·비방전에 약간의 탄약을 더했을 뿐이다.”

윌리엄스는 폭동 참가자들의 ‘천박한 물질주의’에 대한 공격에는 “더 고약한 속셈, 즉 저항이 영향력 없고 실질적이지 않은 수준에 머물 때만 지지하겠다는 태도”가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폭동과 약탈이 권력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전제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그 핵심 전제란 사유재산은 정당하며, 경찰과 군대는 이를 지키기 위해 행동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물건이 약탈되면 그 물건은 더는 상품이 아니게 되고 교환과 이윤의 순환에서 벗어난다. 집단적 행동을 통해 해방되는 것이다. 폭동과 약탈은 개인적 행위가 아니다.

인류학자 닐 키팅은 약탈을 태평양 북서부 선주민들 사이에서 흔했던 ‘포틀래치’(축연)에 비유했다.

포틀래치는 결혼, 출생, 장례식 등의 경조사 때 열렸다. 부유한 사람들은 서로 재산을 가장 많이 나눠 주려고 경쟁했다. 남은 재산은 모두 모닥불에 태웠다. 이는 불평등이 생겨나는 것을 막았다.

캐나다 정부는 포틀래치를 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불법화했다.

이런 식민주의가 폭동과 약탈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끼쳤다.

폭동은 앞뒤 가리지 않고 분노를 쏟아 내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역사를 보면 뚜렷한 의도와 대상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18세기에 굶주림에 분노해 군집한 잉글랜드 농민들은 의식적으로 곡물 상인을 털지 않았다. 역사가 E. P. 톰슨은 그 농민들이 “농장주들에게서 곡물을 빼앗아 시장에서 민중이 정한 가격대로 팔고는, 그 돈뿐 아니라 곡물 자루까지 농장주들에게 돌려줬다”고 서술했다.

역사 속 중요한 폭동들은 정연한 정치 운동을 탄생시켰다. 바스티유 습격은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스톤월 항쟁은 동성애자 해방 운동을 일으켰다.

또한 폭동은 노동운동과 동떨어진 일이 아니다. 대중파업 운동에는 폭동의 요소가 수반돼 왔다. 많은 경우, 경찰의 파업 파괴자 보호가 폭동을 촉발했다.

1910년 11월 웨일스 남부의 토니팬디 폭동은 파업 중이던 탄광 노동자 1만 2,000명과 경찰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격렬한 충돌이었다.

폭동이 벌어지던 어느 날 저녁, 광원들과 그 가족들은 약탈을 하고 축제와 행진을 벌였다. 내무장관 윈스턴 처칠은 군대를 투입했다. 광원 새뮤얼 리스가 숨지고 수백 명이 다쳤다.

토니팬디의 행진은 지역사회 축제가 교회, 국왕, 영주에 맞선 폭동과 공격으로 번진 오랜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이언 길모어는 《소요, 봉기, 혁명》에서 이렇게 썼다. “폭력적 탄압과 국가의 테러는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것으로 정당화되고, 그에 수반된 잔혹한 조처는 국가가 제시하는 이유들로 합리화된다. 민중이 휘두르는 폭력에는 그런 관용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길모어는 18세기 잉글랜드에서 “폭력은 피지배자들보다 지배자들이 훨씬 더 많이 저질렀다”고 쓴다.

폭력과 식민주의로 얼룩진 이 과거의 유산은 지금도 남아 있다. 2014년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경찰의 마이클 브라운 살해를 계기로 폭동이 일어났을 때 한 해시태그가 트위터에 등장했다. 사람들은 #suspectedlooters(약탈 용의자들)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유럽 출신의 식민주의자들, 플랜테이션 소유주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사진을 올렸다.

폭동과 약탈은 국가의 권위와 자본주의의 논리에 도전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를 변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일터에서 벌이는 집단적 투쟁은 폭동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민주성을 갖는다.

우리는 낡은 세계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 일은 거리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을 완수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낼 힘이 우리에게 있는 곳, 바로 일터에서만 가능하다.

번역: 이원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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