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분노의 날’ 시위로 불 붙은 파리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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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80만 명이 거리로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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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 토요일, 프랑스에서 수십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파리에서 약 10만 명, 전국적으로는 80만 명이 시위에 나섰다.
파리 곳곳에 깨진 유리 조각과 바리케이드 잔해가 나뒹굴었다. 청년들이 거리에서 돌진하고 차량에 불을 지르고 상점을 털고, 경찰은 그 수를 감당하지 못했다.
청소년들의 학교 봉쇄로 시작된 이 운동은 대학생과 노동자들을 대거 끌어들이고 있다.
한 참가자가 손수 만든 팻말에는 운동의 물꼬를 튼 중·고등학생들에게 감사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10·20대여 고맙다(Merci la jeunesse).”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미래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저항을 폭력으로 짓밟으려 하는 체제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파리에서는 청년들이 압도 다수인 시위대가 쓰레기통과 버스 정류장에 불을 지르면서, 불을 끄러 온 소방관들에게는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영하기를 반복했다.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경찰은 시위대가 행진을 시작하기도 전에 최루탄과 물대포를 쐈다.
도심 한복판의 이 광장에 세워진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공화국 동상이 스프레이 낙서로 뒤덮였다.
시위대는 멸종반란(XR) 로고가 찍힌 거대한 노란 조끼를 그 동상에 입혔다. 2018년 프랑스 전역에서 폭발한 ‘노란 조끼 운동’의 상징이다.
시위대 사이에서는 이탈리아어 반파시즘 구호인 “우리 모두는 반(反)파시스트다(Siamo tutti antifascisti)”가 터져 나왔다. 시위대는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연합(RN)의 옛 이름을 가리키며 “10·20대는 국민전선(FN)에 엿을 먹인다(La jeunesse emmerde le Front National)” 하는 구호를 외쳤다.[국민연합이 과거와 다름없이 파시스트임을 나타내려고 옛 이름을 쓴 것이다―역자]
트랜스젠더 해방을 요구하는 ‘트랜스연대기구’(OST)의 깃발을 들고 행진에 합류한 사람들도 있었다.
중·고등학생인 디아나와 줄리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부 학교들은 쥐가 들끓어요. 여름에는 쪄 죽고 겨울에는 얼어 죽을 판이에요.
“우리는 경찰에도 반대해요. 경찰은 우리에게 최루탄을 쏘고 우리를 구타하고 시위하지 말라 그래요.”
두 학생은 이제 방학이 시작됐지만 운동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시위가 매일 있었지만 오늘이 가장 규모가 커요. 모두가 나왔으니까요.”
멸종반란 지지자인 시테르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10·20대가 우리가 이전에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습니다. 투쟁들을 하나로 모은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 운동을 지지했고 법률 자문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압니다.”
시위 군중 속에는 노란 조끼를 입고 나온 무리도 여럿 있었다. 상당수는 노란 조끼 운동 당시[2018~2020년 ― 역자] 너무 어려서 시위에 참가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대학생 테스 씨도 노란 조끼를 입은 시위대의 한 명이었다. 그녀는 연료 가격이 2018년보다도 더 오른 지금 노란 조끼 운동을 다시 일으키자는 호소가 소셜미디어에서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시위자인 카티아 씨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이 이걸 입고 시위하곤 하셨어요. 당시에는 주로 기름값에 항의했지만, 지금은 중·고등학생들도 이걸 입고 있고, 그런 만큼 다른 문제들까지 아우르고 있어요. 운동이 부활한 거예요.”
일부 시위대는 프랑스 국기를 들고 프랑스 국가를 불렀다. 하지만 많은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콩고, 알제리 깃발을 흔들었다. 몇몇 팻말은 1961년 10월 17일 학살을 언급했다. 파리 경찰이 알제리인 시위대를 대량 학살한 날로, 희생자 다수가 센강에서 익사했다.
알제리 깃발을 든 학생 알레시오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혁명은 사기입니다. 부르주아지가 자기들 이익을 위해 귀족에게 반기를 든 것이었죠. 우리에게는 평등을 위한 또 다른 혁명이 필요합니다.”
SNS에는 프랑스 전역의 수많은 집결지가 공지됐다. 많은 곳에서 수백 명씩 모였다.
청년 예술가인 엠마 씨는 오전 10시 시위에 합류하러 파리 북역(가르뒤노르)으로 갔다. 그녀는 문화를 위한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녀는 내년 대선에서 파시스트가 승리할 위험과 기후 붕괴를 우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지금 우리는 우파 정부 아래에 있습니다. 두 가지 전망이 있습니다. 파시즘이거나 아니면 훨씬 더 나은 무언가이거나요. 당장은 파시즘 쪽으로 이미 한발 들인 기분입니다.
“2050년이 되면 파리 기온이 섭씨 50도에 이를 것입니다. 누구도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없습니다. 이미 여름이면 나뭇잎들이 말라 죽고 물도 부족합니다. 무언가 조처를 취해야 합니다.”
정오 무렵 병원 노동자들이 일터 밖에서 시위를 벌이자 학생 수백 명이 합류했다. 예술학교 학생들이 거대한 트로이 목마를 만들어 거리를 질주했고, 지나가던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지를 표했다.
보건 노동자 이네스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력이 부족해서 환자들을 돌볼 수 없습니다. 공공병원의 여건은 해마다 악화하고 있어요.”
이네스 씨와 동료는 이전에는 시위에 나오기가 두려웠지만 오늘만큼은 중요한 날이라는 생각에 시위에 나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건 노동자 아멜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들은 예산을 수십억 유로 삭감하려 합니다. 재앙이에요. 병원들은 이미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그 때문에 노동자들이 탈진 상태에 내몰립니다.
“공공 서비스가 마비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부가 경찰 폭력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에 반대합니다.
“언론은 폭력이 문제라는 얘기만 떠들어 댑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본 시위는 평화적이었습니다. 긴장을 고조시킨 건 경찰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부서에서 노동자들이 항의 행동을 벌였고 그것이 노동조건 개선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아멜 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우리가 벌이는 시위는 언젠가 파업도 해야 한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납득시켜 줄 것입니다. 하지만 파업을 한다며 환자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우리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요.”
같은 날 파리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과 유럽 곳곳에서 시위와 반란이 일어났다. 마르세유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시위대가 시청에 진입했다. 리옹에서는 시위대가 관광안내소 지점에 불을 질렀다. 그르노블에서는 농민들이 시위에 합류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이탈리아에서는 학생 40만 명이 파시스트 총리 조르자 멜로니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학교를 점거하고 프랑스 학생들처럼 싸우자고 외쳤다.
독일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교육 재정 확충을 요구하고 징병제 부활 움직임에 반대하며 학교 봉쇄를 시작했다.
대부분 청년들로 이뤄진 이 운동이 조직 노동자들의 힘을 결합시킨다면 사회를 뒤바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이번 주 초 학생들은 티루 폐기물 소각장의 피켓 라인[대체 인력 투입 저지선―역자]을 방문했고, 파리 북부 생드니의 파업 중인 교통 노동자들을 지지 방문했다.
일부 주요 노총들은 투쟁에 합류하는 데서 굼뜨다. 파업과 파업 사이의 간격이 너무 길다. 지난 화요일(10월 13일) 파리 시위에서는 노조 조합원 수천 명이 학생들과 따로 떨어져 행진했다.
하지만 많은 일반 조합원들은 청년들과 단결해 운동을 더 심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다음 주 토요일(10월 24일) 시위대는 오를레앙에서 열리는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의 당대회에 맞서 행진할 예정이다.
11월 5일에 하루 파업 행동을 벌이자는 호소도 있다. 관건은 모든 일터에서 이 파업을 건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