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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사태:
네이버 지키려고 한국 자본주의를 편드는 길로 나아가려는가
네이버 노동자들의 고용이 보장돼야 한다

네이버-라인야후 사태가 한·일 양국 간 외교 이슈가 되고 있다.

라인야후는 네이버가 개발한 메신저 서비스 라인을 운영하는 한일 합작 플랫폼 기업이다. 일본 국민의 80퍼센트인 9600만 명이 이용자로 등록돼 있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라인야후는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카카오톡에 밀렸던 네이버는 일본에서 라인이 성공할 기미가 보이자 일본 최대 포털 기업인 야후재팬(소프트뱅크 소유)과 5 대 5 지분으로 합작했다. 현지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네이버가 원천 기술을 갖고 있고 주식 지분이 동등한데도 야후재팬 측이 경영권을 행사해 온 이유다.

그런데 지난해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나자 일본 정부는 라인야후 자체가 아니라 네이버의 지분 매각을 압박한 것이다. 이는 페이스북이 더 큰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냈을 때 거액의 벌금을 무는 것으로 끝난 것과 대조된다.

일본 정부가 원하는 건 라인야후의 빅데이터에 대한 통제력인 듯하다. 라인이 수집한 빅데이터는 일본에 있는 서버에 보관되지만, 그 관리는 한국에 있는 네이버 계열사들이 맡고 있다.

데이터 주권?

최근 세계적인 기술 경쟁이 격화되면서 경제·안보 모두에서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선진국 간 AI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를 뒷받침할 반도체 기술뿐 아니라 빅데이터 확보·관리·통제 경쟁도 중요해지고 있다. 빅데이터의 상업적 용도 때문만이 아니다. AI가 결국은 대량의 데이터를 학습해 귀납추론하는 기술이므로 AI 개발에 빅데이터가 필수 자료다.

일본 정부는 1억 명 가까운 라인 이용자의 다양한 사생활 정보가 담긴 빅데이터의 산업적·안보적 측면에서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 수억 명의 개인정보를 기업들이 수익용 자산으로 취급하는 것도 이윤을 위한 공공정보 사유화에 해당하는데, 국가들이 이를 안보용 자산 취급하며 국가 통제 아래 두려는 것도 비민주적이다.

격화되는 경제·지정학 경쟁 속에서는 계급투쟁과 반제·반자본주의가 만나야 한다 ⓒ출처 네이버 라인

장기 경제 침체와 국제 질서 불안정 속에서 미중 갈등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적 갈등 심화는 첨단기술 경쟁을 격화시키고, 이런 경제적 경쟁은 국가 간 안보 경쟁과 결합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의 한·일 정부 간 우호 관계 속에서도 이런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이 때문에, 빅데이터를 보유한 IT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을 놓고 ‘데이터 주권’이라는 안보 논리를 내세운 선진국들의 통제도 강화되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와 의회는 올해 3월 ‘틱톡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가 운영하는 SNS 서비스인 틱톡의 경영권을 내년 1월까지 미국 기업에게 넘기지 않으면 틱톡을 시장에서 퇴출한다는 법이다. 틱톡은 미국에서만 1억 7000여만 명이 이용하는데, 그 정보가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정보 유출이 안보에 해롭다며 국내에서 페이스북(메타) 등 미국 기업들의 SNS를 금지시켰다.

유럽연합은 최근 구글, 메타 등에 대한 규제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2년 전 경제안보법을 통과시켰는데, 라인 서비스는 이 법에 따른 특별 관리 대상(“특정사회기반사업자”)으로 지정돼 있다. 이 나라들에서는 미·중 갈등과는 달리 상대를 자국 시장에서 퇴출시키기보다는 IT 빅테크들에 대한 정부 통제를 늘리는 방식이 벌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라인야후의 파트너 기업인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모두 최근 AI 개발에 본격 투자를 개시했다.

이 와중에 한국 정부가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인 쿠팡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전격 개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세청은 한국 쿠팡과 쿠팡 모회사 간 거래를 집중 조사한다고 밝혔는데, 쿠팡 모회사의 최대 주주는 라인야후의 소프트뱅크다.


민족주의로는 노동계급 이익이 희생된다

라인 사태는 이처럼 한·일의 경제와 안보 모두에서 정부·기업간 협력과 치열한 경쟁이 공존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점에서 라인야후 사태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폭거”(〈한겨레〉)가 아니라 오히려 장기 침체 속 자본주의적 경쟁 심화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

네이버는 지금 일본 정부, 그리고 합작 파트너인 소프트뱅크와 지분 매각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고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네이버가 불리한 처지인 것은 맞지만, 일본 정부와 충돌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한국 정부도 조용히 네이버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네이버의 지분 매각은 라인 관련 기술 개발과 서비스 운영을 맡아 온 네이버 계열사(일부는 라인야후의 자회사)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할 수 있다.

13일 네이버 노동조합(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은 고용 보장을 위해 지분 매각을 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네이버 노조는 라인의 네이버 지분과 기술을 지켜야 고용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네이버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 요구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그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 문제를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처럼 “일본의 라인 강탈 시도”로 민족주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틀렸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독도 방문을 예고해 반일 프레임 선동에 앞장서려고 한다.

이런 규정은 계급 협력주의를 강화하는 효과를 내어 고용 보장 투쟁에 필요한 전투성과 의식을 갉아먹는다. 소프트뱅크 노동자든 네이버 노동자든 사용자들에게 맞선 고용 보장 투쟁을 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앞서 봤듯이 한국 정부는 이미 네이버를 측면 지원하고 있고, 네이버는 한국에서 역대 정부들과 적극 협조하며 포털 시장을 독점해 온 기업이다. 반일 프레임은 이런 정부·네이버와 한 편에 서자는 메시지이다.

지금은 생계 악화 저지 등 사회경제적 요구를 위해 곳곳에서 계급투쟁들이 벌어져야 하는 때다. 물가 인상이 생계비 위기를 빠르게 악화시키고 있다. 윤석열에 대해 아무리 비판적이어도 민족주의를 앞세우면 이런 과제를 흐리는 효과를 낸다.

게다가 테슬라,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AI 투자를 늘리는 한편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에서 보듯,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네이버 등 국내 IT 기업들도 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려 할 수 있다. 사업 구조조정에는 고용 조정, 즉 노동자 해고와 ‘유연화’가 뒤따른다.

그런데 진보당이 반일 민족주의에 합류한 것은 우려스런 일이다. 심지어 진보당은 일본 정부의 행동이 “적성국에 버금가는 반시장적 조처”라는 우파 기업인 안철수의 말을 인용하며 일본 정부와 윤석열 정부를 비판했다. 진보당은 이 논평에서 네이버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총선에서 네이버 노조가 소속된 화섬노조의 지지를 받았던 정의당도 현재(5월 14일) 네이버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 문제에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격화되는 경제·지정학 경쟁 속에서는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계를 지키는 일에서 계급투쟁의 정치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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