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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개혁 요구를 어떻게 볼 것인가

2008년 공황 이후 15년 넘게 경제의 침체와 부진이 거듭되면서 근래에는 기후 재난과 지정학적 충돌이 급격히 심화되고 있다. 그에 따라 정치 위기가 어쩌면 갑작스럽게 분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배계급의 소수가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고, 이준석 같은 자들도 개혁을 외치며 국민의힘으로부터 분열했다.

중간계급의 다수도 개혁과 ‘혁신’을 원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총선에서 지지했다.

노동계급이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오래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요구하는 ‘개혁’의 의미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과연 개혁 요구를 어떻게 봐야 할까?

사회민주주의가 한창이던 20세기 초쯤 몇몇 나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최소강령’파와 ‘최대강령’파로 날카롭게 분열해 있었다.

최소강령은 자본주의의 한계 안에서도 성취될 수 있는 개혁(요구)들의 묶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반면 최대강령은 자본주의를 제거해야만 성취될 수 있는 개혁(요구)들의 묶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최소강령파는 혁명은 불필요하고 개혁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분파였다. 후대의 용어로 ‘개혁주의자’(개량주의자)들이었다.

최대강령파는 개혁이 임시방편일 뿐이므로 오직 혁명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즉, 그들은 순수주의자들이었다. 노동조합 투쟁과 개혁입법이 노동계급에게 권력 장악이라는 과업을 준비시키고 교육하는 수단임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대강령파의 터무니없는 주장에도 일말의 진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개혁과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자본주의가 전복되지 않고 오히려 안정된다고 지적했다.

사실 우리나라 노동운동에서 지금까지 제출돼 온 요구들은 다 최소강령이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이끌던 초기 코민테른(국제 공산당)은 “최소강령”이라는 사회민주주의의 용어를 피하고 “부분적 요구들” 또는 “즉각적 요구들”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부분적 요구들” 또는 “즉각적 요구들”을 대부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요구들을 쟁취한다면 “노동계급과 여타 피차별 사회집단들의 조건을 지킬 수 있고, 자신감과 투쟁력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분적 요구들” 또는 “즉각적 요구들”이 성취됐을 때, 개혁으로 자본주의가 안정화된다는 문제는 어떤가?

1987년 6월 항쟁과 7~8월 대중 파업에 밀려 불가피하게 양보한 독재 체제의 이후 개혁 조처들은 당시 한국 자본주의를 구했다.

1997년 말 IMF를 불러들인 경제 공황 속에서 김대중이 집권해 I960년대 초 이래 최초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것도 당시 한국 자본주의가 소생할 기회였다.

이처럼 개혁이 노동계급에 권력 장악을 준비시키고 교육시키는 수단이면서도 자본주의 안정화 효과를 낸다면, 혁명적 좌파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는 것일까?

투쟁으로 진정한 개혁을 쟁취한 1987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출처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진정한 개혁과 유사 개혁

논의를 진전시키기에 앞서 먼저, 부분적/즉각적 요구들 가운데 (진정한) 개혁과 유사 개혁을 구분해야 한다. 개혁은 착취와 차별과 억압을 완화하는 것이다.

반면 유사 개혁은 흔히 자본주의를 더 효율적이고 더 생산적으로 만드는 개혁이다.(그러므로 유사 개혁은 흔히 자본주의 안정화 효과를 내는 개혁이다.)

예를 들어 보자. 재벌 개혁 또는 재벌체제 해체는 비현실적이라는 점이 핵심 문제이지만, 설사 이례적인 경우에 가능하다 해도(가령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맥아더와 리지웨이의 미군정 하에서 시행된 일본 재벌 해체) 자본주의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개혁일 뿐이므로 유사 개혁이다.

사회연대임금, 즉 정규직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그 돈을 비정규직 임금 인상으로 돌리게 하자는 것도 유사 개혁이다.(그런 요구를 제출하는 운동은 또한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공상적 개혁주의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금속노조의 당시 지도부는 저가(低價) 철강재 수입 규제를 정부에 요구했는데, 이는 유사 개혁 요구였다. 한일 노동자들을 서로 소원케 하거니와, 두 나라 노동자들이 자국 사용자들과 일체감을 느끼도록 유도하는 애국적 대책이다. 노동계급 국제주의에 정면 위배된다.

그리고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가 제출한 “사회 개혁” 강령에는 재벌 개혁이 포함돼 있고 이 요구가 사실 가장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민중전선(계급을 초월한 국민적 연합) 전략도 민주노총의 “사회 개혁” 강령에 포함돼 있다. 민중전선은 “시민”과의 연대라는 말로 모호하게 표현돼 있는데, “시민”은 중간계급(대표적으로 소상공인들)을 가리키는 암호명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민중전선 전략은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총 상근간부층 다수파에 기반을 둔 진보당이 민주당의 (준)위성정당에 가입하는 것으로 일부 나타났다.

물론 소상공인과 그들이 속한 중간계급은 노동계급의 적이 아니다.

하지만 중간계급과의 전략적 동맹은 노동계급의 고유한 이익을 훼손시킬 수밖에 없다.

가령 노동개악의 핵심인 최저임금 차등적용과 탄력근로 문제를 놓고 민주노총이 취한 태도는 명목상의 반대에 불과했다. 즉, 말로만 반대한다고 할 뿐, 행동은 실질적이지 못한 것이었다.

민중전선 전략은 진정한 개혁을 가져올 수 없다 ⓒ출처 용혜인 의원실

어떤 요구는 진정한 개혁인지 아니면 유사 개혁인지 구분되지 않는 것도 적지 않다. 개혁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개혁들 가운데는 (착취와 차별과 억압을 완화하는) 진정한 개혁과 (자본주의를 안정화하는 효과를 내는) 유사 개혁으로 명쾌하게 구별되지 않고 두 가지 성격이 통일된 모호한 개혁들도 적지 않다. 당장에 복지국가(사회보장제도) 자체도 그렇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싸우느냐이다. 노동계급이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을 통해 개혁(들)을 쟁취해 낸다면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화는 일시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개혁을 쟁취한 노동계급의 의식과 조직 발전(비록 불균등 발전을 나타내겠지만)이 지배자들의 지배 전략과 이윤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쟁취됐을 때 그 개혁들이 모두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효과를 낸다고 할 수도 없다.

세계적으로, 1970년대 이전과 달리 그 이후는 경제 위기가 빈발하는 시기이거니와, 특히 2008년 이후는 대침체기이다. 자본주의는 인류의 안녕과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에 장애물이 됐고, 역사적으로 끔찍하고 가망 없어서 절망만을 안겨 주는 사회 체제가 돼 버렸다.

이런 시기에는 지배자들이 공세를 강화하고 심지어 전에 양보했던 개혁들조차 회수해 가려 애쓴다.

물론 오늘날에도 대규모로 싸우기만 한다면 일부 개혁은 얻을 수도 있다. 예컨대 2016~17년 촛불 운동이 성취한 박근혜 정부 퇴진은 자본주의 사회, 특히 한국 정치에 만연한 부패에 맞선 민주주의적 개혁이었다.

그러나 부분적/즉각적 요구만 갖고 싸워서는 사회를 제대로 바꿀 가망이 없다.

개혁주의적 대중 행동에서 혁명적 대중 행동으로

사회 개혁을 지향하는 대중 행동이 사회 혁명을 지향하는 대중 행동으로 전환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 있다.

그때는 최소강령을 넘는 특수한 강령이 필요하다. 트로츠키는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이 통합되는 연속혁명에 상응해,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을 잇는 교량적 구실을 하는 강령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혁명기가 아닌 시기에도 그런 강령이 필요하고 유용하다고 지적했다.

그런 강령(요구들의 묶음)을 그는 “전환적 강령” 또는 “대중 행동 강령”이라고 불렀다.

어떤 좌파들은 이를 ‘이행기 강령’이라고 부르지만, 이 용어는 별로 적절하지 못하다. 레닌과 트로츠키에게 “이행기”는 노동자 혁명이 성공하고부터 계급이 사라질 때까지, 즉 노동자 국가 시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환적 요구들은 노동자 혁명 성공 전에 노동자들이 하는 개혁주의적 대중 행동이 혁명적 대중 행동으로 전환되는 것을 돕는 요구들을 뜻한다.

트로츠키가 “때에 따라서”라는 단서를 붙인 시기는 노동자들이 노동자 권력 장악이라는 생각을 황당하다고 일축하지 않을 만큼 엄청나게 노동자들의 정서가 고양되는 때를 말한다.

물론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다. 불가피하게 지금은 즉각적 요구들을 중심으로 (그리고 흔히 개혁주의자들과 공동으로) 활동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때 리더십이 매우 중요하다. 개혁주의자들이 개혁 투쟁을 이끄느냐 아니면 혁명가들이 개혁 투쟁을 이끄느냐 하는 점은 실제로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 위기가 구조적이고 하도 심각해 부분적 또는 즉각적 요구도 쟁취하기가 쉽지 않고, 이런 투쟁 과정에서 때때로 소수 노동자들이 혁명적 의식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런 소수가 리더십을 위해 매우 중요하고, 이런 소수를 조직하는 것을 트로츠키는 “간부의 시초 축적”이라고 불렀다.

“시초 축적된 간부”들이 혁명에 조금 못 미치는 대중 급진화 시기에 대중 행동 속에서 전환적 강령과 함께 제 몫을 할 때 그런 대중 행동이 비로소 혁명적 행동으로 전환될 수 있다. 1917년 2월 혁명 이전 시기의 볼셰비키 당이 바로 “간부의 시초 축적”을 나타냈고, 그들이 집약한 러시아 노동자·병사·농민의 요구들인 “빵, 토지, 평화”가 바로 그런 전환적 강령이었다.

지금, 복합 위기의 시기에 바로 “간부의 시초 축적”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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