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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국가보안법은 민주적 권리 전면 부정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가 홍콩 입법회를 무시하고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하자, 홍콩 시민들이 즉각 대규모 저항에 나섰다. 시진핑 정부는 이번 전인대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홍콩 기본법 부칙에 삽입하겠다고 밝혔다. 5월 28일 전인대에서 통과될 듯하다.

〈로이터〉와 홍콩 언론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등에 따르면, 5월 24일 홍콩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유를 위한 투쟁, 홍콩과 함께” 등을 외치며 홍콩 국가보안법과 국가법(國歌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앞서 홍콩 캐리 람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빌미로 8인 초과 집회·모임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최대 2만 5000홍콩달러(약 400만 원)의 벌금 및 6개월 징역형에 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위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16세의 중학생 트위니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보안법이 제정되면 경찰들이 이전에 기소된 사람들을 추적하는 등 더 미쳐 날뛸까 두렵다. 체포가 두렵지만 홍콩의 미래를 위해 거리로 나와 항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를 위한 투쟁, 홍콩과 함께” 5월 24일 코즈웨이베이에서 시위하는 홍콩인들 ⓒ출처 Jimmy Lam(United Social Press)

이날 홍콩 성완 지역에 있는 홍콩 주재 중국연락판공실(중앙 정부와 홍콩 특별자치구의 연락을 담당하는 정부 기구, 이하 중련판) 건물 앞에서도 의미 있는 저항이 있었다. 범민주파 정당 사회민주연선(社會民主連線)의 에이브리 응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려는 중국 정부를 경찰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판했다.

홍콩 경찰은 이번 시위에 8000여 명을 배치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시위대에 최루가스와 스프레이를 뿌리고 물대포를 쏘는 등 폭력적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시위참가자 200여 명을 연행했다.

전인대가 국가보안법 제정을 발표하기 전, 5월 24일 집회는 국가법 반대 시위로 계획돼 있었다.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올해 5월 1일 중국에서 시행된 국가법을 홍콩에서도 적용하려고 입법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를 둘러싸고 5월 19일 입법회에서는 친정부파와 범민주파 의원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국가법은 오는 5월 27일 입법회의 재독(二讀, second reading)을 앞두고 있다.(홍콩 입법회는 법안에 대해 초독(first reading, 首讀)과 재독 회의를 열어 반대 의견을 듣고 논의한다.)

캐리 람이 추진하는 국가법은 중국 국가(國歌) ‘의용군행진곡’을 모독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다. 중국 국가를 장례식 또는 상업 광고에 사용하거나 풍자나 조롱의 목적으로 노랫말을 바꿔 부르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최고 징역 3년 또는 5만 홍콩달러(약 79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국가법보다 더 강력한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안이 5월 22일 전인대에 상정되면서, 24일 시위는 주로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홍콩 국가보안법

중국 전인대가 추진하는 홍콩 국가보안법은 ‘국가 반란’, ‘분리 독립’, ‘테러리즘’, ‘외국 조직과의 연계’에 중형을 선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국가 안보를 위한 노력’을 감독할 특별사무소를 홍콩에 설치할 수 있게 한다. 2008년 마카오에서 통과된 국가보안법의 경우, 이 법을 위반한 사람은 최대 징역 30년을 선고받을 수 있다.

5월 24일 시위에 투입된 시위 진압 경찰 ⓒ출처 Studio Incendo

홍콩 문제를 담당하는 상무위원이자 중국 부총리인 한정은 홍콩 국가보안법이 “폭력적인 반정부 시위로 드러난 법의 허점을 메우기 위해 소수 집단의 사람들만 겨냥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의 친정부파 의원은 국가 반란이나 테러리즘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국가보안법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제정되면, 예컨대 경찰의 근접 사격 같은 폭력 행위에 시위대가 자위적인 저항을 해도 테러리즘이라는 이유로 처벌받게 된다. 중국 외교부 홍콩주재사무소 대표 셰펑은 지난해 홍콩 항쟁의 일부 행동이 국가 안보에 “임박한 위험”을 주는 “사실상의 테러”라고 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와 집회가 모두 국가 반란으로 간주돼 탄압받을 수 있다. ‘시대혁명 광복홍콩’ 같은 슬로건은 분리 독립 주장으로 간주될 것이고, 성조기를 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시위나 집회는 ‘외국 조직과의 연계’ 행위로 간주될 것이다. 전인대에서 논의되는 법안을 보면, 이런 시위에서는 단순 참가자들도 국가보안법 처벌 대상이 된다.

설사 홍콩에서 누군가가 친미적 주장을 하더라도 그것이 평화적 토론이라면 법으로 처벌돼야 할 이유는 없다. 한국에서 친북적 주장을 펼치는 것에 대해 국가보안법 등으로 처벌하는 것에 우리가 반대하고, 평화적 토론과 주장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듯이 말이다.

이처럼 홍콩 국가보안법은 홍콩 시민의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옥죄고 반대 세력을 단속하고 탄압하기 위한 법이다.

“법안을 통과시키면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중국 정부에 맞선 대중 저항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출처 Studio Incendo

시진핑 정부는 2019년 홍콩 항쟁을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반란”으로 사실상 여기고 있는데, 이런 법이 통과되면 시진핑(과 캐리 람)은 대중 저항을 진압할 매우 효과적인 무기를 얻게 되는 셈이다.

시진핑 정부는 “홍콩특별행정구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국가의 통일 또는 안전을 위협하는 반란이 발생해 홍콩특별행정구가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고 결정되는 경우”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법률을 만들 수 있다는 홍콩 기본법 제18조와, 홍콩 기본법의 해석권이 전인대 상무위원회에 있다고 명시한 제158조를 이용해 법 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 정부 자신이 1997년 홍콩을 반환받으면서 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 중국과 홍콩은 서로 다른 법률과 제도로 다스린다는 의미다)와 항인치항(香人治香, 홍콩인들이 홍콩을 통치한다는 의미)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말이다.

이에 범민주파 정당 시민당 의원 데니스 곽은 이 법을 “홍콩 반환 이래 가장 파괴적인 법률”이라고 비판했고, 홍콩 법정 변호사 윌슨 렁은 “새 법안이 홍콩 내 민주 활동가들을 합법적으로 체포하는 무기가 될 공산이 크며, 민주 활동가들이 중국 본토 보안요원들에게 체포돼 본토 법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 홍콩 항쟁은 시진핑이 2012년에 집권한 이래 맞은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였다. 이런 대중 저항 때문에 시진핑과 캐리 람은 범죄인인도조례(일명 송환법)를 통과시키지 못했다. 나중에 송환법이 홍콩 입법회를 통과할지도 미지수다.

그래서 시진핑은 우회로이자 더 확실한 방안으로서 국가보안법을 추진했다. 송환법은 중국 정부와 공산당을 비판하는 개인과 단체를 중국으로 송환할 수 있게 하는 법이지만, 국가보안법은 이런 송환 절차 없이도 정치적 반대파와 저항 세력들을 단속하고 탄압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은 송환법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내부 단속

2003년에 당시 홍콩 행정장관 통치화는 기본법(미니헌법이라고도 한다) 23조항에 국가보안법을 삽입하려다 50만 명이 참가한 대중 시위 때문에 실패했었다. 2019년에 추진된 송환법도 대중적 저항 때문에 좌절됐다.

그럼에도 시진핑이 이번 전인대에서 국가보안법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점점 더 첨예하게 전개되는 미국과의 제국주의적 경쟁에 대비해 내부적 단결을 꾀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홍콩의 대중 저항을 강력하게 탄압하는 것을 본보기로 삼아, 분리 독립 목소리를 키우는 대만의 민진당 세력에게 경고를 보내려는 의도도 있다. 부수적으로 홍콩 국가보안법은 신장위구르의 분리 독립 세력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이런 정치적 고려 때문에 시진핑은 안팎의 반발에도 아랑곳않고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할 것이다. 사실 시진핑은 홍콩 항쟁을 손볼 준비를 이미 차근차근 하고 있었다. 경찰력을 강화하고 자신의 측근을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주임, 중련판 주임 자리에 앉혔다.(‘정부가 대중의 불만을 억누르려 하나 반발도 만만찮다’ 참조)

미국을 포함한 서방 정치인들은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면 홍콩의 경제적 지위를 재고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진핑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세계은행 데이터를 보면, 홍콩 반환 당시 홍콩의 국내총생산(GDP)은 중국 전체의 18퍼센트였지만 지금은 3.7퍼센트로 하락해 그 경제적 중요성이 대폭 낮아졌다.

물론 서방의 제재는 금융 중심지로서의 홍콩의 지위를 하락시킬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일부 금융 자본의 홍콩 유입이 줄어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서방 자본의 중국 진출이나 중국 자본의 해외 진출이 줄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홍콩으로 유입되는 자본의 3분의 2는 중국에서 해외로 나가는 것이다.

반면, 홍콩이 누리던 경제적 지위가 사라지면 홍콩을 중개항으로 삼아 미국으로 향하는 중국 수출품의 관세가 최대 25퍼센트로 높아질 수는 있다. 하지만 시진핑에게는 이런 경제적 손실보다,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미국과의 제국주의적 경쟁에 필요한 내부 단속이라는 정치적 필요성이 더 큰 것이다.

5월 24일 홍콩 국가보안법과 국가법(國歌法)에 반대하는 시위 ⓒ출처 Studio Incendo

미국은 홍콩 항쟁 세력들의 우군일까?

미국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추진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미국 백악관 경제선임보좌관 케빈 해싯은 “홍콩에 대한 중국의 조처는 중국 및 홍콩 경제에 매우 매우 좋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홍콩에 대한 경제 혜택 박탈을 포함해 “중국에게 대응할 수단이 많다”고 말했다.

미국의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 등에 대한 차별적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트럼프가 중국의 인권과 신장위구르 소수민족의 자유를 운운하는 것은 역겹도록 위선적이다. 트럼프는 홍콩 문제와 신장위구르의 인권 탄압 문제를 중국과의 제국주의적 경쟁에 이용할 뿐이다. 2019년 11월 트럼프가 서명한 ‘홍콩인권민주법’은 홍콩 대중의 인권이나 민주주의 증진과 아무 관련이 없다.(‘미국의 ‘홍콩인권민주법’은 홍콩 항쟁에 해악적이다’ 참조)

5월 22일 미국 상무부는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을 이유로 9개 중국 기관과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린다고 발표했다.(〈로이터〉는 이 제재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추진을 고려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제재도 트럼프의 중국 압박이라는 더 큰 그림의 일부다.

5월 중순 트럼프는 국방부 초안을 바탕으로 작성한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는데, 여기서 그는 “중국의 경제 개혁 및 정치적 개방에 대한 기대가 실패로 끝났”고 “이제는 중국에 대해 경쟁적 접근을 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가 천명한 경쟁적 접근에는 전략 핵무기 3축 체계의 현대화에 기초한 군사력 강화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홍콩 〈빈과일보〉 대표 지미 라이가 트럼프에게 “법치와 자유의 구세주가 돼 달라”고 요청한 것은 우려스럽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을 저지하려면 홍콩의 사회주의자들과 좌파는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대중 저항을 조직하고, 중국 내 다른 지역의 민주주의 지지 세력들에게도 연대를 호소해야 한다. 시진핑 집권 이후 노동조합 결성과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제약당한 수많은 노동자(농민공 포함)와 정치적 반대파들이 홍콩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잠재적 우군들이다.

홍콩에서는 매년 6월 4일이면 1989년 톈안먼 항쟁을 기리는 집회가 열린다. 또 6월 9일이면 2019년 홍콩 항쟁이 100만 명을 넘어선 1주년이기도 하다. 7월 1일은 홍콩 반환 기념일이다.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대중 저항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시 벌어질 홍콩 항쟁에 연대할 준비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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