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주의 투쟁, 송환법 폐기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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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운동의 홍콩판이 될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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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6월부터 지금까지 지속된 투쟁 끝에, 마침내 송환법안이 입법회에서 공식 폐기됐다. 10월 23일 홍콩 자치정부는 입법회(의회)에서 법안을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입법회는 심의 없이 법안 공식 철회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중국 정부가 홍콩 대중의 투쟁에 밀려 양보한 것이다.
송환법 완전 폐기 과정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오랜 경구를 다시금 증명했다. 9월 초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이 송환법 철회 절차를 밟겠다고 했지만, 입법회가 열린 10월 중순까지 정부는 운동을 강도 높게 탄압했다. 긴급법을 발동해 복면금지법을 시행했다. 일부 친중파 정치인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 차단·제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경찰 진압 과정에서 실탄에 맞는 학생들도 속출했다.
그러나 대중의 저항은 계속됐다. 정부의 위협과 탄압에도 홍콩 대중의 분노와 투지가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분노에 15세 소녀 의문사가 기름을 부었다. 적극적인 시위 참가자였던 천옌린은 실종됐다가 바닷가에서 옷이 모두 벗겨져 숨진 채 발견됐다. 많은 사람들이 평소 수영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수영 실력이 뛰어난 15세 학생이 바다에서 익사했다는 데 의문을 품는다. 그가 살해 당했다는 의혹이 일었는데, 특히 홍콩 경찰을 의심했다.
10월 16일 오랜만에 열린 입법회에서 캐리 람이 시정연설을 하려 했다. 그러나 캐리 람은 야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로 예정된 시정연설을 마치지 못했다.
경찰 탄압과 더불어 운동 지도자들에 대한 공격도 계속 있었다. 10월 16일 민간인권전선 의장 지미 샴이 쇠망치 등으로 무장한 괴한 4~5명에게 피습돼 중상을 입었다. 그는 사회민주련선 당원이자 성소수자 활동가다. 괴한들은 쇠망치로 그를 공격하고 도주했다.
그러자 10월 20일 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피습 사건을 규탄하고 정치적 민주주의 요구들을 지지하며 거리로 나왔다. 집회 조직자들은 이날 시위에 35만 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상황 통제가 여의치 않자, 중국 정부와 홍콩 자치정부는 송환법안을 폐기해 일단 시간을 벌고자 하는 듯하다. 물론 틈을 봐서 운동 내 급진파를 고립시키고 이들을 계속 탄압하려고 할 것이다.
투쟁의 발단이 된 송환법안은 마침내 폐기됐지만, 지금의 홍콩 운동은 단지 송환법만이 아니라 오늘날 중국과 홍콩이 겪는 더 심각한 문제들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리고 법안 폐기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노동자들이 박근혜 퇴진 운동을 처음에 주도해 승리한 경험 덕분에, 이후에 노동운동이 의식과 조직 면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은 바 있다.
이와 같은 일이 홍콩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적으로 그리 된다는 보장은 없다. 혁명가들의 구실이 중요한 까닭이다.
이제 홍콩 대중 다수는 송환법 폐기 이상의 변화를 원하고 있다. 이미 6월부터 보통선거 실시 등 여러 정치적 민주주의 요구들이 제출돼 있다. 홍콩 대중의 사회·경제적 불만 또한 매우 크다.
송환법안 폐기 이후에도 홍콩 운동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지만, 운동의 지향을 놓고 장차 분화가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홍콩 운동이 더 심화·확대되려면 혁명가들은 노동자들이 일터와 거리에서 행동에 나서도록 고무해야 한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요구와 경제적 요구가 결합되면 좋을 것이다. 앞으로 노동계급의 집단적 행동이 운동의 더한층 급진화와 심화에 관건이 될 수 있다.
‘사회주의’ 중국의 서구식 탄압?
10월 17일 중국 관영 언론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중국 사회에는 홍콩의 소요가 본토로 확산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강력한 유전자가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홍콩 사태의 폭력적 발전은 서구식 민주제도 아래에서라야 쉽게 출현할 수 있는 산물이다.” 홍콩의 투쟁이 ‘사회주의’ 중국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식 정치 제도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즉, 중국이 서구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사회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홍콩 운동이 본토로 확산되지 않을 만큼 시스템에 자신이 있다면, 중국 정부는 왜 운동 초기부터 홍콩 소식이 본토 내 인터넷에 올라오지 못하게 차단했을까?
중국이 사회주의 사회라면, 서구식 민주주의 사회보다 노동계급의 민주적 권리가 비할 바 없이 발전돼 있어야 한다. 노동계급은 노동자 국가를 세워 그 국가를 민주적으로 통제해야만,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마르크스)가 돼야만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홍콩 운동 분출의 근저에 깔린 홍콩 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들(빈부격차,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부패, 정치적 민주주의의 결여 또는 부재 등등)은 모두 중국의 나머지 지역에서도 공통적으로 겪는 일들이다.
중국은 홍콩에서의 노동자 권리 신장, 정치·시민적 권리 향상에 조금치도 관심이 없었다. ‘사회주의’ 중국에 주권이 넘어간 지 20년이 지난 홍콩에서 2011년에야 최저임금제가 겨우 도입됐을 정도니 말이다.
중국 지배자들이야말로 홍콩의 자유시장경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들을 적극 이용해 이익을 누렸다. 중국에 투자되는 해외직접투자 자금 70퍼센트가 홍콩을 거쳐 들어간다. 반대로 중국의 해외투자 60퍼센트도 홍콩을 거쳐 중국 밖으로 간다. 많은 중국 본토 기업들이 홍콩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다.
그래서 직선제 도입 같은 요구들은 중국 대중 다수가 자기 지역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일 테다.
홍콩 운동이 중국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자, 정부가 긴급법을 동원해 운동을 탄압하는 현실도 시사적이다. 긴급법은 영국 식민 당국이 노동운동을 탄압하려고 1922년에 만든 법이었다. ‘사회주의’ 중국이 영국 식민 당국이 넘겨 준 경찰력과 제도를 이용해 민주주의 운동을 탄압하는 꼴이다.
이런 점들은 중국 사회의 진정한 성격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서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임을 보여 준다. 한국의 진보·좌파가 홍콩 노동자와 청년들의 운동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의 홍콩민주인권법안은 순전한 위선이다
10월 15일에도 홍콩 대중이 대규모로 모인 바 있다. 현지 언론들은 13만 명이 모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집회는 미국 의회에 홍콩민주인권법안의 통과를 요청하는 시위였다. 2014년 우산운동의 스타인 조슈아 웡은 연단에 올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중국을 압박하는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 사회주의자 람치렁은 민간인권전선이 아니라 ‘홍콩 본토주의자’들이 이날 시위를 주도했다고 본지에 알려 줬다.(홍콩 본토주의는 홍콩을 중국과 구분하며 중국의 통제에 대한 반대에서 더 나아가 홍콩의 분리 독립까지 주장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15일 집회 조직자들은 애초 2000명가량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했다(홍콩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보도). 그러나 긴급법 발동, 15세 소녀 의문사 사건 등에 관한 대중의 공분이 일면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따라서 이날 시위 참가자들이 시위 주도자들의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모두 동의해서 나왔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은 중국과의 제국주의 경쟁에서 홍콩 운동을 유리하게 이용하려 할 뿐이다. 미국은 홍콩 운동의 친구가 결코 아니다.
홍콩 본토주의가 지향하는 바는 홍콩 노동자를 중국 노동자들과 정서적으로 단절케 만들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운동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아니다. 홍콩 운동에는 중국 노동계급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목소리도 있다.
과거부터 미국 지배자들은 적성국에서 벌어진 반정부 운동을 친미적 방향으로 이끌려고 개입해 왔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앞장서서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적성국에서의 저항이 발전하면, 미국은 절대 그 운동을 지지하지 않았다. 1980~1981년 폴란드 연대노조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1989년 중국 톈안먼 항쟁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가 탱크로 항쟁을 짓밟는 것을 미국은 내심 지지했다.
홍콩 운동도 계급적 운동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분명히 있다. 진지한 좌파들은 중국 정부만이 아니라 서구 정치인들의 위선을 폭로하며 홍콩 운동을 분명히 지지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대의를 옹호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