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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의 배경과 의의

바리케이드가 등장한 홍콩 거리 시위와 점거가 오래 지속되면서 운동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들의 행동이 관건이 될 것 같다 ⓒ출처 Studio Incendo(플리커)

홍콩에서 송환법(개정안)에 반대하는 운동이 3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이 운동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해, 홍콩 인구의 30퍼센트가량이 참가한 거대한 대중 운동이 됐다.

이 운동은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이 송환법안을 입법회(의회)에 제출한 데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이 법안은 거의 필시 중국 정부의 지시로 추진됐을 것이다.

6월 9일 송환법에 반대해 100만 명 이상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6월 12일 시위대 4만여 명이 입법회 건물과 정부 청사를 에워싸 법안 심의를 저지했다.

시위의 기세가 날로 커지자, 6월 15일 캐리 람은 송환법 개정 추진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홍콩 시민의 분노와 100만 명이 참가한 대중 투쟁 때문에 잠시 물러선 것이었다.

그러나 법안 처리가 일시 중단된 것뿐이었다. 홍콩 당국은 입법회에 제출된 법안을 공식 철회하지 않았다. 시간을 끌다가 정부가 송환법을 재추진할 게 분명했다.

6월 16일 인구 700만의 홍콩에서 무려 2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법 개정의 일시 중단이 아니라 완전한 폐기, 행정장관 캐리 람 사퇴를 요구했다. 이후에도 시위와 점거가 계속 벌어졌다. 7월 1일 시위대가 입법회를 일시 점거하기도 했다.

특히, 8월 5일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여 홍콩을 마비시켰다. 홍콩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 람치렁은 총 35만 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했다고 전했다(맑시즘2019 영상 발표). 이날 많은 항공관제사와 항공사 승무원들이 파업에 동참해, 200여 편의 항공 운항이 취소됐다. 주요 지하철과 철도 노선도 멈췄다.

시위대의 요구는 점차 확대돼, 8월 현재 몇 가지의 주요 요구로 발전했다. 경찰 폭력과 만행에 대한 조사, 송환법 완전 철회, 모든 연행자의 무조건 석방,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것의 철회, 진정한 보통선거 실시 등.

그러나 8월 말 현재까지 중국 정부와 홍콩 당국 모두 이 요구 중에 단 한 가지도 수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 탄압의 강도를 더욱더 높였다. 갈수록 폭력의 강도가 세졌다. 심지어 (경찰과 공모한 게 거의 분명한) 깡패들이 시위대와 시민들을 무차별로 공격했다. 중국 정부와 그 관영 언론들은 홍콩 시위를 “테러리즘”이라고 비난하며, 중국이 시위 진압에 직접 나설 수 있다고 위협해 왔다.

그러다가 8월 11일 시위에 참가한 한 젊은 여성이 경찰이 쏜 빈백건(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이 발사되는 총)에 맞아 한쪽 눈이 실명할 위기에 처했다. 시위대가 8월 12~13일에 공항 점거를 확대하면서 국제공항이 마비됐었다.

거리에서 시위를 주도한 것은 압도적으로 청년들이다. 그들은 경찰과 깡패들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거리 시위와 점거의 핵심을 이룬다. 홍콩 사회주의자 아우룽위는 언제든 거리로 나와 경찰과 싸울 태세가 된 (고등학생과 대학생 나이대의) 청년이 대략 5000~1만 명에 이른다고 했다.

시민단체, 노동조합, 범민주파 정당들이 중심이 된 공동전선인 민간인권전선이 합법 시위와 행진을 주최하면, 기층에서는 청년들이 단호하게 투쟁해 나갔다. 그러면서 대중 투쟁이 빠른 속도로 치솟을 수 있었다.

8월 18일에도 홍콩에 다시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벌어졌다. 민간인권전선은 이날 시민 170만 명이 참가했다고 발표했다. 이 170만 시위는 홍콩 경찰의 폭력과 중국 정부의 위협에도 홍콩 시민들이 송환법 반대 운동을 굳건히 지지하고 운동이 지속될 것임을 보여 줬다. 8월 23일에는 시민들이 모여 45킬로미터에 이르는 인간 띠를 만들었다.

왜 송환법에 반대하는가?

그렇다면 송환법이 왜 문제가 되는가? 홍콩 시민들이 송환법을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명백히 홍콩 진보 세력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람치렁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 정부를 비판한 사람, 톈안먼 항쟁 기념 행사에 참가한 사람, 중국 민주화를 지지한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나 [송환법 하에서] 중국 본토로 송환돼 재판받을 수 있다.”

홍콩에서는 많은 시민단체, 노동조합, 그 밖의 사회 단체들이 본토 노동 운동이나 사회 운동과 직간접으로 연계를 맺고 있다. 이 사람들이 우선적인 송환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송환법 반대 투쟁의 활동가들도 그 타깃이 될지 모른다.

중국 정부와 홍콩 자치정부는 정치범이 새 송환법 대상이 되지 않으며, 중한 범죄를 저지른 형사범만이 송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얼마든지 정치적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를 대서 사람들을 송환할 여지가 있다.

홍콩 시민들이 송환법을 우려하는 데는 경험적 근거가 있다. 2015년 홍콩에서 서점상 5명이 잇달아 실종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들 모두 시진핑을 비판하는 서적을 출판한 사람들이었다. 수개월 후에야 비로소 이 사람들이 본토에서 중국 당국한테 조사를 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5명 중에 최소 1명은 홍콩에서 납치돼 중국으로 끌려 갔음이 확인됐다.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 하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합법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운동의 배경

홍콩은 매우 발달한 도시다. 세계적 금융 허브이자 인구 대다수가 노동계급이다. 1842년 아편전쟁 이래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러다가 1997년 주권이 중국에 반환됐다. 그러면서 중국은 “일국양제”를 약속했다. 즉, 중국은 영국에게 홍콩을 돌려받되 향후 50년 동안 홍콩의 광범한 자치를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중국 지배자들은 홍콩 재벌들과 손잡았고, 그들이 원하는 홍콩의 시장 친화적 ‘개혁’을 후원했다. 그 결과 안 그래도 불평등이 심한 홍콩에서 경제적 양극화가 지난 20년 동안 더 극심해졌다.

홍콩 당국은 저세율 정책을 유지하는 대신 토지 매매나 토지세 징수, 해외 자본 유치로 수익을 내서 재정을 마련한다. 그만큼 홍콩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했지만, 이것은 결국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만 유지될 수 있다.

2008~2009년 유엔 보고서를 보면, 2000년대에 홍콩은 선진 경제 지역들 중 소득 격차가 가장 큰 곳이었다. 최근 통계를 보면 137만 명이 빈곤선 아래에 산다. 홍콩 사람 5명 중 1명꼴이다. 이들 중 1인 가구의 사람들은 월 4000홍콩달러(한화 약 60만 원)으로 연명한다.

반면에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 산하 연구기관은 2010~2011년 홍콩 인구의 상위 1.2퍼센트가 홍콩 전체 부의 53퍼센트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들 대부분은 부동산 부자나 금융 재벌들이다. 즉, 오늘날 홍콩은 화려한 마천루와 심각한 빈곤·소외가 공존하는 사회다. 그러나 홍콩 당국은 경제적 양극화를 완화하는 조처를 한사코 반대해 왔다.

자치를 약속받은 홍콩에는 자치 정부와 더불어 의회(입법회)도 있다. 그러나 입법회 의원 절반이 시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고 직능대표제로 뽑힌다. 각 부문의 상층 중간계급이나 법인 대표들이 뽑은 의원들이 입법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입법회 의원 다수가 보통선거권 도입에 반대하며 노동자 권리 보장 입법도 대부분 좌절시켜 왔다. 반면에 공공서비스 민영화는 정열적으로 추진해 왔다.

홍콩 자치 정부를 대표하는 행정장관은 선거인단제로 선출되고, 이를 중국 정부가 추인하는 방식으로 임명된다. 당연히 친중국, 친자본가적 인사만이 홍콩 행정장관이 될 수 있다.

홍콩에서는 주택난과 부동산 개발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다. 거대 부동산 재벌들이 부동산 시장을 독점해 왔고,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를 올렸다. 홍콩 당국의 친시장적 정책도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래서 지난 10년간 소득은 제자리걸음인 반면 주택 가격은 242퍼센트 올랐다. 젊은 커플은 작은 아파트 하나 장만할 수 없다. 대략 22만 명이 이른바 ‘당방’(劏房: 한 아파트를 몇 개의 원룸으로 쪼개 만든 방)이라는, 사생활이 거의 없는 매우 협소한 공간에서 산다. 본토 자본의 유입으로 홍콩에서 부동산 투기가 미친 듯이 일어나는 것도 주택 가격 앙등을 부채질했다.

이런 사회·경제적 불만을 배경으로 분출한 투쟁이 바로 2014년 우산운동이다. 물론 투쟁이 촉발된 계기는 행정장관 직선제라는 민주주의 쟁점이었다. 홍콩 시민 다수는 행정장관을 자신들의 손으로 뽑는 게 홍콩의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긍정적일 것이라고 여겼다.

우산운동은 수십만 명이 참가한 대중 운동이었고, 홍콩 정치·경제의 중심지를 무려 70일 넘게 점거한 광장 점거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 투쟁은 홍콩 당국의 물리적 탄압에 직면해 패배했다.

그 후 중국 정부는 홍콩 진보 운동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감시를 강화했다. 행정장관 캐리 람이 송환법 카드를 꺼낸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중국 사회의 성격

일각에서는 중국을 모종의 사회주의나 노동자 국가로 보고, 이에 저항하는 홍콩 시위를 비난한다.

그러나 송환법과 그에 항의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를 들여다보면 중국의 적나라한 현실이 드러난다. 중국 정부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우리가 홍콩에서 보다시피 정작 노동 대중이 자기 대표를 자기 손으로 선출할 권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민주주의조차 없는 중국을 두고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 이렇게 썼다.

“개인의 삶에서 한 인간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그가 어떤 인간이며, 행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구분되듯이, 역사상의 여러 투쟁에서 각 세력이 내건 구호·이상은 그들의 실제 조직·이해관계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즉 그들이 자신에 대해 갖는 관념들과 그들의 실재를 구분해야 한다.”

따라서 언사와 실제 현실을 구분해야 한다. 중국이 스스로 사회주의를 표방했다는 점은 그 사회의 성격을 판단하는 데 핵심 근거가 될 수 없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자신의 정당을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전혀 “민주”적이거나 “정의”롭지 않았다.

중국이 사회주의 사회이거나 (비록 관료적으로 퇴보했어도) 노동자 국가라면 노동계급이 해방됐거나 해방되는 과정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1949년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이끈 공산당이 제국주의 세력과 국민당을 몰아내고 집권했다. 이것은 위대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혁명이었지만 노동자 혁명은 아니었다. 노동계급이 아니라 지식인들이 농민 군대를 이끌고 도시를 점령해 권력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아무런 구실을 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계급이 노동계급을 대신 해방시켜 줄 수 없다고 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도 사회주의는 “훌륭한 사람들이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만약 노동계급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의해 노동계급 해방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사회주의는 사회 생활의 모든 측면을 노동계급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대리주의*로 격하될 것이다. 스탈린이든, 마오쩌둥이든, 누구든 탱크를 몰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권력을 잡으면 그게 사회주의라니 말이다.

흔히들 홍콩 송환법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친중 대 반중”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홍콩에서 중국 정부의 든든한 동맹 구실을 하는 자들은 바로 자본가 계급이다. 지금 송환법 국면에서 홍콩 자본가들은 한동안 사태를 관망하다가, 중국과 홍콩 당국을 지지하는 쪽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반면 홍콩 노동자들은 송환법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왔다.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경제에서 여전히 국유화된 부문이 많은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방임적인 경제를 지향하는 홍콩 자본주의와 아무런 모순 없이 지난 20년 넘게 공존해 왔다.(오늘날 중국 본토에서도 사기업이 국유화 부문과 큰 적대 없이 공존한다.) 중국 지배 관료들은 개방된 홍콩 경제를 중국 경제의 해외 투자 유치 등에 이용했다. 이 점은 중국 사회의 진정한 성격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결국 중국 국가 관료와 홍콩 자본가들 모두는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데서는 동일한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중국 권력자들이 홍콩 당국과 함께 송환법 반대 투쟁에 매우 강경하게 대처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홍콩 시위가 단지 홍콩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자칫 중국 내 여러 사회집단이 홍콩 시위를 본받아 저항에 나서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은 온갖 사회 문제와 모순에 봉착해 있다. 그래서 중국 지배자들은 홍콩 시위가 소수민족, 농민 등 천대받는 집단들의 불만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중국 노동계급이라는 잠자는 거인의 저항 잠재력을 가장 염려한다. 홍콩 인근의 광둥성 일대는 지난 수십 년간 산업이 역동적으로 성장해 왔고, 중국 각지에서 온 새 세대 노동계급이 거대하게 형성돼 있다.

중국에서 무역전쟁과 경제성장 둔화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악화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쟁의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광둥성도 예외가 아니다. 예컨대, 노동자들이 국가로부터 독립한 노동조합을 설립하려 한 민영기업 자스커지의 공장도 광둥성 선전시에 있다.

홍콩은 바로 이런 산업 지역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 홍콩의 금융 부문과 세계적인 항구는 상품 수출입과 금융의 허브 구실을 해 왔다. 그리고 최근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대만구 계획(Development Plan for Guandong-Hong Kong-Macao Greater Bay Area)으로 그 관계가 더 깊어지고 있다. 대만구 계획은 광둥성, 마카오, 홍콩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발전시키려는 국가 전략이다. 이 통합 발전 계획은 중국의 인프라 개발과 지역 연계 강화를 위한 사업이자, 첨단 제조업과 서비스 분야에서 생산 사슬을 강화하려는 구상이다.

중국 지배자들은 지금 홍콩의 정치적 불안정과 이웃한 광둥성 일대 노동계급의 불만과 동요를 모두 다뤄야 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와 관영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홍콩 시위를 서방 앞잡이가 조종하는 색깔 혁명으로 비방하는 한 가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홍콩 시위와 중국 노동자들을 이간질해 저항이 확산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홍콩 시위가 중국 노동자들이 상하이나 베이징에서 모방할 만한 시도로 보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홍콩 당국은 8월 31일 집회를 불허하고 활동가들을 체포하는 등 강경한 태도이지만, 운동도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출처 Studio Incendo(플리커)

운동을 둘러싼 쟁점들

앞서 언급했듯이, 중국은 홍콩 송환법 반대 투쟁을 미국이나 대만 등 외부세력의 조종을 받는 운동이라고 비난한다. 그리고 중국을 자본주의보다 진보적인 사회라고 믿는 일부 좌파도 이에 동조한다.

이처럼 서방 권력자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는 것이 중국 내에서는 중국 정부의 선전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다.

물론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서방 지배자들은 홍콩 시위를 이용해 중국을 비난한다. 영국 정부는 홍콩 상황을 독립적으로 조사하겠다고도 했다. 갈수록 첨예해지는 제국주의 경쟁 속에서, 서방의 간섭은 홍콩 대중 운동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시키려 애쓰는 시도다.

그러나 서방 지배자들의 홍콩 시위 지지는 위선일 뿐이다. 7월에 《포린 폴리시》는 홍콩 경찰의 폭력적 행태가 영국 식민지 시절의 유산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식민 당국이 물려 준 폭동 진압 전술이 오늘날 홍콩에서도 계속 활용되는 것이다. 영국 등이 중국을 비난할 처지가 못 된다.

그러나 중국 정부와 일부 좌파의 “색깔 혁명” 주장은 홍콩 송환법 투쟁에 대한 터무니없는 비방이다.

이 운동은 홍콩 인구 다수가 참가한 압도 다수 대중의 운동이다. 이 운동에서 대중이 보여 주는 자발성은 이 운동이 일부 서구 앞잡이에 의해 조종되는 색깔 혁명이 아님을 보여 주는 증거다.

물론 홍콩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구식 민주주의에 환상을 갖고 미국, 영국 같은 서구 국가들이 송환법 반대 투쟁을 지지해 중국에 압력을 가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점이 송환법 반대 투쟁에 대한 일부 좌파들의 종파적 태도를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홍콩 현지 사회주의자들의 보도를 보면, 많은 청년들이 본토 대중에게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요구가 왜 정당한지 본토 대중에게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람치렁은 이에 관한 흥미로운 장면을 소개했다. 7월 7일 가우룽에서 일부 극우 활동가들이 본토 사람들을 적대하는 방향으로 시위를 이끌려 했다. 그러나 시위 참가자들은 이에 동조하지 않았고 간체(홍콩은 본토와 달리 번체를 쓴다)로 쓰인 유인물을 본토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나눠 줬다. 심지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기도 했다.

중국 관영 언론과 서구 언론들은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홍콩 시위에 등장하는 성조기와 영국 국기를 부각시킨다. 실제로 성조기와 영국 국기를 들고 시위에 참가하는 극우 성향의 개인과 단체가 있다. 그러나 현지 사회주의자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이런 세력이 2014년 우산운동에 견줘서도 지금 영향력이 많이 줄었다고 지적한다. 아우룽위는 이렇게 설명했다. “서구 언론이 이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들의 조직들은 작아서 20~30명을 넘지 않는다. 기껏해야 100명 규모다.”

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약점만을 주목하며 일부 좌파가 이 운동을 폄하하고 지지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전형적인 종파주의적, 엘리트주의적 태도다.

한국의 박근혜 퇴진 운동도 서구식 민주주의의 한계 내에 있었고 반부패 운동 수준을 넘지 못했다. 심지어 박근혜 탄핵이 결정됐을 때 많은 서방 다국적기업들이 안도하며 그 결정을 지지했다. 그렇다 해도 한국 진보·좌파 다수는 어리석게 굴지 않았으며, 그 운동을 지지하고 그 속에 있었다.

좌파가 송환법 반대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 운동의 발전을 촉진할 기회를, 서방 같은 엉뚱한 세력이 송환법 반대 운동을 가로채는 것을 막을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람치렁은 이렇게 지적했다. “[송환법 반대] 운동에 참여한 노동자와 [그 밖의] 민중은 운동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치와 주장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자본가 계급에 맞서는 정치를 발전시키고 이 사회와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과 가능성을 만나게 된다.”

100여 년전에 레닌이 지적했듯이 사회주의자들의 입맛에 100퍼센트 맞는 주장만 하는 대중 운동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사회혁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순수한’ 사회주의 혁명을 기대하는 사람은 생전에 결코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마무리

이 글을 쓰는 8월 30일 현재 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을 둘러싼 긴장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홍콩 당국은 8월 31일 집회와 행진 모두를 불허했다. 그리고 30일 우산운동의 스타이자 여전히 이 운동에 영향력이 있는 청년 정치인 조슈아 웡 등을 체포했다. 1922년 영국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홍콩판 계엄령을 실시하는 카드도 홍콩 당국은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나 운동도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홍콩 학생들은 동맹 휴업을 준비하고 있고, 당국의 단속과 탄압에도 시위는 한동안 더 지속될 것이다.

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의 배경, 중국 사회의 성격 등을 감안한다면, 이 운동이 나아갈 길이 보인다.

전쟁에서 군대가 승리하려면 적과 아군을 잘 구분해야 한다. 계급투쟁에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와 보리스 존슨 같은 서방 지배자들은 홍콩 노동자와 청년의 친구가 아니다. 이데올로기적 신비화를 걷어 내면,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100여 년 전 영국과 독일의 대립과 그 성격이 똑같다. 즉, 제국주의 열강 간 다툼일 뿐이다. 따라서 서방 제국주의와 손잡고 홍콩을 중국에서 분리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홍콩 내 극우 세력도 마찬가지로 홍콩 노동자·청년의 친구일 수 없다.

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은 서방 지배자들이 아니라 잠자는 거인인 본토 노동계급을 향해 한 발 더 다가가야 한다. 이게 중국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앞으로 홍콩에서도 노동자들의 행동이 관건이 될 것 같다. 시위와 점거가 오래 지속되면서 운동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8월 17일 교사들의 행진에 2만 명이 참가했다. 그리고 9월 초에 다시 한 번 총파업을 할 듯하다. 공무원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파업 논의가 있다. 이런 행동이 계속 확대·심화돼야 한다.

역사적으로 홍콩의 저항은 중국 전역의 대중 반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돼 왔다. 홍콩은 메마른 광야(중국)에 던져지는 불꽃이었다. 만약 이번에도 그게 현실이 된다면 광야로 번진 불꽃이 압록강 건너 북한으로, 그리고 서해 건너 남한으로 오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는 이런 국제주의적 전망 속에서 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을 바라봐야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도 임무가 있다. 홍콩과 중국 바깥의 좌파는 홍콩 시위를 지지하고, 서방 지배자들의 위선을 들춰내며, 진정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대의를 일관되게 옹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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