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항쟁:
이 운동을 예단하지 말고
지지·연대해서 전진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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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홍콩에서 수많은 인파가 거리로 나와 집회와 행진을 했다. 주최 측은 참가자가 8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구의회 선거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항쟁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항쟁을 촉발한 것은 송환법 개정안이었지만 항쟁의 요구는 더 확대됐다. 캐리 람 행정부가 결국 송환법을 폐기한 후에도 홍콩 대중은 나머지 요구(시위대가 “폭도”라는 규정 철회, 체포 시위자 사면, 독립적인 경찰 폭력 조사 기구, 진정한 보통선거)를 관철시키기 위해 계속 싸우고 있다.
시위대는 “5대 요구, 하나도 빼먹지 마라”, “경찰 즉각 해체” 등의 구호를 외쳤다.
물론 캐리 람 홍콩 정부와 시진핑 중앙정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이날 시위 후에도 캐리 람은 항쟁의 요구가 “법치에 어긋난다,” “행정장관 권한 밖의 일이다” 하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홍콩 대중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12월 8일 시위 다음 날 홍콩 전역에서 파업을 일으키자는 호소도 있었다. 이 시도는 결국 불발로 끝났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더 만만찮게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동조합을 결성해 일터에 기반한 행동과 조직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홍콩에서 본토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단체인 ‘중국노동회보’는 12월 8일 홍콩 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해 파업을 벌이자고 호소하는 포스터와 현수막이 늘어났다고 전했다. 홍콩노총(HKCTU) 지도자인 멍슈탓은 최근 30여 곳이 넘는 신생 노동조합이 홍콩노총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홍콩 프리 프레스〉에 말했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은 각종 부문별 노동조합으로 결집할 것을 호소하는 유인물을 반포했다. 아직 노동조합이 없지만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온라인 그룹 채팅방도 부문별로 우후죽순 생겼다. 이런 그룹들은 각각 등록자가 수천 명에 이른다.
홍콩 항쟁이 전진하려면 이런 움직임이 더욱 발전해야 한다. 파업은 노동계급 고유의 효과적인 무기다. 그 과정에서 홍콩 운동은 사회·경제적 요구로 요구를 확대할 수 있다.
한국의 진보·좌파들도 홍콩 항쟁에 지지와 연대를 나타내며 항쟁이 전진하고 발전하기를 바라야 한다.
홍콩 항쟁을 지지하는 한국의 좌파 단체나 노동조합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운동에 이러저러한 약점이 있다면서 지지를 꺼리는 쪽도 여전히 많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본질적으로 수동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다. 모든 진정한 대중 운동에는 늘 이질적인 요소들이 모순되게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이질성을 보며 지지를 유보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좌파와 노동운동이 성장하고 운동에 영향을 끼치도록 고무해야 한다. 이는 운동 자체를 지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혁명적) 좌파가 대중 운동에 개입해 운동의 진보를 촉진한 사례가 프랑스에서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노란 조끼 운동이다.
2018년 말 유류세 인상이 촉발한 노란 조끼 운동은 초기에 극우파가 운동을 이끈다는 (과장된) 비난을 계속 받았다. 처음에 프랑스의 주요 노동조합 지도부들과 일부 좌파들은 노란 조끼 운동에 거리를 뒀다. 노란 조끼 운동도 기성 정당과 함께 노동조합에도 거리를 두려 했다.
그러나 운동 내에 극우가 일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 운동은 분명히 프랑스 사회 내 빈곤, 불평등, 엘리트의 오만함에 항의하는 운동이었다.
노동조합의 대부분 조합원들은 지도부와 달리 노란 조끼 운동과 연계를 맺었고, 프랑스의 일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도 운동에 적극 개입했다. 운동 내에서 극우적 요소들을 솎아 내는 의식적 시도도 있었다. 투쟁 과정에서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한 효과이기도 했다.
최근, 연금 개악에 맞서 프랑스에서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고 있다. 노란 조끼 운동은 그 파업을 지지하고 있다. 노란 조끼 운동의 진보 자체가 이런 대규모 파업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홍콩 항쟁 안에도 모순되게 여러 이질적인 세력과 정치적 경향이 존재한다. 운동 내에는 지극히 온건하고 친서방적 인자들도 있고, 시진핑 정부의 강경한 탄압에 절망한 나머지 중국 본토 대중과의 연대를 배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민주적으로 결정된 홍콩 항쟁의 공식 요구에는 그런 주장들이 없다. 홍콩 항쟁의 요구는 모두 지지할 만한 것들이다. 구속 시위대 석방, 민의를 외면하는 통치자의 퇴진 등은 한국에서 제기됐더라면 많은 진보·좌파들이 주저 없이 지지했을 요구들이다. 무엇보다도 이 항쟁의 배경에는 홍콩 사회의 극심한 불평등과 빈곤에 대한 절망과 정당한 분노가 깔려 있다. 이런 점에서 홍콩 항쟁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항과 궤를 같이한다.
앞으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질 대중 운동은 많은 경우 의식이 뒤죽박죽이고 못지않게 모순될 수 있다. 좌파가 관조적 태도를 취하다가 이런 반란이 주는 영감과, 사태에 영향을 미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