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로 악화된 여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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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노동계급과 서민층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마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많은 노동자와 서민들이 코로나19와 장기 불황으로 타격을 입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성들은 더 큰 타격을 받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98만 2000명가량 감소했는데, 그중 60퍼센트가 여성이었다. 여성 취업자 수(5.2퍼센트 감소)는 남성 취업자(2.5퍼센트 감소)보다 더 큰 폭으로 줄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여성 종사자가 많은 대면 서비스 업종이 큰 타격을 입은 탓이다.
“코로나보다 카드빚, 대출금이 더 무섭다”
아이돌봄 노동자나 가사노동자, 방과후 학교 강사, 요양보호사 등 돌봄·교육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은, 일감이 줄어 생계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방과후강사의 경우 코로나 전보다 소득이 98.8퍼센트 준 것으로 나타났다(김난주 외, ‘코로나19 이후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여성노동자 위기 현황과 정책과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수입이 그야말로 공중분해된 것이다.
무급휴가, 연차 강요, 임금 삭감 등의 피해도 커졌다.
여성의 일자리, 소득 감소는 여성의 빈곤율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2020년 1분기에 여성의 상대적 빈곤율(연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인 가구 비율)은 13.55퍼센트로 전년 동기보다 확대됐다.
여성의 평균 보유 자산은 남성보다 적은데, 그러다 보니 여성들은 대개 급격한 소득 손실에도 더 취약한 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위기에 빠진 이들을 지원하는 데는 매우 인색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생활고를 겪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마저도 1차 이후에는 선별적으로 지급됐다.
이중의 굴레가 강화되다
한편 코로나 위기는 노동계급 여성의 가정 내 무급 노동 부담을 한층 증폭시켰다.
학교와 어린이집, 유치원, 노인·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시설 등이 문을 닫으면서, 교육과 돌봄의 부담 대부분을 가족, 그 중에서도 여성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COVID-19와 한국의 아동 돌봄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 위기로 전업주부의 경우 자녀 돌봄시간이 하루 9시간에서 12시간 38분으로, 맞벌이 여성의 경우에는 하루 5시간에서 6시간 47분으로 늘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도 기업의 이윤 손실을 염려해 정작 기업 가동을 멈추려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맞벌이 부모들은 어린 자녀를 맡길 곳을 찾느라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전담 보모를 구하는 것은 부유층에게는 별 일 아니겠지만 노동계급 가정에게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다.
한부모 가정(대부분이 여성 가장)의 고통은 더 클 것이다. 인천에서 두 형제가 단 둘이 집을 지키다가 변을 당하는 비극도 벌어졌다.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긴급돌봄 서비스가 시행됐지만, 감염과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용률이 매우 낮았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용률이 늘긴 했지만, 돌봄 공백을 전부 메우지는 못했다.
정부는 가족돌봄휴가 제도도 시행했지만, 기간이 최대 20일(한부모의 경우 25일)로 너무 짧고, 무엇보다 회사의 눈치가 보여서 제도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곳도 공공기관과 몇몇 대기업 등으로 매우 제한적이었다. 사실, 재택근무를 한다 해도 일하는 동시에 온종일 어린 자녀를 돌보는 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과 무관하게 부모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소진시키는 일이다. 좁고 어두운 열악한 주거 조건이라면 고통이 더 클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양육 부담 증가가 여성의 경력 단절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애인, 환자, 노인에 대한 돌봄 부담도 노동계급 가족과 여성을 위태로운 상태로 내몰고 있다. 지난해 광주에서는 발달장애인 자녀와 그 어머니가 사회복지시설이 장기 휴관에 돌입하며 가중된 돌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처럼 코로나 위기 하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계급과 서민층 가정(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희생 증대에 기대서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다.
시장화된 돌봄 서비스 악화되다
수십 년간 한국 정부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늘면서 보육과 돌봄 서비스 공급을 확대해 왔지만, 정부의 투입 비용을 최소화하려다 보니 이것은 주로 시장에 의존한 방식이었다. 어린이집, 유치원, 돌봄교실, 노인요양시설 등은 대부분 민간업체가 운영한다. 국공립 시설도 민간 위탁 방식이 많다.
민간 돌봄서비스 업체들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이고 열악한 비정규직이다. 돌봄노동자의 월평균임금은 152.8만 원으로 전체 취업자 대비 57.3퍼센트에 그쳤다. 열악한 노동조건은 돌봄의 질 저하와 직결된다.
코로나19는 열악하고 시장화된 돌봄 서비스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예를 들어, 대면 서비스가 필수적인 가사노동자와 아이돌봄 노동자, 요양 보호사 등은 일자리 상실과 소득 감소로 고통받았다. 다른 한편, 긴급돌봄 서비스를 제공한 초등돌봄전담사들은 시간제로 고용된 채 “공짜 노동”을 통해 돌봄 공백을 메우도록 강요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서비스공단을 만들어서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민간 사업주들의 반발을 의식해 이미 크게 후퇴한 바 있다.
또, 최근 정부는 2025년까지 “공보육 시설 이용률 50퍼센트 달성”을 위해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하겠다고 말했지만, 이것도 국가 직영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다.
여성 노동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적 일부
코로나 위기로 여성들의 일자리 일부가 사라지고 가정 내 부담이 늘긴 했지만, 동시에 코로나 위기는 자본주의가 여성들의 임금노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도 드러냈다. 교육·보건·돌봄과 같이 사회의 기능 유지를 위해 지속될 필요가 있는 필수 업무 종사자의 다수가 여성들이고, 그 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특히 여성은 팬데믹에 대한 보건 분야 대응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여성은 간호사와 조산사의 85퍼센트를 포함해 전 세계 보건 인력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국가의 장기 요양 근로자의 90퍼센트를 차지한다(OECD 2020).
이런 사실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는 달리 여성의 노동이 주변적이지 않고, 자본주의가 운영되는 데서 중요한 일부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것은 여성 노동자들이 남성 노동자와 함께 자본주의 체제를 멈출 계급적 힘을 발휘할 위치에 있음을 뜻한다.
최근 초등돌봄전담사나 콜센터 노동자들 등 여성 노동자들은 코로나 위기로 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된 상황에서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노동계급 여성들의 고통을 완화하려면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와 무급휴직, 임금 삭감 강요 등에 맞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대폭 늘어난 시간제 일자리가 아니라 양질의 공공 일자리가 대폭 늘어야 한다. 감염 걱정 없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공립 돌봄·보육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분야 노동자들의 열악하고 불안정한 노동조건이 확실히 개선되고 전일제 인력이 확충돼야 한다. 의료·방역 인력도 확충해 팬데믹 대응의 최전선에서 혹사당하는 방역·의료 노동자들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주들의 이익과 필요를 우선하며 노동계급 대중의 필요를 희생시켜 온 문재인 정부에 도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조만간 고용 위기에 처한 여성과 청년 등을 위한 조처를 발표하기로 했는데, 이런 조처도 생색내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여성을 옭아매는 이중의 굴레를 해결하려면 그것을 낳는 근본 구조인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야 한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 노동자의 날이다. 1908년 미국 뉴욕의 여성 노동자들이 영웅적 투쟁으로 큰 영감을 준 이래 여성 노동자들은 오늘날까지 착취와 차별에 맞선 투쟁에서 언제나 중요한 일부였다.
팬데믹 위기 등 정신나간 자본주의 체제가 고통을 전가하는 오늘날에도 여성 노동자들은 체제의 권력자들에 맞서 싸울 수 있고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