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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파업:
핵심 업무 떠받치는데도 직접고용 자격 없다?

직영화 쟁취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국민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행진 ⓒ제공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2월 1일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이 처우 개선과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2019년에 노조를 결성하고 첫 파업이다. 노동자들은 95퍼센트로 파업을 가결했고 조합원 대다수가 열의있게 파업에 참가하고 있다.

파업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12개 공공부문 콜센터 노동조합을 비롯해, 진보, 노동 단체들의 연대 성명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친사용자 언론들은 직접고용 요구에 대한 일부 청년들의 반발과 정규직 노조 집행부의 반대를 들며 제2의 ‘인국공 사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것은 터무니없이 과하다는 투다.(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본지 329호 “인천공항 직접고용 논란 - 문재인의 미온적 개혁 때문이다”를 보시오.)

그러나 진실은 이와 다르다. 노동자들은 보험료 부과·징수 관련 업무, 의료 급여, 건강검진, 제 증명서, 장기요양 등 무려 1060종에 달하는 건강보험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는 건강보험공단의 핵심 업무들로 공단 정규직 직원들의 업무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래서 건보공단도 고객센터 노동자들에게 사원번호를 부여하고 근태를 관리한다.

그런데도 건강보험공단은 2006년 비용 절감을 위해 고객센터 업무를 외주화 해 민간기업에 업무를 위탁했다.

노동자들의 조건은 너무 열악하다. 8시간 근무 중 점심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단 1분의 휴식 시간도 없이 하루 평균 120건의 전화 상담을 받는다. 이렇게 고강도 노동을 하는데도 생리휴가나 연차 사용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해 왔다고 노동자들은 증언한다. 위탁업체 관리자들의 실적 압박은 악랄하기로 소문나 있다. “민원인과 통화를 마친 후 15초 이내에 다음 민원인과 통화를 시작하도록 강제할 정도[였다].”

최저임금 수준을 맴도는 저임금은 노동자들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다. 승진이나 다른 보상제도는 일절 없고 그저 기본급(최저임금)에 콜 받는 횟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게 다다.

“1년을 다녔든, 10년을 다녔든, 콜을 많이 받으면 [인센티브를 받고], 콜을 많이 못 받으면 최저임금을 받아요. 상담사의 50퍼센트 이상은 최저임금을 받고 있어요.”(김숙영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장)

그래서 노동자들은 임금을 늘리려면 ‘콜 수’를 더 올려야 하는 지독한 경쟁에 내몰려 왔다. 하루에 심지어 180콜을 처리하는 노동자도 있다.

이런 열악한 처우에도 노동자들은 코로나19 감염 대응 일선에서 헌신했다. 정작 자신들은 충분한 마스크 지급을 비롯해 감염 예방을 위한 환경을 제공받지도 못하면서 질병관리청의 콜센터 업무도 분담해 왔다.

요컨대, 노동자들은 중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실을 하는데도 열악한 조건을 강요받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더 나은 보수와 처우를 보장받기 위해 직접고용을 요구할 자격이 충분하다.

국민연금, 근로복지공단 등 공공기관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된 것을 봐도, 지금 이 노동자들의 요구는 결코 지나치지 않다.

진정한 표적

친사용자 언론들은 일부 청년과 정규직의 반대를 내세워 사실상 파업을 비난하지만, 이들의 진정한 속내는 다른 데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줄이고 정부·기관의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저질 비정규직 일자리를 유지하고 정부·사용자 부담을 피하려는 반동적인 취지인 것이다.

이는 청년들에게 양질의 취업 기회를 늘리는 것과도 상반된 방향이다. 친사용자 언론들이 청년실업을 걱정하는 양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정규직화가 청년·노동자 개인의 노력과 능력, 경쟁의 룰을 무시한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코로나19로 더 치열해진 취업 경쟁에서 낙오하는 대다수 청년에게 구조가 아니라 스스로를 탓하라는 냉담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진정한 문제는 비정규직의 “과도한” 요구와 투쟁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약속 파기, 형편없는 개혁이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에게 한 정규직화 약속도, 청년층에게 했던 신규 일자리 창출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문재인은 말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하고는 정작 책임은 지지 않았다. 정규직화에 필요한 비용은 전혀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서 많은 수가 전환 제외됐고, 전환되더라도 자회사·무기계약직 같은 게걸음으로 뒤틀었다. 전환자 처우도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등 20만 명에 이르는 민간위탁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고는 기관들이 알아서 판단하라며 손을 떼 버렸다.

더구나 정부는 청년 고용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데도 공공부문에서 단기 저질 일자리를 양산하는 정책만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확대 재정에 따른 부담을 줄이려고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들에는 긴축 운영을 압박해 정규직 신규 채용 증대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기업들도 신규 채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박근혜 정부 때 악화된 조건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돌아온 건 호봉제 폐지 압박과 여전한 임금 억제였다. 건강보험공단의 경우만 봐도 임금에 대한 불만이 꽤 누적돼 왔다. 지난해 기재부가 공단 재정 악화를 이유로 구조조정을 주문하기도 해 노동자들의 불안이 커져 왔다. 결국 정부의 이런 책임 전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갈등을 부추기는 효과를 냈다.

이런 점을 볼 때, 청년들의 취업을 더 어렵게 만들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진정한 원인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정부와 사용자들이다.

직영화 쟁취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국민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행진 ⓒ제공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정규직 노조 집행부의 반대 유감

건강보험공단 사측은 정부 정책과 정규직 노조 집행부의 반대를 이유로 고객센터 노동자 직접고용은 사실상 불가하다는 태도다. 고객센터노조가 참가하는 논의 테이블이라도 만들자는 요구에도 묵묵부답이다. 더구나 비정규직 파업에 정규직 직원들을 대체 인력으로 투입해 파업 효과를 약화시키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인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에 연대하기는커녕 사측의 책임 회피를 정당화해 주는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지난해 정규직 노조 전 집행부는 조합원들 사이의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을 핑계 삼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연대 회피의 책임을 조합원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절반가량이 참가한 조사 결과를 이유로 ‘고객센터 직접고용 추진 사업 중단’을 결정해 버렸다.

올해 들어 새로 들어선 집행부는 아예 선거 때부터 “조합원 동의 없는 고객센터 직접고용 반대” 공약을 내걸었고,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도 위원장은 그런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위원장의 뜻이 정규직 노동자(조합원) 전부의 뜻은 결코 아니다. 김숙영 고객센터지부장이 지적한 것처럼, 최근 노조 게시판에서 찬성과 반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만 봐도 노조 집행부의 입장이 전체 조합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정규직 노조 집행부의 직접고용 반대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해롭다.

그것은 정규직 노조를 공격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오히려 노조 조직력과 사기를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친사용자 언론과 사측이 ‘노-노 갈등’을 부각해 지금은 비정규직을 비난하지만, 정규직이 임금 인상이나 조건 개선 같은 요구를 하고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쏟아 낼 것이 뻔하다.

‘비정규직을 외면한 정규직 노조’라는 비난으로 조합원들의 사기도 약화될 수 있다. 이렇게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가 약화되면 정규직의 조건을 지키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는 이 파업을 지지하고 연대를 모으는 데 적극 나서는 것과 함께 건강보험공단노조 집행부가 직접고용 반대 입장을 철회하도록 설득하고 촉구해야 한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 집행부가 공공연하게 비정규직 연대를 해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