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빠진 저출산고령사회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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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5일, 문재인 정부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안(2021년~2025년 적용, 이하 4차 계획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새로운 “저출산 대책”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노동계급 여성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내용이다.
출산‧육아 부분에서 약간의 개선은 있다. 건강보험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 바우처는 60만원에서 100만 원으로 인상되고, 아동 출생시 200만 원 어치 바우처가 제공된다.
또한 2022년부터 생후 24개월 미만 아동에게 월 30만 원(2025년까지 월 50만 원으로 단계적 인상)의 영아수당이 지급된다. 하지만 영아수당은 완전히 새로운 지원은 아니다.
현재 0~1세 영아가 어린이집을 이용할 경우 보육료(47만 원)가 지원되고, 가정에서 양육하는 경우 양육수당(0세 월 20만 원, 1세 월 15만원)이 지급되고 있다. 2022년부터는 보육료와 양육수당이 통합돼 어린이집 이용 여부와 상관없이 영아수당으로 일괄 지급된다. 그러면 가정 양육을 하는 경우에만(현재 영아의 보육시설 이용률은 0세가 3.4퍼센트, 1세가 36.6퍼센트에 불과하다) 10~15만 원 정도 지원금이 늘어나게 된다.
육아휴직 제도도 일부 개선된다. 생후 12개월 내 자녀를 둔 부모 모두 3개월 육아휴직시 각각 통상임금의 100퍼센트(각각 최대 300만 원)를 지원하는 방안이 신설된다. 그 외 육아휴직급여는 통상임금의 50퍼센트에서 80퍼센트로, 상한액은 월 120만 원에서 150만 원으로 인상된다.
불충분
우파들은 이런 계획을 두고 “현금 살포 정책”이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월 평균 92만 원이 소요되는 영유아 양육비(육아정책연구소의 ‘영유아 가구의 소비실태조사 및 양육비용 연구’, 2019)를 고려하면, 정부 지원을 탈탈 털어도 한참 모자란다. “누구나 행복하게 아이를 키우는 삶”은 언감생심 기대하기 어렵다.
육아휴직급여 소득대체율과 상한액이 인상됐지만, 여전히 필요 수준에 견줘 턱없이 부족하다. 육아휴직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최저임금(월 179만 원)에도 못 미치는 육아휴직급여 때문이다. 육아휴직급여 최대 금액 월 150만 원으로 3~4인 가족이 아기를 키우며 어떻게 생계를 꾸릴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고용보험 미가입자에게 육아휴직제는 그림의 떡이다. 정부의 고용보험법 개정에 따라 4차 계획안에 “예술인‧특고‧비정규직‧자영업자로 육아휴직을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되기는 했다. 그러나 정부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여러 제약 요소를 둬 특고 노동자 상당 수를 제외시키는 등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육아휴직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어렵다.
임신한 여성 노동자들은 육아휴직은커녕 온갖 차별 대우와 해고 압박에 시달린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 경력단절여성 경제활동 실태조사’를 보면,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 노동자 10명 중 6명이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 했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육아휴직제를 강화해야 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을 해소하는 한편, 고용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육아휴직제를 사용할 수 있게끔 하고 육아휴직급여를 대폭 늘려야 한다. 또한 출산·육아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고 퇴사를 압박하는 기업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촘촘한 돌봄 체계”?
문재인은 “결혼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는 것이 여성의 삶 또는 여성의 일을 억압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국가책임 보육”을 약속했다. 그래서 국공립 어린이집 40퍼센트 확충 공약을 내걸었지만, 결과는 지지부진하다. 현재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은 약 12퍼센트, 이용률은 약 17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보건복지부 ‘어린이집 및 이용자 통계’). 국공립 유치원까지 포함해도 공공 보육시설 이용률은 25퍼센트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7퍼센트에 크게 못 미친다.
정부는 이번 4차 계획안에 “국공립 등 공보육 이용률 50퍼센트 확충”으로 목표를 상향했다. 하지만 기만적이게도 2021년 예산안에서 보육 예산을 삭감하고,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도 20.6퍼센트나 줄였다. 이런 추세라면, 문재인의 약속은 공문구가 될 공산이 크다. 말로만 생색내는 문재인의 행세가 위선적인 이유다.
사실 “공보육 이용률 50퍼센트” 목표는 진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을 전제한 것도 아니다. 현재 직영 국공립 어린이집은 2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민간위탁인데, 정부가 민간위탁 방식을 더 늘릴 공산이 크다.
공공성이 담보되지 않은 ‘온종일 돌봄’ 확충 방안도 문제적이다. 2022년까지 학교 돌봄 34만 명, 마을 돌봄 19만 명을 수용하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자원 연계”와 “지역 돌봄 모델 발굴 및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돌봄 교실을 지자체로 이관해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는 ‘온종일 돌봄체계’ 방안과 맞물려 진행될 듯하다. 돌봄 교실 지차제 이관 계획은 공적 돌봄에 대한 정부 책임을 줄이고, 값싼 노동과 학교 노동자들의 고통 분담으로 돌봄 서비스를 때우려는 조처다. 이 계획은 돌봄전담사들의 파업 투쟁으로 제동이 걸렸지만, 정부는 지자체 이관 법안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아동 돌봄의 사회적 책임 강화 약속”을 스스로 역행하며 돌봄 서비스 시장화를 확대하려 한다.
문재인 정부는 “촘촘한 돌봄 체계”를 마련했다고 거창하게 떠들 뿐,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리거나 유아 교육‧보육 시장을 축소‧규제하는 데 열의가 없다. 역대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기업 지원과 국방비 증액을 더 중시한다.
“워라밸” 파괴자는 문재인 정부다
4차 계획안은 ‘저출산’ 문제의 “사회 경제적” 요인으로 “불안정한 고용, 낮은 임금, 성차별적 노동시장, 돌봄 공백, 비싼 주택 가격” 등을 지목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은 거의 내놓지 않았다. 경제 위기에 코로나19까지 겹쳐 여성 실업이 증가하고, 돌봄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정부 자신이 노동 개악과 임금 공격 등으로 노동자‧서민과 청년들을 더욱 궁지로 내모는 데 앞장서고 있고, 부동산 투기 촉진으로 주택 가격 폭등을 야기시켰다. “워라밸”을 파괴할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4차 계획안의 “성평등 노동권 보장” 방안도 알맹이가 없고 초라하다. 기업의 성별 고용·임금 정보를 공시하는 ‘성평등 경영 공표제’와 ‘채용 성차별 모니터링 강화’ 등을 제시했는데, 강제성이 없을 뿐더러 성차별 행태를 규제할 방안도 없다. 문재인의 대표적인 여성 공약이던 성별 임금 격차 해소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정부가 “채용절차 공정성 강화”를 운운하는 것은 위선의 극치다. 2018년에 은행권의 노골적인 채용 성차별 문제가 공론화됐지만, 정부는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기업을 전수 조사하라는 여성·노동 단체들의 요구를 거부했고, 여성가족부는 채용 성차별 논란을 빚은 몇몇 기업과 “유리천장 깨기” 자율 협약을 맺고 “성평등 우수 기업”으로 홍보해 줬다. 정부가 면죄부를 준 셈이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도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권리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데에는 열의가 없다. 출산율 증대를 위해 여성 대중의 염원을 배신하고 낙태죄 유지를 고수하는 법안을 내놓은 것도 한 예다.
문재인을 비롯해 모든 지배계급은 “인구 감소는 재앙”이라며 ‘저출산’으로 노동력 인구와 징병 대상자가 감소하는 것을 크게 우려한다. 하지만 지배자들은 낙태죄 유지로 출산을 강요하면서도 양육‧돌봄 부담은 책임지지 않는다. 여성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약간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민간 업자들과 시장 원리를 이용해 그 부담을 대부분 개별 가정(특히 여성)에 떠넘긴다. 지배자들이 노동력 재생산 부담을 노동계급의 여성과 남성에게 전가해 막대한 이득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자녀의 출산과 양육은 사회가 부담해야 할 책임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왕창 걷어 양육과 돌봄 사회화를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질 좋고 값싼 국공립 보육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또,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대폭 확충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한다. 대량의 공공 임대주택을 제공해 주택난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려면 체제와 기업 살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문재인 정부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