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고객센터 투쟁:
중재에 기대 걸지 않고 기층 투쟁을 확대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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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원들의 직접고용 쟁취를 위한 2차 파업이 6월 10일부터 시작해 6월 21일 잠정 종료됐다. 지난 2월에 24일 동안 1차 파업을 한 후 노동자들은 시민사회단체 중재단의 활동을 지켜보기로 하고 현장에 복귀했지만, 공단 측은 시간만 끌며 책임을 회피해 왔다.
2차 파업으로 고객센터 노조가 ‘민간위탁 사무논의협의회’(이하 협의회)에 참가하게 됐지만, 공단 측은 여전히 직접고용을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고객센터 노조는 7월 1일 3차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차 파업은 직접고용 쟁취를 위한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투지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6월 10일 파업 첫날 집회에서 한 노동자는 이렇게 발언했다. “생애 첫 파업을 하던 2월에 원주로 왔을 때는 설레는 마음이 더 컸지만, 오늘은 끝장을 봐야 한다는 마음이 더 크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다시 파업에 나서자 친사용자 언론들은 직접고용 요구가 불공정하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인 건강보험 정규직 노조의 지도부는 직접고용에 반대했고, 자기 조합원들을 파업 파괴자(“대체인력”) 구실로 몰아넣었다.
이는 정규직 노조 내에서 능력주의와 개인주의적 경쟁을 옹호하는 보수적인 목소리를 더욱 키웠다.
그러자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용익 이사장은 고객센터 파업 중단과 정규직 노조의 협의회 참여를 요구하며 6월 14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직접고용을 반대하는 정규직 노조 지도부가 협의회에 참여해야만 논의가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직접고용에 대한 이사장 자신의 책임은 회피하고, 이 문제의 본질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노 갈등’인 것처럼 호도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객센터 노조는 “[파업 중단 요구는] 반인권적, 반노동적 발상”이라면서 “사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단식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도 김용익 이사장의 단식이 “본질을 왜곡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당장 단식쇼를 집어 치우고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결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김용익 이사장의 단식 이틀 만인 6월 16일 건강보험 정규직 노조가 협의회에 들어오겠다고 하자 공공운수노조와 고객센터 노조 지도부는 파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김용익 이사장의 요구가 부당하다면서도 결국 김용익 이사장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데에 마지못해 따르기로 한 것이다. 이때 기층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별 성과도 없이 파업을 종료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꽤 제기됐다고 한다.
사실 1차 파업 때도 공공운수노조와 고객센터 노조 지도부는 시민사회단체 중재 시도에 기대를 걸자며 조합원들에게 파업 종료를 설득했다. 당시에도 대다수 조합원들은 별다른 성과 없이 파업을 접는 것에 반발했다.
그러나 실제로 공단 측을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파업이 중단되자 공단 측은 전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공단 측의 직접고용 거부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닌데도 고객센터 노조 지도부가 대화 테이블에 참가하게 됐다고 파업을 중단하는 것은 실책이다.
사실 공단 측이 협의회에 정규직 노조를 끌고 들어온 것은, 고객센터 노조의 직접고용 요구가 관철되기 더 어렵게 만든 것이다.(협의회는 공단 측 2명, 공단이 선임한 전문가 5명, 정규직 노조와 고객센터 노조로 이뤄져 있다. 이 중 3분의 1인 공단과 정규직 노조가 이미 직접고용을 반대한다. 전문가들도 단일하지는 않겠지만 공단 측이 선임했기 때문에 그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 즉, 고객센터 노조의 의견이 관철되기 힘든 구성이다.)
결국 공단 측은 파업을 중단하도록 유도한 상황에서 협의회 논의를 통해 고객센터 노조에 후퇴를 압박하려 하는 것이다. 실제로 협의회 3, 4차 회의에서 공단 측은 직접고용을 거부하고, 계열사나 자회사 전환 등 또 다른 방식의 간접고용을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교섭 우선주의는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침해를 흔히 동반한다. 고객센터 노조 지도부는 사용자 측과 협상한 후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채 파업 중단을 통보했다. 고객센터 노조 지부장을 비롯한 소수가 건보 본사 로비에서 농성하며 다수 조합원들과 괴리된 상황에서 이런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대다수 조합원들은 상황을 알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엔지오
노조 지도부가 ‘가다 서다’ 파업을 반복하는 데에는 정규직 노조 지도부와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완강하게 반대하는 불리한 상황에서 중재와 대화를 통한 해결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게다가 협상 상대인 김용익 이사장이 보건의료 단체들을 포함한 엔지오들에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는 정부 내 개혁파 인사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김용익 이사장은 직접고용을 제외한 다른 쟁점들(공공병원, 복지 확충 등)에서 나름 개혁적 입장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시민사회 단체나 민주당 개혁파(예컨대 을지로위원회 등)를 통한 중재의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김용익 이사장은 자신의 영향력을 십분 이용해 고객센터 파업을 주저앉히는 데 주력했다.
강력한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공단 측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고객센터 노조 지도부는 협상 상황을 지켜보다가 언제든지 다시 파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별 성과 없는 파업 종료가 반복되면 조합원들은 김이 빠질 것이다. 파업은 “주머니칼처럼 언제든지 간편하게 꺼내 쓸 수 있는 게 아니다.”(로자 룩셈부르크의 말) 지도부가 투쟁을 진지하게 밀고 나아갈 태세를 보여 줘야 기층 조합원들의 사기와 투지도 유지될 수 있다.
고객센터 노조가 강력하게 투쟁하는 동시에 연대도 더욱 확대돼야 한다. 정규직 노조와 고객센터 노조 모두의 상급노조인 공공운수노조의 지도부는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산하 정규직 노조 지도부의 문제적 태도에 대해서 올해 2월 이후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분열을 우려해 해야 할 비판을 회피해서는 보수파에게 유리한 세력관계가 조성된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면서 말로는 노동계를 달래려 한다. 그러나 실제 행동에서는 실질적 양보를 하고 있지 않다. 택배 노동자들이 노사합의로 약속받은 것을 실제 이행시키기 위해 강력하게 투쟁해서 성과를 본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층 투쟁을 강력하게 전진시킬 때만 개선을 쟁취해 낼 수 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도 파업을 굳건하게 유지하면서 연대를 확대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