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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윤석열 퇴진 요구는 정당하다!

고물가·고금리로 생계비 고통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과 대출금리 인상 등 노동자 등 서민층의 삶을 공격하고 있다.

윤석열의 지지율이 낮은 것은 이런 공격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광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윤석열은 금융 위기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면서 공격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하려 한다.

이를 위해 윤석열이 의존하는 것은 법질서를 앞세운 권위주의적 수단들이다. 그는 독재 정권 시절부터 암약해 온 공안 수사 전문가들을 요직에 발탁하고, ‘범죄와의 전쟁’을 내세워 경찰력을 강화하고, (책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출판사 대표와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해군 병사를 국가보안법으로 탄압했다.

10월 22일 오후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요구 촛불 집회 ⓒ출처 촛불승리전환행동

급기야 이재명 대선 자금을 수사하겠다며 민주당사를 압수수색했다. 이에 대한 항의로 10월 22일 윤석열 퇴진 요구 촛불 집회에 5만 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다.

이 시위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노동운동과 주요 좌파 정당의 지도자들은 안타깝게도 윤석열 퇴진 요구와 애써 거리를 두고 있다.

추수주의?

바로 이런 와중인 10월 29일, 이태원 압사 참사가 터졌다. 정부가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중의 분노가 광범하게 일었다. 특히, 희생자들 다수와 같은 또래의 청년들이 분노하고 있다.

한 희생자 부모는 이렇게 분노했다. “총리 아들이 112에 전화했으면 수백 명의 경찰이 동원됐겠죠. 일반 사람들이 전화하니까 경찰이 무시해!”

윤석열은 참사를 보고받고도 즉시 책임 부처의 장들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사태 축소를 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는 정보·보안 경찰을 동원해 정부 책임론의 확산을 방지하려는 사찰을 하고 내부 문건을 작성했다.

경찰 내부 문건이 폭로된 뒤 박석운 전국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는 그 내용을 부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민중행동] 내부 논의에선 이미 ‘퇴진’이란 워딩 자체를 쓰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고,] …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애도와 진상 규명 필요성의 입장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정권퇴진 운동으로 발전시킨다는 발상은 완벽한 날조[다.](〈프레시안〉 11월 2일자)

윤석열 퇴진 운동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좌파 단체들을 포괄하는 연대체가 정권 퇴진과는 “아예 기조가 다르다”고 선을 긋는 것은 이태원 참사 항의 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 운동의 전진에 한계를 두겠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지금 가장 반길 이가 누구일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다.

현재 민주노총은 윤석열 사과, 국무총리 사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정의당은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 파면과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진보당은 윤석열이 책임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참사의 책임 소재가 핵심 쟁점이 된 상황에서 노동당은 “모두가 반성하자”는 도덕주의자 같은 논평을 냈다.

정부 지도자인 윤석열을 정조준해 참사의 책임을 묻고 이를 퇴진 요구로 구체화시켜 대중 운동을 고무하는 것에 대해 개혁주의적 좌파들은 거의 준비가 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일부는 떨떠름해 하는 듯하다.

아마도 윤석열 퇴진 요구가 민주당에 유리할 뿐이라고 (선거적 관점에서) 봐서인 듯하다. 당연히 정권 퇴진 구호는 ‘다음 정권은 누구냐?’ 하는 물음을 피할 수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진보 염원 대중의 표를 꽤 가져갔다. 반면, 좌파계 정당들은 정치적으로 주변화돼 현재로서는 선거적 전망이 밝지 않다.

그러나 협애한 선거주의 관점이 아니라 계급투쟁을 발전시킨다는 관점에서 보면, 윤석열 퇴진 운동이 급속히 성장하는 것이 노동운동과 좌파 모두에 이로울 것이다. 퇴진 운동이 우파 정부를 강타해 여권이 동요하고 분열하면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분출하는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이런 계급투쟁의 발전은 민주당으로서는 결코 내키지 않을 것이다.

좌파 일부는 동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퇴진 요구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듯하다.

슬로건은 성취할 당면 목표를 내걸기도 하지만, 대중의 즉각적인 분노를 나타내 공격 대상을 집중화하는 것도 있다. 이런 정치 슬로건은 운동의 표적을 분명히 함으로써 투쟁과 정치의식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

가령 세월호 참사 항의 국면에서 등장한 박근혜 퇴진 구호는 박근혜 정부의 무책임·무능, 잔인할 정도의 무심함에 대한 즉각적 분노의 표현이었고, 박근혜에게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선언이었다.

반면, 2016년 10월 말 노동자연대의 제안으로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를 열었을 때 그것은 매우 실현 가능한 당면 목표로 제안된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그해 봄부터 대우조선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분열하고 있었고, 이런 여권의 내분을 뚫고 철도 등 공공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하면서 정권의 취약성이 가시화되고 있을 때 바로 ‘최순실 비선 실세’ 의혹이 터져 정부가 커다란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운동이 박근혜를 정면 겨냥한 것이 결국 2년 뒤 박근혜 퇴진 운동의 밑거름이 됐다. 이런 기억 때문에 윤석열은 이태원 압사 참사가 지도자 책임론으로 발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윤석열 퇴진 요구는 현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과 불만을 드러내는 좋은 정치 슬로건이 될 수 있다.

충격, 슬픔...분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공간에 국화와 추모 메시지가 가득 놓여 있다 ⓒ이미진

정치적 초점

한편, 윤석열 퇴진 운동 주도자들의 친민주당 노선은 그 운동이 확대되고 심화되는 데에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 같은 완전히 부차적인 문제가 시위의 2대 요구가 돼 있는 것은 이 운동이 전면화되고 급진화되는 것을 방해한다.

게다가 김건희가 국정 공식 책임자도 아닐뿐더러, 그런 부차성 때문에 김건희 특검 요구는 언제든 민주당이 여당과 거래할 수 있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논문 표절 같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많디많은 보통 사람들이 절박하게 겪고 있는 생계의 위기에 적절한 요구와 슬로건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윤석열 퇴진 시위는 급속히 악화하는 정치·경제 상황과 특히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론의 확산 속에서 정치적 초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본지 독자들이 윤석열 퇴진 요구와 거리두기 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주도권을 민주당 진보파에 내주고,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그 수준에 머물게 해서, 좌파의 정치적 존재감 약화라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뿐이다.

본지 독자들은 윤석열 퇴진 운동을 지지하며 윤석열 퇴진 요구와 더 넓은 쟁점, 즉 생계비 위기 문제와 이태원 참사,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 등을 상호 연결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