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윤석열 정부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었던 참사
〈노동자 연대〉 구독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참사가 준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다. 30일 오후 4시 30분 기준 사망자는 무려 153명에 달한다.(※ 11월 2일 오전 6시 기준 156명으로 늘었다.)
모처럼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완화된 주말 핼러윈 파티를 즐기러 나온 젊은이들이었다. 아깝디 아까운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가 “예측의 영역을 벗어난 사고”라고 주장한다. 주최 측도 없는 행사에서, 누구나 다니는 길에서 일어난 사고이므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희생자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 사고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행안부) 장관 이상민은 정부의 책임을 피하려는 듯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윤석열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 유사 사고 방지에 힘쓰겠다고 한 것은 그저 빈말이었다는 것인가.
그러나 이번 참사는 충분히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
왜냐하면 이런 대형 압사 사고는 특정 조건과 상황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는 내리막 경사가 있는 좁은 골목에 인파가 양방향에서 몰리면서 벌어졌다. 이런 조건에서는 어느 시점부터 내리막 방향으로 가해지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사람들이 꽉 갇혀 버릴 수 있다. 이럴 때 적절한 안내나 안전 요원의 도움이 없으면 사람들 사이에 패닉이 커져 상황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 화재나 경찰의 폭력 진압 등으로 탈출 압박감이 있을 때도 압사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이런 점을 고려해 적절한 사전 대비가 있었다면 사고를 피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염건웅 경찰소방행정학 교수도 10월 30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좁은 골목에서 내리막길에 있다 보니까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 …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보였다”고 말했다.
해마다 핼러윈 기간에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몰린다는 사실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행정안전부, 서울시, 용산구, 경찰, 소방청 등이 모를 리 없다. 실제로 경찰은 코로나19 규제가 완화됨에 따라 핼러윈 기간 이태원 일대에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예측했다면 당연히 안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최근 여의도에서 열렸던 세계불꽃축제나 연말 타종 행사 때처럼 말이다. 바깥 길 상황을 모르고 인파가 우르르 몰려 나올 것에 대비해 서울시가 예상 지역의 지하철역을 무정차 통과시키고 인근 역을 통해 행사장 근처로 오도록 하는 일들이 그런 것이다. 경찰에게 교통 통제 협조도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오세훈의 서울시와 용산구는 전혀 대책이 없었고, 경찰이 세운 이태원 대응 계획의 강조점은 마약 등 범죄 단속이었다.
이번 사고가 벌어진 현장은 사고 전날에도 인파가 심하게 몰려 부상자가 발생했었다. 사고 당일에도 상황이 심각해지기 한두 시간 전부터 군중 몰림이 시작되고 있었다.
만약 서울시 등이 상황을 파악하며 대처하는 안전 컨트롤 타워 구실을 미리 했다면, 그래서 사람들의 동선을 효율적으로 안내하고 구급차와 구급 요원들을 미리 배치했다면, 아니 사고 발생 위험이 커졌을 때라도 한시라도 빨리 곳곳에 배치된 현장 요원들을 통해 전체 상황을 안내하며 사람들의 안전한 이동을 설득하고 적절하게 개입했다면, 피해를 막거나 그 규모를 대폭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대참사를 두고 또다시 반복된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고 많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 당시 때처럼 충격과 비통함을 느끼는 이유이다.
주말에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봤을 일상의 공간에서 평범한 청년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 갔다는 사실에 더욱 애통함이 크다.
무대책, 무관심, 무책임
행안부도 반복되는 압사 사고들 이후 예방 계획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지적해 왔다.
행안부는 2005년 경북 상주시민운동장, 2006년 롯데월드 무료 개방의 날 등에 잇따라 벌어진 압사 및 인파 몰림 사고들을 계기로 2006년부터 공연·행사장 안전 매뉴얼을 개발해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 연장선으로 2013년에는 재난·안전관리기본법을 개정해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민간 등이 개최하는 모든 지역축제”에 대한 정부의 안전사고 예방 책임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행안부는 바로 지난해에 “2021 지역축제장 안전관리매뉴얼” 최신 개정판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 매뉴얼을 갖고도 아무 대비를 안 한 정부에 사고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행안부 장관은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미리 대비할 수 없었던 사고라고 주장하면서도, 같은 날 경찰 병력들이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들 때문에 분산돼 있어서 대비하기 어려웠다고 변명했다. 이날 오후 5시 30분에 열렸던 윤석열 퇴진 집회 등을 은근슬쩍 탓한 것이다. 두 변명 모두 무책임의 극치다.
그와 동시에, 집회 통제를 우선하느라 안전 대비에 소홀했다는 행안부 장관의 변명은 윤석열 정부와 경찰의 우선순위를 털어놓은 것일 뿐이다.
일선 경찰들에 총기 지급 예산을 늘리고 범죄와의 전쟁을 강조하는 정부의 기조는, 경찰이 좁아터진 이태원 골목에 최소 10만 명이 모일 것이라고 예측하면서도 범죄 단속만 궁리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세월호 참사 때도 구조에 무능했던 군·경이 유가족 감시에는 기를 쓰고 달려들었다.
막을 수 있었던 이번 참사의 책임과 비판의 화살이 윤석열 정부를 향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