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자란 무엇인가》 (오카 마리, 두번째테제):
이스라엘의 인종학살에 대한 탈식민주의 학자의 견해를 보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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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란 무엇인가》의 저자 오카 마리는 국내에도 몇몇 저서가 번역돼 있는 일본의 저명한 아랍 문학 전문가이자 탈식민주의 학자다. 그녀는 일본 페미니스트 우에노 치즈코가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 국가의 책임 문제에 미온적인 것을 비판한 것으로도 한국에 잘 알려져 있다.
《가자란 무엇인가》는 저자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약 2주 후에 열린 두 차례의 “긴급 학습회”에서 한 강연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 전쟁이 시작된 이래 “사태의 중대성에 걸맞지 않거나 문제의 핵심을 전달하지 않는” 서방과 일본 매스미디어의 보도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정말이지 한국 매스미디어에도 딱 해당하는 비판이다.
저자는 문제의 핵심이 이스라엘의 식민주의에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과 팔레스타인 강탈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시온주의의 본질이 인종청소를 추구하는 정착자 식민주의임을 보여 준다.
저자는 지난해 10월 7일 이전까지 이스라엘이 봉쇄된 가자지구에 거듭 가한 공격 또한 가히 인종 학살적이었음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10월 7일 공격을 정당한 저항권의 행사로 규정한다. 저자는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납치를 전쟁 범죄로 보지만, 그것 때문에 10월 7일 공격의 기본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또, 저자는 하마스를 민족 해방 운동 세력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하마스가 이슬람주의 정당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좌파가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꼭 필요한 해독제라고 할 수 있는 지적이다.
이처럼 《가자란 무엇인가》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관해 꽤 괜찮은 관점을 제시한다.
또, 강연을 엮은 책이라 팔레스타인 문제에 낯선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하나는 현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는 구실을 충분히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전쟁을 그저 이스라엘의 일방적 학살로만 본다. 그러나 이스라엘 또한 하마스를 상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상황이 국제 연대 운동을 가능케 하고 중동과 국제 정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의의를 봐야 한다.(물론, 저자가 강연을 한 시점이 사태 초기이기는 했지만, 그런 점은 사태 초기부터도 어느 정도 드러났다.)
저자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전적으로 수동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대자들의 구실은 대체로 그들을 위해서 국제법을 관철시키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여기에는 저자의 이론적 관점도 작용하는 듯하다. 오카 마리는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제3세계 하위 주체(서발턴)의 경험에 관한 많은 저작을 써 왔는데, 그 출발점은 서발턴이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은 과연 어떤 토대에서 서발턴의 저항이 가능하냐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 때문인지 그의 많은 저작들은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하는 서발턴을 대신해 표현하는 지식인의 관점에 서 있다. 그리고 표상 불가능한 경험에 대한 발화 자체가 저항이라는 식으로 저항의 의미를 순치시키기도 한다.
아마도 그런 관점 때문에 이 책에서도 저자는 나크바에 관해 설명한 다음 나크바의 기억을 살리기 위한 이스라엘 내의 움직임을 가장 먼저 살펴보는 듯하다.(매우 비중 있게 다루지는 않지만 말이다.) 또, 하마스와 무장 저항의 성격을 정확하게 짚으면서도 그 의의는 보지 못한 채, 가자지구 주민들이 살던 곳을 떠나지 않는 것만을 중요하게 보는 듯하다.
이 책의 또 다른 아쉬운 점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사회 세력과 물질적 이해관계에 대한 분석이 없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저자는 식민주의를 핵심 문제로 짚는다. 그런데 저자는 식민주의를, ‘시온주의 프로젝트를 통한 유대인 문제의 해결’이라는 발상이 나오는 “식민주의의 정신” 문제로 다루는 데 그친다. 국제적 정치·경제 시스템으로서의 제국주의 문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시 영국 제국주의의 이해관계는 시온주의 프로젝트가 추진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서 불가결한 요소다.
오늘날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을 이해하는 데서도 제국주의 문제는 핵심에 있다. “친이스라엘 로비” 때문에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한다는 저자의 설명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미국의 중동 지배에서 핵심적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강대국의 이런 이해관계 앞에서 국제법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맞서려면 더 큰 힘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2010년대 아랍 혁명에 주목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의 예속을 가능케 하는 중동 내 제국주의 네트워크에 아랍 대중이 타격을 가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제3세계 피억압자들의 경험을 중요하게 다뤄 온 저자가 이 책에서 아랍 혁명 경험을 지나가듯 언급만 하는 것은, 저자가 아랍 대중의 잠재력 또한 온전히 평가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그러한 격변이 다시 벌어질 조건이 무르익고 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아랍 대중이 다시 “역사의 무대로 세차게 밀고 들어올”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국제 연대 운동도 그런 전망 속에서 건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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