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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 경쟁 체제 강화, 임금·인력 억제에 맞선:
철도 파업 정당하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노동자들이 14일 오후 서울역 앞 대로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재환

철도노조가 9월 14일 오전 9시부터 4일간 파업에 돌입했다. 14일 오후 3시 기준 전국 열차 운행률이 평소의 76.4퍼센트로 떨어진 가운데, 화물열차의 운행률은 26.3퍼센트로 급감했다. 특히 철도 운송 비중이 높은 시멘트 업체들은 파업이 길어지면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친사용자·우파 언론들은 철도공사가 적자인데도 철도노조가 명분 없는 파업에 나섰다며 비난을 퍼붓었다.

그러나 철도공사의 적자는 공공 대중 교통의 복지 성격 때문에 생긴 ‘착한 적자’다. 운영 원가보다 낮은 요금으로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를 운영하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 좌석 간 거리두기를 하며 생긴 것이다. 저렴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위해 꼭 필요한(했던) 서비스 비용은 정부가 책임져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정부와 사측은 적자를 이유로 애꿎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인력을 옥죄어 왔다.

이번 파업의 주요 요구는 수서행 KTX 운행, 임금 공격 중단, 4조2교대제 전면 시행 등이다.

현재 고속철도가 철도공사(KTX 운행)와 SR(수서고속철도, SRT 운행)로 분리된 상황에서 SR이 운영하는 수서 노선에 철도공사의 KTX 열차를 투입하라는 것이 이번 파업의 핵심 요구이다.

9월 1일부터 SR의 노선이 3개(전라선, 경전선, 동해선) 신설되면서 기존 2개 노선(수서-부산, 수서-목포)의 좌석수가 각각 하루 최대 4920석, 410석 감소했다. SR의 열차가 부족해서다. 철도노조의 요구처럼 감축된 기존 노선에 KTX를 투입하면 시민들의 불편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국토부는 수서 노선에 KTX 투입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SR이 운영하는 수서 노선에 철도공사의 KTX를 투입하면 현재 고속철도 공기업 간 분리·경쟁 체제 유지의 명분이 훼손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애초에 박근혜 정부가 철도공사와 별도로 SR을 설립할 때는 고속철도 경쟁 체제가 시민 편의를 증진시킬 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이번 사례에서 보듯이, 역대 정부들이 철도공사와 SR의 분리·경쟁 체제를 유지해 온 진정한 이유는 고속철도 공기업들을 경쟁시켜 공공기관을 지금보다 더 수익성과 실적 위주로 운영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통해 공공기관별로 성과급을 차등 지급해 노동자들을 경쟁시킨다. 경쟁 시스템은 임금 억제나 구조조정 등 정부 정책을 고분고분 따르도록 하는 무기가 된다.

윤석열의 공격과 저항

예컨대 정부는 철도공사의 적자 폭이 크다는 이유로 경영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부여해 왔다.

사측은 올해 성과급 액수를 8퍼센트나 삭감해 지급했는데, 온전히 지급하면 총인건비를 초과해 경영평가 등급이 낮아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사측은 올해 임금 교섭에서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노동자 간 성과 경쟁을 강요하는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제시했다. 정부는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하면 총인건비를 추가 지급(인센티브)하겠다는 근거 규정으로 공공기관들을 압박하고 있다.

적자 핑계로 인력 확충도 억제해 왔다. 인력 부족은 철도 안전과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데 말이다. 지난해만 오봉역 사고를 비롯해 노동자 4명이 사망했다. 또한 2급 발암물질이라 불리는 야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 4조2교대제를 도입했는데, 정부는 이에 필요한 인력 충원을 거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고속철도 경쟁 체제 유지·강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화하고자 한다.

지난해 국정과제 보고서에서 철도 관제권(열차 운행과 관련한 각종 지시와 통제를 담당하는 업무) 및 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철도공사에서 떼어 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정부는 조직이 작고 취약한 SR에서 야금야금 외주화를 늘리고 있다. SR이 철도공사에 위탁한 업무들 중 고객센터 업무를 올해 7월부터 민간위탁 한 데 이어, 2027년부터 도입되는 SR 신규 차량의 정비도 민간위탁 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철도노조 파업은 윤석열 정부의 철도 경쟁 체제 유지·강화, 임금 및 인력 억제, 안전 위협에 항의하는 정당한 투쟁이다.

철도 노동자들은 윤석열을 물러서게 할 힘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자기 마음대로 노동자를 괴롭히고 쥐어짜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대중의 불신을 받는 인기 없는 정부다.

윤석열이 집권 초기부터 강조해 온 노동개악 시도는 노동계 지도부층 안에서 적극적인 협조자를 구하지 못해 동력이 약해졌다. 하지만 윤석열이 노동 개악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지속되는 경제 침체와 날로 격화되고 있는 제국주의 간 경쟁 등 다중적 위기의 해결책으로 윤석열은 노동계급 등 서민층을 공격하고 있다.

기업주들과 우파 신문들은 ‘집권 초 개혁의 골든 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를 채근하고 있다.

이를 위해 윤석열은 검찰과 경찰 등 억압적 국가기구 강화, 홍범도 흉상 철거 등 국가 기관의 우경화, 언론 길들이기 시도, 집회 및 시위·표현의 자유 공격도 꺼내 들고 있다.

요컨대, 윤석열은 강하지 않지만 우경화와 고통 전가 공격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교사들의 대정부 시위가 두 달 만에 수십만 명 규모로 커졌다. 징계 협박에도 9월 4일에는 약 15만 명이 연가를 내고 ‘공교육 멈춤의 날’ 행동에 참가했다. 정부는 징계 방침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교사 노동자 시위 운동은 윤석열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정치적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도 아직 요구를 따내진 못했다. 시위가 재개된다. 교사 시위는 윤석열 정부에 맞서 어떻게 싸워야 할지 힌트를 준다.

기회를 활용해야

철도 노동자들도 자신감 있게 투쟁을 키울 필요가 있다.

철도 노동자들은 그간 파업과 저항을 통해 철도 민영화를 막아 내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좌절시킨 투쟁의 경험이 있다. 2016년 성과연봉제 저지 파업은 이후 박근혜 퇴진의 도화선이 되었고, 철도 노동자들은 박근혜 퇴진 투쟁에서 견인차 구실을 했었다.

철도노조 부산지방본부 노동자들이 14일 오전 부산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성휘

그런 점에서 노조 지도부의 ‘퐁당퐁당’식 파업(나흘 파업 뒤 사흘 쉬고, 다시 나흘 파업) 계획은 정부를 교섭 테이블에 끌어 내기에 부족할 뿐만 아니라, 파업에 참가하는 노동자들의 투지를 이끌어 내기에도 김빠지는 계획이다.

윤석열이 강력하진 않아도 한 노조의 일시적 파업에 밀려 쉽게 물러설 정도는 아니다. 이미 화물연대나 건설노조 사례가 보여 줬다.

파업의 기세를 올리려면 기층 노동자들이 원하는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더 부각하고 우선순위에서 높여야 한다. 철도 노동자들은 그간 임금과 인력이 억제되면서 노동조건이 별반 나아지지 않거나 후퇴된 것에 불만이 상당하다.

그간 철도노조(와 상급단체 노조) 지도부가 정부 지침(총액인건비와 통상임금 등 예산 억제)을 거스르기 힘들다며 자기 제한적으로 투쟁하거나 필요한 투쟁을 회피해 왔다. 때로는 임금과 인력 수준에서 노동자들 간 존재하는 격차를 ‘완화’하자며,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양보(하향 평준화)를 압박하기도 했었다.

이런 방식은 노동자들의 투지 고양과 단결력 강화를 저해한다.

이번 철도노조 파업이 진행되는 기간에 교사 노동자들이 대정부 투쟁을 재개한다. 두 투쟁이 공동의 적인 윤석열 정부에 맞서 동시에 싸우면 서로를 고무하고 연대하는 효과가 날 수 있다.

철도노조는 규모 있고 조직력이 건재하며, 투쟁 전통이 풍부한 공공부문의 대표 노동조합으로 꼽힌다. 윤석열의 위기를 활용해 투쟁을 지속·발전시키면 양보를 끌어낼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9월 14일 철도노조 파업 돌입 후 상황을 반영하여 증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