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파업 취소:
노조 집행부가 불필요하게 양보하며 화물 파업과 연계되는 것을 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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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탄압이 점입가경이다. 업무개시명령, 대규모 경찰병력 투입과 연행과 구속 협박, 대체수송 차량 투입 등.
이런 조처들의 지시자는 윤석열이다. 윤석열은 생존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국가 재난”, “북핵 위협”과 같다고 막말을 쏟아내며 적개심을 드러냈다.
윤석열은 이번 파업에서 밀렸다가는 안 그래도 생활고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노동 대중과 반윤석열 운동 등에 싸울 자신감을 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면 정부와 사용자들이 단단히 벼리는 경제 위기 고통 전가 공격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화물연대 파업은 현 정세에서 계급간 세력균형의 기울기를 가늠할 중심적인 부분인 것이다. 즉, 단지 화물 운송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노동자 등 서민층의 삶을 지키는 데서도 중요한 고리이다. 윤석열이 강경하게 대응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광범한 연대를 구축해야 할 이유이다.
파업 불발
바로 그 점에서 철도노조 파업이 불발된 것은 무척 아쉽다. 철도노조 집행부는 불필요한 양보 협상을 잠정 타결하고 파업을 철회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화물 노동자들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을 향해 노동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철도를 비롯해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쥐어짜 재정 긴축을 추진하고, 이를 민간부문 전체로 확대하려 한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인력 감축을 추진하고, 임금을 강하게 억제하고, 민영화 추진으로 공공서비스를 망쳐 놓으려 한다.
그러므로 철도노조가 파업 대열에 가세해 정부와 사용자들에 대한 압박을 키우는 것은 철도 노동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파업 개시 예정 시점이 노조에게 불리한 상황도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커지고, 이태원 참사와 연이은 산재 사망사고 등 때문에 안전과 공공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다른 어느 때보다 높다. 매주 만만찮은 규모로 열리고 있는 윤석열 퇴진 촛불 집회는 화물연대 파업을 적극 지지했다. 화물 노동자들은 물류 운송에 일부 차질을 주고 있었다.
철도노조가 함께 싸워 볼 만한 기회였던 것이다.
철도는 육상 화물 운송 부문과 함께 국내 운송 산업의 양대 축이다. 철도노조는 규모 있고 잘 조직된 공공부문의 대표 노동조합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화물연대와 철도노조가 동시에 파업하면, 경제적·정치적 파급 효과도 배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특히 윤석열이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시멘트 부문에서 철도 운송 비중이 큰 점을 고려하면, 철도노조 파업은 물류 운송 중단 효과를 심화시켜 윤석열 정부와 화주(주로 건설 대기업)들에게 강력한 압박이 될 수 있었다. 2013년 철도노조 파업 때 화물연대는 대체수송 거부를 결정하고 조합원·비조합원들의 동참을 적극 조직했었다. 올해 6월 화물연대 투쟁에 철도노조도 대체 수송 거부를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철도노조 집행부는 이런 반윤석열 전선에 함께 서기를 극구 회피했다. 같은 운송 산업의 동료인 화물 노동자들을 십자포화에 남겨둔 것이다. 아마도 윤석열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일일 것이다.
철도노조 집행부의 결정은 건설노조 일부가 화물연대 파업 엄호를 위해 동조 파업에 나선 것과 대조된다. 2013년 철도 파업 때, 화물연대는 시멘트 등의 대체수송 거부 지침을 내고 현장에서 이를 조직했었다.
철도노조 집행부의 결정은 투쟁의 판돈이 커진 상황에서 극도의 보수성과 소심함을 드러낸 것으로 나만 소나기를 피하고 보겠다는 전형적인 조합주의의 발로였다. 이런 일은 또한 자기 조합원들에게도 백해무익하다.
불필요한 양보
철도노조 집행부의 타협은 실익도 없었다. 오히려 불필요하게 임금 등을 대폭 양보해 일부 노동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는 옳게도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고 부결 선동을 시작했다(잠정합의안 찬반투표는 12월 13~15일이다).
잠정합의안은 첫째,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 받은 통상임금을 포기·반납하기로 했다. “총연봉의 3퍼센트 이상의 삭감”이자, 앞으로 매년 예상되는 한 해 약 600억 원의 임금 총액(통상임금 확대분)을 포기하는 “영구적인 임금 삭감”(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이다.
둘째, 성과급 20퍼센트의 단계적 삭감을 사실상 수용했다. 올해는 연봉제 직원들의 인건비를 줄여(연차비) 충당하기로 했는데, 그 당사자 중에는 일부 조합원도 포함됐다.
셋째,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불만을 터뜨려 온 인력 충원 문제는 따낸 게 거의 없다. 잠정 합의안은 “총인건비를 준수한다”고 명시했다. 오봉역 사고에 따른 인력 충원 등 안전 대책 문제도 TF를 구성해 별도 논의하기로 했다.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정부에 인력 충원을 “건의”한다는 공허한 문구만 남았다.
철도노조 집행부는 정부의 강한 인건비 통제를 거스를 수 없었다며 양보를 정당화한다. 단위 사업장 노조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공공운수노조도 못 했다는 것이다.
잘 조직된 철도노조가 정부의 인건비 통제 지침(총액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도전할 수 없다면, 누가 그런 투쟁을 할 수 있다는 말일까. 정권이 바뀌기 전엔 누구도 투쟁할 수 없다는 말인가? 개악을 강요하는 정부에 맞서길 회피해 사실상 그 힘을 키워 주면서 정권 교체는 어떻게 가능할까?
이는 박근혜 정권 퇴진의 도화선이 됐던 2016년 파업의 기억을 스스로 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파업도 2013년 파업의 연장선에 있었다. 대중적 투쟁들의 누적된 효과가 조합원들의 의식과 사기에 영향을 주고, 개혁의 성패와 정치 권력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 반대가 아니라 말이다.
그런 점에서 공공운수노조 지도부가 그동안 인건비 통제 등 공공부문 개악에 반대하는 투쟁을 제대로 이끌지 않았던 점은 뼈아프게 돌아볼 일이다. 철도노조를 비롯해 주요 노조 지도자들도 거기에 책임이 있다. 그러는 동안 노동자들은 임금이 억제되고 인력 부족에 시달려 왔다.
요컨대, 종합적으로 이번 철도 노사 잠정합의는 불가피한 타협이 아니라 불필요한 타협이었다. 지도부의 이런 배신적 타협은 조합원들의 의식과 사기에 백해무익하다.
그래서 화물연대 투쟁을 적극 지지하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철도 잠정 합의에 “잠정 타결을 환영한다”고 발표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철도 합의는 화물연대 투쟁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화물연대 투쟁이 고립돼 패배하면, 정의당이 중점 추진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에도 당분간은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런 모순은 사회민주주의 정치인들과 노조 지도부 사이 정치투쟁/경제투쟁 분업 노선이 실제 투쟁의 진전에 별 보탬이 되지 못하고 때론 역행함을 보여 준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번은 철도 노동자들에게 기회이기도 했다. 만약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면, 더 많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도 총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맞설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연대의 초점을 제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윤석열 퇴진 운동에도 힘이 될 수 있다. 퇴진 운동이 커지면,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윤석열의 공격에 맞서기 더 유리해질 것이다.
“노조 집행부가 싸워 보지도 않고 양보부터 했다,” “백해무익한 합의는 하지 말고 투쟁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