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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증보 | 이렇게 생각한다
4.10 총선을 앞두고 진보당의 더불어민주연합 참여에 대해

진보당이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면서 민주노총 내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연합 참여 정당들은 비례 후보 공천뿐 아니라 지역구에서도 단일 후보를 내기로 했다.

더불어민주연합은 총선이 끝나면 해산할 선거 연합체인데, 고전 마르크스주의 정치 용어로 인민전선이다. 따라서 민주당(과 연관이 있지만) 그 자체는 아니다.

민주당이 기업주들의 이익을 완전히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국민의힘같은 우파 정당은 아니다. 지배계급은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얻어 친기업적 정책들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민주당도 친자본주의 정당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민주당은 한국 지배계급의 세컨드 초이스이지만, 한국 자본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경제를 효율적으로 개량(“개혁”)하고 싶어 하는 종류의 친자본주의 정당이다.

그러므로 노동자 정당인 진보당이 민주당과 전략적으로 연합하는 것은 계급 협력주의로서, 노동운동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출처 용혜인 의원실

진보당은 전통적으로 계급 동맹 전략(진보적 포퓰리즘, 즉 민중주의)을 추구해 왔다. 이 전략은 노동계급만으로는 미국과 우파 세력에 맞설 수 없으므로 중간계급(과 가능하다면 심지어 지배계급 일부)과 힘을 합쳐야 한다며, 특히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체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낮은 단계의 민주대연합). 민주대연합의 완결판은 민주당과의 연립정부(‘자주적 민주정부’)이다.

그러나 이런 계급 협력 노선으로는 오늘날 노동계급의 삶과 운동에 필요한 개혁을 성취할 수 없다.

지금 같은 심대한 위기의 시기에는 기성 질서에 도전하지 않으면 그러한 개혁을 성취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당은 결코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는커녕 민주당은 친자본주의 정당으로서 (노동계급에 유리한 개혁보다) 기업주들의 이윤을 보호하는 데 더 주안점을 둔다.

그래서 민주당은 노동계급의 생계비 위기 해결, 서민 복지 확충 등에 필요한 사회경제적 요구들을 중심에 놓고 윤석열 정부와 대결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자신들을 향해 정치적 억압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에는 “검찰 독재”라며 반발하지만,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놓고는 정부·여당과 차별화되는 정책들을 거의 제출하지 않고 있다. 노동계급의 고통과 불만을 진심으로 대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 심판 정서가 높은데도 민주당 지지가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진보당이 민주당과 전략적으로 동맹을 맺으면, 앞서 언급한 개혁의 범위·목표뿐 아니라 개혁의 수단·방법도 제약받거나 스스로 제약할 것이다. 진보당이 민주당과 동맹을 유지하려면, 민주당을 불안하게 만들 수위로 올라가는 계급 투쟁은 안 된다는 압력을 이전보다 더 많이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건대, 높은 수위의 계급 투쟁 없이는 작은 개혁도 성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점에서 노동자 대중 정당인 진보당의 계급 협력 행보는 기회주의적이고 개혁(개량)주의적인 것이다.

진보당은 야권연대로 의석을 늘릴 수 있을 것이지만, 그 대가로 진보당은 급진적 투쟁을 자제하는 분위기, 기층 투쟁보다 상층 협상을 중시하는 개혁주의적 정치를 노동자 운동에 더 보편화하려 할 것이다. 비록 진보당의 노동자 운동 통제력이 1930년대 스탈린주의 공산당들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지만, 급진적 좌파(혁명적 좌파를 포함한)의 영향력이 미약해, 안심할 수는 없다.

노동자 정당의 의석 확대가 아무 쓸모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동자 투쟁의 전진에 이바지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 꼭 민주당과의 선거연합방식을 취해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생계비 위기 등에 맞선 노동자 투쟁을 정치화(전면화)하고 반정부 대중 투쟁을 건설하는 길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훨씬 중요한 과제다.

민주노총의 진보당 지지 철회 운동에 대하여

현재 한상균·이갑용·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들을 필두로 ‘민주노총 진보당 지지 철회’ 서명 운동(이하 서명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한 진보당에 대해 민주노총이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지난해 9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총선 방침을 위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당시 결정 내용은 다음 같다. “민주노총은 친자본 보수양당 지지를 위한 조직적 결정은 물론이고 전현직 간부의 지위를 이용하여 친자본 보수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대의원대회에 제출한 해설에 따르면,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과 위성 정당이 “친자본 보수양당” 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결정이 민주노총의 진보당 지지 철회 근거가 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답한다면 동일시하지 말아야 것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결정을 집행할 주체는 민주노총이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진보당은 다른 조직이다. 또, 진보당과 더불어민주연합도 다른 조직이다. 더불어민주연합은 한시적 선거연합체이다.

서명 운동 측은 “위성정당에 뛰어든 진보당은 진보정치의 길을 벗어났다”고 주장한다.

야권연대 때문에 진보당이 좀 더 기회주의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당의 그릇된 전략을 이유로 노동자들은 진보당 지지를 철회해야 하는가? 잘못된 전략이 지지 철회의 근거라면 그 기준을 통과할 진보 정치 세력이 얼마나 있을까?

진보당이 더는 “진보 정치” 세력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옳은 주장이 아니다.

개량(개혁)주의적 노동자 정당이 개량주의적 전략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 당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정당의 성격을 분석하려면 그 당의 사회적 기반을 우선적으로 봐야 한다.

그렇게 봤을 때, 진보당은 여전히 좌파 노동조합(민주노총)의 간부층 다수에 기반을 둔 개혁주의적 노동자 정당이다.

민주노총 조합원 중에도 진보당 당원들이 매우 많이 있다. 수십만 명의 개혁 염원 대중이 선거 때 진보당에 투표한다. 이들과 진보당 지도자들의 정치적 유대감은 십수 년 동안 맺어 온 관계다. 이런 관계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지지 철회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청산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못 미더워하면서도, 윤석열 정부의 반동적 공격에 조금이라도 제동을 걸려는 소극적 동기와 대안 부재감 속에서 야권연대에 투표하려는 조합원들도 있다.

따라서 진보당을 지지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시도는 이번 총선에서 진보당이나 진보당이 포함된 야권 연합 정당에 투표하려는 개혁 염원 대중과의 소통을 어렵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의 대중이 바로 선거 이후에 윤석열 정부의 공격에 맞서 함께 저항해야 할 동료들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진보당이 민주당이나 다름없다고 매도하는 것은 어쩌면 공개적인 진보당 지지·가입 캠페인을 금지하고, 진보당 당원인 노조 간부나 조합원들에게 당적을 포기하라는 압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정치적 자유를 존중해야 하는 노동자 운동 속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사실 정의당이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의 위성 정당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 후보를 냈지만(옳은 결정이었다) 그것이 곧 민주당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자주성)을 뜻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 봄직하다.

녹색정의당, 민주노총 지도층의 좌우파 모두 문재인 정부와의 (비판적) 협력 노선,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보다 위로부터의 개혁 중시 노선이 낳은 문제점들에 대한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유독 선거연합 방식을 두고 지지 철회까지 요구하는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로 투쟁보다는 선거를 더 중시해서일까 하는 의심도 든다.

어떤 좌파 단체는 민주당과 연대한다는 이유로 진보당뿐 아니라 녹색정의당도 노동자들이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대중 투쟁이 윤석열을 패퇴시키고 개혁을 성취하는 데서 정말로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들이라면, 그동안 좌파 정당들에 투표해 오던 수십만 노동계급 사람들의 의식과 염원을 고려해야 하고 그들을 후진적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그들을 투쟁 속에서 단결시키기 위한 전술을 추구해야 한다.

일찍이 러시아 혁명을 승리로 이끈 혁명가 레닌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노동계급 다수의 견해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는 혁명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변화는 대중의 정치적 경험으로써 창출되는 것이지 선전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선거·투표 전술 문제에서 핵심은 좌파가 대중의 변화하는 의식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이냐의 문제다. 변별적 표지에 못 미친다며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자신의 투쟁 경험 속에서 의식과 조직을 제고하려고 하는 전술이다.

맺으며

지금 시기는 반윤석열 기치만으로 부족하고 더 급진적인 사회경제적 요구와 투쟁들이 필요하다. 진보당과 녹색정의당의 실천이 그런 필요와 염원에 부응하지 못해 왔지만, 그런 대안 제시와 투쟁이 필요하다고 보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다수가 (썩 만족스러워하지 않음에도) 이들 정당에게 투표할 것으로 보인다.

진보당 이외의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서 더불어민주연합에 표를 던지려 하는 사람들을 그냥 의식이 없는 사람들인 듯 취급하며 내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런 가르치는 태도는 앞으로 투쟁 속에서 함께해야 할 사람들을 소원케 만들 것이다. 진보당계 노동자들의 반윤석열 정서에 공감하면서 장차 투쟁 속에서 함께할 수 있는 유대감을 쌓아 놓는 게 필요하다.

지역구는 좀 덜 복잡할 것이다. 가령 울산 북구의 경우 야권연대 후보이지만 윤종오 진보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와 당선을 겨루고 있고, 윤석열 정부에 반대하는 현대자동차 등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표할 것이고, 윤종오 후보의 당선은 그들에게 사기와 자신감을 조금이라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체제의 다중 위기 속에서 지배계급이 우경화하는 요즈음 전국적 선거 승리조차 개혁을 보증할 수 없다. 그것이 박근혜 탄핵 이후 노동계급이 겪은 쓰디쓴 경험이기도 하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배자들은 노동계급을 공격할 것이다. 선거를 둘러싸고 지나친 반목과 갈등을 쌓기보다는 선거 이후 공동의 저항을 구축하는 것을 놓고 유대와 연대를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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