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교정판)
민주노총 일각의 진보당 총선 지지 대상 배제 운동을 지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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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기 전에 “[개정 증보 | 이렇게 생각한다] 4.10 총선을 앞두고 진보당의 더불어민주연합 참여에 대해”를 읽으시오.
혁명적 좌파는 자본주의하의 선거(와 특히 투표)를 대중 투쟁에 견줘 부차적 문제로 본다. 지배계급 자신이 자체 내 경쟁을 위해 선거를 중시할 뿐, 노동계급 등 천대받는 사회집단들과 관련해서는 선거를 진실로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은 자신에게 편리하면 선거와 투표를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2011년 11월 1일 파판드레우 당시 그리스 총리는 유럽중앙은행(ECB), IMF와 합의한 ‘구제금융 계획’(진실을 말하면, 가혹한 긴축 프로그램)을 국민투표에 부칠 것이라고 발표했다가 자본가들, 언론,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 등이 분통을 터뜨리며 격렬히 반발하는 바람에 이틀 후 국민투표안을 철회했다. 파판드레우는 일주일 후에 물러나고, 선출되지 않은 테크노크라트(전문관료) 루카스 파파디모스가 신임 총리가 됐다.
또한 친자본주의 정치인들은 선거 공약 저버리기를 마치 식은 죽 먹기처럼 한다. 그러나 “촛불 정부”와 진보 성향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많은 공약 불이행을 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물러난 지 2년밖에 안 됐지만, 친문계 정치인들과 언론인들, 조국 전 법무장관은 대중을 마치 기억상실증 환자 취급을 한다. 물론 국힘 정치인들이 거짓말과 약속 위반을 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자본주의하의 선거와 투표가 혁명가들에게 원칙 문제가 아니라 전술 문제임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1987년 이래로 많은 좌파들이 마치 민주당 투표 여부가 좌/우파를 나누는 근본 기준이라도 되는 양 열과 핏대를 올렸지만, 그들 중 적잖은 수가 민주당으로 가거나 심지어 국힘과 그 전신 정당으로 간 경우도 있다. 또는 민주당과 무비판적 동맹을 했던 일도 있다.(그랬다가 그런 “연대·연합”을 거부하고 독자 노선을 걷는 좌파 정치인과 정치 조직들도 있다.)
그러나 혁명적 좌파에게 선거와 투표는 원칙이 아니라 전술 문제로, 그 전술을 통해 광범한 대중이 싸울 자신이 있게 되고 사기가 오르게 되는 게 핵심적 주안점이다.
그래서 혁명가들은 선거와 투표를 앞두고 후보 개인보다는 후보 주위에 결집한 정치 세력과 그 세력에 일정한 신뢰를 갖고 있는 부분의 대중에게 주목한다.
물론 이들보다 더 좌파적이거나 투쟁적인 정치 세력이 선거에 나오고 대중이 그들을 지지할 경우에는 그들에게 연대해야 한다. 특별히 그런 ‘대중’(수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언급하는 이유는 단지 종파적인 정치 조직(들)이 매우 소규모 지지에도 불구하고 좌파성이나 급진성, 투쟁성을 앞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노총의 일부 좌파들은 지난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결정에 기초해, 그리고 몇몇 전임 위원장들을 앞세워 민주노총이 이번 총선에서 진보당 지지를 철회하라고(그래서 “민주당 위성정당”에 투표해선 안 된다고) 요구하는 운동을 펴고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연합은 이재명 말대로 “민주당의 준위성정당”이기는 해도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점은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많은 좌파적·반제국주의적 활동가들이 다수 참여한 조직이라는 점이다.
혁명가들은 당연히 이들의 민주당 관련 입장과 대책, 방침이 그릇됐다고 본다. 이들의 정치가 민주당이 설정한 수위 아래로 작용하는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 투쟁을 경제주의적·부문주의적 한계 안에서 지지하거나, 설사 정치적인 성격을 띨지라도 그 실제 효과는 선전·선동의 차원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녹색정의당은 이와 다를 것인가? 심지어 노동당은 얼마나 다를 것인가? 우리는 이장우 노동당 후보가 외국인 노동자를 제한하자는 민족주의적 정책에 동의한 것을 비판했다. 사실 노동당은 급진 좌파에 속하기는 해도 역사적·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정당이지, 혁명적 좌파 정당이 아니다.
그리고 현재 진보당 지지 철회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전현직 민주노총 간부들은 혁명적인가?
그런데도 대중의 현재 의식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좌파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선거와 투표 방침을 제시하는 것은 종파주의적 태도일 것이다.
우리는 현 시기에 걸맞은 선거·투표 방침은 진보당을 배제하지 않고 (녹색정의당이나 노동당은 물론 포함해) 범좌파 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노동자들에게 권유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연합에 투표하는 것을 기피할 수 없다. 트로츠키는 1936년경 프랑스와 스페인의 민중전선(현대적 용어로 초계급적인 국민 연합)을 혹독하게 비판했지만 민중전선에 투표하지 말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투표(선거 지지의 핵심) 방침을 해당 정치 조직의 노선이나 전략과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진보당이나 더불어민주연합의 강령이나 전략, 노선 등을 보고 그들을 지지하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다. 지배계급과 우익 정당 국힘에 맞서 그 정당 또는 정당연합(전선체)이 이기기를 기대하는 수많은 노동계급 진보(사회 개혁) 염원층에게 연대하기를 진지하게,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결정보다 중요한 것은 훨씬 광범한 노동 대중의 염원과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