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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수전 니먼 지음, 홍기빈 옮김, 생각의힘, 2024):
차별받는 사람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중도좌파

최근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이하 《워크》)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수전 니먼이라는 미국의 도덕철학자이자 문화평론가가 썼다. 저자는 이 책을 “철학서”로 소개했다. 칸트 계몽주의의 입장에서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미셸 푸코를 비판한다. ‘워크’를 지지하는 사람 중에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칸트도 물자체(본질)을 인식할 수 없다는 회의론적 주장도 폈기 때문에 두 사상이 상극인 것만은 아니다. 칸트는 보수나 우파적 인물은 전혀 아니고, 그가 한 말인 “인간을 한낱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소외론에서 볼때 감동적인 말이다.

그러나 아래에서는 칸트 철학 논의에 집중하지 않고, 워크 비판자들의 정치를 주로 다뤘다.

이 책은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 옮겼다. 장석준 정의당 정책연구소 전 소장은 추천사를 썼다. 그는 이 책을 “길 잃은 21세기 좌파에게 벼락 같은 깨침의 선물”이며 “세상을 바꾸는 운동의 재출발을 열망하며 고뇌하는 이들의 필독서”라고 평했다. 역자와 추천인은 정치적 목적으로 이 “철학서”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워크(Woke, 의식 있음)’는 차별과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한 각성을 뜻하는데, ‘정치적 올바름’과 엇비슷한 의미로 많이 쓰인다.

최근 트럼프는 재선하면 “너무 의식 있는(too woke)” 학교에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미국 플로리다 주지사 티샌티스는 이미 플로리다 내 주립대학교들에서 비판적 인종이론 수업을 금지하는 ‘워크 방지법(Stop Woke Act)’을 제정한 바 있다(위헌 판결로 시행 중지됐다).

우익의 공격에 맞서 좌파는 워크를 방어해야 한다. 차별과 부당함에 맞서 “의식 있는” 것은 중요한 가치이고, 여성·성소수자 차별 언사를 함부로 내뱉지 못하는 문화는 억압이긴커녕 권장돼야 할 일이다.

물론 워크의 방법으로 알려진 것 중에는 비효과적이거나 때로 역효과를 불러오는 것들이 있다.

가령 차별적 함의·의도가 없는 말일지라도 과도한 잣대를 들이대 응징하기, 문제적 주장(이견일 수도 있다)을 한 인물·단체를 (범좌파에 속하는데도) 캔슬하기, 피해자 말에 대한 확증편향, 배타적 정체성 정치(이 책에서 “부족주의”라고 부르는 것) 등.

특히, 워크가 특정 표현이나 주장을 두고 토론과 논쟁이 아니라 행정적 규제·검열 도입을 지지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방식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우파와 억압적 국가기구에 이용당할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가령 많은 나라의 혐오표현금지법은 이스라엘 비판과 같은 정당한 주장까지도 유대인 혐오로 몰아 탄압한다.)

《워크》의 저자도 트럼프, 모디, 네타냐후를 거론하며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엄중한 역사적 시점이다. 무엇이 차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진보주의자들끼리 서로를 무시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런 문제는 미국에서 심각하게 나타났지만, 이제는 상당히 국제적인 현상이 됐고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워크 비판

워크 열기가 한숨 가라앉은 후 최근엔 진보 진영 내에서도 워크의 과도함에 대한 일정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특히 중도좌파나 자유주의 경향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근래 출간된 책들, 《정치적 올바름: 한국의 문화 전쟁》(강준만, 2022), 《플레이밍 사회 - 캔슬 컬처에서 해시태그 운동까지 그들은 왜 불타오르는가》(이토 마사아키, 2023), 《잘못된 단어 – 정치적 올바름은 어떻게 우리를 침묵시키는가》(르네 피스터, 2024)도 그런 경우다.

각각 강조점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은 워크의 도덕주의가 사람들의 반감을 사고 운동을 분열시켜 트럼프와 같은 우익의 부상에 일조한다고 보고 이에 상당한 우려를 표한다.

홍기빈 소장은 《워크》 북토크에서 지인인 벨기에 저술가가 SNS에 올린 글 하나 때문에 캔슬당한 사례를 언급하며, 워크의 해악이 한국에서는 아직 심각하지 않지만 “방역”을 위해서 이 책을 번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기빈 소장이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몰라도 한국에서도 여러 사례가 있다. 특히, 민주노총 중앙 관료들이 노동자연대가 성폭력 피해호소인 측의 비방을 반박하거나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공동 진상조사를 제안한 것을 두고 ‘성폭력 2차가해’라며 연대 단절을 선언하고, 얼마 전 세계 노동절 집회 때 사회자가 〈노동자 연대〉 신문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이다.(물론 조합원 상당수가 그럼에도 〈노동자 연대〉 신문을 구입했다.)

그러나 중도좌파의 관점에서의 워크 비판은 중요한 한계가 있다.

그들은 워크의 과도함을 비판하면서 워크에 함축된 정당한 합리적 핵심마저 반대한다.

예컨대 저자 니먼은 ‘흑인목숨도소중하다(BLM)’ 운동이 내세운 경찰 예산 삭감 요구를 비판한다. 하지만 그 요구는 가난한 사람들과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잔혹한 폭력을 일삼는 경찰의 재정을 대폭 삭감해 독소를 제약해야 한다는 것으로, 취지가 정당하다.

저자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하마스 방어를 워크로 치부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마스에 대해서는 홍기빈 소장과 장석준 씨도 저자와 같은 입장이다. 최근 장석준 씨는 〈프레시안〉에 미국 대학 캠퍼스 점거가 제2기 트럼프의 등장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터무니없이 썼다.

하마스의 무장 투쟁은 이스라엘 식민 지배 체제를 물리치는 데서 불가피하다. 현재 가자지구에서 인종 학살이 벌어지는 와중에, 칸트식 정언명령적 평화주의는 완전히 무력할 뿐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는 반동적일 수 있다.

현재 벌어지는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영감을 주는 이유는, 그 운동 참가자 다수가 그저 ‘국제 사회’의 중재에 기대거나 팔레스타인인들을 동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적극 지지하는 급진성이 있기 때문이다.

홍기빈 소장은 북토크에서 심지어 “워크는 파시즘”이라며 한국의 워크의 한 사례로 남성 일반과 난민을 배척하는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를 지목했다. 물론 남성과 난민을 혐오하는 분리주의 페미니즘의 정치와 전략은 문제다. 하지만 이들이 2018년에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여성운동(불법촬영 항의 운동)을 이끌며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과 위선을 예리하게 폭로했음에 비춰 볼 때 파시즘 딱지를 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늘날 워크 운동은 좌우를 넘나들고 혼란스럽지만, 무능한 중도와 이들이 존중하는 자유주의 정치체제(그 “국제 질서”도)에 대한 반감이자 항의의 측면도 있음을 봐야 한다.

인민전선 즉 좌파와 자유주의 세력의 연합

타리크 알리가 말한 “극단적 중도”(대표적 인물로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토니 블레어, 앙겔라 메르켈, 에마뉘엘 마크롱, 한국의 문재인)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킴으로써 대중의 삶을 악화시켰다. 바로 이로 인한 불만과 고통, 혼란, 환멸을 먹고 오늘날 극우가 자랐다. 워크 때문에 극우가 성장한 게 아니다.

저자는 극우와 파시즘에 맞서 바로 이 “극단적 중도”와 전략적 동맹을 추구하는 “인민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며 책을 마무리한다. 홍기빈 소장과 장석준 씨도 북토크에서 인민전선을 옹호했다.

이들이 워크의 대안으로 삼는 “보편주의”(인권, 정의, 진보)는 결국 극우와 급진좌파를 모두 반대하는 중도우파와 중도좌파의 연합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워크는 좌파가 아니”라거나 나아가 “워크는 파시즘”(홍기빈)이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할 뿐 아니라, “극단적 중도”와 그를 추수한 일부 좌파의 책임을 엉뚱한 데로 전가하는 것이다.

장석준 씨는 북토크에서 정의당 내 일부 페미니스트가 워크 요소를 가졌음을 인정하며 특히 이들의 “센세이셔널리즘” 때문에 정의당이 “발전적 대중 정치 정당이 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페미니즘을 대표했던 류호정 전 의원, 장혜영 의원 등은 미투 지지와 정치적 올바름, 피해자 중심주의에 균형이 안 맞게 경도돼 자주 도덕주의적 태도를 드러냈다. 이것은 분명 정의당이 가진 문제의 일부였다.

이 문제가 가장 뜨거웠을 때 장석준 씨를 포함한 정의당 좌파들의 유의미하거나 적절한 비판은 없었다.

그러나 정의당의 실패는 이 문제로 축소될 수는 없다. 정의당 지도부는 문재인 정부 집권 전반부의 3분의 2를 문재인 정부를 (전략적으로) 지지해 개혁을 성취하려는 노선에 매진했고, 그 뒤에도 소심하고 온건하게 행동했다.

무엇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정학적 위기와 경제 불황 등에서 파생된 많은 첨예한 쟁점에서 위기의 깊이에 걸맞은 급진적 대안을 제시하기를 회피함으로써, 좌파 일반의 정치 발전에 일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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