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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현대의 혁명적 고전 반열에 들 반제국주의 저작

프란츠 파농은 프랑스령 식민지에서 태어난 흑인으로 1950~60년대 알제리해방전선(FLN)에서 활동한 혁명가이자 프랑스의 식민 지배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료해 준 정신과 의사였다.

인종차별과 식민주의, 자본주의의 관계를 밝혀내고자 한 파농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흑인 평등권 운동에 뛰어든 많은 청년과 활동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지난해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분출한 이후 이스라엘과 제국주의에 맞서는 데서 도움을 얻기 위해 파농을 읽는 청년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책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결코 보아 넘길 수 없는 약점도 있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프란츠 파농 지음, 그린비, 328쪽, 15,900원

식민지와 폭력

파농은 민족 해방 운동 투사인 고문 피해자들을 치료한 의사로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악랄한 폭력을 직접 경험하며 폭력에 관한 논의를 발전시켰다.

“식민지에서 정착민과 그 억압적 지배를 공식적으로 대변하고 중재하는 것은 경찰과 군인이다.

“폭력은 식민지 세계의 질서를 지배한다.

“식민지 체제는 무력으로 정통성을 유지하며, 그런 실태를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파농은 폭력으로 가득한 식민지에서 원주민과 정착민의 “화해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파했다.

“정착민은 언제나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저[원주민]들은 우리[정착민]가 사는 곳을 빼앗고 싶어 해.’ 그건 사실이다.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이라도 정착민의 거처에서 살기를 꿈꾸지 않는 원주민은 없으니까.

“그[원주민]는 비록 억압을 당할지언정 길들여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원주민이 잠들어 있거나 잊으려는 성향을 다소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정착민의 오만한 태도와 식민지 제도의 힘을 시험하려는 시도는 원주민에게 최후의 결전이 무한정 연기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시시각각 일깨워 준다.”

소총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정착민

파농은 식민주의의 폭력적 본성을 들춰내는 데서 더 나아가, 그 자체로 거대한 폭력인 식민 지배에 맞서려면 폭력 저항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피착취자는 해방을 이루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폭력은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면서 파농은 식민 지배자들의 폭력과 피억압 원주민들의 폭력이 동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원주민이 대항 폭력의 방법을 선택한 순간부터 경찰의 보복은 자동적으로 시작되고, 이는 또한 [피억압] 민족주의자들의 보복을 부른다. 그러나 그 결과는 동등하지 않다. 비행기의 기총 소사와 함대의 포격은 질과 양에서 원주민이 할 수 있는 폭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알제리 독립 전쟁을 다룬 명작 영화 〈알제리 전투〉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바구니에 폭탄을 숨겨 정착민들을 살해하는 방식이 비겁하지 않느냐고 비난하는 프랑스 기자에게 체포된 알제리해방전선 투사는 이렇게 응수한다.

“네이팜탄으로 민간인 마을을 공격해서 수천 명을 죽이는 게 더 비겁한 짓 아닌가? 비행기가 있으면 우리도 수월할 것이다. 당신네 폭격기를 주면 우리 바구니를 주겠다.”

폭력에 관한 파농의 주장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폭력 저항을 향한 제국주의자들의 위선적 공격을 훌륭하게 반박한다.

“독립의 저주”

파농은 알제리 해방을 위한 교훈을 얻고자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탈식민 국가들을 살펴봤다. 파농은 민족 해방 운동 지도자들이 권력을 잡은 뒤 부패하고, ‘민족 부르주아지’가 지배계급이 돼 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것을 봤다.

“민족 부르주아지는 서구 부르주아지 기업인들의 역할을 떠맡은 것에 크게 만족하고 온갖 거드름을 떨면서 그 역할을 수행한다.

“민족 부르주아지는 점점 더 자기 나라 오지의 사정과 저개발국의 참된 현실에 등을 돌리면서, 예전의 [식민] 모국과 외국인 자본가들을 지향한다.

“독립을 이루고 나면, [민족 해방 운동의] 지도자는 빵과 토지를 달라는 민중의 요구를 외면하고, 나라를 민중의 신성한 손에 맡기는 대신 자신의 숨은 목적을 드러낸다. 그것은 바로, 민족 부르주아지라는 이름 아래 각자 자신의 몫을 찾으려 애쓰는 모리배들이 세운 회사의 회장으로 취임하는 것이다.”

이는 파농 자신이 몸 담고 있던 알제리해방전선에 보내는 경고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알제리 독립 이후 파농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알제리해방전선은 알제리의 지배계급으로 올라섰고, 반제국주의 투쟁의 역사를 내세워 자신들의 억압적 지배를 정당화했다.

농민에 대한 환상

파농은 식민주의의 본질을 훌륭하게 밝히고 민족 해방 투쟁이 빠질 수 있는 함정(“독립의 저주”)을 경고했지만, 그에 맞서 그가 제시한 해방의 대안에는 중대한 약점이 있었다.

파농은 해방을 쟁취할 혁명적 세력에 대해서 오판했다. 그는 도시 노동계급이 체제에 ‘매수’됐다는 편견을 받아들였다. 그는 식민지 노동계급도 “식민지 체제로부터 커다란 수혜를 입은 계급”이라고 봤다.

그래서 파농은 노동계급이 아닌 농민에 주목했다.

“식민지 나라에서 유일하게 혁명적인 세력은 농민이다. 그들은 잃을 게 없고 얻을 건 전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농민은 투쟁에 나설 수 있다. 때로는 매우 격렬하게 투쟁한다.

그러나 농민은 각기 자기 토지 소유에 이해관계가 얽매여 있어 노동계급과 달리 집단적 힘을 발휘할 수 없고, 그 결과 자본가들의 이윤에 타격을 줄 수 없다.

알제리에서조차 노동계급은 중요한 투쟁을 벌였다.

1953년 알제리 부두 노동자들은 베트남으로 가는 전쟁 물자 운송을 거부했다. 그해 알제리에서는 노동자 27만여 명이 220건 이상의 파업에 참가했다. 1960년 알제리 전역의 도시에서 분출한 대규모 노동자 시위는 프랑스 제국에 결정타를 먹였다.

1945년 이후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등 여러 제3세계 나라에서도 노동계급의 급진화와 투쟁의 물결이 있었다.

파농 사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서 핵심적 구실을 한 것도 노동계급의 거대한 투쟁이었다.

농민과 무장 투쟁을 혁명적으로 본 파농의 입장은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마오주의에 가까웠다.

그런데 파농이 노동계급과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농민에 이끌렸던 것은 나름의 맥락이 있었다.

프랑스 좌파의 문제

파농은 노동계급에 기반을 둔 프랑스의 주요 좌파 정당들이 알제리 해방의 대의를 지지하지 않은 것에 분노했다.

프랑스 사회당은 알제리 문제에서 반동적이었다. 알제리 전쟁 당시 집권해 있던 사회당 정부는 알제리 민족 해방 투쟁을 공격했다. 베트남에 이어 알제리까지 잃으며 프랑스 제국주의가 약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사회당 총리 기 몰레는 알제리해방전선을 분쇄할 때까지 알제리 전쟁을 계속하자고 주장했다. 기 몰레가 알제리 총독으로 임명한 라코스트는 대대적 고문을 벌이며 알제리인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사회당 정부는 영국·이스라엘과 공모해 1956년 이집트를 침략하기도 했다.

기 몰레는 1957년 프랑스 사회당 당대회에서 매우 역겹게도 마르크스주의의 용어를 써 가며 제국주의 정책을 옹호했다. “우리가 후회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따라 [수에즈] 작전을 완수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프랑스 공산당도 알제리 민족 해방 운동 지지를 거부했다. 프랑스 공산당은 1930년대 인민전선 전략 채택 이후 강한 애국주의를 표방하며 프랑스 국가를 지지·옹호해 왔다. 알제리가 독립 후 소련이 아니라 미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갈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스탈린주의 공산당은 말로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들먹였지만, 마르크스와 레닌이 주장하고 실천한 진정한 혁명적 원칙을 내다버렸다.

영국 노동계급이 아일랜드인 억압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한 마르크스나, 혁명적 좌파가 반제국주의 민족 해방 투쟁에 연대해야 함을 주장한 레닌이 알제리 독립 투쟁을 지원하지 않은 프랑스 공산당을 봤다면 뭐라고 했겠는가.

알제리 해방 투쟁에 연대한 트로츠키주의 등 일부 혁명적 좌파가 프랑스에 존재했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소수였다.

노동계급에 대한 파농의 입장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당과 프랑스 공산당이 프랑스 노동계급 투쟁과 알제리 민족 해방 투쟁이 만날 가능성을 걷어차 버린 것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은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치적 리더십으로 입증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주의 원칙으로 무장한 혁명적 좌파의 과제이다.

제국주의를 끝장내려면 제국주의의 뿌리인 자본주의를 무너뜨려야만 한다. 그러려면 노동계급의 힘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중요한 약점이 있지만,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의 끔찍한 폭력에 분노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볼 만한 명저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실제 민족 해방 투쟁들의 역사를 떠올리며 읽는다면 더욱 유익할 것이다.

1958년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연설하는 프란츠 파농

“더 큰 폭력”이 대안일까?

파농은 식민주의를 물리치려면 “더 큰 폭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모든 것은 무기의 분배에 달려 있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폭력을 동원해 저항에 나선다면 마땅히 지지해야만 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 저항이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고무하고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뗏 공세가 거대한 반전 운동을 자극했듯, 피억압자들의 무장 저항은 강력한 연대를 촉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피억압자들은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군사력을 능가할 무장을 갖출 수 없다.

하마스의 군사 조직 알카삼 여단은 가자지구에서 영웅적 무장 저항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사 강국 이스라엘을 무장 저항만으로 꺾는 것은 불가능하다.

군사력 증강을 가장 중시하면 무기와 재정을 지원받기 위해 운동의 친구가 아닌 세력에 의존하게 될 위험이 생긴다.

예컨대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의 경우, 무장 투쟁을 최우선에 두면 제국주의 질서의 수혜자·수호자들인 주변 아랍 정부들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

반면 제국주의의 뿌리인 자본주의 이윤 체제를 타격할 수 있는 노동계급의 고유의 힘을 간과하게 된다.

제국주의에 맞서는 폭력 저항은 무조건 지지해야 하지만, 노동계급 대중의 광범한 투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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