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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동맹:
농민, 농민 계급, 그리고 노동 계급

[편집자 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 내에서 대선 후보 선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이 잡지의 관련 기사를 보시오.) 논쟁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와 농민의 관계다. 정현찬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농민들은 민주노동당 강령에 동의할 수 없다.” 하고 말했다. 즉, “노동”이 중심 구실을 하는 민주노동당이 아닌 다른 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민의 계급적 성격, 사회 변혁의 주도 세력, 노농 동맹의 가능성 문제를 살펴본다.

대부분의 세계에서 농민은 주요한 사회 계급이다. 농민(peasant)과 자본가적 농장주(farmer)는 구별해야 한다. 미국과 영국 같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에서 농업은 자본주의적 기업이다. 대기업을 운영하는 대토지 소유자들이 대체로 농업을 지배한다. 그들은 공장주나 다국적 기업들처럼 농업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농업 생산은 선진국과는 다르다. 개도국의 농업 생산은 주로 농민에 의존한다. 이런 나라들에서 농민은 작은 땅뙈기를 경작하거나 자신의 생산물을 지주에게 갖다 바쳐야 한다.

인도, 중국, 중동과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나라들에서 보듯이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지금도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 1천 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민이었다. 농촌의 변화 속도는 도시에 비해 확실히 더뎠다. 사람과 기술 혁신은 도시에 집중됐다.

그렇다고 농민의 삶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 시장의 창출과 함께 자본주의가 확산됐다. 자본주의의 확산은 산간 오지에 살고 있는 농민의 생활 방식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농민은 점점 더 세계적인 규모로(예전처럼 지방적 규모가 아니라) 판매되고 교환되는 농작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농업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다국적 기업들이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될수록 싸게 생산물을 사들여 비싼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했다.

자본주의는 다른 생활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18~19세기 영국에서 공장과 광산과 제분소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었다. 오늘날 개발도상국들에서도 그 비슷한 과정이 벌어지고 있다. 테헤란·리우 데 자네이루·방콕·멕시코 시티·알제리·카이로·라고스·봄베이 같은 도시들은 지난 20년 동안 급속하게 성장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날마다 16만 명이 더 나은 일자리와 삶을 기대하며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그 결과 대기업들이 점점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게 된다. 브라질 농촌에서 가장 격렬한 저항 운동은 정착 소작농이 아니라 “무토지 노동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생산 때문에 농촌은 세계 시장의 상품 가격 변동에 연동됐다. 그리하여 도시의 자본주의 기업들에 맞선 투쟁에서 농민과 노동자 들은 더한층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됐다.

농민층의 분화

한편, 토지를 둘러싼 농민층의 분화가 심화하고 있다. ‘농민'이라는 용어는 언제나 상이한 범주들을 포괄했다. 그래서 농업 문제의 핵심은 사회적으로 분화된 상이한 농민층들이다. 오늘날의 제3세계나 신흥 공업국(한국을 포함한)에서도 사회적으로 분화된 상이한 농민층들이라는 문제가 핵심 쟁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일반으로 ‘농민’에 대해 얘기할 때는 다양한 형태의 비자본주의적 또는 비사회주의적 농업 생산을 가리키기 위함이다. 농민의 농업은 마르크스의 용어로 말하면 소상품생산이다. 소생산자인 농민은 생산 수단을 보유(소유권 여부와 관계 없는)하고, 자신의 노동으로 그 생산 수단을 사용한다. 농민 노동력과 농민 생산 수단 사이의 관계만으로도 농민 농업의 특징을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농민층들은 역사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다양한 생산 양식 내에서 존재해 왔다. 유물론은 농민층들이 처해 있는 생산 양식과 그 생산 양식 특유의 생산력·생산관계를 고려하면서 농민층들을 분석하려 한다. 농민층들은 자율적 존재가 아니라 기존 농촌 계급 구조의 일부다.

이 농촌 계급 구조 속에서 빈농은 프롤레타리아의 지위로 전락할 조짐을 보인다. 부농은 자본가 계급으로 바뀔 수도 있다. 중농은 전형적인 영세 소농민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들은 약하게 발전할 수도 있고 강력하게 발전할 수도 있다. 그리고 완전히 발전된 자본주의적 농업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한편으로 임금 노동자 계급과, 다른 한편으로 자본가적 농장주를 농민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한다면 돌이킬 수 없이 농민은 해체돼 앞의 두 계급들 가운데 하나로 바뀔 테지만, 경제가 후진 상태에 있으면 농민은 그 계급들과 완전히 따로 존재할 것이다. 또한 지주 계급과 농민을 구별해야 한다.

순전한 임금 노동자는 생산 수단과 분리돼 있다. 그는 생산 수단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생계 수단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농민은 생산 수단과 분리돼 있지 않다. 그는 토지를 잃었을 수도 있고 앞으로 더 잃을 수도 있다. 즉, 그는 빈농일 수도 있고 앞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토지와 생산 도구들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에는 농민이다. 그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을 수도, 임차할 수도, 둘 다 할 수도 있다. 그의 토지 이용 방식이 무엇이든 간에 농민의 결정적 특징은 그 토지를 보유(소유권 여부와 관계 없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생계를 위해 자기 노동력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역시 빈농의 경우). 하지만 이것이 그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 아닌 한, 그는 농민이다.

자본가적 농장주가 다른 사람들의 노동력을 구매해 사용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농민은 가족 노동을 이용한다. 전형적인 빈농 또는 중농은 오직 가족 노동만을 이용할 것이다. 하지만 빈농이나 중농조차 가족이 아닌 사람의 노동을 이용할 수 있다. 그는 자기 노동력을 파는 것은 물론 노동을 고용할 수 있다. 특히 수확기나 모내기 때 그럴 수 있지만, 더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다. 설사 부농이 임금 노동을 이용하는 계급일지라도 자본가적 농장주와 농민을 구별시켜 주는 점은 농민이 가족의 육체 노동에 계속 의지한다는 점이다.

지주 계급은 토지를 소유하고 그 토지를 소작인에게 임대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지주는 자기 토지의 일부를 노동 지대 형태의 농민 노동에 의해, 또는 채무 약정에 속박된 노동에 의해, 또는 임금 노동에 의해 경작시킬 수 있지만, 착취의 유력한 형태가 지대라면 그는 역시 지주이다. 농민이 자기 토지를 소유하고 있고, 그 일부를 경작하고 있고 다른 일부를 임대하고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주인 것은 아니다. 그가 여전히 경작하고 이것이 그의 주된 활동이고 그가 농민의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한은 그는 부농일지는 몰라도 지주는 아니다. 설사 고리대를 하는 농민일지라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농민 투쟁의 성격

농민층의 분화는 농민 투쟁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적대만큼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종종 빈농은 “부농”에 대항해 싸운다. 공장 노동자든 사무직 노동자든 노동자는 집단적으로 투쟁한다. 노동자들은 결코 공장이나 사무실의 일부를 소유하는 전략을 추구하지 않는다. 반면, 농민 투쟁은 토지의 일부를 통제하려는 개별 생산자들이 주도한다.

그래서 농민 봉기는 대토지 소유주나 지배 계급의 대리인에 맞서 비통함이 폭발하는 형태를 띤 뒤 분열했다. 이런 투쟁들이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과 연결되지 않는 곳에서는 지배 계급이 농민 투쟁을 진압할 수 있었다.

오늘날 세계 시장 때문에 가난한 농민들은 더욱 가난해지는 반면, 소수는 더욱 부유해진다. 그리고 소수의 부농은 세계적 착취 구조에서 지역 대리인 노릇을 한다. 그 때문에 토지를 둘러싼 첨예한 투쟁이 벌어지고 전통적인 복종 이데올로기가 흔들리고 있다.

현대 매스컴의 발달 덕분에 많은 농민들은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와 빈민 투쟁의 폭발력을 한 세대 전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일부 세계에서 농민들은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 가족 구성원의 임금에 의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농민들이 착취자에 저항하는 데는 여전히 강력한 장애물이 존재한다. 노동자와는 달리, 농민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자본가들의 이윤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 같은 게 없다. 게다가 농촌에서는 보수적 사고 방식이 도시에서보다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세계화는 전 세계에서 많은 농민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 주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 때문에 도시의 피착취자들과 농민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노농동맹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근대의 위대한 변혁 ― 1789년 프랑스, 1917년 러시아, 1949년 중국 ─ 에서 농민 투쟁이 한몫을 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다른 계급 ─ 도시의 두 주요 계급 가운데 하나 ─ 에 의해 지도될 때였다. 산업이 발달한 우리 나라에서 농민을 지도할 세력은 도시 노동자 계급밖에 없다. 도시 노동 계급이 농민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정당의 정치적 독립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