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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서거 100년:
레닌과 민족해방, 혁명을 위한 투쟁

사회주의자가 민족해방 투쟁을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의미 있다. 블라디미르 레닌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이사벨 링로즈가 이 질문에 대한 레닌의 기여를 살펴본다.

블라디미르 레닌으로 더 잘 알려진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는 1870년 4월 10일 러시아 심비르스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사상은 체제가 거대한 위기에 직면한 시기에 탄생했다.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잠시나마 스스로 사회를 운영한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볼셰비키 당의 지도자로서 레닌은 전쟁,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저술을 했다.

레닌은 독립적인 혁명적 당을 일관되게 추구했다. 레닌은 1924년 1월 21일에 사망했기 때문에 스탈린의 관료주의에서 비롯한 공포를 직접 보지 못했다.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해 억압 받는 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한 블라디미르 레닌

일부 좌파는 민족해방 투쟁이 ‘진짜’ 계급투쟁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은 그런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레닌은 제국주의에 의해 억압받는 사람들이 제국주의 지배자들에 맞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을 옹호했다.

레닌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더 큰 국가의 일원이 될지 여부를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자결권을 요구하는 것이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의 핵심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식민지 나라들에서 제국주의의 지배력 약화를 위한 투쟁은 대규모 혁명적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그러나 억압 민족의 노동자들이 피억압 민족의 대의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 또한 혁명적 의식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단계에 속한다.

노동자들은 모든 민족적 요구를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레닌은 억압자의 편에 서는 것은 결코 선택지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때로는 억압받는 나라 안에서 투쟁한다는 것은 자본가들이 주도하는 민족 운동의 지도자들과 일시적으로 같은 편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들은 제국주의에 맞서 그들과 함께 싸우면서도 동시에 독자적인 계급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여러 피억압 민족의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국제적인 노동자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다.

1914년에 시작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제1차세계대전을 목전에 두고 레닌은 민족해방 문제에 천착했다.

당시 ‘민족들의 감옥’으로 불렸던 제정 러시아에서는 인구의 57퍼센트가 각종 소수민족에 속했다.

합스부르크가의 광대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는 독일인과 헝가리인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체코인,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이탈리아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루마니아인 등의 소수민족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사회당의 노선은 각 민족의 문화적, 언어적 자율성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또한 각 민족이 지역별로 나뉘고, 지리적으로 정하기 힘든 소수민족은 법으로써 보호하는 연방제의 실시를 요구했다. 이렇게 하면 기존 제국의 틀 안에서 민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레닌은 민족해방 투쟁으로 제국을 완전히 파괴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옹호했다.

레닌은 사회주의자들이 소수민족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혁명 운동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제국이 쪼개져야 하지만, 노동자들은 공동의 단결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럴 수 있으려면 중심에 혁명적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민족해방을 놓고 레닌이 가장 치열하게 논쟁한 상대 중 하나는 폴란드계 독일인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레닌과 룩셈부르크는 모두 민족해방에 관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저작을 당대에 적용하고자 했다.

마르크스 시대에는 차르의 전제정이 혁명적 봉기를 진압하는 주요 세력이었다. 제1차세계대전 이전 폴란드는 러시아의 경제적 동맹이 돼 가고 있었기 때문에 폴란드 지배계급은 독립을 시도하지 않았다.

룩셈부르크에 따르면 폴란드 노동계급 역시 러시아로부터의 분리를 지지하지 않았다.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하에서 민족 독립을 위한 투쟁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사회주의하에서는 노동자와 민중이 국제적 단결을 이뤘을 것이기 때문에 민족 독립이라는 구호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룩셈부르크는 우파인 폴란드 사회당과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폴란드 사회당은 폴란드 자본가들과 결탁해 민족주의적 요구를 위로부터 밀어붙였다.

그 결과 룩셈부르크는 폴란드 민족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것은 자본가 계급에 동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동맹을 피하려고 룩셈부르크는 폴란드 민족해방 투쟁이 진보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레닌은 룩셈부르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다른 어떤 민족보다 많은 민족을 억압해 온 우리 대러시아인들이 왜 폴란드, 우크라이나, 핀란드의 분리 독립을 거부해야 하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러시아에서는 억압받는 민족들이 분리 독립할 자유를, 폴란드에서는 단결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이다.”

룩셈부르크는 민족자결권을 계급투쟁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레닌에게는 민족자결권이 계급투쟁에 기여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적이었다.

볼셰비키 내에서도 니콜라이 부하린과 같은 주요 혁명가들이 민족자결권에 반대했다.

레닌은 1914년 다음과 같이 답했다. “억압받는 모든 민족의 부르주아 민족주의는 억압에 대항한다는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우리가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바로 이 내용이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억압하면서 동시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자결권을 위한 투쟁은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의 노동계급 내부에서 반동적 사상과 싸우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자결권 지지가 항상 특정 민족을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싸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폴란드의 경우, 레닌은 노동자들이 민족 국가를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원한다면 별도의 국가를 가질 폴란드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며 싸워야 한다.

한편, 피억압 민족의 민족 운동은 국제 계급투쟁을 강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국제적으로 주름잡는 지배계급들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레닌은 영국의 잔인한 억압에 맞선 1916년 아일랜드 봉기에서 이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억압 국가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민족해방 운동을 지지해 자국 제국주의 국가를 약화시키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이것이 없이는 국제주의도 있을 수 없다”고 썼다. 그는 억압 민족 내의 사회주의자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악당이자 제국주의자”라고 덧붙였다.

레닌은 민족자결권 없이는 사회주의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회혁명이 식민지와 유럽의 작은 민족들의 반란 없이, 온갖 편견적 의식을 지니고 있다 할지언정 소부르주아지 일부의 혁명적 폭발 없이, 정치 의식은 없지만 지주·교회·군주제의 억압과 민족 억압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및 반(半)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운동 없이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은 사회혁명을 부정하는 것이다.”

억압 민족의 사람들은 피억압 민족들이 억압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싸워야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배반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주적인 대국의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반란이 반동 계급의 반란이 아닌 한 모두 지지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은 노동자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 반동 세력이 불가피하게 포함될 수밖에 없는 민족해방 투쟁을 이끌고 사회주의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 혁명가들의 임무였다.

이는 민족주의 노선에 따라 노동자들 간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피억압 민족의 노동자들이 억압 민족 내에서 자신의 평등권을 옹호하는 이들을 볼 수 없다면, 그들은 지배계급이 주도하는 민족주의를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억압 민족의 노동자들이 그들의 자결권을 옹호하고 있음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단결로 이끌 것이다.

억압 민족의 사회주의자들은 자국 지배자들에 대항해 자국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족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장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전 세계 노동자들과 동방의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단결 만세.” 우즈베키스탄 언어로 만들어진 1924년 포스터

레닌의 이론은 혁명 러시아에서 실천에 옮겨졌다. 10월 혁명 며칠 만에 새 정부는 ‘러시아 민족들의 권리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다.

볼셰비키가 이끄는 정부는 며칠 만에 핀란드의 독립할 권리를 인정했다. 이어서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트랜스코카시아, 벨라루스, 몰도바, 라트비아, 우크라이나의 권리를 지지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민족 운동이 반동 세력에 의해 주도되는 경우에는 그 때문에 볼셰비키가 주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볼셰비키는 억압당하는 민족들의 민족적 권리를 존중했다. 그리고 차르에 의해 짓밟힌 종교의 자유도 함께 지지했다.

1917년 11월 24일 신생 소비에트 정부가 발표한 ‘러시아와 동방의 모든 무슬림 노동자들에게’라는 선언문은 이렇게 밝혔다. “차르와 러시아의 압제자들에 의해 모스크와 기도실이 파괴되고 신앙과 관습이 짓밟힌 러시아의 무슬림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과 관습, 민족 기관과 문화 기관은 영원히 자유롭고 불가침한 것입니다. 러시아의 모든 인민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권리도 혁명의 강력한 보호 아래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스탈린주의 반혁명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는 그런 권리를 파괴하고 “대러시아 쇼비니즘”을 다시 강요한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반제국주의 운동이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지 간에 지지해야 한다. 또한 사회주의자들은 동시에 노동자 권력을 위한 국제적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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