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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해방의 전망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수년에 걸쳐 수집한 데이터를 이용해 살인 표적을 정한다. 표적 선정에 사용되는 데이터는 SNS 게시물, 수상해 보이는 교신으로부터 수집되거나, “용의자”의 주소에 근접한 휴대폰 신호에 기초하여 생성된다.

각 “표적”의 주변에는 죽음의 지대가 형성된다. 표적 살해 과정에 수반되는, 이스라엘과 서방의 이스라엘 후원국들이 보기에 ‘용인 가능한’ 살상의 규모가 정해지는 것이다.

가자지구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동하던 이 살인 공장은 이제 레바논 사람들을 상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전폭기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살해했고, 그 과정에서 2000파운드가량의 “벙커버스터” 폭탄을 떨어뜨려 주거용 건물 4채를 완파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유엔 총회에서 이번 개입이 중동의 세력 균형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는 1967년 6일 전쟁 이후처럼 서방 언론이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추켜세우길 바라는 듯하다.

문제는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물리치는 데 실패한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물리치는 것은 훨씬 어려운 과제라는 점이다. 영국 보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9월 28일자 헤드라인은 “전쟁의 개들에게 목줄을 채워라”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궤멸시킬 수 없고 그저 약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헤즈볼라의 지도부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미사일 세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평가가 타당한 이유가 있다.

첫째, 이스라엘군은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저항 운동을 제압하려고 첨단 기술을 동원한 공중 폭격 작전을 펴는데 그런 작전이 갖는 피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2020년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테러 군대”로 지정하는 군사 교리를 채택했다.

이러한 접근법의 조정을 보면 이스라엘 관리들이 대량 학살에 관해 제시하는 변명을 일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헤즈볼라나 하마스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은 “적 전투원”이다. 군복 착용이나 총기 소지 여부, 구호 활동을 조직한다거나 민간 방위대 지도자인지의 여부는 상관없다.

10월 3일 이스라엘의 “정밀 폭격”에 당한 이슬람보건기구 병원의 의료진 9명이 그런 논리의 가장 최근 희생자들이다. 유럽연합의 최고 외교관인 조셉 보렐조차도 이러한 살인을 “국제인도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레바논에서 의도적으로 구급차를 공격한 이스라엘 ⓒ출처 Euro-Med Monitor

이러한 살해 정책과 더불어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에 맞서는 운동들과 그 주변의 사회적 관계망을 모두 표적으로 삼는 전술을 실행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AI로 무장한 군사 시스템은 고층 건물, 대학, 기타 민간 기반 시설들을 “주요 표적”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기반 시설의 파괴를 통해 민간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투지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 곳곳에서 식민 지배를 위한 전쟁에서 사용된 아주 오래된 “저항 진압” 전술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식민지에서 제국주의자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불타 버린 집과 논밭, 학살 당한 시신들이 남아 있었다.

문제는 통상적인 군사력의 우위가 자신의 가족, 집, 땅을 지키려는 투사들에 맞선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오랜 점령 실패의 역사 속에서 이 교훈을 배우고 또 잊기를 반복했다.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는 모두 제국주의적 야망의 무덤이 됐다. 그 과정에서 그곳의 민중들이 끔찍한 대가를 치렀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은 2023년 10월 7일 공격을 내다 보지 못한 재앙적인 정보 실패에 이어 하마스의 군사적·정치적 역량을 파괴하는 데 실패하는 두 번의 굴욕을 겪었다. 이스라엘의 전쟁 기획자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82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 대한 군사 공세의 일환으로 레바논을 침공했다. 그 시작은 화력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2년 침공은 18년 뒤 굴욕적인 철군으로 귀결됐다.

레바논을 다시 침공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회 내 갈등을 악화시킬 위험도 있다. 이스라엘 정치는 원래 분열이 극심하기로 악명이 높지만, 오늘날의 위기는 그 이전보다도 한 차원 더 심각하다. 2023년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부 개편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서는 엘리트 연대 출신 조종사 등 군 고위 인사들이 눈에 띄는 역할을 했다.

종교적 시온주의 우파는 현재 선거 제도를 통해 정치적 권력의 키를 쥐고 있다. 군대의 위계질서 내에서는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많은 일반 사병들이 10월 7일 참사를 막지 못했다고 상급 지휘관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가자지구에서 약탈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서안지구 제닌의 모스크에 설치된 확성기로 히브리어 기도를 외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저항은 이스라엘 내의 이러한 모순을 심화시킬 잠재력이 있다. 겉보기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무장 투쟁을 지속하는 것은 때때로 일정한 구실을 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 국방부 웹사이트에는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의 뗏(구정) 공세가 미군의 베트남 전쟁 패배에 궁극적으로 기여했다는 기사가 올라와 있다. 뗏 공세는 비록 NLF의 군사적 참패로 끝났지만 “베트남에서 미국의 승리가 임박해 있지 않음을 분명하게 보여 줬고, 이를 계기로 전쟁에 대한 미국 대중의 지지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NLF가 뗏 공세로 달성한 진정한 성과는 그저 전쟁에 지친 대중에게 충격을 준 영웅적인 실패담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이런 분석에서 누락된 고리는, 민족 해방 투쟁과 사회적 해방 투쟁 사이의 관계에 있다. 스탈린주의 정치에 충실한 사람들이 주도한 NLF는 자신의 투쟁을 확고하게 제한해 민족 혁명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내 미국의 대리자 정권에 맞선 그 전쟁의 사회적 차원이 농민 투사들을 계속 저항에 나서게 만들었다. NLF 투사들이 투지를 잃지 않았던 것은 민족 독립이라는 전망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또한 농촌을 가난하게 만들어 이득을 보는 지주들의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염원했다.

베트남에서는 평범한 민중들이 미국과 미국의 대리인 정권에 맞서 싸웠다

이스라엘 점령에 맞선 투쟁에서도 사회적 차원이, 과거 레바논 침략에 맞서 대중을 가장 성공적으로 동원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침략을 물리친 2006년 전쟁 때는 자기 조직화한 민간 방위 운동이 대규모로 부상했다.

이 운동은 좌파가 독자적 주도력을 발휘해서 시작된 것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끈질기고, 수완 좋고, 창의성 넘치는 뿌리 깊은 전통을 기반으로 건설되고 확장됐다. 이 운동의 실천적인 초점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남부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동의 정치적 목표는 민간인 사회 조직을 의도적으로 군사적 표적으로 삼는 이스라엘군의 잔혹한 “다히야 독트린”의 실효성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이 운동의 주요 조직자들은 자신들이 혁명적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민족 해방 투쟁과 사회적 해방 투쟁을 분리하는 게 아니라 결합시켰다. 그들은 자신들이 레바논 사회 전반에 깊은 뿌리를 둔 더 광범위한 저항 운동의 일부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2006년 레바논을 침공했다가 패퇴해서 철수하는 이스라엘군 ⓒ출처 IDF

저항을 뜻하는 아랍어 ‘알 무콰와마’는 대다수 서구의 평론가들이 거의 포착하지 못하는 잠재력을 함축하고 있다. 수단의 젊은 활동가들이 오마르 알바시르 독재에 대항하는 자신들의 기층 조직을 “저항위원회”라고 부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저항위원회의 활동이 기존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에서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는 것으로까지 매끄럽게 전환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저항위원회의 자원 활동가들은 빵집의 밀가루 공급을 조율하고, 코로나19 기간 동안 마스크와 소독제를 배포하고, 국가를 민주적으로 개혁할 계획을 토론했다.

2023년 4월 수단의 두 주요 무장 조직인 수단군과 신속지원군의 각 지도부는 서로 전쟁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저항위원회 활동가들은 ‘긴급상황실’로 자기 조직화했다. 긴급상황실은 난민들의 피난처를 조직하고 자원 활동가들을 모집해 절박한 처지의 민간인들에게 식량, 식수, 의료품을 제공했다.

수단의 긴급상황실과 2006년 레바논에서의 경험 사이에는 분명한 유사점과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수단의 긴급상황실은 일반적으로, 수단 국가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이 설립한 반면, 레바논에서는 비슷한 활동이 이스라엘에 맞선 무장 저항 세력과의 정치적 연대를 위해 조직됐다.

결정적으로 두 운동은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자기 조직화한 사회적 동원이 노동자·빈민의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은 운동들은 군사력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사회적 힘에 뿌리를 둔 저항 방식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저항 세력이 승리할 수 있으려면, 이스라엘 국가를 무너뜨리고 시온주의 프로젝트를 완전히 해체할 힘이 있는 사회 세력이 다시 각성해야만 한다.

조직 노동자들의 개입이 가장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곳은 현재 이집트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사 보급망이 국제적으로 걸쳐 있음을 고려하면 필자가 있는 영국 내 노동자들의 행동도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사회 혁명으로 가는 길은 이스라엘의 전쟁 기구를 물리칠 지름길은 아닐지라도, 해방의 더 탄탄한 기반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서는 저항을 단순히 제도나 조직에 관한 것이 아닌 정치적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저항은 게릴라 군사 작전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다. 이때의 저항은, 노동자와 빈민이 아래로부터 능동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기초로 삼는 혁명적 전통의 필수적인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