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레바논 ⋯고조되는 중동의 전운: 제국주의, 저항, 혁명
〈노동자 연대〉 구독
이 기사는 10월 30일에 같은 제목으로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와 발제자의 토론 정리다.
10월 7일 공격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 1년 동안 이스라엘이 벌인 전쟁에는 끝이 없고 경계도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학살과 인종학살의 참상을 끊임없이 목도하고 있고 또 점령당한 서안지구에서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벌이는 폭력의 더 수위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최근 이스라엘은 레바논도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고대 도시 티레를 공격하고 있고, 가장 찬란한 로마 유적지인 발벡도 공격하면서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지역들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팔레스타인인들과 레바논인들을 절멸시키려 한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1년 사이에 이스라엘의 2가지 전략이 부각됐습니다. 이스라엘의 1차적인 목표는 1917년 영국의 벨푸어 선언 이래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벨푸어 선언은 영국 정부가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에게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을 넘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역사적 팔레스타인을 식민지화한다는 이스라엘의 목표가 지난 한 세기 동안 일관되게 유지되는 동시에, 이스라엘이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그 지리적 한계는 여전히 그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시온주의자들 중 일부는 대(大)이스라엘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는데, 대이스라엘에는 레바논 남부도 포함되고, 시리아 땅이 지금보다 더 많이 포함되고, 요르단·이집트 영토 일부도 포함될 뿐 아니라 좀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영토 일부까지 포함됩니다.
이렇게 엄청난 영토를 이스라엘이 차지하겠다는 구상이 황당무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최근 〈예루살렘 포스트〉는 이스라엘의 미래 국경을 언제 확정 지을 것이냐에 관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황당무계한 구상을 갖고 있는 시온주의 파벌이 현재 이스라엘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이고 미래 이스라엘의 팽창을 위해 경계를 새로 그으려 전쟁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이스라엘을 특수한 유형의 식민주의 국가로 규정합니다. 이스라엘의 팽창주의는 그 정책, 미래 지향, 모든 군사적 행위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죠.
레바논인들은 항상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를 눈독 들이고 있다고 의심했는데, 레바논 남부가 엄청나게 비옥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레바논에게 매우 중요한 지역이고 이스라엘은 이를 매우 탐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레바논 남부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맞서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 요소입니다.
바로 이런 팽창의 욕구가 시온주의 이데올로기의 원동력이고, 현재 이스라엘 국가 정책의 원동력이고, 이번 절멸주의 전쟁의 원동력입니다.
이스라엘 전략의 둘째 측면은 미국과 서유럽을 더 광범한 갈등으로 끌어들이는 것인데요. 특히 이란을 상대로 한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전략은 서방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했다가 재앙적으로 끝났다는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두 곳에서 서방 제국주의의 패배는 이스라엘이 지금 벌이는 도박의 판돈을 더욱 높였습니다. 특히 이라크에서 미국이 패배한 뒤로,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한 뒤로 역대 미국 정부들은 공화당 정부와 민주당 정부를 가리지 않고 더 이상 중동에서 새로운 전쟁이나 점령에 휘말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지금 네타냐후는 확전을 통해서 서방 제국주의가 이 지역에서 해내지 못한 것을 이루겠다는 도박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든은 ‘라파흐 공격을 하지 마라,’ ‘인도적 구호 활동을 방해하지 마라,’ ‘레바논을 침공하지 마라’며 이런저런 레드라인들을 그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이런 전략이 어느 정도는 먹혀 들었습니다. 미국이 추가적인 이란발 미사일 공격을 막아주겠다고 요격 미사일 포대를 이스라엘에 들여보내기도 했고, 또 UN을 명목으로 파견된 독일 군함이 이스라엘을 위해 헤즈볼라의 드론을 격추시키는 데 관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군과 영국은 키프로스에 있는 자기네 공군 기지를 이용해서 이스라엘을 거들어 왔고, 특히 저항 세력에 대한 첩보 활동을 해주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 드러난 바로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전쟁 비용의 70퍼센트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스라엘의 전쟁이 명확한 종착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엄청난 야만적인 폭격으로 레바논인들을 수없이 죽이고 있지만, 이스라엘군도 탱크 피해가 크고 전사자가 너무 많아서 갈수록 끔찍한 악몽이 되고 있습니다. 1982년에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는 [중부 지역이자 수도인] 베이루트로 곧장 진격할 수 있었던 반면 이번 전쟁에서는 레바논 국경 안쪽 1킬로미터까지도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현재까지 이스라엘군의 피해는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보기에도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스라엘은 새로운 전략, 정확히 말하면 오래된 전략을 재탕하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즉 레바논 내에서 종파 간의 갈등을 부추겨서 또 한 번 유혈 낭자한 내전의 시대로 몰아넣겠다는 전략입니다.
과거에도 레바논은 그런 내전을 20년 동안 겪은 바 있습니다. 몇 주 전에 네타냐후가 TV에 나와서 레바논인들에게 이렇게 역사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저항 세력을 무장해제 시키지 않으면 우리가 레바논 전체를 파괴할 것이다”라고 말이죠.
이스라엘과 서방 국가들은 모두 하산 나스랄라를 비롯한 헤즈볼라 지도자들을 살해한 이후 레바논을 손쉽게 굴복시킬 수 있는 상대라고 만만하게 봤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일 외무장관, 프랑스 대통령, 이탈리아 총리 등 각종 인사들이 레바논에 와서 돈다발을 흔들며 “레바논 정부군이 남부의 저항 세력을 몰아내면 우리가 1.5억, 2억 유로를 주겠다”고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도 이들이 실제로 종파 간 내전을 촉발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2006년 레바논을 침공했다가 패배한 후 얻은 교훈 하나는 무장 저항 세력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그 저항 세력을 구심으로 형성된 연대의 네트워크를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006년 당시 레바논에서는 거대한 대중운동이 저항 세력과 연대하며 벌어졌습니다. 그 운동은 단지 무장 저항뿐 아니라 레바논 남부, 베이루트 남쪽 다히야의 시아파와 연대하는 더 광범한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2006년에 이스라엘은 다히야 지역을 완전히 파괴했고 레바논 남부의 여러 시아파 마을들을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피난 온 시아파들을 위해서 수니파 무슬림, 기독교인, 또 드루즈파(산에 근거지를 둔 종파)가 자기 집을 내주었습니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이 지역들에서는 수년 동안 종파 별로 서로 싸우고, 납치하고, 살육하는 일이 자행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2006년에는 모두 서로 문을 열고 피난민을 환대해 줬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던 종파주의의 영향력을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2006년 당시에 구호단체들을 따라서 레바논 남부를 다녔는데, 당시 시아파 마을들은 다 파괴됐지만 기독교인인 마을들은 전혀 피해가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런 구분 없이 모든 마을이 쑥대밭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이스라엘은 동네를 가리지 않고 모든 병원을 다 파괴하고 또 민방위, 구조대원, 응급처치반 모두를 살해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절멸을 위한 전쟁입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시민사회가 레바논 남부의 저항 세력을 향해 보여주는 연대를 응징하려고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전략이 일부 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전투 지역과는 가장 멀리 떨어진, 레바논 최북단에 있는 기독교인 마을을 폭격했습니다. 그 마을로 피신 갔던 시아파 23명을 죽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시아파나 팔레스타인인들을 보호해 주는 대가가 굉장히 크지만, 지난 열흘 동안의 전개를 보면 사람들 대다수 사이에서는 연대가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연대는 2006년과 마찬가지로 강력하고 이 점은 중요합니다. 이번 전쟁이 막 시작됐을 때, 저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과 레바논 남부의 저항 세력을 한 방에 다 쓸어버릴 작정인 것 같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지금의 가자지구는 그 결과인데 하마스를 여전히 패배시키지 못했습니다. 또 이제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에서의 군사적 목표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이번 인종 학살을 초기에 지지했던 서방 정부들도 대부분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보수당 정부도 무너졌고 미국의 바이든-해리스 정부도 곧 그럴 것 같습니다. 전쟁 초기에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정부들은 모두 자국 정치권에서 가라앉는 신세입니다.
그럼에도 미국 지배계급의 한 부분과, 독일 지배계급도 점점 더 네타냐후의 전쟁, 특히 레바논 전쟁을 끝까지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레바논도 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처럼 고분고분하고, 이스라엘과 협정을 맺고,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점이 단지 팔레스타인 문제나 이스라엘의 중동 야심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벌이는 경쟁의 일환이라는 점도 봐야 합니다. 미국은 단지 레바논의 음식이 좋아서 레바논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은 베이루트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미국 대사관을 신축했습니다. 그리고 레바논을 레반트 지역(시리아·이라크·레바논·요르단) 전체에서 저항 세력들에 맞설 작전 본부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미국의 이런 전략에서 이스라엘이 핵심 축을 형성하고 있죠.
과거에는 전선이 걸프만을 따라 그어져 있었습니다. 즉, 서방의 중요한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른바 반제국주의 세력인 이란이 대치하고 있는 지역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라크에서 서방이 패배한 뒤로 이 전선이 지중해 동쪽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둘 다 중국에 가장 많은 석유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중국 자본은 아프리카 지역에 대대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 지역에 공장들을 짓는 핵심 자본이고, 알제리에서 석유 산업을 되살리는 중추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중국 자본은 모든 곳에 있고 또 서방의 영향력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아랍 세계의 거리에서는 아무도 중국 국기를 불태우지 않습니다.
몇 달 전에 사우디아라비아는 1974년에 미국과 체결했던 협약, 즉 석유를 달러화로만 팔겠다는 협약을 갱신해야 했는데,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우디아라비아는 달러가 아닌 화폐로 석유를 팔기 위해 브릭스와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데서 우리는 미국 제국주의가 약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고 패퇴한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경제력 측면에서, 그리고 어느 정도는 군사적 영향력 면에서 약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흐름을 너무 과장하지도 또는 간과하지도 않으면서, 이 추세가 현재 벌어지는 전쟁의 배후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아랍 세계에서 벌어진 근원적인 변화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왜 미국과 이스라엘의 장래에 무시무시한 함의를 갖고 있는지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나이가 60세인데요. 제가 어렸던 1960~1970년대 레바논에서는 인구의 80퍼센트가 농촌에 살았습니다. 제 친구 중 제가 속했던 종파 바깥에 속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레바논 인구의 90퍼센트가 도시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다른 아랍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1948년 나크바 당시 압도 다수의 아랍인들이 빈농이었고 심지어 1982년 레바논 침공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반면 오늘날에는 압도 다수 아랍인들이 노동계급이거나 아니면 그와 가까운 도시 빈민이고, 또한 [종교를 넘어] 서로 섞여서 살아갑니다.
오늘날 레바논에서 이뤄지는 결혼 대부분이 서로 다른 종파 간에 이뤄집니다. 참고로 레바논에는 종파가 18개나 있는데,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결혼 또는 기독교인과 무슬림 사이의 결혼처럼 종파를 넘는 결혼이 대다수입니다. 일터의 대다수도 이처럼 종교 집단을 떠나 섞여 있고 친구 집단들도 그렇습니다. 또 노동계의 거주지들도 점점 커지면서 여러 종파가 섞이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4반 세기 동안 파업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그 파업들에는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이 함께 참가했습니다. 즉 30년간의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계급 분단이 레바논에서의 주된 분단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점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2019년 ‘10월 혁명’(실제로 혁명은 아니었고 엄청난 대중항쟁이었습니다)이 있습니다. 그 항쟁은 레바논의 부패한 종파주의 체제에 맞선 것이었고 레바논 방방 곡곡을 뒤흔들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계급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항쟁에 가담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또 한 번 레바논인들의 의식이 크게 도약했습니다. 레바논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배고픔은 당신이 기도하는 날이 무슨 요일인지 신경쓰지 않는 불신자다.”(무슬림들은 기도하는 날이 금요일이고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이라는 차이를 염두에 둔 속담입니다.)
많은 논자들이 이번 전쟁을 1967년 3차 중동전쟁과 비슷하다고 말하곤 하는데요. 그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이 승리해서 골란고원을 차지하고, 요르단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서안지구를 빼앗고, 이집트에서 시나이 반도를 빼앗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번 전쟁이 1967년이 아니라 나크바의 해였던 1948년과 더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1967년에는 아랍 정권들이 비록 한심한 수준이었을지언정 이스라엘에 저항했기 때문입니다.
1948년 전쟁 이후에는 역사상 가장 큰 아랍 혁명의 물결이 무려 40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혁명의 물결은 아랍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던 거대한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번 전쟁은 1948년 때보다도 더욱 큰 혁명의 물결을 촉발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혁명의 물결에서는 참가자 대다수가 농민이 아니라 노동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민족주의 정부를 수립해 서방 제국주의자들과 타협하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 큰 규모의 아래로부터 혁명에 나설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요르단과 이집트 같은 정부가 자국 거리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벌어지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1년[‘아랍의 봄’]에 우리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면 지금 우리는 그 혁명을 성공시키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제자의 토론 정리
“팔레스타인 세대”라고 불리는, 지난 1년 동안 부상한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었던 환상이 순식간에 깨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제 직장 동료들, 친구들, 더 넓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지난 1년 동안 벌어졌는데요. 이들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인종 학살을 보면서 분노하는 동시에 소위 ‘규칙 기반 국제 질서’가 모두 헛소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UN이나 국제형사재판소 등의 구실에 대한 환상이 와르르 무너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현재 세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변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변화 중 가장 큰 것은 소위 차악론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이제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바이든이 트럼프에 비하면 차악이라는 생각과 전략에 지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또한 시오니즘도 커다란 이데올로기적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이 세계적으로 지지를 이끌어 내는 문제, 배타적인 유대인 국가 건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등이 모두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다음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그리고 중동 내 역학에 대한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 제가 발제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중요하게 염두에 둘 것 하나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이 쇠퇴하면서(물론 군사적으로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공백이 생겼고, 아류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를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 튀르키예는 아주 중요한 국가이고, 이란도 마찬가지이고, 사우디아라비아와 그 동맹들도 그렇고, 그리고 물론 이스라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아류 제국주의 국가들 간 쟁투가 벌어지는 것은 미국의 헤게모니가(몰락까지는 아니지만)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슈퍼파워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이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은 중동에서 일정 부분 힘을 빼고 아류 제국주의 국가가 대신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상황은 이스라엘이 전보다 제약을 덜 받으면서 행동할 수 있도록 해 줬습니다.
마거릿 대처는 영국 역사상 가장 우익적인 총리였는데 그런 대처가 1982년에 이스라엘을 상대로 12년 동안 무기 금수 조처를 취한 바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1982년 레바논 전쟁에서 영국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노동당의 외무장관이라는 사람이 이틀 전 의회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인종 학살’이란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 속 진정한 인종 학살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질문으로는, 무장 저항 운동과 대중운동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몇몇 분들이 베트남과 남아공 얘기도 해 주셨습니다.
제가 옛날 얘기를 하나 들려드리자면, 1990년대에 제가 한 젊은 동지와 남부 베이루트에서 파업에 들어간 어떤 초콜릿 공장에 가서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굉장히 의미가 있는 파업이었는데 그 공장 노동자들이 기독교인, 무슬림 등 모두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직장위원은 시아파 무슬림이었습니다.
그 시아파 동지와의 토론은 마치 볼세비키, 그러니까 혁명적 사회주의자와 토론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계급 관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경제 정세나 사측의 전술 등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어 매우 유쾌한 대화였습니다.
저랑 같이 갔던 젊은 동지가 그에게 모두 동의한다면서 우리 같이 혁명 정당을 만들자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시아파 동지는 “우리에게는 이미 혁명 정당이 있어요, 헤즈볼라라고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났을 뿐 아니라 당시 벌어지고 있던 주요한 사회적 투쟁들에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창립 때부터 이스라엘 점령뿐 아니라 레바논의 종파주의 권력 체제에 대해서도 저항한다고 내세웠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광범한 사람들한테 지지를 받았습니다.
헤즈볼라가 받은 지지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려면 2000년과 2006년의 경험을 봐야 합니다.
2000년은 우리가 이스라엘 점령군을 마침내 레바논 남부에서 몰아낸 때입니다. 당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두 가지 상호 연결된 요소 덕분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당연히 이스라엘에 맞선 무장 저항 그 자체였고, 둘째는 바로 그 저항을 방어하는 대중운동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학생들이 시작했던 수업 거부가 남부 전체의 대중 봉기를 촉발했고 그것이 2~3일 만에 이스라엘의 점령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침공을 격퇴한] 2006년 이후, 2008년까지 계급투쟁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들은 저항이 단지 이스라엘에 맞서 레바논 남부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레바논 사회의 더 광범위한 해방을 지향했음을 중요하게 보여 줍니다.
또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시아파는 여러 종파 중에 가장 규모가 큰데도(과반은 아닙니다) 레바논의 종파 간 권력 분점 시스템 하에서 시아파의 정치적 권력이 가장 작고, 경제적 권력도 가장 작고, 가장 가난하고 주변화된 인구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2006년에 [이스라엘 침공 격퇴로 큰 위세를 떨쳤을 때] 헤즈볼라는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가 있었습니다.
첫째 선택지는 새로운 조직으로 거듭나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운동이 되고, 레바논에 필요한 혁명적 변화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헤즈볼라가 선택했던 둘째 선택지는 종파에 따라 권력이 분점되는 시스템 자체를 뒤엎기보다는 그 안에서 시아파가 누리는 정치적 권력을 조금 더 늘리기 위해 협상을 하는 쪽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헤즈볼라는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했던 정당에서, 점점 부상하고 있던 시아파 내의 중간계급을 대표하는 세력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하산 나스랄라가 TV에 나와서 “우리는 파리회의(Paris II) 협정을 존중하고 거기에 동의한다”고 얘기했습니다. 파리회의 협정은 레바논에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긴 협약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후에 본격적인 계급투쟁이 벌어졌을 때, 특히 2008년에 총파업이 크게 벌어지는 등 파업이 몰아쳤을 때 하산 나스랄라는 TV에 나와 “우리는 빵 뒤에 숨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빵은 가난을 상징하고 그의 말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헤즈볼라는 노동계급 일반의 불만을 억누르는 구실에 일조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헤즈볼라는 비종파적인 대중운동과 무장 저항 간의 유기적 연대를 약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레바논의 종파주의적 체제라는 게임의 룰을 받아들였고, 더는 그것에 도전할 세력이 아니게 됐습니다. 그래서 2011년 ‘아랍의 봄’ 봉기에서도 헤즈볼라는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더 나아가서 2012년에는 시리아 혁명을 진압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리죠. 이것이 특히 가슴 아팠던 이유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수많은 시리아인들이 레바논 난민들을 자기 집으로 받아줬기 때문입니다. 이제 헤즈볼라가 그런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고 그들의 집과 꿈을 파괴하는 데 가담한 것입니다. 이것은 헤즈볼라에게도 엄청나게 안 좋은 일이었고 무장 저항 운동 전체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헤즈볼라 안에서도 지도부의 행보를 두고 불만이 매우 많았고 논쟁도 있었는데요. 그런데 헤즈볼라 안에서 요즘은 이런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때 시리아 정권을 우리가 온 힘을 다해서 도와 줬는데 시리아는 이번 전쟁에서 우리를 도와 주는 것이 하나도 없다.” 로켓 한 방, 총알 한 발도 쏴 주질 않았다는 것이죠. 시리아는 오히려 이번 전쟁을 사우디아라비아와 화해할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아랍 정권들 중 더 보수적인 쪽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헤즈볼라의 전략은 참담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우리가 민족 해방 투쟁에 대해서 무조건적이지만 비판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처럼 완전히 미친 짓을 목도하면 매우 강도 높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레바논 동지들의 경우에는 이 비판 때문에 실제로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우리 동지들은 구타도 당했고 헤즈볼라에게 탄압도 당했습니다. 우리가 2006년에 [헤즈볼라에 연대했던] 그 대중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2012~2013년에 헤즈볼라는 우리 조직을 거의 와해시킬 뻔했습니다. 우리가 헤즈볼라의 활동이 어떻게, 왜 잘못됐는지 원칙 있게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그런 비판이 이제 중요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당시 우리가 했던 주장들을 돌아보면서 “아, 그게 일리가 있는 말이었구나” 하고 깨닫고 우리가 옳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주장을 따라 ‘무조건적이지만 비판적인 지지’를 좀 더 이해하고 있습니다. 혁명적 좌파뿐 아니라 아랍의 더 광범한 좌파도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왜 다시 한번 아랍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지, 또 왜 2011년 때와는 다를 거라고 보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기억할 것은 독재 정권 하에서는 경제 파업이 아주 신속하게 정치 파업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제적 요구를 가지고 파업을 했을 때 경찰들이 파업 노동자들을 체포해 가기 십상이고 그렇게 되면 파업할 권리 등 정치적 쟁점이 됩니다. 이처럼 독재하에서는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이 신속하게 맞물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노동계급의 전투성이 회복되고 있다는 조짐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전보다 파업이 많아졌고 꽤나 굵직한 파업들도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이 앞으로 다가올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우리가 거리에서 신문을 팔면서 혁명의 필요성을 얘기하면 비웃음을 사기 일쑤였습니다. ‘도대체 아랍 세계에서 혁명이 가능하겠냐?,’ ‘완전 몽상가들 아니냐’ 하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완전히 다릅니다. 지금 세대는 혁명을 직접 경험했을 뿐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진 반혁명도 경험했고, 그 안에서 무슬림형제단 같은 단체들이 하는 구실이 무엇이고 국가의 구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토론하는 주제는 2006년과 전혀 다릅니다. 2006년에는 ‘혁명이 가능하긴 하냐?’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아는 만큼) ‘승리하는 혁명을 어떻게 일으킬 것이냐, 그 조건은 무엇이냐’가 주된 논쟁 지점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팔레스타인 세대”는 제가 속하는 과거 세대보다 경험뿐 아니라 정치적 이해 수준도 더 높습니다. 이 점이 중요한 것은 다음 혁명은 분명히 이전 혁명과 다를 것임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아랍 혁명보다는 그것을 포괄하는 더 큰 국제 혁명이 아랍 지역에서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를 얘기해야 합니다.
이 말씀만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오늘날은 레바논 대학생들이,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생들을 지지하며 교문을 박차고 나오는 상황입니다. 미국 학생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다 탄압을 당하면, 레바논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을 지지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글로벌 팔레스타인 세대의 투쟁은 서로 연결돼 있고 아주 깊게 맞물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