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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스라엘 자제 촉구는 왜 약발이 먹히지 않는가

미국과 이스라엘은 결국 서로가 필요하다, 불협화음이 있어도. ⓒ출처 이스라엘 총리실

“X자식 비비 네타냐후, 걔는 정말 나쁜 놈이야!”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 〈워싱턴 포스트〉 부편집인이 10월 15일 내놓는 신간 《전쟁》에 담긴 내용이다. 밥 우드워드는 그 책에서 바이든이 네타냐후의 전쟁 방식에 큰 불만을 가지면서도 끌려다녔다고 썼다.

왜 미국은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 행위를 용인하고 있는가? 일각에서는 바이든의 무능 탓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의 무능이 미국 제국주의의 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미국 국내 편집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에드워드 루스는 ‘뛰는 바이든 위에 나는 네타냐후’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10월 5일 자).

“바이든만큼 중동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했던 대통령은 없었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의 레바논 지상 침공과 이란과의 전면전이라는 불안 요인 때문에 바이든만큼 중동 정세로 기억에 남게 될 대통령도 없을 듯하다.”

1년 남짓 전에만 해도 중동 상황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정상화”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다른 전선들에 대응할 여지가 생기는 듯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젤렌스키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푸틴의 러시아를 약화시키려 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전선인 신흥 강대국 중국과의 결전 대비에 집중할 수 있을 듯했다.

2020년 9월 미국 백악관에서 당시 대통령 트럼프는 아브라함(이브라힘) 협정 체결식을 주관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바레인이 국교를 수립하기로 한 외교적 합의다.

10월에는 수단도 아브라함 협정에 동참하기로 합의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패배한 아랍 국가들이 아랍연맹 회의를 열어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곳이 바로 수단의 수도 하르툼이었다.

12월에 모로코가 이스라엘과 수교하기로 합의했다.

2023년 10월 7일 직전에는 ‘아랍권의 큰 형님’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와 관련해 미국과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빈 살만은 그해 9월 20일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협상에 대해] 매일매일 가까워지고 있다. 처음으로 진지한 것 같다. 냉전 종식 이후 가장 큰 역사적 거래다.”

부패하고 반동적인 아랍 정권들이 미국의 재정·안보 지원 약속에 팔레스타인인들을 배신하는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배신적인 합의는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어그러졌다.

물론 그전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국가와 정착자들의 폭력과 테러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했다. 2021년 5월 18일 총파업이 보여 주듯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저항했다.

그러나 10월 7일 공격에 굴욕감을 느낀 이스라엘이 그 보복으로 가자지구를 산산이 부수면서 “관계 정상화” 프로젝트는 파탄 났다.

위기에 빠져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

애당초, 미국이 중동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서 발을 뺄 것이라는 전망은 근거가 빈약했다. 중동은 미국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다른 경쟁 강대국들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에게 중동 석유의 지배가 여전히 중요할 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도 중동은 아시아·유럽·아프리카의 무역로를 연결하는 요충지다.

그래서 미국은 20년 전 중동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그러나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이 전쟁에서 (수많은 중동인들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미국은 결국 패배했다. 이라크는 현재 이란의 동맹국이 됐다. 3년 전 미국 군대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굴욕적으로 철수했다.

다른 열강이 미국의 중동 지배력 상대적 약화가 낳은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예컨대, 2023년 3월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지난 7월에는 중국의 중재로 하마스와 파타 등 팔레스타인 14개 정파가 베이징에 모여 ‘임시 민족 화해 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없이는 이토록 중요한 지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킬 수 없다.

이스라엘은 보통 국가가 아니다. 너무 특수해서 예외적인 국가다. 이스라엘은 1948년 나크바(대재앙)를 통해 팔레스타인인 약 100만 명을 고향에서 쫓아낸 뒤 세운 정착촌을 중심으로 건국됐다. 이스라엘의 구실은 처음부터 서방 제국주의의 “긴 리치”가 되는 것이었다.

미국이 수십 년에 걸쳐 막대한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국가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7일 공격 직후 미국은 이스라엘의 “정당방위권”을 열렬하게 옹호했다. 미국은 가자지구를 박살 내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 학살하는 이스라엘에 폭탄과 군수품을 신속하게 제공했다. 미국 항공모함과 해병대는 이스라엘의 방패가 됐다.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이스라엘 재무부는 지난 8월까지 가자 전쟁에 투입된 직접 비용이 1000억 셰켈(약 35조 2660억 원)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가자 전쟁이 시작된 이래 미국의 이스라엘 군사 지원은 최소 179억 달러(약 24조 1000억 원)다(미국 브라운대학교 ‘전쟁 비용 프로젝트’).

미국의 군사 원조 중 40억 달러는 이스라엘 방공망 ‘아이언돔’, 장단거리 미사일과 드론 등을 요격하는 ‘다비즈 슬링’(다윗의 돌팔매)을 보충하는 데 사용됐다.

미국의 문제는 자신의 경비견이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분쇄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10월 5일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에서 다시 군사 작전을 확대했다. 자발리야는 이스라엘이 이미 여러 차례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했다”고 주장했던 곳이다.

가자 전쟁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자 네타냐후 정부는 레바논을 침공했고 이란으로 전쟁 확대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을 전력을 다해 지원하면서도, “외교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바이든은 지난 6월 “평화 계획안”을 발표했다. 심지어 이스라엘 측이 그 안을 제안했다고 둘러대기까지 했다. 그 안에는 “전면적이고 완전한 휴전,” 하마스가 억류 중인 인질과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수감자 간 맞교환, 수년에 걸친 가자지구 재건 계획 등이 담겨 있었다.

그 “평화 계획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것을 무시했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학살을 지속했다.

레바논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은 “자제”와 “휴전”을 촉구해 왔다. 그러나 실제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 헤즈볼라가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하라는 압력이었다.

가자지구 인종 학살은 이스라엘 국가를 정치적으로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 제국주의의 위기를 뜻한다.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가자지구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죽는다고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인도주의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자국의 장기적 이익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스라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1948년에 시작된 인종청소를 완료하기 위해 인종 학살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