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사회주의자가 전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며 사람들은 판세가 바뀌고 있다고 느낍니다”
〈노동자 연대〉 구독
레바논의 좌파 언론 ‘퍼블릭 소스’의 편집위원이자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인 시문 아사프를 본지 이원웅 기자가 인터뷰했다. 이 인터뷰는 4월 6일 이뤄졌다. [ ] 안의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부가 넣은 것이다.
이란 전쟁을 일으키면서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를 장악하려고 대대적 군사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이에 맞선 저항의 상황이 궁금합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프로파간다를 믿지 마라.”
그런데 서방이 정확히 그런 오류를 범했습니다. 헤즈볼라, 즉 저항 세력을 그저 이란의 대리 세력이나 노리개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죠. 레바논 사회에 뿌리가 없는 세력으로요. 그래서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살해하고, 헤즈볼라 대원들이 차고 다니는 삐삐를 폭파시키고, 핵심 구성원들을 제거하면 헤즈볼라가 와해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커다란 착각이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항 세력은 레바논 사회에 깊숙히 통합돼 있습니다.
애초 이스라엘의 계획은 레바논 남부 리타니강 이남 전체를 장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1919년의 이스라엘 구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매우 오래된 목표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그것을 실현할 때가 왔다고 여긴 겁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레바논 남부 주민에게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보냈죠. 그러나 그들은 저항 세력의 반격과 반격 능력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틀 전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의 빈트즈베일과 알키얌이라는 마을에서 탱크를 내팽개치고 후퇴했습니다.
그들의 예상보다 저항이 훨씬 단호하고 강력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레바논 남부의 저항 세력들이 그저 외세[이란]의 “대리 세력”이 아니라 그 지역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역사는 1948년, 아니 그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만큼 역사가 길고 뿌리가 깊은 것이죠.
며칠 전부터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를 장악한다는 계획을 포기하고 폭 3킬로미터의 ‘완충 지대’로 후퇴했습니다. 애초 목표에서 훨씬 후퇴한 것입니다. 3킬로미터라는 거리도 의미심장한데, 헤즈볼라가 쏘는 로켓의 사정 거리는 훨씬 길기 때문이죠. [저항에 부딪혀 완충지대의 폭을 충분히 넓게 잡지 못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세운 계획의 또 다른 요소는 레바논 정부를 압박해 헤즈볼라를 무장해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우익적인 미국 공화당 정치인인 린지 그레이엄 등 미국의 정치인들이 레바논을 방문해 레바논 국가가 헤즈볼라의 무장을 해제시켜야 한다고 촉구했죠.
이란 전쟁이 다가올 무렵 레바논 정부는 레바논 역사상 처음으로 헤즈볼라와 무장 저항을 불법화했습니다. 저항 세력을 상대로 사실상 전쟁을 선포하고, 헤즈볼라를 해체시키라고 군대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군대가 이를 거역했습니다. 단지 고위 장성들만이 아니라 많은 장교들이 공개적으로 항명했습니다. 레바논에서 내전을 일으키기를 바라지 않는다고요.
한편, 무장 저항과 관련된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벌인 2024년의 전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는 헤즈볼라가 어떻게 여전히 대함 미사일을 보유하고, 하이파와 텔아비브를 타격할 수 있는 로켓을 쏘고, 방대한 대전차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헤즈볼라와 가까운 사람이 전하기를, 헤즈볼라는 현재 시리아를 통해 무기를 공급받는 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고 합니다. 현재 새 시리아 정권은 매우 친서방적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무기가 그들을 통해 계속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일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애초 이스라엘과 서방의 바람은 헤즈볼라가 시리아 정부와 레바논 정부에 의해 압박받고 고립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레바논과 시리아 모두에서 거대한 균열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세운 전략의 첫째 요소(리타니강 이남으로 진격해서 그곳을 장악하기)가 저항 세력의 규모와 능력 때문에 좌절되고, 둘째 요소(레바논 국가로 하여금 헤즈볼라를 무력화시키기)도 군대의 항명 등으로 좌절됐습니다. 이것은 커다란 충격을 줬습니다.
이스라엘 전략의 셋째 요소는 난민(주로 시아파 무슬림)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향해 처벌 성격의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2024년에도 그런 짓을 벌였는데, 이번에도 매우 무자비하게 이를 실행했습니다. 베이루트 중심부와 레바논 북부가 이런 타격을 받았죠.
심지어 그 공격으로 팔랑헤[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극우 정당] 당원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 지역 깊숙한 곳까지 공격했다는 뜻이죠. 그저 사고였을지도 모르지만요.
따라서 레바논 남부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주는 모든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폭격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난민에 대한 연대는 레바논 민중의 중요한 정치적 시험대가 되고 있습니다. 레바논 국가가 그 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갈등이 불거지는 곳도 있습니다. 도처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죠.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불평 아닌 불평’ 하나는 구호 식량이 넘쳐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난민을 도우러 나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호의 ‘과잉 생산’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어렵고 복잡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스라엘이 중요한 전략적 목표들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고 봅니다. 저항을 분쇄하고, 저항을 고립시키고, 지역 주민들을 고립시키는 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또 다른 측면 하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감지할 수 있는 정서입니다. 상황이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머지않아 미국이 전쟁에서 대패할 것이라는 인식입니다.
이것은 레바논 남부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한 인식도 변화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이 훨씬 취약해 보이는 것이죠.
〈하아레츠〉였는지 〈예루살렘 포스트〉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스라엘군이 더는 작전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이스라엘 장성의 말이 한 이스라엘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2년 동안 가자지구와 시리아 남부 등지에서 군사 작전을 지속하기도 매우 버거웠는데 레바논 남부에서도 전쟁을 지속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죠.
그리고 애초 기대대로 헤즈볼라가 분쇄됐다면 일이 쉽게 풀렸겠지만, 헤즈볼라는 여전히 똑같은 장소에서 버티고 싸우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전쟁은 물론, 레바논 남부의 점령을 지속하는 것도 일절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이처럼 사람들은 전세가 바뀌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죠. 어쨌든 사람들은 미국에 재앙이 닥쳐오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레바논만의 일이 아닙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죠. 이라크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미군과 나토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라크가 갑자기 매우 취약한 곳이 됐다고 느낀 것입니다.
시리아에서도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주 이스라엘 의회가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사형을 법제화하자 시리아 남부의 다라아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다라아는 2011년 시리아 혁명이 시작됐던 곳입니다.
시리아 남부 다라아와 쿠네이트라의 부족들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수니파 무슬림들에게 종교적으로 중요한 도시 하마에서도 대중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알레포에서는 시리아군이 가자를 해방시키겠다며 행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헤즈볼라는 2006년 민족해방 운동으로서 대중적 지지 속에서 이스라엘을 레바논 남부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현재 레바논인들이 헤즈볼라와 맺는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나요?
말씀하셨듯이, 2006년에 헤즈볼라는 광범한 지지를 누렸습니다. 당시 레바논의 모든 무장 세력 중에서 학살이나 탄압에 관여하지 않은 유일한 세력이었기 때문이죠. 헤즈볼라의 총구는 모두 이스라엘을 향했습니다. 헤즈볼라는 오로지 레바논 남부를 해방시키는 데에 기여했습니다. 그래서 광범한 지지를 얻은 것이죠.
그러다 2012년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헤즈볼라가 당시 시리아에서 일어난 종파주의적 내전에 관여했기 때문입니다. 또, 헤즈볼라는 레바논 국가에 더 깊숙이 통합되고 그 일부가 됐습니다.
예컨대 헤즈볼라는 이스라엘-레바논 가스 협정이 체결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에 있는 가스전을 두고, 헤즈볼라는 협상 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그곳의 석유 시설을 포격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꽤 괜찮은 협상 조건을 따 낼 수 있었죠.
2019년 헤즈볼라는 10월 항쟁을 진압하는 데서 핵심적 구실을 했습니다. 이는 헤즈볼라의 입지를 매우 약화시켰죠.
2023년 10월 7일 공격 직전까지도 헤즈볼라는 여러 사회 문제를 둘러싸고 매우 나쁜 태도를 취하며 동맹들을 배신하고 갈수록 종파주의적인 주류 정당과 닮아 갔습니다.
다른 모든 나라들에서 민족해방 운동이 갈수록 권력 핵심부에 가까워졌던 것처럼, 헤즈볼라도 익히 예상할 수 있는 경로를 밟은 것입니다.
그러나 헤즈볼라의 경우, 중요한 차이점은 이스라엘이 확장주의적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즈볼라는 늘 어느 시점에 이르면 결국 저항 세력으로서의 역할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자 인종학살 이후 모든 것이 바뀐 것입니다. 헤즈볼라는 이제 레바논 국가의 일부이기는커녕 국가의 적으로 선포됐습니다. 모든 역학과 셈법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물론, 헤즈볼라는 2023년 10월 7일 공격 이전으로 돌아가려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레바논 국가 내의 일부가 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헤즈볼라는 레바논 국가의 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2011년 아랍 혁명이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만큼, 2023년 10월 7일도 중요한 전환점이 됐었습니다. ‘그 전에 일어난 일은 제쳐 두자’고 말해야 하는 전환점이 된 것이죠.
저항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헤즈볼라와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레바논 남부의 민중과 연대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진정한 변화입니다.
제 경험담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제가 일하는 곳에 청소부로 일하시는 한 분 있습니다. 아침마다 인사를 나누죠. 그 분은 레바논 남부 국경 지대 출신인데, 어떻게 이곳[영국]에 왔는지 물어 보니 이스라엘을 통해서 왔다고 합니다. 가족이 레바논남부군 소속이었던 것이죠. 레바논남부군은 1980~90년대에 활약한 친이스라엘 무장 조직이고 헤즈볼라에 매우 적대적입니다.
그런데 어제 그 분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 저항 세력이 벌인 일을 보세요, 정말 멋집니다.” 정말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인 지역이든 친이스라엘 지역이든 가리지 않고 레바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레바논 남부의 민중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정치적 언어에서 나타난 커다란 변화입니다. 2006년에 사람들이 헤즈볼라를 연호했다면, 이제는 ‘아흘알자누브’라는 표현을 씁니다. ‘레바논 남부의 민중’이라는 뜻이죠. 이제 사람들은 레바논 남부의 민중을 지지한다고 말합니다. 단지 어떤 무장 세력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투가 아닌, 그보다 훨씬 광범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 주죠.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레바논 남부 민중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면전입니다. 이스라엘이 전면전을 선포한 탓에, 거기에 반대하는 것이 반드시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레바논 남부의 민중을 지지하는 것이라는 정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바논 남부의 민중이 무장 저항을 한다면 그 저항 또한 지지한다는 것이죠.
한편, 시리아인들 사이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옵니다. ‘레바논 남부의 민중을 지지하는 것은 시리아 내전에 관여한 자들을 지지하는 것과 다른 것이다. 우리는 그 둘을 구분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헤즈볼라의 시리아 개입*을 문제 삼는 사람들은 레바논에 관해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뿐입니다.
시리아 혁명으로 급진화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새 시리아 정권을 이끄는 알샤라아의 친서방 행보를 두고 ‘이것은 우리가 얻어 낸 것이고 누구도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며 옹호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시리아 혁명을 지지하고 헤즈볼라에 매우 비판적이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상황이 바뀌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확장주의적이라는 것이다. 당신들은 시리아 내전에서 헤즈볼라가 자행한 일 때문에 헤즈볼라와 레바논 남부의 민중이 응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이스라엘은 시리아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할 텐가?’
이런 식으로 과거의 적이 이제 동맹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물론 레바논 사람들에게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닙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맹이 되고 내일은 다시 적이 되는 것을 늘상 겪어 왔죠.
어쨌든 지금은 상황이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시리아 남부의 부족들이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하면서요.
최근 시리아 전역에서 일어난 시위에 관해서도 궁금합니다.
시리아 시위의 규모는 그 자생성을 보여 줍니다. 2012년 시리아 혁명 때는 마을 주민들이 AK 소총을 들고 [아사드 독재 정권에 맞서 결성된] 자유시리아군 가입을 선언하는 영상이 유행했는데, 지금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리아군의 탱크병들, 부족들, 정당들, 마을 주민들이 이스라엘에 맞선 전쟁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특히 시리아 남부에서 두드러집니다.
물론, 이 시위들은 대체로 수니파 지하드의 궤적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다른] 드루즈인 지역인 시리아 남부의 수웨이다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곳에서는 드루즈인의 상당한 일부가 이스라엘과 협력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커다란 시위가 일어난 것이죠.
이는 시리아의 반이스라엘 시위가 단지 수니파 지역만이 아니라 광범하게 벌어지고 있고, 시리아 곳곳에서 쟁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레바논에 파견된 〈소셜리스트 워커〉의 사진 기자인 가이 스몰먼은 지난주 국경 지대의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이 한 이스라엘인의 시신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침공한 마을이죠.
그런데 그 병력은 시리아 국경을 통해서 왔다고 합니다. 시리아 정권과 이스라엘 사이에 협력이 있었다는 것이죠. 레바논군으로 위장하고 앰뷸런스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지역의 시장은 이스라엘군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경고를 사전에 받았다고 합니다. 시리아 정권이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동안, 그 현장에 있던 시리아인들은 이스라엘군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소식을 전달해 준 것이죠.
시리아의 시위는 샤라아와 [그가 이끄는 조직] HTS 사이의 균열을 보여 줍니다. 아사드 정권이 무너질 때 그들은 [시리아 제1, 제2의 도시] 다마스쿠스와 알레포의 수니파 부르주아지와 거래를 했습니다. 그에 따라 모든 군부 인사들을 해임하자마자 다시 불러들이고 시리아 국가를 재건했죠. 그 정부의 수장은 바뀌었지만 본질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관여한 사람들 중에는 시리아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그 혁명이 단지 시리아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위대에는 많은 지하디스트들의 깃발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샤라아의 기반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시위 당시 샤라아는 독일을 방문해 독일 총리와 회담을 하고, 그 뒤 영국으로 날아가 외교 정책 싱크 탱크인 채텀 하우스에서 티타임을 가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시위대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대사관을 부수고, 미국 대사관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군대의 상당한 일부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진격하겠다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벌였습니다. 일부 시위대가 오토바이를 타고 이스라엘군이 주둔한 골란 고원의 국경 지대를 돌파하려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랬다가는 이스라엘에 의해 도륙이 날 것이 뻔한데도 말이죠. 시리아 보안군이 수백 명에 이르는 오토바이 시위대에게 더는 멀리 가지 말라고 간청했다고 하죠.
이처럼 정부와 기층의 전반적 정서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는 것입니다.
현재로서 그 정서는 매우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미국이 곧 패배하게 생겼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갑자기 사태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 것이죠.
사실 샤라아의 기반은 매우 협소합니다. 그의 확고한 기반은 다마스쿠스 동부, 하마, 알레포 동부 등 모두 파괴된 도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샤라아는 비록 정부를 운영할지는 몰라도 기층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순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는 쿠르드족입니다. 샤라아는 시리아가 “시리아 아랍 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시리아는 아랍인들의 것이지 쿠르드인들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것은 바트당의 오랜 공식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샤라아는 쿠르드인들에 대한 여러 규제를 풀었습니다. 그들의 언어를 합법화하고, 쿠르드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그들은 1960년대에 시민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쿠르드인들이 봄철 축제를 여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이것은 혁명에 대한 양보이고 흥미로운 일입니다.
UAE 대사관을 공격한 이후에도 시리아 정권은 시위대를 처벌하겠다고 위협하지 않고, 얌전하게 굴라고 타이르는 데 그쳤습니다.
이는 시리아 정권이 매우 취약함을 보여 줍니다.
사실 샤라아의 행보는 자본주의 국가의 수장으로서는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현재 시리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 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을 경유하기로 돼 있던 디지털 통신 케이블을 시리아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시리아에 거액을 투자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석유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면서 시리아의 석유 항구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샤라아는 친서방적인 노선으로 자본주의 국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 하죠.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확장주의가 이 모든 꿈을 박살 내고 있습니다. 샤라아가 아무리 유순하게 굴어도 이스라엘의 확장주의는 시리아를 가만히 놔두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국이 중동에서 극적인 패배를 겪는 동안 시리아 정권과 레바논 정권이 처할 곤경입니다.
이번 이란 전쟁을 두고 미국판 수에즈 위기가 왔다고들 합니다. 수에즈 위기란 1956~1958년 프랑스와 영국이 이집트를 침공했다가 역풍을 맞은 사건입니다. 지금도 그때와 유사한 면이 있고, 그렇다면 이는 걸프 연안국 정권들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라크 북부가 성난 대중으로 들썩이면 쿠웨이트도 곤경에 처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유전이 있는 시아파 지역인 다란도 안전하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는 그곳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란이 미국과 거래를 하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란은 분명 미국과 거래를 할 것입니다.
현재 레바논의 저항과 관련해서 제가 주목하는 점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이란과 미국 또는 서방이 거래를 할 때, 그 합의안에 레바논 남부에 관한 사항이 포함될까요? 아니면 그것은 이란 국경에 국한될까요? 이것은 전쟁 이후 커다란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처음에 이란 정권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 관한 사항이 합의에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아본 바로는 최근 이란 정권은 더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항이 곤경에 빠지게 될 경우의 수도 많습니다. 이란은 자신의 일국적 이익을 중동 수준의 이익보다 더 앞세워 왔습니다. 이번에도 그럴지 두고 볼 일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이번 전쟁으로 커다란 패배를 겪게 될 가능성이 사람들의 정서와 전망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중동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금 벌어지는 싸움이 여느 싸움이 아니라 결정적인 싸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침공을 물리쳤던] 2006년 레바논에서와 같은 작은 승리가 아니라 훨씬 큰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기층의 정서가 바뀌고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