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격화되는 문화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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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트럼프 시대, 격화되는 극우의 문화전쟁’을 주제로 한 노동자연대 공개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필자가 일부 손봐서 기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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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쟁이란 무엇인가?
트럼프가 취임과 동시에 광폭한 반동 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특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제국주의적 정책들입니다. 트럼프는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들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그린란드를 미국 땅으로 만들겠다고 했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미국이 소유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행보는 트럼프가 그간 천명해 온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미국 우선주의는 국내에서의 인종차별 강화와 연동돼 추진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남부 국경에 비상사태를 선포해 이민 통제를 강화하고, ‘불법’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트럼프는 제국주의와 국수주의를 강화하는 동시에, 국내에서는 차별 정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을 폐기했습니다. 그리고 취임식에서 미국 정부는 앞으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성별만 인정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발언 이후, 미국 국무부는 미국 여권에서 ‘제3의 성’이라는 선택지를 삭제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 성별을 제3의 성 또는 X라고 표시한 사람들은 출입국시 구금될 수 있습니다. 트랜스 여성이 여성 부문 스포츠에서 경기할 수 없도록 하는 행정명령도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온갖 영역에서 문화전쟁이 더 격화될 예정인데요. 이 글에서 저는 주로 인종차별과 젠더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문화전쟁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이것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문화전쟁을 간단하게 정의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통용되는 문화전쟁은 1990년대에 우파가 선언한 개념인데요. 미국 사회가 낙태, 젠더, 동성애, 인종, 가족 가치, 종교의 자유 등의 문제로 첨예한 전쟁 상태에 있다는 상황 인식입니다. 특히 좌파 세력이 이런 쟁점을 가지고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며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는 게 우파들 주장의 요지입니다.
“문화전쟁”이라는 용어는 기독교 측에서 나온 것입니다. “문화전쟁”은 한마디로 우파들의 이데올로기 전쟁입니다.
역사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1992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팻 뷰캐넌이라는 자가 출마했습니다. 그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화당이 나아갈 길로 “문화전쟁”을 처음으로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미국의 영혼을 둘러싼 종교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같은 곳에서 이 문화전쟁은 언젠가는 냉전만큼 중요해질 것입니다.”
Cold war(냉전) 해체 이후 Culture war(문화전쟁)가 중요해졌다는 말입니다.
당시 뷰캐넌은 낙태권, 동성애 권리를 주되게 공격했는데요.
뷰캐넌의 표적에서도 보이듯이, 문화전쟁은 특히 기독교 우파들이 원하는 의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죠.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다루겠습니다.
그런데 뷰캐넌의 “문화전쟁” 선포는, 선거에서 우파들을 결집시키려는 시도이자, 1960~70년대 벌어진 흑인, 여성, 성소수자 운동의 성과들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 사회는 인종차별적 제도들이 허물어지고,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상징되는) 낙태권이 인정되고, 동성애 처벌 법들이 사라지는 등 큰 진보가 있었죠. 이런 진보 덕분에 소수인종과 여성, 성소수자 집단의 일부가 사회 상층에 진입해 중간계급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기독교 우파의 반동을 자극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미국 기독교 우파는 반공주의의 일부로 활동하면서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교세를 확대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반전 운동, 낙태권 운동, 페미니즘, 성소수자 해방 운동, 세속주의의 확대 등이 이들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1970~80년대부터 미국 기독교 우파들은 기층에서 소위 “세속 인본주의”에 맞서 문화전쟁을 벌여나가기 시작합니다. 즉, 문화전쟁은 기독교 우파에서 비롯된 운동이기도 한 것이지요.
기독교 우파의 독특한 특징은 기층 동원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복음주의 보수 기독교는 대학교부터 여행사에 이르는 온갖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실상 구호단체/ NGO 역할을 하며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죠.
이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기독교 우파들은 공화당 후보 레이건의 선거 운동을 효과적으로 도와서 그를 당선케 하죠. 이후 조지 부시 1·2세의 행정부 시절에도 기독교 우파들은 주와 지역 수준에서 세를 넓히며 특히 공화당 기층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그 과정에 대해서는 본지 467호, ‘미국 기독교 우파는 어떻게 공화당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는가’를 읽어 보시오.)
물론 공화당 주류 정치인들, 대통령들과 기독교 우파의 이해관계가 늘 일치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기독교 우파의 표 없이는 결코 당선할 수 없는 처지이고, 그들을 이용해야 하지만 당선 후에는 대자본과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이익을 우선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레이건, 조지 부시 1세, 2세 모두 기독교 우파들이 원하는 만큼 문화전쟁을 수행해 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전쟁은 우파 정치인들이 선거 때 상이한 견해를 지닌 우파들을 묶어 내는 결집 카드로 쓰였고, 특히 기독교 우파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코드로 이용돼 왔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기독교 우파는 트럼프를 전폭 지지했습니다. 사실 트럼프 같은 부도덕하고 기독교에 무지한 인물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나서는 것도 아주 역겨운 일인데요. 기독교 우파들은 성경의 말을 인용해 ‘하나님은 당나귀의 입을 빌려서도 자신의 뜻을 펼치신다’며 트럼프 지지를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는 트럼프가 문화전쟁의 핵심 요소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말뿐 아니라 기독교 우파들에게 신임받을 만한 실천을 해 왔습니다. 첫 임기 때 트럼프는 연방대법원에 보수파를 앉혀서 낙태권을 허용한 판결을 뒤집어 버리고, 트랜스젠더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하려 하고, 이슬람권 5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 금지 행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트럼프 시기의 문화전쟁은 이전과 달리 단지 1960년대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문화전쟁이 선포된 1990년대와 비교하면 오늘날에는 자본주의의 다중적 위기가 매우 심화됐습니다. 특히 2008년 세계 경제 공황 이후 경제 위기, 지정학적 위기, 기후 위기가 중첩되면서 사람들의 고통과 울분이 아주 커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동안 좌파 측의 도전은 불충분했거나 실패했고, 신자유주의를 추진한 중도 좌·우파는 대중의 분노와 환멸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런 조건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극우가 성장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우익 기층 운동들을 고무했고, 그 속에서 파시스트 조직이 자라날 기회를 제공했죠. 트럼프는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거침없이 이데올로기적 공격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여기에는 반(反)젠더, 무슬림 혐오, 흑인 혐오뿐 아니라 좌파에 대한 증오 선동도 포함됐죠.
복음주의 기독교와 미국 공화당의 관계를 파헤친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 존 뉴싱어는 미국에서 기독교 우파의 일부가 향후 파시스트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그 가능성을 잘 보여 준 것이 2021년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이었죠.
오늘날 문화전쟁은 이런 극우들과 파시스트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더 나아가 자유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고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히 위험하므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트럼프가 단지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서 극우를 고무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윤석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윤석열도 트럼프처럼 부정 선거 음모론을 내세워 군사 쿠데타를 기도했습니다. 최근 윤석열 지지자들이 서울 서부지법 건물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킨 것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처럼 트럼프 시기의 문화전쟁은 위로부터, 즉 국가 차원의 차별과 억압 강화를 뜻할 뿐 아니라 기층의 극우 운동을 자극하고 그 둘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각별히 위험합니다.
트럼프는 미등록 이주민 1100만 명을 미국에서 내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벌써 국가 기구에 의한 체포가 시작되고 있지만, 이는 기층 우익들이 총을 들고 민병대를 꾸려서 소위 “불법” 이주민을 사냥하는 일을 수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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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쟁 이데올로기 해부
이제부터는 문화전쟁에서 우파가 이겨야 한다고 부르짖는 ‘문화 전사’들의 이데올로기를 해부해 보겠습니다.
문화전쟁은 어떤 이질적이고 전통적이지 못한 문화들이 건전한 서구 또는 기독교 문화를 위협한다고 가정합니다. 페미니즘, 다문화주의, 이슬람, 젠더 다양성이 잘못된 문화라는 것이고, 이로부터 벗어나서 건전하고 상식적이었던 옛날로 돌아가자는 향수를 부추기죠.
그리고 이런 ‘잘못된’ 사상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부패한 엘리트 집단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문화 전사’들의 공격 대상에는 유엔,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 기구들과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 등 일부 억만장자들도 포함됩니다.
문화전쟁은 트럼프나 일론 머스크 같은 자들이 기존 질서의 일부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고 아웃사이더 행세를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나 자칭 아웃사이더들은 괴짜들일지는 몰라도 엄청난 부자들이죠. 일론 머스크는 세계 최고 부자입니다.
그들이 국제 기구들과 다국적 기업을 비난하는 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인해 삶이 나빠진 노동자들의 분노를 자신들에 대한 지지로 돌리려 하는 것입니다.
우파는 대중의 생활 조건 악화를 이민자 탓으로 돌리며 대중의 분노를 인종차별과 성차별 등으로 비틀려 해 왔고, 그것은 얼마간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즉, 문화전쟁의 핵심 목표 하나는 노동계급 내에서 차별과 갈등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우파의 여러 음모론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좌파가 사회의 모든 주요 제도를 장악했다?
‘문화 전사’들에 따르면, 엘리트 좌파들이 사회의 모든 주요 제도와 기관에 진출해서 그곳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극우들은 마르크스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와 죄르지 루카치, 학술적 마르크스주의 학파인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을 필두로 한 좌파들이 학교, 정부, 관청, 미디어 등의 기관들을 마르크스주의 사상 전파 기지로 삼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문화 마르크스주의”라는 음모론인데요. 한국에서도 인권위원장인 안창호가 인사청문회에서 “동성애가 공산주의 혁명의 수단이다”라고 얘기한 것이 이런 문화 마르크스주의 음모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문화 마르크스주의를 극우가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문화 마르크스주의의 주도 세력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대부분 유대인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죄르지 루카치는 부유한 유대인 은행가의 자제였고 프랑크푸르트 학파도 대다수가 유대인이었습니다. 극우는 유대인 엘리트가 세계를 주무른다는 사이비 반자본주의 주장을 종종 펴는데, 이를 좌파 혐오와 결합시키기 안성맞춤인 대상이 바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인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폄으로써 극우는 유대 자본에 맞선 반체제 전사로 행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음모론은 명백하게 파시즘과 관련 있는데, 좌파적 사상이 어떻게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는지를 그럴 듯하게 설명해 주는 것 같기 때문에 주류 우파들도 이런 음모론을 점차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음모론은 대교체 이론입니다. 이는 글로벌 엘리트들의 음모에 의해 백인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그 자리를 흑인, 무슬림, 히스패닉 등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대체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백인이 인구 수에서나 문화적으로나 유색인종 집단에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죠.
이 이론은 처음에 나치의 이데올로기로 창안됐지만, 점차 주류 우파들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 영국 보수당 정부의 내무장관 수엘라 브래버먼도 이 음모론을 들먹이며 이민자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이주민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희석된 버전의 생각은 훨씬 광범한 우파와 중도, 일부 좌파까지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주민 때문에 백인의 (또는 정주민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건 순전한 거짓말입니다. 어떤 사회의 일자리 총량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과 정부가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는 게 문제인데, 대교체 이론은 엉뚱하게 이주민을 탓하는 것이죠.
문화 마르크스주의, 대교체 이론과 더불어서 지난 몇 년 동안 극우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비판적 인종 이론에 대한 공격입니다. 트럼프는 비판적 인종 이론을 “우리 나라를 파괴할 이념적 독”이라고 불렀습니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이 인종차별이라는 렌즈를 통해 역사를 바라보도록 장려하는 것입니다. 미국 국가는 구조적 인종차별 속에서 탄생했고, 그 역사를 인종차별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또한 미국 국가는 제국주의적 정책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차별을 부추겨 왔습니다.
그러나 우파는 이 엄연한 진실을 감추고 인종차별의 유산을 일절 언급하지 않습니다. 우파들은 기층에서 운동을 벌여 텍사스를 비롯한 수십 개 주의 학교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에 대한 토론 자체를 금지시켰습니다.
문화전쟁이 극우 또는 파시스트와 주류 우파 사이에 다리를 놓는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기존 주류 정치 세력들의 인종차별 부추기기는 파시스트와 극우가 세력을 결집하는 토양이 됐고, 극우가 성장하자 이제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기존 주류 정치세력들이 다시 이용하는 상호 작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좌파의 대응 - 차별 문제에서 후퇴하자?
서구에서 일부 좌파들은 문화전쟁에서 좌파가 이기려면 그간 좌파가 고수해 온 정치적 올바름(PC)이나 워크(Woke, ‘의식 있음’이라는 말로 차별과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한 각성을 뜻한다)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좌파들은 ‘정체성 정치’에서 벗어나 경제(와 계급)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죠. 이런 주장은 2016년 트럼프가 등장했을 때부터 이미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에 번역·출판된 미국 문화평론가 수전 니먼의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도 그런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또 다른 대표적 사례는 바로 독일의 자라 바켄크네히트, 영국의 조지 갤러웨이 같은 유명 좌파 정치인들인데요. 장석준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전 소장 등도 그런 주장을 하고 있죠.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좌파당에서 분열해 나오는 과정에서 ‘일어서라’라는 운동을 출범시켰는데, 이 운동은 좌파당이 너무 국경 개방 주장에 매달리는 바람에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에게 표를 빼앗겼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한편, 조지 갤러웨이는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반대했습니다. “남자가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여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잘못됐을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차별 문제를 회피하는 것입니다. 젠더와 인종차별은 문화전쟁의 핵심 전장일 뿐 아니라 계급 문제와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겐크네히트 류의 주장은 그 전장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 퇴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종차별과 트랜스젠더 혐오에 타협하는 것은 극우를 정당화해 줄 뿐입니다. 이주민과 트랜스젠더가 평범한 사람들의 가장 큰 위협이라는 거짓말에 힘을 실어 주고, 극우가 자신들의 적들도 동의하는 내용이라면서 그런 거짓말을 떠들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래서 극우의 지지층을 빼앗기는커녕 더 공고해지도록 만들고, 극우의 주장이 노동계급 운동에 더 광범하게 침투하도록 해 주죠.
사실 이런 좌파들의 후퇴는 선거주의에 적응하면서 비롯한 면이 큽니다. 논란이 될 만한 주장에 대해서는 타협하는 것이죠.
동시에 이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중도파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중도파가 너무 차별 정책에 집착한 탓에 노동자들이 떨어져나갔다고 엉뚱한 진단을 내리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바이든, 오바마, 마크롱, 문재인까지 중도파는 말로는 차별 개선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인종차별 문제에서 후퇴하고 전쟁을 지속하고 여성과 성소수자 등 천대받는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차별 문제에서 후퇴하는 좌파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몰락한 중도파와 손잡고 극우를 물리치겠다는 민중전선입니다.
이런 입장을 주장하는 또 다른 사람은 영국 노동당 소속의 저명한 지식인인 폴 메이슨인데요. 그는 2021년 미국 극우의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1930년대에 유럽이 얻은 교훈은 엘리트층과 폭도의 일시적 동맹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중도파와 좌파의 일시적 동맹뿐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퇴진 운동 내 주요 좌파들도 이와 대동소이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민중전선은 극우를 막지 못했습니다.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여전히 필수적이지만 그렇게 하려면 계급 협력의 방법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중도파와의 동맹은 오히려 극우들이 ‘거 봐라 좌파는 저런 권세 있는 자들과 같은 편이다’ 하고 주장하기 좋게 만들어 줄 뿐입니다. 좌파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좌파가 독립적으로 계급투쟁을 건설하기 어렵게 만들죠.
우파의 문화전쟁에 제대로 맞서려면, 좌파는 차별 쟁점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면 차별은 계급의 단결을 저해하기 때문입니다. 좌파는 오히려 차별과 만만찮게 대결하면서 계급의 단결을 도모하고, 그런 계급적 힘을 이용해서 우파의 준동에 맞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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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세계적 극우 부상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동시에 차이도 있다
트럼프와 문화전쟁은 한국에도 이미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실 윤석열 자신은 트럼프가 쿠데타를 지지해 줄 것이라 내심 기대하고 계엄을 선포했을 것입니다.
한국의 극우들은 트럼프를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내내 광화문에서 태극기 집회를 열면서 세를 다져 왔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기독교 우파가 정치 운동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기독교 우파는 기층에서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집단으로 떠올랐습니다. 극우의 핵심 인물 하나는 전광훈 목사이고, 시위대의 대다수가 기독교 우파라는 점이 이를 보여 줍니다.
이들은 기층에서 운동을 벌여 학생인권조례를 폐지시키고,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 운동을 하고, 대구에서 이슬람 사원 건설 반대 시위를 벌이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극우와 한국 극우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습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냉전의 유산이 강력하게 남아 있고, 남북이 대립하고,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제국주의 강대국의 경쟁에 끼어 있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극우의 핵심 쟁점이 반(反)중국, 반(反)북한에 맞춰져 있습니다. 윤석열 자신이 “종북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면서 계엄령을 내렸었죠. 거리의 극우는 윤석열 퇴진 운동을 친중 세력이 이끌고 있다느니, 중국인들이 반윤석열 집회에 대거 참가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한반도 주변에서 군사적·외교적 긴장이 고조돼 국가 간 충돌이 벌어지는 유사시 극우는 노동계급의 운동과 조직을 분쇄하고 권위주의로 회귀할 기회를 붙잡으려 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도 이런 지정학적 요인들을 군사 쿠데타로 연결시키려 했죠.
극우는 민족주의를 내세웁니다. 극우의 민족주의는 유럽에서는 유럽연합 반대, 미국에서는 미국 제일주의로 나타나는데, 한국 극우도 민족주의적입니다. 그리고 한국 극우의 민족주의는 친미와 친일도 중요하게 내세웁니다. 한국 국가의 건국과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 미국 제국주의와 깊숙히 얽혀 있기 때문이죠.
지금 극우가 반중·혐중을 선동하는 것도 그런 맥락 속에 있습니다. 윤석열이 분쇄하려고 했던 ‘내부의 적’은 ‘외부의 더 큰 적’과 연계돼 있다고 선동하는 것이죠. 이런 반중·혐중 선동은 트럼프의 대중국 압박에 코드를 맞추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좌파는 미국·일본 등 서방 제국주의에 명확하게 반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친중 또는 친북한 사상을 지지하는 좌파 활동가들에 대한 국가 탄압에 분명하게 반대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은 명백한 사상 차별법이기도 합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탄압은 단지 친북 사상만 처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상 탄압은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사상과 운동 전반을 위협합니다. 즉, 표현의 자유 문제인 것입니다.
윤석열은 임기 내내 국가보안법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구속된 친북 활동가들은 10여 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일부 좌파들은 원론적으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지지하면서도 그 법의 구체적 피해자들을 방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회피는 국가가 운동을 더 쉽게 분열시키고 파괴하게 만들 뿐입니다.
윤석열이 탄핵되더라도 한국은 쿠데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정치 상황은 격동할 것이고, 정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극우는 노동계급을 이간질하기 위한 여러 술책의 하나로 문화전쟁을 벌이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친북·친중 사상 지지자들에 대한 탄압 반대를 포함한 모든 차별에 맞서면서, 노동계급을 단결시켜야 하고, 그런 단결된 힘으로 극우에 맞서야 할 것입니다.